고양산, 반론산 산행기





일시 : 2003년 6월 14일(토) ~ 15일(일) / 흐림, 비.

출발시간 : 2003년 6월 14일 22시.

행정구역 : 江原道 旌善郡 臨溪面, 東面, 北面.

총 산행거리 : 약 12 .9km.

총 산행시간 : 약 9시간(05 : 40 - 14 : 40)

산행인원 : 총 28명(이용석 기사 포함)

산행구간 :

臨溪面 高陽里 3거리 - 적목동마을 - 좌측 수레길 - 벌목 능선 - 사면 - 배재 - 억새밭 - △高陽山 - 고창골 안부 - x1054m봉 - x850m봉 - △半論山 - 안부 - 채소밭 - 고창골 콘크리트 도로 - 북면 고양리 선양교회 앞 3거리


지형도 : 1/25,000 임계[1999 . 12 . 인쇄]

산행후기 :

울창한 산림 속에 짙은 녹음이 드리운 가운데, 모두 혼연일체가 되어 서로 끌어주며, 위로하며, 같이 나누어 먹고 마시며, 오지 산행의 묘미를 마음껏 즐기며 산행하였다. 비록 거리는 짧다고 할 수 있지만, 한마디로 말하라면 환상적 또는 기가 막힌 산행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산이었다. 아직 사람의 발길이 별로 많이 닿지 않은 심산오지의 산이기에, 심마니와 나물꾼들이 내어 놓은 길이 조금 희미하게 나 있거나 아예 보이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산행 도중 내내 한 사람의 등산객도 보지 못하였지만, 우리는 개척자적인 기분으로 임하였기에 자부심도 상당히 준 산이었다. 우리를 표시하는 표지기가 후답자를 기다리며 묵묵히 매달려 있으리라. 이제 우리 서울산사람들[http://smtps.co.kr] 회원 여러 분의 산행 실력도 수준급이라고나 할까.... 이제 웬만한 산악회와 어깨를 나란히 겨룰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더욱이 이 산은 지난 여름, 그러니까 2002년 한여름인 8월 말경에 우리의 호프 문양식 대장, 박수환 리더 기타 몇 명이서 동년 9월 둘째 주말 산행을 위하여 답사를 마쳤으나,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태풍으로 인하여 강릉 등 영동 지방의 피해가 너무 커 산행 대신 봉사하러 가느라고 미루어 놓은 산이었기에 거의 1년이 넘어 오른 산이라 감회가 무척 새로웠다. 우리 서울산사람들의 봉사정신이 배어 있는 사건이었던 것이다.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적지 않게 마음을 졸이게 했지만, 평소보다 일찍 종각 제일은행 본점 앞 출발지점으로 나갔다. 시간이 있어 제일은행 빌딩 뒤 충청도집에서 정말 운치나는 원두막에서 올갱이국으로 저녁을 간단히 대신하고, 그 안주인의 귀부(여동생의 남편)인 분과 시사에 대하여 토론을 벌이다 보니 우리 나라가 처한 현실이 너무나 걱정되었다. 그 분도 산행을 하고 싶어해서 오는 길에 모시고 와서 문대장에게 소개시켰다. 앞으로 참석할 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버스에 오르니 큰형님이 보이는 등 반갑기도 했지만, 복남씨랑, 쩡애씨, 아이비님, 기타 많은 분들이 보이지 않아 섭섭하였고, 그러다 보니 버스 안이 많이 비어 있어 안타까왔다. 나는 자리를 2개나 얻는 특혜를 받았다. 감사하다. 이어 자리에서 억지로라도 잠을 청한다. 회비도 서연님에게 넘겨주고 말이다. 이윽고 버스는 10시가 훨씬 넘어서야 움직이었다. 그리고 양재에서 마도로스님과 정상덕 부부, 은영씨 등을 태운 것 같다. 그 이후 나는 어느 휴게소에 들렀는지 기억이 없다. 길은 막히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준숙면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짜야 총무의 얼굴도 못본 채로 잠을 잤으니 말이다. 일정이 빡빡하여 피로가 왕창 몰린 탓이다. 드디어 좌우로 온통 산이고 보이는 것은 오직 하는 뿐인 어떤 한 오지 두메에 버스는 새벽 3시 5분경에 도착하자, 잠이 깨었다. 내리기 싫었지만 볼일을 위하여 버스를 내려니 시멘트 포장도로이다. 도로로 잠시 내려가니 콘크리트 교량이 나오고, 어디서 난 물인지 모르지만 갑자기 맑은 물이 펑펑 흐른다. 참 희얀도 하다. 어디 산 밑에서 솟는 물인 것 같다. 내려가서 보니 서울에서 보는 생수보다 더 깨끗하고 신선해 보인다.

다시 버스에 올라가 남은 시간동안이라도 단잠을 청하였다. 그런데 이 새벽에 버스 안에서 누군가 천둥소리같이 우렁차게 코를 골며 만인의 민원을 받는 분이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는데, 그 분이 바로 고래님이었다고 한다. 전날 저녁 동창회로 인하여 술을 과음하게 되어 그러하다고 변명한다. 그러나 코를 고는 사람은 무호흡증으로 고생할 수도 있으니 조속히 치료를 받을 것을 산행을 시작하며 마을 길을 걸으면서 충고하였으나, 본인이 벌써 알고 있었으므로 조금은 머쓱하였다. 어쨌든간에 그 와중에서도 잠으로 다시 빨려들어가 문대장님의 산행준비라는 예령에 잠을 깨보니 5시가 넘어 있다. 이미 부지런한 리더진들과 이용석 기사님이 물을 끓여 컵라면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 컵라면과 그 관련 설비는 이용석 기사님이 마련했다고 한다. 그리고 하산 지점에서 닭백숙을 끓이는 데에도 한 몫을 하셨다고 한다. 안전 운행을 해 주신 것만도 고마운데, 그 외에 이런 것까지 세심하게 챙기시는 고운 마음씨에 참으로 감사드린다. 다음에 무엇으로 보답을 해야 할까보다. 잠이 덜깬 눈을 밝아오는 세상에 적응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던 차에 박수환 리더가 컵에 물을 물어 건네준다. 적당한 시간이 흐른 뒤에 두껑을 열고 맛을 보니 먹을 만하다. 멋진넘씨가 다 먹고 나서 이왕이면 신라면이었으면 더 좋았을 걸 하고 한마디 조크를 놓치지 않는다. 여하튼 산행 시작에 있어 별로 부담이 안 되는 컵라면이 아주 안성맞춤인 것 같다.

산행 내내 비는 오지 않고 적당히 흐린 상태 내지 갠 상태를 유지하여 주어 날씨마저도 우리들이 너무나 산행하기에 좋도록 도움을 주었다. 비록 마지막에는 비가 와서 우리 서울산사람들과 비는 오지 산행시마다 질긴 인연이 있다고 할 정도이었지만 말이다. 열대지방의 밀림이나 사하라지방의 산림을 방불케 하는 지역도 있었지만 그래서 두 팔과 두 발로 마무 헤쳐가도 마냥 좋기만 한 산행이었다. 아쉬운 것은 그렇게 험한 산행이라면 준비물에 조선낫 또는 정글칼을 넣어야 하는데, 달공 대장이 이를 실수한 점이다. 내가 만약 조선낫을 지참했더라면 산행시간이 상당히 단축되었을 것이고, 고생도 덜 했을 것이다. 솔직히 그간 수련(?)한 낫 휘두르는 솜씨도 과시(?)하고 싶었는데....

특히 이번 산행에서 산을 지정하고 총지휘한 달공대장의 리더십이 돋보였다. 그러나 닭백숙 준비 등을 하기 위하여 고양골 안부에서 중도 하산하는 바람에 끝까지 산행을 같이 하지 못하여 조금 아쉬웠다. 물론 문대장은 작년에 답사차 완주한 것은 사실이다.

