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21
명지산.
세명 ( 나 동생,사촌형)

설날 전날 6시 50분발 가평 목동행 버스에 올랐다.
오늘 서울 -15도. 가평 -19도.
괜찮을까.

익근리에 세명을 내려주고 하얀 연기를 날이며 버스는 적목리로 향한다.
익근리.
흡사 석양의 무법자에 나오는 쟝고 같다.
바람이 세차게 불며 눈가루가 날린다.
적막하다.
아무도 없다.
모든게 꽁꽁 얼었다.
간간히 개 몇마리가 컹컹댄다.
집집마다 문을 굳게 잠그고 고요하다.

승천사 지나 사향봉으로 향했다.
원래는 명지폭포쪽으로 가다 화채바위를 경유하여 1봉에 오를 예정이었으나 사향봉 능선을 타기로했다.
세사람의 대화가 화기애애하다.
급사면이 어쩌느니 능선이 어쩌느니 저번 지리산이 어쩌느니 .....

눈이 발목까지 잠긴다.
점점 갈수록 바람이 매섭고 미끄럽다.
눈이 슬슬 등산화속으로 침범한다.
안부에서 스패치하고 아이젠을 착용했다.
내 아이젠은 등산용품점에서 서비스로 받은것인데 착용하기가 여간 힘든게 아니다.
혼자힘으로는 도저히 안된다.
동생이 간신히 채워주었다.어쩐지 공짜로 주더라.
배낭옆에 물통이 벌써 얼었다.

길이 보여야지 전진을 하지.
동생이 러쎌하며 한발자국씩 옮겨갔다.
사향봉이 안보인다.
몇봉우리를 넘어도 사향봉이 안보이니 4봉이 보일리가.
(알고보니 우리가 이미 사향봉을 거쳐왔음)

능선길이 보통이 아니다.
북서풍이 확 불면 눈가루가 시베리아에서 날리는 눈가루같다.
입마개는 벌써 얼어 붙었다.
그래도 찬바람을 막아주니 다행이다.
왜 이리 길이 험한가.
눈이 없어도 힘들 길이다.
길를 찾는것이 아니라 만들며 간다.
표시기가 거의 없다.있어도 몇년지난 표시기다.

힘들어 쉬면 발이 시렵고 얼굴이 얼어붙는것같다.
3시간이 지나니 허기가 진다.
세명 앉을 곳을 발로 눈을 다진 후 꽁꽁 언 김밥으로 대강 끼니를 때우고 출발한다.
눈이 이젠 허벅지까지다.
능선에서 미끄러지니 눈이 이젠 허리까지다.
공포가 온다.내가 이러다 조난 당하지...
동생은 확신있게 길을 찾는다.
선두와 내 사이가 30M정도 떨어졌다.
이러면 안되지하고 미친듯이 따라간다.

바람이 세차게 확 분다.
모두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린다.
입마개가 풀어져 다시 고쳐매느라 장갑을 벗고 입마개를 다시 동여매니 손에 감각이 없다.
급히 장갑을 끼니 속장갑과 겉장갑의 손라락 위치가 안맞는다.
손가락이 아프다.무지 시렵다.
이거 동상걸려 혹시 손가락을...
내가 소리 친다." 야! 나 이제 못가!"

잠시 쉬며 의논한다.
동생은 1봉까지가자,
사촌형은 " 산에서 조난이라는게 남의 일이 아니지..."
나 왈 " 알다시피 난 못가!"

4봉(1079M)에 도착했다.
동생은 1봉쪽으로 서 있고 나와 사촌형은 하산길에 서 있다.
아뭏튼 다수결로 하산하자 했다.
하산 길에 눈발자국이 하나도 없다.
올랐을 때도 우리가 러셀하고 내려올때 발자국이 하나도 없으니 오늘 명지산에 단 우리 3명뿐이던가.
참! 오늘 명지산 우리가 전세냈네.

익근리에 가게가 모두 닫았다.
다음날이 설날이라 모두 설 쇠러갔나보다.
마지막 집에 들어가 통사정하여 두부 한모에 막걸리 한사발씩 했다.


버스를 기다리며 명지산을 돌아보니 모든게 시커멓다.
무섭다.


▣ 송용민 - 저도 무섭습니다.
▣ jkys - 안녕하세요. 송용민님. 닝의 산행기를 읽어 보았읍니다.코스는 좀 달라도 명지산에 다녀오셨군요.반갑읍니다.
▣ 산초스 - 저도 사향봉에서 4봉을지나 명지산을 한번 가려고 계획중인데 아무래도 봄으로 미루어야 겠습니다. 아니면 그전대로 몇번가본 4봉에서 정상으로 가던가? 하여간 겨울에는 특히 안전산행이 최고입니다.고생하셨습니다.
▣ manuel - 높이와 깊이만큼이나 전설적인 명지산맥 아닌가 합니다. 특히, 북녘서 바라보는 명지는 더욱 검게 보이지요. 임산골도 깊습니다만 ... 안산하세요.
▣ 포도사랑 - 적설량이 만만치 않았군요. 그날 무지하게 추웠지요? 고생하셨습니다.
▣ 김용진 - 가평의 산을 두루 섭렵하시는 jkys님 엄청 고생하셨네요... 겨울산이 그래서 겁나나 봅니다. 안전산행 하시고 즐산하십시요.. 전 설날 연휴기간동안 수도권 가까이에 있는 산을 산행했습니다. 설 전날인 21일은 청계산, 24일은 광교산, 25일은 검단산에서 용마산으로 종주했습니다. 명지산은 높은만큼 조심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감사합니다.
▣ jkys - 김용진님 안녕하세요. 님의 산행기를 많이 읽고 있읍니다.김용진님도 즐거운 산행하시고 건강하세요.
▣ 집사람왈 산짐승 - 저도 22일날 명지산갔다가 죽은 줄 알았어요.요즘 겨울산 무서워 쉬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