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초롱-

  오늘(2002. 10.12.) 등산 코스는 '무등산 산장→ 꼬막재→ 규봉암→ 장불재→ 중머리재'인데 핵심은 꼬막재 너머의 한창 핀 억새꽃이다. 가을 하늘과 바람까지 담아오고 싶어 카메라도 준비했다.  
  광주에 무등산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런 축복인가. 산장까지 흡사 강물처럼 굽이굽이 뻗은 도로 좌우의 가을 풍경에 벌써 취한다. 마음을 한없이 사로잡는 대상이 자연이라는 사실은 무엇보다도 뒷탈이 없어서 좋다.
  산장 바로 옆 오르막 길 입구, '꼬막재→ 4.3㎞'의 안내 표지판이 반겨준다. 십리가 조금 넘는다. 거리의 중량감을 대강 저울질해본다. 왠지 수월하게 여겨진다. 거기서 조금 더 가면 제 철을 만난 억새가 기다린다. 벌써 가슴 설렌다.

  규봉암을 향하여 의상봉의 뒤를 돌아 올라가면 꼬막처럼 둥글게 두드러진 고개에 이르는데 거기가 꼬막재다. 원래 그 부근에 꼬막 같은 자갈이 무수히 깔려 있어 부쳐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지금은 그런 자갈이 없다.
  "꼬막재에는 꼬막이 없지요?" 앞사람이 말한다.
  "국화빵에는 국화가 없답니다." 뒷사람이 화답한다.
  "붕어빵도 붕어가 없지요." 또 대꾸한다.
   모두 웃는다.

  얼마 전 내린 비로 오르막 길이 알맞게 물기를 머금고 있다. 발바닥에 전달되는 땅의 감촉이 풋풋한 햇사과처럼 부드럽고 탄력 있다. 약수터가 길옆에 나타난다. 시원한 생수의 유혹이 손짓한다. 성큼 달려가서 플라스틱 바가지로 물을 받아 벌컥벌컥 마셨다.
  "식수 부적합 경고문이 있는데요!" 일행인 K의 다급한 목소리다. 커다란 경고문에 붉은 사선(斜線) 두 줄이 선명하다. '세상에 이럴 수가? 저걸 못 보다니!' 속으로 놀랐다. '기왕 버린 몸', 내친 김에 두어 모금 더 마셨다. 순전히 오기 같은 허세다.
  "월요일, 출근 못하면 이 물 때문입니다." 내 말에 한바탕 웃음이 터진다.

  길가에 '금강초롱'이 피었다. 짙은 자줏빛이다. 차가운 바람에 몸을 웅크리고 있다. 낙엽이 다정한 친구처럼 뿌리 부근을 덮어주고 있다. 곧 서리가 내리고 꽃이 지겠지. 겨우내 따스하도록 카메라에 담아 가야겠다. 몇 컷 찍었다. 일행은 저만치 가고 있다.
  이때, 한 무리의 아가씨들이 지나면서 "야! 도라지다!"하고 탄성을 지른다. 산을 찾는 여유들이 밉지 않다. "어이, 아가씨들 도라지가 아니라 금강초롱이야. 이름처럼 꽃도 예쁘거든."하고 시정해 주었다.

  이백여 미터쯤 걷다가 하얀 '바위구절초'를 만났다. '삼잎국화'를 닮은 노란 야생화도 고개 내민다. 녀석의 이름은 모르겠다. 사진을 찍었다. <무등산 야생화> 책을 사서 정확한 이름을 알아야겠다. 아가씨들은 신나게 웃고 얘기하며 앞서 가고 있었다.

사진 찍을 동안 일행과 한참 멀어졌다. '쑥부쟁이'와 '배초향'이 반겨 준다. '꽃향유'와 '왕고들빼기'는 시들어 가고 있다. 그냥 지나치며 걸음을 재촉했다. 저 만큼, 아가씨들 중 한 명이 뒤 처져, 풀어진 신발 끈을 고쳐 매고 있었다.
  학생이냐고 물으니 직장인이라고 한다. 주 5일 근무라서 동료들과 등산을 왔단다. 얘기를 나누다 보니 억새 밭에 다다랐다.   우리 일행도 아가씨 일행도 모두 억새꽃에 감탄하고 있었다. 나도 감탄사를 보탰다. 가장 때묻지 않은 소리가 감탄사라고 한다. 정직한 소리라는 뜻이다. 우리 주위에 보태고, 빼고, 꾸미고, 목에 힘주는 허망한 소리들이  얼마나 많은가.