이제 이 대목에서 산행을 완주한 면면을 나중을 위하고 중도 탈출자나 아예 산행조차 안 한 분들에게 경계심을 제고하기 위하여 여기에 소개하고 싶다. 다만 이것은 지극히 우리 서울산사람들의 내부문제이므로 내가 가끔 산책하는 중요 사이트에는 당분간 개재하지 않을 계획이다. 중대한 심경의 변화가 없는 한 말이다. 산행 완주자에는 내가 그 대상에 드는 것은 물론이다. 그 다음에는 선두에 서서 지형도와 나침반으로 독도하면서 왼쪽 눈을 나뭇잎에 쓸리기조차 하면서 산행을 열심히 리드한 박수환(뫼오름) 리더 덕분에 나는 아무 걱정없이 독도의 부담에서 벗어나 개운하게 산행할 수 있어 오랜만에 자유를 누려서 다행이었다. 박수환 리더는 독도 실력이 상당한 수준급에 도달해 있어 서울산사람들의 앞날에 서광이 스밈을 엿볼 수 있었다. 언제나 누가 보아도 후덕한 인상의 임영택 리더가 긴 바지 대신에 산을 깔보듯 등산용 스타킹을 착용한 복장에서는 과연 백두대간을 완주한 분이 맞는지 의심이 갈 정도로 상식에서 벗어나 있어 조금은 당황하였다. 그러나 가끔은 독도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면서 백두대간 완주자로서의 저력을 과시하고 있었다. 최근에 심하게 앓은 후에도 명랑하게 분위기를 유도하면서도 경상도 특유의 멋을 잃지 않은 채 은영씨가 반론산 오르던 길에서 힘들어 하니 잘 이끌고 가던 정상윤 리더의 신사도도 유쾌한 산행에 한몫을 했다. 그리고 가지와 잡목들이 걸리적거리고 시야가 제한되어 지루하게 느껴지고 짜증이 날 수 있는데도, 뫼오름 리더의 뒤에서 그를 보좌하면서 "여기야 여기"를 외치며 산행의 분위기를 한껏 돋우어 주었던 양인호님도 새로운 신조어를 창조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자칭 잘 생긴 사나이라고 하는 멋진 넘의 위트와 아낌없이 민생고를 해결해 주시던 멋진넘씨와 그런 부군을 말없이 보좌하면서도 조금은 말라 보여 옛날의 미모를 되찾는 듯한 느낌을 주는 전통적인 요조숙녀인 도치님이 산행의 별미를 더하여 주었다. 자꾸 옛날의 실수와 아픈 추억을 되새기게 하는 질문도 웃어 넘기시며 끝까지 완주하시며 옆집 아저씨 같은 느낌을 주시는 마도로스님도 모두가 본받을 자세를 견지하여 주셨다. 세인의 경계를 위하여 후술하겠지만 애초에 산행을 하지 않은 분과 중간에 별 특별임무 없이 탈출하신 분들은 명심하셔야 할 일이다. 오승열씨도 부인을 극진히도 아끼는 애처가로 소문이 나 있는 것 같은데, 열심히도 보고, 채취하고 한다. 장래 우리 서울산사람들을 위하여 큰 일을 할 것을 기대되고 있는 은영씨도 난코스에도 불구하고 탈출하고 싶다며 위기를 넘겨가면서까지 완주를 하여 타의 부러움을 샀다. 처음으로 같이 산행한 이영곤씨 부부도 끈끈한 부부애를 과시하며 완주파에 합류하였다. 다만 그 부부는 산행을 많이 해보지 않았는지 위험한 여름 산행인데도 불구하고 반바지, 반소매로 임하길래 어찌나 보기에 민망하고 혹시 다치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게 하였다.

그리고 이제 중도 탈출자 면면을 소개한다. 그러나 이분들고 자존심은 있는지 고양산 하나는 산행한 뒤 고양골 안부에서 고양골 계곡으로 탈출, 하산하였다. 그나마 서울산사람들의 체면은 구기지 않으려는 일념이 대단한 것 같았다. 이런 부류에는 우선 우리의 아침과 점심을 위하여 험하고 가파른 산인데도 불구하고, 애써가며 산나물을 제공하셨던 산나물의 제왕 김재중씨와 그에 버금가는 병운씨가 포함된다. 아무튼 그 분들의 정성에 감사드린다. 그리고 무거운 수박을 지고 힘들어하지 않고 고양산을 오른 북악파 보스 멋진넘씨의 수하 재국 리더도 볼수록 믿음직하고, 그 넘치는 정열과 힘이 부러울 뿐이다. 연세에 불구하고 멋진 몸매를 과시하시며 회원들에게 봉사하고 먹을 것을 제공함을 낙으로 삼으시며, 늘 온화하고 우아한 표정을 유지하시는 권큰형님, 후배들이 발견해 준 더덕을 손수 캐시며 마냥 즐거워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새신랑이 되어 더욱 신이 나는 듯 하면서도 약간은 피로한 기색을 보이는 영원한 산의 영웅인 정대현 대장과 이에 버금가는 새 신부 짜총님도 많은 역할을 해 냈다. 좀 더 신랑을 잘 챙기시길 기원한다. 그리고 수원에서 산행에 참석하시면서 위트와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많이 하신 정상덕씨 부부도 여기에 속한다. 이번에는 본인을 따라 오려는지 물푸레나무로 멋진 지팡이를 만들고, 니스도 칠하고 손잡이 부분에 멋지게 장식을 붙인 것을 지참하였다. 그 작품을 만드느라 거의 반나절을 투자하더라고 그 부인께서 살짝 귀띔한다. 얼마전 박수환 리더 등과 친구하기로 선언한 서연씨도 여기에 속한다. 탈출 도중에 엉겅퀴 군락지에서 찍은 사진이 돋보인다. 그리고 영원한 신사이시며 점쟎으신 손 사장님도 여기에 속한다. 나는 버스에서 자다가 보니 발렌타인 17년산 양주가 바닥난 채 빈 병이 나의 의자 앞에 나뒹굴고 있어 아쉬웠다.

마지막으로 이제 산행을 하지 않은 분들을 열거해야 할 차례이다. 조금은 미안하다. 나름대로의 이유도 있을 것이다. 회원들을 위하여 점심을 준비하고 야생화와 풍경을 촬영하여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 늘근소님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비록 상당한 공헌을 하셨지만 산행을 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새로 온 분으로 멋진넘씨와 잘 안다는 용호씨와 인석씨도 산행을 하지 않은 분이다. 다른 사람들과의 분위기에 동참하기 위해서라도 힘들더라도 산행에 임했다가 탈출이라도 했으면 모양새가 좋았을 것으로 보인다. 그것도 산행 단체에 대한 최소한의 예절인 것인데 말이다. 내려와서 보니 우리 혼자만 좋은 산행을 해서 얼굴 보기가 얼마나 민망하든지. . . . !!

너무 신이 난 하루였다. 좋은 산님들과 서로 믿으며, 유익한 대화를 나누면서 오염이라고는 전혀 알 수 없는 산을 그것도 종주 코스로 하였으니 백두대간을 반쯤 다녀온 것처럼 뿌듯하다. 다만 이 글을 보고 후답자들이 쇄도하여 아름다운 산을 망칠까 적이 두려워지고 걱정이 앞선다. 그래서 이 글은 우리 사이트에만 단독 게재해야 할 것 같다. 여기 사이트를 방문하는 분들은 다 성인군자이니 그 분들조차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이다. 오늘은 정말 한국화에서나 본 적이 있는 그런 오지의 산을 실제로 산행하여 무척 좋았다.

보이는 것은 하늘과 산 뿐인 정선 땅의 골짜기를 지나면서 고랭지 채소밭과 지천으로 많은 딸기를 맛보면서 수많은 야생화를 감상하며 지나가는 산행 초입길은 산행에의 기대로 마음을 들뜨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넓은 고랭지 채소밭은 쌈밥을 연상케 해 준다. 삼림욕을 하면서 지나가는 길은 더없이 상쾌하다. 어느덧 마을을 지나고 수레길로 오르다가 묵은 밭을 지나 본격적으로 사면을 오르는데 초입에 벌목이 많이 되어 있어 길을 찾기가 애매했다. 그러나 길은 산행 내내 비교적 뚜렷한 편이다. 이어 배재에 올라 독도에 유의하고, 고양산 직전 오르는 길이 가파르다. 고양산 정상에서 독도에 주의해야 한다. 1100m봉에서 독도에 신경써야 하는데, 좌측은 벼랑이므로 주의를 요한다. 우측 사면으로 내려가서 나오는 고양골 안부에서 탈출할 수 있다. 이번 코스에서 유일한 탈출로인 것 같다. 이어 한바탕 오른 1054m봉에서 독도에 유의하고, 가파른 능선길을 오르내린다. 여기서부터는 탈출로가 용이하지 않다. 좌우로 가파른 사면이 형성되어 있고 군데군데 방심하면 바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날등 암릉이 많다. 잡목과 가지들이 많아 몹시 성가시게 하기도 했다. 여름이라도 뱀이나 해충, 잡목 등을 고려하여 긴팔 소매와 긴바지를 착용하고, 등산용 슬리퍼의 착용은 자제하여야 할 지역이다. 이어 마지막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면 반론산 전 능선마루에 이른다. 여기서 쉬엄쉬엄 오르다 보면 어느덧 반론산 정상이다. 여기서 조망을 보노라면 그간의 고생이 스르르 추억으로 변해 버릴 것이다. 그러나 비가 오기 시작하여 조망을 제대로 즐기지 못해 한스럽다. 그리고 반론산 북쪽 사면에 천연기념물인 철쭉과 특산종 식물이 있으니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반론산에서 북서쪽 통나무계단길을 내려가다가 첫 번 째 안부에서 좌측(남서)로 내려가는데, 암반이 미끄러우므로 조심해야 한다. 이 계곡에도 돌이 드러나고 나무가 넘어지는 등 작년의 수해의 아픈 흔적이 있어 안타까왔다. 이어 묵밭이 나오다가 이어 본격적으로 고랭지채소밭이 나오게 된다. 이어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오는데 이를 따라 걷고 싶었으나 시간관계상 버스가 와서 대기하는 바람에 모처럼의 고창골 감상의 기회가 박탈되어 서운했다. 나중에 다시 오기로 숙제로 남겨 두기로 한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이번 산행은 오지로서 사람들의 발길이 적어서 호젓하게 산행을 하면서 아무런 방해를 받음이 없이 마음껏 사색의 나래를 펼 수 있어서 무척 좋았다

