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남정맥 

2구간(내마음대로)

3월19일, 혼자서

  

늦잠을 잔 덕에 피암목재에 도착한 시간은 9시 20분, 자가용 두 대와 승합차 한 대가 곧이어 도착하고 운장산서봉으로 산님들이 들어선다.

바람은 많이 불고 황사가 끼어 썩 좋은 날씨는 아니다.

등산화를 갈아 신고 그분들과는 반대로 도로를 건너 절개지 한쪽으로 매달린다.

오름길에 나무를 잘라 막든 높은 울타리란 장애물이 나오고, 아마 군 훈련용 장애물인가 보다.

오늘 정맥길 내내 훈련용 안내문이 적힌70~80년대식(횐 판위에 궁서체로 쓴)안내판을 볼 수 있었다.

10여분 올라서니 피암목재가 조망되는 넓은 바위가 나오고 곧 675.5봉에 닿고(헬기장) 조망이 안 좋아 그냥 내려간다.

9시 50분.

삼거리에서 왼쪽 급경사 내리막길을 가고 예의 그 표지판이 또 보인다, “급경사 길”

이윽고 능선 길을 걷다가 밤목리와 외처사동 갈림길을 지나고 급경사 오름길을 코를 박고 기어서 오른다.

지형도상에 나오는 787봉에 도착하고....., 10시33분.

도착 직전 성의 문 인양 양쪽으로 돌들이 엄청 많다.

역시 성봉(城峰)이란 말처럼 성의 자리가 확실하다 정상에 서서 보니 왜 이곳에다 성을 쌓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곳도 헬기장이고 약 20여평 정도의 넓은 곳에 갈대와 싸리나무가 무성하다.

좀 전의 그 돌이 많은 곳이 아마 남문 역할을 한 것 같아, 다시 돌아가 살펴보니 다듬은 돌들을 양쪽으로 쌓은 것이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전혀 무외안인 내가 보아도 남문 역할을 한 것 같다.

길게 이어지는 성의 흔적은 약 500~600m정도 이어지고 있다.

 

 무너져 내린 성벽

  

조망이 좋다.

대불리쪽 넓은 골짜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진솔 대안 학교도 잘 보이고.

성봉을 내려서면서 생각하니 물을 어떻게 공급 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든다, 아마 샘터가 근처에 있지 않을까.....?

완만한 내리막과 오르막을 지나고 칼 날 같은 능선도 지나고......... 도착한곳이 742봉, 일명 장군봉이다.

11시27분.

오늘 구간에서 유일하게 암봉이 형성돼 있다.

장군봉에 올라서니 작은 우물처럼 움푹 팬 바위 홈에 물이 고여 있어 신비로움 든다.

주변 조망도 괜찮다.

장군봉 정상석이 있는 곳에서 다시 빽 하여 몇 미터 간 다음 10여m 절벽 길을 조심스레 내려서고 다시 만난 절벽 길에서 스틱을 먼저 내던지고 가냘픈 밧줄을 잡고 내려선다.

장군봉이 잘 보이는 곳에 앉아서 이른 점심을 먹는다.


 오른쪽 뒤의 운장산과  왼쪽 성봉 (장군봉에서 바라봄)오른쪽 서봉밑에 하얀색의 피암목재길이 보인다

 
  오른쪽 장군봉과 뒤의 운장산, 점심을 먹은 조망좋은 봉(왼쪽봉)

 

30여분을 조망과 식사로 그렇게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다시 출발이다.

이후로는 오르막과 내리막이 작은 여유로운 능선 길을 계속해서 가고 , 진행방향 오른쪽으로 군부대 철조망이 두줄로 몇Km나 이어져 있었는데, 안타까운 일은 푸른색의 그 철조망이 나무에 못이 박혀 설치 돼 있다는 것이다.

몇Km나 이어져 있었으니 엄청난 양의 나무가 수난을 당하고 있다.

715m봉을 지나고, mp3의 이어폰을 끼고 야구 중계방송을 들으며 가나, 들리는 곳은 몇 군데 아니고 지직 거리는 잡음만 나온다.

간혹 방송이 잡히는 곳에서 멈추어 서서, 한동안 중계방송을 듣다가 가곤 하지만 그것도 그만 둬 버린다.

7회에 홈런과 안타로 3점을 내줬으니......... 난 아직도 너무 세속적인가 보다.

그것에 흥분을 하고 혼자 중얼거리고 있으니.............

640m봉, 654m봉을 지나고 움푹 패인 큰 싸리재를 지나, 급경사 오르막을 올라 755m봉(싸리재봉) 분기점에 이른다.