  마음의 심연에서 태고적 순수의 감정을 끌어 올려주는 이 억새꽃을 보기 위해 여기에 온 것이다. 카메라의 진가를 발휘할 때가 왔다. 각자들 아름다운 배경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린다.

  
  억새는 바람에 온전히 몸을 맡기고 있다. 바람에 날리면서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자유일까, 희망일까, 아니면 사모의 정일까. 억새꽃을 손으로 가만히 쓰다듬어 본다. 가까이 코를 대고 내음도 맡아본다.
  전에는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의 노랫말에서 '으악새'를 새의 일종으로 생각했었다. '억새풀'을 '으악새'라고도 한다는 건 나중에 알았다. 야생화도 이름을 알면 더 가까워지듯이 한층 정겹고 친근하다.  

  억새꽃의 이미지를 시로 표현해보고 싶었다. 자유나 희망의 이미지 대신 그리움의 정을 가득 안고 흔들리는 모습에 자꾸만 마음이 기운다. 떠오르는 시상을 억새꽃 풍경과 함께 기억 속에 갈무리했다. 시 "억새꽃 이야기"는 그렇게 지어진 것이다.

        억새꽃 이야기

  무등산 꼬막재 넘어
  규봉암 가는 능선 길 억새 밭
  외로운 만큼 그립고
  그리운 만큼 외롭다.

  문신처럼 지워지지 않는 외로움 안고도
  문신처럼 지워지지 않는 그리움 안고도
  용케 견디고 있다
  숨을 참는 만큼이나 힘겹다

  하루 종일 서 있어도
  내가 덜어 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바람이 다가와 억새를 흔들면
  흔들리며
  흔들리며
  외로움의 무게를 덜고 있다
  그리움의 무게를 덜고 있다
          

   아가씨들의 단체 사진과 개인 사진도 찍어주었다. 밝고 환한 모습들이 야생화보다 더 곱다. 신발 끈을 매던 아가씨가 메모용 스티커에 이메일 주소를 적어준다. 받아서 카메라 케이스에 붙였다. 종이 모양이 노란 낙엽 같기도 하고 아이스크림 머리 부분 같기도 해서 흥미롭다. 다른 종이에 이메일 주소를 하나 더 적더니 길 쪽으로 휘어진 억새 줄기에 붙인다.
"야, 너 내일부터 엄청 메일 많이 받겠구나." 친구 중 누군가 말한다. 그녀들은 까르르 일제히 웃는다. 웃음소리가 맑고 투명한 벚꽃처럼 쏟아진다. 우정이든, 사랑이든 그녀들에게 따스한 서신이 오가는 추억 만들기의 가을이 되었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만큼 알고, 사랑하는 만큼 가까워지는 법이 아닌가. 아름다운 자연을 만나 가까워지고 다정한 사람과도 만나 가까워지기를 바란다.

그녀들은 떠날 채비를 하면서, 점심을 어디서 먹는 것이 좋은지 물어왔다. 규봉암이 멀지 않다고 하니까 식수도 있는가를 묻는다. 물 준비를 못했단다. 충분하다고 말해주자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들 떠났다.
  
  우리는 한참 더 머물렀다. 억새꽃의 진한 감동을 떨치기 어려워서다. 출발하려는데 '앗차, 물을 준비하지 않은 그 아가씨, 이메일 주소를 건네 준 그녀에게 배낭에 있는 페트병의 물을 주었으면 좋았을 걸'하는 아쉬움이 일었다. 걸음을 빨리 했다.
  발 앞에 자줏빛 꽃이 또 나타난다. 순간, 또 '앗차'다. 그녀들에게 '용담'을 '금강초롱'으로 잘못 가르쳐주었던 것이다. 꽃 모양은 흡사한데 금강초롱은 고개를 아래로 숙이고 용담은 위로 쳐든다. "와! 아저씨, 프로시네요!" 그녀들이 찬사를 보냈을 때, 속으로는 흐뭇했지만 "아냐, 아마추어에 불과해."라고 대답한 게 얼마나 잘 한 일이었는가.
  만나서 꽃 이름을 정정해주고 물도 줄 요량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못 만날 경우, 그녀들이 제발 꽃 이름 '금강초롱'을 잊었으면 좋겠다. 카메라 케이스에 붙여 놓은 이메일 주소 스티커도 보이지 않았다. 어디론가 바람에 날아가 버린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