(1) 臨溪面 高陽里 3거리(4km) - 배재

이용석 기사님이 마련하신 왕컵라면으로 아침 요기를 한 뒤, 깨끗이 뒷정리를 한 뒤 대장님의 탑승 명령에 따라 버스를 탔다. 배가 든든하여 좋다. 기사님께 감사드린다. 이윽고 버스는 남동 방향으로 경사진 시멘트 도로를 오르고, 우리는 "고양리"라고 쓴 마을 입구 안내석 앞 3거리에서 하차한다. 여기서 직진(남동) 방향으로 하일두 마을로 이어지는 길을 버리고 우리는 우측(남서) 시멘트 농로로 진입하여 적목동 마을을 향하여 평탄하게 진행한다. 시멘트 포장이 되어 있어 편하다. 이른바 강원도 하고도 정선군! 그리고 정선군에서도 가장 오지 마을이라 할 수 있는 임계면 고양리의 고양골을 진행하는 것이다. 이 고양골은 한 번 들어가기 힘든 골이지만, 한 번 들어가면 나오기 싫은 골이라고 하던가! 우전방으로 이 오지의 고양골을 에워싸면서 우뚝 솟아 있는 고양산이 눈에 들어온다. 농로 주변은 온통 산이고, 하늘만이 보인다. 참으로 오지임이 실감난다. 우측으로 농가 2채가 있다. 아주 이른 아침인데도 벌써 주민들은 일어나 낯선 우리 일행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마치 성역을 침범한 것 같아 다소 미안한 감이 든다. 그 주민들과 우리는 아무 말도 교환하지 않은 채 그저 눈으로만 시선을 교환한 채 그렇게 멀어져 갔다.

도로 주변으로 엄청 광활한 고랭지 채소밭에는 배추가 엄청 탐스럽게 자라고 있다. 새로 이식한 것도 보인다. 이렇게 1년에 광활한 밭에서 3모작 정도로 배추를 생산한다면 엄청 부자일 것 같다. 마늘도 보인다. 된장, 고추장과 같이 쌈을 싸먹고 싶은 유혹이 진저리치게 나도록 만든다. 유난히 나물을 좋아하는 식성이 발동하는 것이다. 안개가 자욱이 내려앉은 가운데 어디선가 멀리서 뻐꾸기 소리도 들려오니 선경게 든 것 같다. 정말 고요한 곳, 머물고 싶은 곳이다. 사면에는 장송숲이 즐비하고 울창한 낙엽송이 큰 키를 자랑하며 각선미를 쭉쭉 내밀고 있다. 아름답다. 공기도 좋아 기분이 상쾌하다. won도 동참했으면 얼마나 좋아할까. . . 이렇게 좋은 곳을 지나면서 고래와 계속 이야기하며 갔다. 버스에서 뇌성벽력같은 코골음소리로 남성다움을 과시하더니 아직도 술냄새를 풍기면서 ....

이어 마을 입구에 이르니 딸기들이 지천이다. 따먹을 아이들이 없으니, 너무 익어버린 것들은 그냥 땅으로 떨어진다. 아깝다. 저게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인데? 상윤씨랑 몇몇은 옛 향수에 못이겨 부지런히 딸기를 시식하고 있다. 마을에는 옛 양어장 흔적도 보이나, 쇠락의 길을 걷고 있음은 우리 나라의 여느 시골과 동일하였다. 가끔 개짖는 소리가 들려오나 싫거나 시끄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어 조금 더 오르니 적목동 마을이 나온다. 여기서 좌측(남남서)으로 휘어 조금 오르면 이윽고 마을을 지나, 절로 사용하는 가옥이 나온다. 길은 비포장으로 되면서 돌길이 된다. 주변은 딸기가 지천이다. 정상덕씨 부인도 남편이 따주는 딸기를 아껴 먹는다. 아마 두고 온 아이 생각에 넘어가지 않는가 보다. 서울 태생인 사람들은 딸기에 대한 반응이 시큰둥하다. 나도 향수를 느끼며 많이 따 먹는다. 알이 무척 굵어 몇 알만 따도 한 움큼이 된다. 산행을 포기하고 딸기만 한 배낭 따고 싶은 심정이다. 여기의 정서를 전하고 싶고 향수를 느껴 보는 시간을 드리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적목동에서 올라오다 보면 고양산 북동쪽 산자락에 석회동굴이 있는데 여기서 많은 물이 쏟아져 나온다고 하여 '물을 내 쏟는 굴'이라고 부른다는데, 보지 못하고 지나쳐서 여간 아쉬운 게 아니다. 굴속에서 쏟아내는 물은 그 아래에 폭포를 이룬다니 더욱 그러했다.

이어 묵밭이 나온다. 비포장 농로로 계속 진행하여도 되나, 밭까지만 길이 나 있고, 거기서부터는 울창한 덩굴나무 군락과 잡초 군락이 있어 여기서 비포장 농로를 버리고 우측 묵밭으로 오른다. 잡초가 무성하다. 일꾼이 없어 이렇게 버려지는 현실이 안타깝다. 묘를 향하여 방향을 잡고 마냥 헤쳐 나간다. 묘에서 좌측으로 오른다. 이어 임도가 나온다. 주변은 조금 완만한 편이다. 이어 우측으로 임도따라 오른다. 여기서 양인호씨는 좌측으로, 재국씨는 우측으로 가더니 사라진다. 무슨 급한 볼일이 있는 모양이다. 주변에는 낙엽송 묘목이 식재되어 있고, 철 늦은 고사리도 보인다. 정상윤씨가 고사리를 챙긴다. 이어 임도 3거리가 나오면 좌측 밋밋한 능선으로 오른다. 이 능선으로 계속 북동 방향으로 오르면 고양산 어깨에 이른다. 소나무와 낙엽송이 미끈한 각선미를 자랑하고 있는 울창한 숲이 나온다. 그런데 이 주변은 온통 벌목이 되어 있어 이내 길이 없어져 버린다. 정상윤 리더와 박수환 리더가 길을 찾아 좌측 사면으로 내려가고 우리는 그 와중에서 우측으로 오른다. 낙엽이 많아 발이 푹푹 빠지고, 마구 벌목된 나무들이 걸리적거리는 가운데, 겨우 길을 찾아 한참 오른다. 길이 희미하다.

그런데 박수환 리더가 길이 아니라면서 사면으로 좌측으로 내려오라고 한다. 이 능선으로 계속 올라도 될 것 같다고 멋진넘씨가 얘기했더니 나중에는 문대장까지 올라와 좌측으로 하산하란다. 할 수 없이 이에 따라 하산한다. 이런 와중에서 시간은 많이 흘러버렸다. 박 리더가 조금만 있었으면 될 것을 먼저 올라와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고 허탈해 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리더들을 잘 따라 주어야 하는데, 약간은 머쓱한 마음이 든다. 거의 계곡까지 내려와 보니 온통 덩굴나무 숲 등이 정글을 이루고 있다. 이윽고 희미한 길을 찾아 사면을 오른다. 이어 3갈림길에서 좌측으로 오른다. 울창한 숲에 초원지대가 멋지게 펼쳐져 있다. 가시나무들도 나오고, 걸리적거리는 벌목들도 더러 있다. 반바지와 반소매 차림의 분들이 있는데, 누군지 꼭 집어 밝힐 수는 없지만, 산에 대한 예절이 엉망이다. 아무리 여름이라도 능숙한 산꾼도 그런 차림을 하지 않는다. 산이 너무 방자하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럭저럭 배재에 오른다. 따라서 고양산 정상에서 남동쪽으로 분기하여 내려가는 능선에 이른 것이다.

(2) 배재(1.1km) - 高陽山

배재는 해발 약 885m로서 제법 평탄하고 울창한 숲으로 이루어져 있다. 잡목숲이지만 말이다. 십자로가 나 있다. 좌측(북동)으로 지능선이 이어지고, 그리로도 길이 나 있다. 또 직진으로 하산로가 보이는데, 이 직진 하산로로 내려가면 升斗峙로 이어지는 지능선이 되는데, 이내 좌측(남동)으로 상승두골로 내려가는 하산로가 나오게 된다. 공터가 있고 그늘이 좋아서 쉬기에 좋다. 그러나 깡통 등 쓰레기가 많이 투기되어 있어서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별로 무겁지도 않는데, 지참하여 내려가서 버리면 좋을 것을!!! 배재에서는 독도에 주의해야 한다. 고양산은 여기 배재에서 우측(북서)으로 진행하여야 한다. 여기서부터 고양산 정상까지는 좌측(남)의 정선군 동면과 우측(북)의 정선군 임계면의 면경계선을 진행하게 된다. 비교적 등로는 뚜렷한 편이다. 잡목숲이다. 잠깐 사이에 둔덕에 이른다. x898m봉이다. 공터가 있어 쉬기에 좋다. 잡목숲이다. 좌우측으로 계곡이 보인다.