여기서 왼쪽으로는 왕사봉과 칠백이 고지를 지나 군산으로 빠지는 일명 제2의 금남정맥이니, 금남 기맥이니 하는 갈림길이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고 능선의 내림 길을 가니 작은 싸리재다(606m).

14시10분.

넓은 임도와 통신안테나가 세워져 있고 왼쪽은 피묵리 고당리 계곡 오른쪽은 진등리다.

왼쪽 피묵리는 천혜의 아름다운 계곡이다

몇 년 전 까지 피묵리로 여름마다 피서를 오곤 했는데, 지금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 때문에 이제는 포기한 상태다.

한번 알려지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변해버린다, 자연도 그렇고 주변 사람들도 인정이 사라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까?

오늘 예정은 여기서 오른쪽으로 발길을 돌려 진등 마을로 내려서는 여정인데, 오늘 걸음 내내 처녀 젖가슴처럼 부드러운 봉오리에 유두 모양의 태평봉수대가 궁금해 그냥 내려 설수가 없어 가파른 오름길을 오르니 능선 삼거리다.

처녀 젖가슴 같은 성재봉과 봉수대

 

정맥은 산죽이 왕성한 왼쪽 길이고 봉수대는 오른쪽으로 정맥을 벗어나 100여m정도위에 자리 잡고 있다.

성재봉(내가 가지고 있는 지형도엔803m인데 어느 분 산행기엔 824m라고 적혀있다)에 오르니 할 말을 잃는다.

왜 이 곳에 봉수대를 세웠는지 알 것 같다.

반경 20Km 정도는 거칠 것이 없다.

바람이 많이 불어 사진 찍기도 어려울정도로 조망이 좋고 봉수대도 잘 보존 돼 있다.

삼국시대에 만들어지고 조선 선조 때 중수 되고 지금까지 잘 관리된걸 보니 기분이 좋다.

“전라북도 지방 기념물 36호 태평봉수대”

근처에 있는 내가 아는 산은 다 보이는 것 같다.

연석산, 운장산, 북두봉, 구봉산, 명도봉, 명덕봉, 서대산, 왕사봉, 대둔산도 보이니, 굉장한 조망이다.

자세히 살펴보니 시멘트 흔적도 조금 있는 걸보니 그 후로 마을이나 군청이나 면사무소에서 관리 한 것 같다.

안내판을 보니 남쪽의 고달산 동쪽의 장안산쪽에서 보내온 신호를 중계하여 운주와 탄현으로 보냈다 한다.

태평 봉수대


 태평 봉수대에서 바라본 조망(왼쪽 구봉산 오른쪽으로 운장산과 연석산 그리고 그밑으로성봉)

봉수대에서 바라본 북쪽방향 조망(오른쪽 멀리 천등산과 대둔산일부분이 보인다) 

 

또 인근 태평산성과 연락 했다라고 적혀 있는데 그 태평산성이 성봉 이라 불리는 787봉이 아닐까?

사진도 찍고, 앉아서 조망을 하고 30여분 작은 흥분에 쌓여서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린다.

다시 삼거리로 돌아와 지형도를 보니, 진등 마을로 하산하는 것보다 787봉 못 미처 무릉리에서 올라온 임도를 따라 내려가기로 하고 진행한다.

급하게 내림 길을 가다보니 천연 성벽이 거대하게 정맥 왼쪽으로 자리하고 있다.

높이 약20~30여m이고 길이도 40~50여m로 대단히 멋진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사진을 한 장 찍을려고 보니 역광이라 포기한다.

산죽 급경사 길을 내려오다 오늘도 또 엉덩이를 슬프게 한다.

스틱이 그사이에 껴 활처럼 휘어져 버렸다.

어느 분 산행기에 늪이 있다고 했는데 정말로 작은 늪이 자리하고 있다.

처음엔 멧돼지가 여기 저기 파놓아 그런가 보다 했는데, 물과 진흙이 있으니 아마 이 녀석들이 진흙 목욕을 한 것 같다.

가물어서 그런지 작은 샘이 있고 그 주위로 늪이 형성 되 있다.

정맥 길은 그 늪 우측으로 나있고 한 여름 우기 철엔 정맥 길이  혼돈 스럽게 될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어서 넓은 임도가 나오고  오른쪽으로 비포장 임도를 따라 내려간다.

15시 05분.

20여분을 지루한 임도를 따라 내려오니 잘 포장된 무릉리에서 나오는 길이 나오고 오른쪽으로 또 20여분 터벅 터벅 걸어 나오니 운일암 반일암 삼거리다.

오늘 산행에 한사람도 보질 못했다.

주천 택시를 불러 피암목재로 다시 간다(주천 무쏘 개인택시:011-655-6672 박래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