이 x898m봉에서 좌측(남서)으로 잠시 완만히 내려간다. 주변은 신갈나무숲이고 우측 사면에는 장송숲이 울창한데 벌목된 나무들이 많이 어지러이 널려 있다. 억새들도 보인다. 이어 완만한 오르막이 된다. 그즈음에 우측에서 양인호씨와 멋진넘 부부, 그리고 정상윤 씨등이 얼린 맥주를 나누어 마시는 것이 보인다. 모른 척하고 그냥 지나치기로 한다. 개평을 뜯기지 않으려고 일부러 멀치감치 자리잡고 마시는 것 같아서이다. 당사자 분들! 사실이 아니면 매우 미안한 일입니다. 하하! 잡목숲이다. 이윽고 억새지대가 나온다. 온통 울창한 숲이 계속되가가 수십 길이나 되는 억새지대가 나오니 아주 색다르고 묘한 기분을 들게 하는데, 제철이 되면 억새도 매우 볼 만한 것 같다. 이어 가파른 오르막이 계속된다. 좌측으로 계곡이 나오더니 이윽고 좌측(남서) 방향으로 희미한 능선이 분기하는 지점에 이른다. 여기서 우측(북동)으로 오른다. 조금 뒤에 잡목숲이 되면서 좌우로 흩어져 더덕을 탐색하는 측도 보인다. 김재국 리더는 큰 수박을 업고 오르느라 힘이 드는 모양이다. 힘이 장사라서 무거운 것을 지고 오르는 것은 단골 당번이 된 분이다. 그러나 불평 한 마디 없다. 이어 우측(남동) 방향으로 소능선이 분기하는 지점을 지난다. 이 소능선은 아까 우리가 산행 초입께인 고양골에서 헤매던 곳으로 이어져 내려간다. 이윽고 좌측(북)으로 길이 휘어지면서 경사가 완만해진다. 동남쪽으로 문래산, 그 남쪽으로 각희산, 또 그 뒤로 청옥, 두타산이 우뚝 보이며 장쾌하고 우람한 백두대간 연릉이 보인다. 이어 잠시 평탄한 곳을 지나 완만히 오른다. 이어 고양산 정상에 이른다.

(3) 고양산(1.1km) - x1,054m봉

고양산은 해발 1,150.7m이다. 高陽山은 강원 정선군 北面·臨溪面·東面의 3개면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다. 삼각점이 있다. "임계 22 , 1995 재설." 깃대와 깃발은 없다. 정선군에서 세운 삼각점 관리표찰까지 있는 것을 보니 흐뭇하다. 국가 주요 시설을 잘 관리하고 있다는 징표이기 때문이다. 정상에는 쌍묘 1기가 있는데, 잘 관리되어 있으며, 공터와 그늘이 좋아 쉬기에 좋다. 주위는 신갈나무숲이다. 조망은 별로이다. 그러나 사방으로 높은 산들이 겹겹이 둘러싸여 있어 깊고 큰 산에 온 느낌을 만끽할 수 있다. 서쪽으로는 가리왕산(1,560.6m)과 그 연릉이 보이고, 북쪽으로는 발왕산(1,458.1m)이, 북동쪽으로는 석병산(1,055m)을 거쳐 청옥산(1404m), 두타산(1,353m)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능선이 장쾌하고 우람하다. 남쪽으로는 대덕산(1,307m), 백덕산(1,350m), 두위봉(1,466m), 함백산(1,573m), 태백산(1,567m)등 고산들이 두루 눈에 들어온다. 또한 정상에는 우리 서울산사람들 표지기 외에 우정산악회와 KSH(019-207-1843) 표지기가 있는데 무척 반갑다. 고양산은 경기지괴에 속하는 화강암산지로 주위에 中峰山(1,250m)·斗曲峰(1,466m)·加里旺山(l,560.6m)이 있다. 이 산에서 朝陽江 지류가 발원하여 東江으로 흘러들어가 한강에 합류한다. 단풍과 아울러 억새로도 유명하다. 그 오지로 유명한 고양골을 에워싸고 있다. 반론산은 여기서 약 4km 정도 떨어져 있는데, 고양산에서 약간 우측(북서)으로 뻗은 지능선 상에 위치한다.
고양산에서는 좌측(남서)으로 지능선이 분기하고 있고 서쪽 방향으로도 아주 희미하나마 능선이 분기하고 있으니 독도에 유의하여야 한다. 산행은 우측(북서) 방향으로 1,100m봉과 헬기장을 겨냥하여 내려가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서쪽 방향으로 조금 내려가 경사가 완만한 지형에 자리를 잡고 보따리를 풀고 아침을 먹기로 한다. 언제 준비했는지 정상윤 리더가 삽겹살을 굽는다. 김재중씨와 병운씨, 문대장님 등이 제공한 곰취에 고기를 싸서 문대장님이 손수 건네 준다. 매우 맛있다. 감사드린다. 두 그룹으로 둘러앉아서 그런지 예전 다른 산행 때보다는 화기가 덜 애애했다. 나는 마도로스님과 같이 마도로스님의 자리에 앉아 편하게 식사를 한다. 모두들 재미나게 먹는다. 정리더가 심한 농담을 양인호씨를 상대로 건네나, 진정한 산사나인 그는 웃어 잘 넘긴다. 참 보기 좋은 광경이다. 멋진넘씨 부부가 리드하는 그룹에서는 어떤 반찬이 있고, 어떤 주식이 있었는지 전혀 모른다. 그냥 그렇게 아침 식사시간이 지나간다. 다만 무겁게 지고 올라온 김재국씨의 덕택에 시원한 수박으로 마무리를 한다. 감사드린다. 그런데 우리가 식사한 주변에는 참취 등 나물이 많았으며, 특히 흰색의 꽃이 있어 신기하였다. 생전 처음 보는 것이었다. 앞면은 꽃. 뒷면은 잎으로 하얀색을 띠며 높이 30cm 가량의 다년생 고산식물이라는 속달이꽃이 아닌 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정말 심산에 와 있음을 자각하게 된다.

식사를 마치고 우측(북서)으로 내려간다. 여기서부터 x1,054m봉까지는 강원도 정선군 北面과 臨溪面의 경계를 따라 산행하게 된다. 돌길이고 잡목과 가지가 몹시 성가시게 한다. 고비 군락이 멋있게 펼쳐지고 있고, 돌에는 이끼가 새파랗게 끼어 세월이 녹아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역시 심산의 정취를 마음껏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우정산악회와 대호산악회의 표지기가 보인다. 한차례 힘들게 내려서면 넓은 공터에 헬기장이 나온다. 넓고 관리가 잘 되어 있어 쉬기에 좋을 듯하다. 주변에는 잡목숲이고, 공터에는 억새 등 잡초가 많다. 여기서 고양산을 배경으로 모두 기념사진을 촬영한다. 좌측(서)으로 하산로가 보인다. 아마 큰골 쪽으로 내려가는 길인가 보다.

헬기장 가운데로 내려간다. 우정산악회 표지기가 있다. 참호가 나온다. 이어 안부에 이르니 잡초가 무성하다. 이어 오른다. 묘 1기가 있다. 이런 첩첩산중에 있다니 의외다. 관리가 잘 되어 있고, 공터가 있어 쉬기에 좋을 듯하다. 우정산악회 표지기! 이어 둔덕에 이른다. 여기서 우측으로 잠시 내려가니 안부이다. 여기에 3갈림길이 나 있는데 좌측 길이 큰골로 이어지는 하산로이다. 여기 3갈림길에서 우측으로 오른다. 그런데 오르는 길에 자치(지치)가 눈에 띈다. 백색 꽃이 피는 것으로 유난히 순해 보이는 풀이다. 그 뿌리의 효능이 산삼에 버금가는 것이다. 박수환 리더와 임영택 리더, 마도로스님 등에게 알려 주었더니 열심히들 채취한다. 유난히 이곳에 많은 것이다. 좀처럼 눈에 잘 띄지 않는 것인데. . . . 잘 말려서 술에 담가 먹으면 아주 그만이다.

이윽고 1,100m봉에 이른다. 가파른 암봉인데 직진 방향으로는 가파른 바위가 있는 사면이 형성되어 있어 위험하다. 좌측인 서쪽과 북서 방향으로 소능선이 분기하고 있다. 여기서는 좌우, 전방으로 계곡이 조망될 뿐이다. 쉬기에도 별로이다. 서울산사람들 표지기가 있다. 여기서는 우측(북동)으로 내려간다. 가파르다. 실족에 유의해야 한다. 조금 후에 완만해진다. 이어 안부에 이른다. 좌측(북서)으로 하산로가 보인다. 이 길이 바로 고창골로 탈출할 수 있는 곳이다. 산행 참가자 25명 중 과반수인 약 13명이 탈출하고 나머지 12명만이 완주하기로 결정된다. 중간탈출자 중 김재중 씨와 병운씨는 산나물을 채취하기 위하여 따로 행동할 것이라고 한다. 이에 우리는 여러 탈출자들과 인사를 나눈 뒤 안부에서 직진한다. 우정산악회 표지기가 있다. 그런데 흰색 리본에 "살려면 걸어라"라고 쓴 표지기가 있어 재미있다. 이어 둔덕을 지나 내려간다. 산사랑산악회 표지기도 보인다. 우정산악회! 낙엽이 많다. 이어 오른다. 역시 낙엽이 많다. 가끔 가지들이 걸리적거린다. 둔덕을 넘어 좌측으로 진행하다가 암릉이 나오면 좌측으로 우회하여 내려가다가 오르면 x1,054m봉에 이른다.

(4) x1,054m봉(2 .8km) - 半論山

x1,054m봉은 능선분기점이므로 독도에 주의하여야 한다. 우측(동)으로 소능선이 분기한다. 우측으로 골지천이 전망된다. 이 봉에서 반론산까지는 거의 북서 방향이다. 그리고 가장 가지 및 잡목들이 많이 몹시 성가시고, 바위지대와 가파른 날능선을 지나야 한다. 또한 오르내림이 많고 탈출로가 없다는 점에 유의하여야 한다. 여기에서 좌측(북서)으로 완만히 내려간다. 좌우로 시야가 트인다. 시원하다. 좌측으로 고양산과 그 연릉, 계곡이 보이고, 우측 아래로는 계곡과 강, 논, 도로가 보인다. 우전방 멀리로는 반론산이 우뚝하다. 잠시 한숨을 돌리고 1,000m 둔덕을 지나 다시 우측(북서)으로 내려간다. 잡목과 가지들이 걸리적거린다. 우측은 가파른 낭떠러지가 있어 아찔하다. 이어 안부에 이른다. 여기도 우측이 낭떠러지이다. 여기서 누군가가 우측 낭떠러지로 길이 이어진다고 조크하니 깜짝 놀라는 분도 있다.

이어 오르막이다. 바위 암반지대가 기다린다. 제천두발산악회 표지기가 있다. 산악회 명칭이 두발이라니 참으로 재미있는 이름이다. 기발한 아이디어이다. 이어 뾰족봉에서 좌측으로 완만히 내려간다. 낙엽이 많다. 이어 좌측으로 내려가서 평탄지대를 지난다. 여기도 낙엽이 많다. 다시 좌측으로 내려가는데 여기도 낙엽이 많다. 가파른 지역도 나온다. 이어 절벽이 나온다. 우측으로 우회하여 내려가다가 능선으로 다시 올라온다. 낙엽이 많다. 능선에 나온 다음 완만히 내려가다. 이어 얕은 안부이다. 우측 아래 사면이 가파르다. 이어 직진해 내려간다. 잡목과 가지들이 걸리적거린다. 낫을 가지고 오지 않은 것이 천추의 한이 된다. 후답자를 위하여 좋은 봉사의 기회가 될 텐데 아쉽다.

이어 얕은 둔덕을 2개를 넘어 오른다. 암릉이 나오면 잠시 좌측으로 우회한다. 능선에 되돌아온 다음 우측의 바위 절벽을 지나 오른다.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라는 흰 표지기가 있는데 말이 아주 걸작이다. 이어 좌측으로 내려가다가 다시 좌측으로 휘어진다. 서울산사람들 표지기! 이따금 날능선이 나오기도 한다. 이어 암릉을 좌측으로 우회하여 내려가면 얕은 안부이다. 이를 지나 오르다가 내려간다. 이어 봉우리를 우회하여 좌측으로 내려간다. 이어 연달아 안부를 지나 오른다. 가지들이 몹시 성가시게 한다. 이어 850m봉에 이른다. 공터가 없어 쉬기에 불편하여 조금 백하여 밋밋한 곳에서 서로 먹을 것을 나눈다. 양인호씨도 여기야 여기를 계속 외치느라 조금은 힘든 기색이다. 좌우측으로는 계곡이 보일 뿐이다.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앉아서 양인호님이 얼려 오신 시원한 캔맥주를 1모금씩 마신다. 마도로스님의 포도 등 과일과 멋진넘 부부의 과일을 맛있게 나누어 먹는다. 나는 캔커피를 박 리더와 나누어 마셨다.

이어 좌측으로 내려간다. 가파르다. 가지와 잡목들이 걸리적거린다. 안부에 이르니 낙엽이 많다. 이어 오르는데 길이 희미하고 가파르며, 낙엽이 많다. 가지와 잡목도 몹시 걸리적거린다. 이어 830m봉에 오른 뒤 내려간다. 우측은 절벽이다. 반론산이 조금 가까이 와 있다. 이어 얕은 안부를 지나 오른다. 다시 880m봉에 이른다. 공터가 없어 쉬기에는 부적합하다. 우측 아래는 절벽이다. 이어 우측(북동)으로 내려간다. 낙엽이 많고 잡목 및 나무가지들이 걸리적거린다. 이어 840m 둔덕을 넘어 내려가다가 오른다. 이 지역에도 주치가 많다. 평탄지역을 지나 완만히 오른다. 다시 평탄지역이 나온다. 좌측에 하산로가 나 있다. 고창골로 내려가는 길이다. 이어 가파른 오르막이다. 낙엽이 많고 신갈나무숲이다. 이내 더욱 가팔라진다. 마지막 가파른 구간이다. 그런데 뒤에서 오던 은영씨가 몹시 힘들어하며 하산을 원한다는 전갈이 온다. 박 리더는 절대 안된다고 한다. 조금만 참으면 된다면서. . . .

드디어 능선마루에 이른다. 좌측(남서)으로 소능선이 고창골로 내려가고 있다. 여기서 우측(북)으로 오른다. 가지들이 걸리적거린다. 이내 반론산 직전봉에 이른다. 공터가 넓어 쉬기에 좋다. 텐트 한 동은 칠 만한 공간이다. 돌이 박혀 있다. 주변은 신갈나무와 잡목숲이다. 조망은 별로이다. 여기서 아주 완만하게 내려간다. 이제 반론산이 지척이다. 주변은 아주 완만한 지형이다. 좌측 아래는 매우 평탄한 지역이 있는데, 덩굴 군락과 초원으로 무성하다. 이내 얕은 안부를 지나 완만히 오른다. 넓은 초원이 시원한 느낌을 주는데, 나물도 많다. 주변에는 사람들이 더덕을 캔 흔적이 많은데, 마치 멧돼지들이 파헤친 것처럼 보인다.
이윽고 반론산에 이른다.

(5) 半論山(1.9km) - 고창골 콘크리트 도로

반론산은 고양산에서 북서쪽으로 여량리 방향으로 분기하는 능선에 위치하는데 4Km정도 떨어져 있는 산이다. 해발 1,068.4m. 삼각점이 있다. "건설부 301 , 1977. 6. 재설." 깃대와 깃발은 없다. 여기도 정선군에서 세운 삼각점 관리표찰까지 있는 것을 보니 흐뭇하다. 국가 주요 시설을 잘 관리하고 있다는 징표이기 때문이다. 정상에는 넓은 공터가 있는데, 헬기장인지 잘 관리되어 있으며, 공터와 그늘이 좋아 쉬기에 좋다. 주위는 신갈나무숲이다. 고사리가 많아서 은영씨에게 꺾어서 전해 준다. 힘들어서인지 얼굴색이 노랗다. 아마도 헬기도 충분히 착륙할 수 있을 것 같다. 여기 정상에 12명이 다 도착하자, 마지막 파티가 벌어진다. 은영씨의 참외가 나오고 박 리더의 7년 묵은 인삼주로 하는 정상주가 구미를 당기게 하고 회원들의 산행 피로를 덜게 해 주는 것 같다. 새로 오신 이영곤씨 부부는 여기서도 식사를 맛있게도 하신다. 반소매, 반바지 차림이라 온통 생채기가 나 있어 안타깝다. 단체 사진도 찍고 독사진도 찍는다. 나도 마도로스님과 함께 필름 1칸을 소비하기에 이른다. 이내 하산을 독촉하는 문대장님으로부터 무전이 날아온다. 앉아 있으면서도 박 리더는 이제 막 출발한다고 둘러댄다. 알루미늄 소재로 만든 이정표가 멋있다. 동쪽으로 동해바다, 북쪽으로 발왕산, 서쪽으로 가리왕산, 남쪽으로 민둥산으로 이어진다고 되어 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니 조망은 별로이다. 날이 맑으면 남쪽에 고양산(1,150.7m)이, 북쪽으로 노추산(1,322m)이, 북서쪽으로 옥갑산봉(1,302m), 백석봉(1,170.1m)이, 동쪽으로 문래산(1,081.5m)과 그리고 중봉산(1,283.3m)과 청옥산(1,403.7m), 두타산(1,352.7m)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서쪽으로는 상정바위산(1,006.2m)과 그리고 가리왕산(1,560.6m)/벽피령/청옥산(1,255.7m)을 잇는 연릉이 잘 보일텐데 마냥 아쉬울 뿐이다. 조망도 별로 없고 또 더 있으려고 해도 비가 오니 하산을 서두른다. 반론산 정상에서 북쪽과 북동뽁 방향과 동쪽으로 소능선이 분기하고 있다. 반론산에서 북쪽은 임계천이, 우측으로는 골지천이 이 산들을 감싸면서 흐른다. 임계천 중에서도 가장 하이라이트 지역인 어전동, 성북동, 봉정리 등이다.

반론산 정상에서 우리는 좌측(북서)으로 내려가야 한다. 그렇게 진행하려고 내려가는데 우측에 철제 보호 울타리와 나무말뚝과 통나무로 된 계단과 관람대 등이 요란하게 설치된 것이 보여 잠시 그리로 내려가 보았다. 거기에는 의외로 "半論山의 철쭉나무와 분취類 自生地"라는 안내문이 서 있다.
1986년 4월 17일 지정된 천연기념물 제 348호라고 한다. 소재지는 강원도 정선군 북면 여량리 산 12번지이고, 소유자는 산림청이고, 철쭉나무 1식, 사창분취 군락지란다. 이 철쭉나무는 반론산의 해발 1.040m 고지에서 유일하게 소교목으로 고립목으로 자생하여 자라고 있으며 이 노거수를 보호하기 위하여 천연 기념물로 지정하였다고 한다. 강원도 정선군 북면 고양리·여량리·봉정리 일대에 걸쳐 있는 식물자생지로 면적 9만 6,450㎡이다. 이곳에 올려면 여량역에서 도보 4시간 쯤 걸린다고 한다.
철쭉나무(Rhododendron schlippenbachii)는 보통 관목으로 자라지만, 반론산의 경우에는 나무높이 4.98m, 가슴높이 둘레 0.78m, 뿌리근처 둘레 1.08m이며, 수관폭은 동서가 6.9m, 남북이 6.7m 정도인 작은 교목이다. 수관은 완전한 형태를 갖추지 못하였으나, 樹勢는 비교적 건전한 편이며, 수령은 200년으로 추정[생장추로 추정한 결과라 함]되어 지금까지 알려진 철쭉 중 세계에서 가장 크고 오래 된 것이다.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 이렇게 철쭉이 큰 것은 처음 보았다. 그래서 보호 울타리에는 훼손시에는 처벌한다는 경고문도 안내되어 있다.
철쭉나무 근처에 있는 분취류 자생지에는 한국 특산종이며, 북방계통의 식물인 사창분취·당분취·각시서덜취·산솜다리·구름체꽃·노랑갈퀴·산새콩·산앵두나무·참배암차즈기·흰큰용담의 10종과, 희귀종인 북분취·벌깨풀·정선댕강나무·노랑투구꽃의 4종이 군락을 이루어 능선의 좁은 지역 내에 집단적으로 자생하고 있다. 그러나 생물 실력이 짧아 뭐가 무엇인지 도통 알수 없어 마냥 답답할 뿐이다. 이밖에 알록제비꽃·더위지기짝짜래·당초팝·정선자운영·큰꼭두서니·키다리난초·개불난꽃 등이 있다고 한다. 특히 학계에 알려지지 않았거나 미 기록종인 흰큰웅담 및 정선 대강나무 등이 자생하고 있어 북방계식물의 자생 남한지로서 학술적 가치가 대단히 큰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주위에는 신갈나무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모두들 나를 따라 내려와서 구경하고는 오래 묵은 철쭉을 보고는 몹시도 신기해 한다.

분취 [Saussurea seoulensis]는 쌍떡잎식물 초롱꽃목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 원산지는 한국이고, 서울 근처에 분포한다. 잔 털과 더불어 거미줄 같은 털이 있다. 뿌리에서 나온 잎은 꽃이 필 때까지 남아 있고 로제트형으로 퍼지며 타원형 달걀 모양으로, 끝이 뾰족하고 밑은 심장밑 모양이다. 또한 표면에 거미줄 같은 털과 꼬불꼬불한 털이 빽빽이 나고 뒷면에는 거미줄 같은 흰 털이 빽빽이 나며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다. 꽃은 7∼9월에 피고 자줏빛이며 종 모양의 頭花는 1∼3개가 꽃가지 끝에 달린다. 총포는 지름 15∼17mm로 포조각이 3줄로 배열하고 가장 밖의 것이 제일 짧다. 열매는 수과로서 털이 없고 관모는 흰색이며 2줄이다. 어린 순을 나물로 한다. 한국 특산종으로 서울 근처에서 자란다.
唐분취[Saussurea tanakae]는 쌍떡잎식물 초롱꽃목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 분포지역은 한국(제주·경북·금강산·오대산)이다. 산에서 자란다. 뿌리줄기는 굵으며 약간 옆으로 자란다. 줄기는 곧게 서고 높이가 50∼90cm 이며 윗부분에서 가지를 친다. 뿌리에서 나온 잎은 꽃이 필 때 마르고, 줄기에서 나온 잎은 어긋나며 밑동에 있는 잎에는 긴 잎자루가 있으나 위로 올라갈수록 잎자루가 점점 작아져 없어진다. 잎몸은 달걀 모양의 삼각형으로 끝이 뾰족하고 밑이 뭉뚝하거나 둥글며 가장자리에 불규칙한 톱니가 있다. 꽃은 8∼9월에 자줏빛으로 피고 지름 15mm의 頭狀花(꽃대 끝에 꽃자루가 없는 많은 작은 꽃이 모여 피어 머리 모양을 이룬 꽃)를 이루며 줄기 끝에 산방꽃차례 모양으로 달린다. 총포는 길이가 14mm, 폭이 15mm이며 종 모양이고 5∼6개로 갈라진다. 갈라진 조각 중 바깥쪽 조각은 짧으며 넓은 달걀 모양이고 가운데 조각은 긴 타원 모양이며 안쪽 조각은 줄 모양이고 끝이 뾰족하다.
管狀花는 길이가 11mm이고, 冠毛는 2줄이며 흰색이다. 열매는 수과이고, 한국 특산종으로 제주도·경상북도·강원도(금강산·오대산) 등지에 분포한다.
山솜다리[Leontopodium leiolepis]는 쌍떡잎식물 초롱꽃목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 참솜다리라고도 한다. 원산지는 한국이고, 설악산 이북에 분포한다. 고산지대에서 자생한다. 높이 7∼22cm. 여러 대가 같이 나오고 자줏빛을 띠며 솜털로 덮인다. 뿌리에 달린 잎은 꽃이 핀 뒤에도 남아 있다. 줄기에 달린 잎은 넓은 줄 모양이거나 거꾸로 선 바소 모양이며 길이 2.5∼4cm, 나비 4∼5mm이다. 잎 가장자리가 밋밋하고 잎자루가 없으며 양면이 솜털로 덮인다.
꽃은 8월에 연한 노란색으로 피고 頭狀花이며, 6∼9개가 줄기 끝에 둥글게 모여 달린다. 포는 6∼9개이고 둥근 모양이며 길이 5∼15mm로서, 잎처럼 잿빛을 띤 흰색 털이 빽빽이 난다. 포조각은 3줄로 늘어선다. 열매는 수(瘦)果로서 긴 타원형이며 짧은 털이 난다. 관모는 흰색이다. 한국 특산종으로 설악산 이북에 분포한다.
노랑갈퀴[Vicia venosissima]는 쌍떡잎식물 장미목 콩과의 여러해살이풀. 한국의 경북·강원·함남·함북에 분포하며, 깊은 산의 기슭에서 자란다. 전체에 털이 없고 줄기는 곧게 서며 가지를 친다. 높이는 80cm정도이다. 잎은 어긋나고 잎자루가 있으며 一回 깃꼴겹잎[羽狀複葉]이고, 잎 끝에 덩굴손의 흔적이 있다. 작은잎은 2∼3장으로 긴 달걀 모양이고 밑은 둥글며 끝은 뾰족하다. 크기는 길이 3∼7cm이고 턱잎은 線形의 송곳 모양이다. 6월에 자줏빛을 띤 노란색 꽃이 피는데 잎겨드랑이에서 꽃자루가 길게 나와 총상꽃차례[總狀花序]를 이루어 밑으로 처진다. 꽃받침은 통형이고 끝이 5개로 갈라진다. 꼬투리는 선상 타원형이고 2∼4개의 종자가 들어 있다. 경상북도·강원도·함경남도·함경북도 등지에 널리 분포한다.
山앵두나무[Vaccinium koreanum]은 산앵도나무라고도 하며, 쌍떡잎식물 진달래목 진달래과의 낙엽관목이다. 한국·만주에 분포하며, 산중턱 이상에서 자생한다. 높이 약 1m이다. 가지에 털이 난다. 잎은 어긋나고 넓은 바소꼴이거나 달걀 모양이며 길이 2∼5cm이다. 양 끝이 뾰족하고 뒷면 맥 위에 털이 난다. 가장자리에 안으로 굽은 잔 톱니가 있으며 잎자루는 짧다. 꽃은 양성화로서 5∼6월에 붉은빛으로 피고, 묵은 가지에서 자라는 총상꽃차례에 아래를 향하여 달린다. 꽃받침은 5개로 갈라지고 화관은 통처럼 생기며 끝이 얕게 5개로 갈라진다. 수술은 5개이고 수술대에 털이 난다. 열매는 장과로서 둥글고 끝에 꽃받침조각이 남아 있으며 9월에 붉게 익는다. 열매를 식용한다.
참배암차즈기[Salvia chanroenica]은 쌍떡잎식물 합판화군 통화식물목 꿀풀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우리 나라의 특산 식물로 경북·경기·강원 등지에 분포한다. 숲속에서 자란다. 높이 50cm 내외이고 줄기는 네모지고 연한 털이 다소 있다. 굵은 뿌리가 옆으로 길게 벋으면서 마디에서 새싹이 돋아나기도 한다. 잎은 마주나고 뿌리잎과 비슷하지만 잎자루가 짧으며 달걀 모양의 긴 타원형 또는 타원형이다. 잎 끝이 둔하거나 짧게 뾰족하고 밑은 아심장저로 가장자리에 둔한 톱니가 있으며 밑부분에 치우쳐서 달리고 털이 다소 있다. 꽃은 8월에 피고 노란색이며 각 마디에 입술 모양의 꽃이 2~6개씩 수상(穗狀)으로 달린다. 꽃받침은 겉에 줄 모양의 털이 있다. 화관의 통부는 꽃받침보다 2배 정도 길고 겉에 선모가 다소 있으며 화관의 갈래조각 끝이 둥글다. 수술은 2개가 있고 암술대는 두 갈래로 갈라져 꽃 밖으로 길게 나온다. 열매는 9~10월에 익으며 종자는 다소 편평해 달걀을 거꾸로 세운 모양이다.
북분취[Saussurea mongolica]는 쌍떡잎식물 합판화군 초롱꽃목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로서, 숲 속에서 자란다. 높이 1m에 달하고 가지가 갈라진다. 밑에 달린 잎은 달걀 모양으로 대가 있고 밑부분이 깊게 패이며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고 위로 올라가면서 점차 작아진다.
頭花는 꽃이 필 때 지름 1cm 정도로서 揀(산)房狀으로 달리고 자홍색이다. 총포(總苞)는 자줏빛이 돌며 포편은 5줄로 배열한다. 열매는 瘦果로 길이 4.5mm 정도이고 털이 없으며 갓털은 갈색이 돌고 2줄로 배열된 모양이다. 한국 ·중국에 분포한다.
벌깨풀[Dracocephalum rupestre]은 바위용머리라고도 하며, 쌍떡잎식물 통화식물목 꿀풀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한국(압록강 상류지역), 중국 북동부 등지에 분포한다. 높이 20∼30cm이다. 밑동에서 여러 대가 함께 나와서 자란다. 붉은빛이 돌며 굵은 흰 털이 난다. 뿌리에 달린 잎은 잎자루가 길지만 줄기에 달린 잎은 짧고 모두 심장형이거나 신장형이며 끝이 둔하고 가장자리에 둔한 톱니가 있다. 길이 2.5∼4.5cm이며 겉에 짧은 털이 난다. 뒷면에는 긴 털이 빽빽이 나며 잎자루는 길다. 꽃은 7∼8월에 피고 자줏빛이며 위쪽 잎겨드랑이에 층층으로 달리지만 마디 사이가 짧기 때문에 빽빽이 난 것처럼 보인다. 꽃은 입술 모양이며 겉에 잔털이 촘촘히 난다. 포는 잎처럼 생기며 바늘 모양의 톱니가 있다. 꽃받침조각의 끝은 가시같이 뾰족하다. 잎이 벌깨덩굴 비슷하므로 벌깨풀이라 한다. 고산 식물(일명 개불난 이라고도 함)이다.
노랑투구꽃[Aconitum sibiricum]은 쌍떡잎식물 미나리아재비목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한국(강원·함남·함북)·중국·헤이룽강 등지에 분포한다. 산에서 자란다. 높이 약 1m이다. 전체에 털이 흩어져 나고, 줄기는 곧게 서며 굵은 뿌리줄기가 있다. 밑동의 잎은 잎자루가 매우 길고 위로 올라가면서 짧아지며 손바닥 모양으로 깊게 3갈래로 갈라진다. 갈라진 조각은 다시 깃꼴로 갈라지며 끝이 뾰족하다. 잎의 앞면은 굽은 털이 있고 뒷면의 맥 위에 긴 털이 빽빽이 난다. 꽃은 줄기 끝에서 총상꽃차례를 이루고 8∼9월에 노랗게 핀다. 작은 꽃대는 꽃받침과 함께 굽은 털이 빽빽이 나고 꽃받침 안쪽에 긴 털이 난다. 꽃받침조각은 5개이며 꽃잎 모양이고 암술대는 뒤로 젖혀진다. 열매는 골돌과로 3개이며 달걀 모양 타원형이다. 뿌리에 독이 있다. 비슷한 종으로는 선투구꽃이 있다.
정선대강나무는 높이 2m 가량에 턱이 지고 나무 결이 육각으로 잘고 빨간색의 꽃이 핀다. 절벽 등 험한 곳에 자생한다.
속달이 꽃은 앞면은 꽃. 뒷면은 잎으로 하얀색을 띠며 높이 30cm 가량의 다년생 고산식물이다.

한편 철제 보호 울타리에는 경고문이 붙어 있는데, 철쭉은 산림법 제 67조에 의거 천연보호림으로 지정 고시하였으며, 산물을 절취한 자는 산림법 제 117조에 의거 6월 이상의 징역 또는 200만원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동법 제 117조는 개정되어서 현재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게 되어 있고 벌금형은 없어졌는데, 이 안내문을 고치지 않고 있으니 안타깝다. 당국에서는 조속히 고쳐 줄 것을 강력히 제언하는 바이다. 지정번호는 15- 4 -2 -1[ 1985. 5. 29. ], 면적은 1ha, 수령은 100/40-180, 수고는 4/2-6, 본수는 6본이다. 관리자는 정선관리소장으로 되어 있다.

비도 내리고 하니 사람들은 메모하고 있는 나 혼자만 남겨 두고 하산해 버린다. 참으로 의리가 너무 없다는 느낌이 들어 몹시 섭섭하다. 어떤 분은 우산까지 받쳐주면서 메모하는 것을 도와주던 분도 있었는데. . . . . 아량의 바닥이 그러면 할 수 없는 일이지 하며 자위한다. 이어 나도 능선으로 되돌아 올라와서 내려간다. 북동 방향이다. 통나무계단이다. 한참 후 1,000m봉 직전 안부에 이른다. 정상윤 리더가 기다리고 있다. 그나마 정이 느껴진다. 여기에도 천연기념물 안내문이 서 있다. 3갈림길이 나 있다. 서울산사람들 표지기! 우측(북)으로 내려가는 능선은 임계천으로 이른다. 여기 갈림길에서 좌측(남)으로 산길로 내려간다. 길이 희미하다. 이내 암반이 나오고 미끄러우므로 조심한다. 약간 우측으로 진행하는 것이 좋다. 드디어 비가 많이 내려 옷을 갈아 입는다. 이어 벌목지대가 어지러이 펼쳐진다. 작년 수해의 흔적이 남아 있다. 돌들이 형체를 드러내고 어지러이 널려 있어 진행하기에 조금 성가시게 하고 있다. 서울산사람들 표지기! 이어 계속 계곡을 내려간다. 덩굴나무 군락도 많다.

이어 우측 사면으로 양호한 길이 나오는데, 박 리더가 기다리다가 우리에게 인계하고 먼저 내려간다. 박 리더는 뭔지 불편해 보였는데, 나중에 보니 눈이 나뭇잎에 스쳐 몹시 아픈 모양이었다. 고생했는데, 빨리 낫기를 기원한다. 산허리길이 되면서 낙엽송 숲이 멋지다. 이어 잡목숲과 거송들이 나온다. 이윽고 넓은 공터에 묘가 있다. 공터가 넓고 잘 관리되어 있으며, 잔디가 좋아 쉬기에 좋을 듯하다. 이어 완만해진다. 3갈림길에서 우측으로 내려간다. 좌측 계곡에는 작년 홍수 흔적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이어 시야가 트이며 칡 및 억새지대가 나온다. 이어 넓은 묵밭이 나온다. 잡초만 무성하다. 이렇게 밭이 묵어가는 현실이 마음 아프다. 농사를 지어 빈민국에라도 원조하면 좋을 걸 하고 생각해 본다.

이어 말라버린 내를 건너 좌측 사면으로 내려간다. 멋진 각선미를 자랑하는 낙엽송들의 운해가 볼 만하다. 다래 덩굴이 무성한데, 꽃들이 많이 피어 올해는 열매가 많이 달릴 것 같다. 돌길이다. 이내 덩굴나무 군락지를 지나고, 찔레나무 등도 나온다. 가끔 딸기나무도 나오는데, 고양골 것보다 알이 너무 작다. 이어 길이 양호해지더니 소나무숲이 된다. 이어 넓은 묵밭이 나온다. 묵밭 가장자리로 진행하여 내려간다. 전방으로 도로가 보인다. 이어 묘 1기가 나온다. 잘 관리되어 있고, 잔디가 좋으며 공터가 넓어 쉬기에 좋을 듯하다. 이어 옥수수와 콩이 식재되어 있는 밭 가를 내려간다. 큰 개 1마리가 죽어라고 짖는다. 혼을 내주려고 하니 쩔쩔매면서 용기도 없이 숨는다. 이어 민가로 내려선다. 큰 암소 1마리가 우리가 가도 건방지게 누워 있길래 기어코 일으켜 세우고 우측 콘크리트 도로로 내려선다.

문대장이 이까지 와서 반갑게 맞이한다. 무려 9시간이 걸렸다면서 과장 내지 역설법으로 질책을 하는 듯하다. 우리가 늦게 하산하는 바람에 아우라지 구경 등이 무산되는 모양이어서 그런 것 같다. 그러나 나중에 문대장이 발표를 했지만, 그쪽은 아직 수해 복구가 다 안 되어서 차량 진입이 만만치 않아서 포기한다고 한다. 손수 딴 딸기를 나누어 준다. 그 따사한 마음이여. . .!!! 그래서 반갑고 고마운 마음이 드는 것이다. 힘들어하는 회원을 아끼는 마음에서 버스를 가지고 마중나온 것이 맞으리라. 결코 시간을 아낄려고 한 것이 아닐 것이다.

(6) 고창골 콘크리트 도로(약 2km) - 북면 高養里

시멘트 포장도로에서는 우측으로 내려간다. 이어 우측으로 휘어지니 다래 덩굴이 무성하다. 꽃이 많이 핀 것을 보니 올해는 다래가 무척 많이 달릴 것 같다. 폐가가 보이고 묵밭이 나온다. 고향을 떠난 그 분들의 심사가 어떠했을까 하고 생각하니 아쉽다. 버스가 와 있다. 의외이다. 아마도 시간 단축을 위해 특별히 배려한 것이다. 서로 수고했다고 인사하면서 버스에 오르니 짜총이 뱀탕 닭죽을 맛있게 끓여 놓았다고 한다. 그러면 굶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큰형님, 손사장님, 시커먼스 부부도 보인다. 모두 감사드린다. 이어 버스를 타고 고창골 구경을 하는 수 밖에 없어 아쉬웠다. 이어 버스는 북면 고양리 버스정류장이 있는 3거리에 이른다. 좌측은 큰골로 이어지고, 우측은 여량리로 이어진다고 되어 있다. 이 오지에는 대한 예수교 장로회 선양교회도 있다. 우측으로 신기동 마을이 보이고, 가까이 산 밑으로는 여량초등학교 선양분교가 있는데, 1995년도에 폐교되었다고 한다. 좌측으로는 공사중이었는데, 군도 1호[고양큰골] 수해 복구공사라고 되어 있다. 주변에 밭에는 고랭지 채소가 자라고 있고, 산은 드높기만 하다. 공기는 좋다.

고양산에서 발원하여 큰골을 거쳐 이곳으로 흘러 내려오는 냇물은 무척 맑고 깨끗하여 1급수 어종들이 많이 보인다. 벌써 발을 담그고 슬리퍼로 갈아신는 마도로스님, 상체를 모두 벗어제치고 목물을 하는 정리더, 다정히 부부가 발을 닦는 측들도 보인다. 다리 밑에는 커다란 찜통에 가득 닭죽을 끓여 놓고, 작은 냄비에는 옻닭도 해 놓았다고 한다. 나는 짜총이 뱀백숙이라고 하여 정나미가 떨어져 다리 밑으로 가기도 싫었다. 그런데 뱀을 넣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하여 새로 오신 분과 기사님이 뱀이 떨어진 주위를 추적하니 장이 일부 파열된 채 겨우 운신을 하고 있는 살모사를 기어코 발견해 낸다. 이에 안심하고 나도 다리 밑으로 갔다. 하나의 해프닝이었다. 짜총이 왜 그랬을까? 뱀을 넣었다고 말이다. 먼저 양푼으로 가득 담긴 막걸리가 나온다. 조금 마시고 넘겨 준다. 시원하다. 산행 후의 막걸리는 일품이다. 더구나 양푼에 담은 채로 돌리니 얼마나 운치가 나던지 모른다. 소시적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이어 닭죽을 얻어 먹는다. 닭죽에는 닭 이외에도 쌀, 더덕, 오갈피나무 등도 넣은 것이라 약이 되는 것이다. 맛이 있어 싫컨 먹어도 남는다. 김재국씨가 권하는 소주는 조금만 마셨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누군가 가져오신 수박을 먹으니 시원하다. 박 리더는 눈이 많이 아픈 것 같아 걱정이다.

다 먹고 나서 그릇을 씻는데, 아뿔사 늘근소님에 의하여 현장을 촬영당했다. 그러나 환경오염 뭐 이런 것이 아닌 물장난하는 것으로 완화하여 표현해 주었다. 그 분은 파파라치 모양으로 아주 이색적이고 재미있는 장면을 놓치는 법이 없다. 피사체는 그것을 인식조차 못하고 한 번 찍히는 날에는 재미있게 망가진다. 그래도 그 분은 정말 서울산사람들에게는 보배로운 존재이다. 그런 사진들이 나중에 보면 얼마나 추억을 제공할 것인가! 그래서 누군가 그 분의 사진기를 무서운 사진기로 명명하고 있다. 그런 순간순간을 재치있게 어찌나 잘 표현하는지 절로 탄성이 나온다. 나도 두 번이나 찍힌 것 같다. 그리고 그 사진 설명이 아주 가관이어 재미있다. 하나하나 쌓이어 우리 서울산사람들의 진정한 재산과 보물이 될 것 같다.
이윽고 정말 떠나기 싫은 이곳을 떠나야 했다. 딸기, 더덕, 지치, 조뱅이꽃, 엉겅퀴꽃, 찔레꽃, 가지나물 꽃, 곰취, 참취 등은 물론이고, 높은 산, 맑은 물, 좋은 공기, 고랭지채소밭 등을 모두 마음과 눈 속에 간직한 채 말이다.

※ 참고로 박수환 리더가 산지에서 옮겨온 지치에 대한 글을 전재합니다. 보는 분들이 두고두고 활용하기 위해서입니다.

『옛날부터 산삼을 능가하는 효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약초. 아마 단방 약재로서 지치보다 뛰어난 효력을 지닌 약초도 달리 없을 것이다. 수십 년 동안 약초를 캐며 살아온 채약꾼이나 노인들을 만나보면 오랜 묵은 지치를 먹고 고질병이나 난치병을 고치고 건강해졌다는 얘기를 흔히 들을 수 있다.
지치는 지초, 자근, 자초, 지혈 등으로 부르는 여러해살이풀로 뿌리가 보랏빛이 나므로 자초라는 이름이 붙었다. 보랏빛 뿌리가 땅속을 파고들면서 자라는데, 야생 지치는 나사 모양으로 한두 번 뒤틀리면서 자라고 재배하는 것은 바로 자란다. 겨울철 눈 쌓인 산에 지치가 있는 곳 주변에는 눈이 빨갛게 물든다. 지치 뿌리에서 뿜어내는 기운이 하얀 눈을 빨갛게 물들이는 것이다.
지치는 열을 내리고 독을 풀며 염증을 없애고 새살을 돋아나게 하는 작용이 뛰어난 약초다. 갖가지 암, 변비, 간장병, 동맥경화증, 여성의 쟁증, 대하, 생리불순 등에도 효과가 뛰어나다.오래 복용하면 얼굴빛이 좋아지고 늙지 않는다고 한다. 지치는 암 치료에 聖藥이라 할 만하다. 강한 거악생산작용, 소염, 살균작용으로 암세포를 없애고 새살을 빨리 돋아나오게 한다.
지치로 암을 치료하는 처방을 소개한다. 오리 한 마리와 야생 지치 2근을 함께 넣고, 거기에 소주를 붓고 뭉근한 불로 달인다. 오래 달여서 건더기는 건져 버리고 달인 술물을 한번에 소주잔으로 하나씩 하루 세 번 복용한다. 술을 못 마시는 사람은 물을 봇고 달여도 된다. 오리와 지치는 다같이 농약독, 공해독, 화공약독을 푸는 데 뛰어난 효력이 있다. 이 두 가지가 만나면 약성이 극대화되어 기적 같은 치병효과가 일어날 수 있다. 오리와 거위는 구리나 유리를 소화시킬 수 있을 만큼 굳은 것을 삭이는 힘이 강하니 딱딱한 종양덩어리도 파괴할 수가 있는 것이다. 또 오리나 거위의 피 속에는 산이나 알칼리 효소에 파괴되지 않는 극미립자의 항암물질이 들어 있다. 지치는 막힌 것을 뚫고 生血ㅡ活血하여 옹종을 삭여내는 힘이 매우 센 데다가 보중악기 하는 작용까지 겸하였으므로 이 두 가지를 합치면 뛰어난 암치료약이 될 수 있다.
지치로 술을 담가 두고 조금씩 오래 복용하면 정력이 매우 세어지고 피곤함을 모르게 된다.
비만증을 치료하는 데도 지치를 따를 만한 것이 없다. 지치를 복용하면 포만감이 있어 음식을 먹지 않아도 배고픔을 느끼지 않으며 살이 웬만큼 빠지고 나서는 다시 음식을 마음대로 먹어도 살이 찌지 않게 된다. 뱃속에 어혈 덩어리 같은 것이 뭉쳐 있기 쉬운 40대 이후의 여성들에게 제일 좋은 약초라고 할 수 있다.
지치는 심장을 튼튼하게 하는 작용도 있어서 늘 가슴이 두근거리고 잘 놀라는 사람, 심장에 가끔 통증이 있는 사람, 현기증이 있는 사람에게도 뚜렷한 효과가 있다. 악성빈혈환자도 6개월쯤 꾸준히 먹으면 치료되고 신장기능이 좋지 않아 손발이 봇고 얼굴이나 허리 등에 군살이 붙은 사람도 지치를 꾸준히 먹으면 해결된다.
지치를 가공하는 법도 다른 약초와는 다르다. 지치는 물로 씻으면 약효가 줄어들므로 절대로 물로 씻지 말고 솔 같은 것으로 뿌리에 붙은 흙을 털어 내고 그늘에서 말리되 하루에 한 번씩 술을 품어주면서 말려야 한다. 따뜻한 방안 같은 데서 말리면 좋다. 지치는 10년 넘게 자란 야생 지치라야만 제대로 약효가 있고 재배한 것은 약효가 거의 없다.
*비만증에는 지치 가루를 한번에 밥숟갈로 하나씩 하루 세 번 먹되 5개월쯤 먹으면 정상체중으로 살이 빠지고, 다시는 살이 찌지 않는다. -산지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