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는 거창 비계산~합천 가야산 종주를 염두에 두었으나 늦잠을  관계로 행선지를 대둔산으로 바꾸었다. 붐비는 등산로를 피하여 아직 답사해보지 못한 말로은 마을 골짜기로 오르고, 내려올 때는 일반산행로인 동심바위골과 용문골 사이의 협곡을 이용하기로 하였다. 기대와는 달리 말로은 마을에서 주능선으로 붙는 길은 7 능선에서 사라진다.

 

아울러 대둔산과 운장산 사이의 봉우리중 아직 답사하지 못한 봉수대산(582.8m), 금남정맥에서 조금 벗어나 있지만 진산 자연휴양림 측에서 명명한 듯한 국기봉(592m)에도 올라보기로 하였다.

 

▣봉수대산(582.8m) 산행기

 

▪일시: '04년 10월 30일

▪날씨: 맑음, 15-18℃

▪오전 10시 14분 경 완주군 경천면 가천리 신흥골계곡 ‘용궁산장’ 출발

 

8 50  집을 출발, 신도안, 양촌, 운주를 거쳐 ‘원용북버스승강장 맞은편 좁은 포장길로 들어섰다. 화암사 갈림 사거리에서 계속 동쪽으로 나아가니 비포장길이 이어지고 ‘곤충왕국앞을 지나 신흥골계곡 안내판이 있는 ‘용궁산장인근에 차를 세웠다.

 

(10:14) 남동쪽으로 나아가니 가뭄 때문에 계류에는 물이 조금밖에 흘러내리지 않았다.  가구가 남은 신흥마을의 ‘영화산장 이르니 곶감 말리기 작업이 한창이었다. 지프차가 나오길래 40 중반의 수염을 기른 운전자에게 산길 여부를 물어보니 없다고 한다. 오른쪽으로 ‘선운산방 100m’ 표시판과 함께 갈림길이 보였고, ‘외인출입금지표식이 걸린 출입문을 지났다.

 

(10:32) 농가에서 아까  운전자의 부인인 듯한 아낙을 만났는데, 여기는 사유지라 들어갈  없다고 한다. 더구나  마리의 개들이 빨리 나가라고 컹컹 짖어댄다. 산길은 있느냐고 물어보니 없다고 한다. 되돌아 나올 수밖에 없다.

 

(10:39) 다시 신흥마을 농가에 이른  건계를 건너 동북쪽의 (신흥)계곡으로 들어서니 犬舍에서 개들이 짖어댄다. 왼편에서 너른 길을 만나 조금  가다가 오른쪽(남남동쪽)으로 보이는 족적을 따라가니 이내  흔적이 사라졌다. 남동쪽 사면을 치고 오르니 오른쪽에서 신흥마을에서 올라온 듯한 뚜렷한 길을 만났다. 왼쪽(동쪽)으로 나아가니 이내 남남동쪽으로 휘어 지그재그로 가파르게 이어졌다.

 

(10:53) 경사가 누그러지면서 무덤에 이르니  흔적이 끊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동쪽으로 치고 나아가니 다시 흐릿한  흔적이 이어졌고, 경사가 완만해지면서 모처럼 빨간색 ‘산사랑·자연사랑표지기가 눈에 띄었다. 동남쪽으로 완만한 길을 나아가니 막바지에 남남서쪽으로 휘어 주능선을 만났다.

 

(11:23) 표지기가 걸린 주능선 언덕(×481m) 닿았으나 나뭇가지에 시야가 가린다. 서쪽으로 완만한 내리막을 나아가니 남서쪽으로 휘면서 오른쪽에서 소로가 합류하였다.

 

(11:30) 안부(새재) 이르니 왼쪽(운문)으로는 흐릿한 내리막길이 있으나 신흥계곡 쪽으로는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직진하니 모처럼 청색 ‘全州白山표지기가 눈에 띄었고, 언덕에 이르니 오른쪽 아래로 아까 되돌아섰던 외딴집이 나뭇가지 사이로 내려다보였다. 좌우로는  곳보다  높은 운암산 능선과 써래봉 능선이 바라보인다. 조금  나무기둥을 두른 비닐 노끈이 십수  보였는데, 용도를  수가 없다.

 

(11:51) 해발 500m 되어 보이는 능선봉에 이르니 북쪽으로 ‘산사랑산악회표지기와 함께 신흥마을로 내려서는 듯한 내리막길이 보였으나 서남쪽으로 계속 나아갔다.

 

(12:05) 새로 박은 대리석 삼각점(582.8m) 자리하는 봉수대산 정상에 닿으니 나뭇가지 사이로 금남기맥의 까치봉 능선, 장재봉, 대둔산과 천등산, 선녀봉, 구봉산, 운장산, 연석산, 원등산, 운암산, 등이 바라보였다.  이름이 봉수대산이니 봉수대(烽燧臺) 있을 법한데,  흔적이 보이지 않아 의아스러웠으나 이내  의문이 풀린다.

 

(12:10) 정상을 출발, 서쪽으로 나아가 언덕에 이르니 원형의 봉수대 유적이 온전하게 남아 있었다. 봉수대는 삼거리를 이루었는데, 오른쪽(북쪽)으로 내려서니 ‘산사랑산악회표지기가 보이고 북서쪽, 이어 북쪽으로 완경사 능선길이 이어졌다. 둔덕을 지나니 빛바랜 ‘거풍 ‘果川金榮五표지기도 눈에 띄었다.

 

(12:33) 언덕에서 ‘산사랑산악회표지기가 걸린 북동쪽으로 내려서니  흔적이 흐릿해지면서 동북쪽으로 휘었다. 나뭇가지에 걸린 막걸리통이 보이면서  흔적이 다소 뚜렷해졌다.

 

(12:37) 능선 분기점에 이르렀는데, 비교적 뚜렷한 길은 동쪽 신흥마을 쪽으로 이어지나 신흥마을을  다시 지나가기는 싫어서 왼쪽(북쪽)으로 내려서보았다. 잡목 때문에 몸을 다소 굽혀야 하나 잡목의 저항은 그리 드세지 않았다.

 

(12:47) 얕은 안부에 이르니 오른쪽 뒤편(동쪽)으로 사면길 흔적이 보여  쪽으로 나아가니  잡목 더미에  흔적이 애매하다. 기둥에 비닐 끈이 묶인  개의 나무가 보이는 데서 북동쪽으로 급사면을 치고 내려가니 조금  흐릿한  흔적을 만나게 되었다.

 

(12:56) 물이 마른 계류를 건너니 ‘곤충왕국전시관(관람료 1000) 자리한다.  대의 차가 세워진 것으로 보아 관람을  사람들이 있는 듯하였다. 비포장길을 따라 남동쪽으로 털레털레 걸어가 1 5  ‘용궁산장앞에 닿았다.

 

▣국기봉(592m) 산행기

 

▪일시: '04년 10월 28일

▪날씨: 맑음, 20℃

▪오후 1시 54분 경 완주군 운주면 산북리 ‘산내들가든’ 출발

 

국기봉은 진산 자연휴양림의 남쪽 592m봉을 가리키는데, 휴양림에서 오르는  보통이나 산북리 쪽에서 올라보기로 하였다. 봉수대산 산행을 마치고 운주면 산북리 삼거리를 지나 ‘산내들가든앞에 차를 세웠다.

 

(13:54) 가든 왼편의 농로를 따라 왼쪽으로 보이는 무덤群을 지나니 동북쪽으로 풀섶 산판길이 이어졌다. 왼쪽 지능선으로 올라도   같았으나 계속 골짜기를 따라가기로 했다. 건계를 만나니  흔적이 사라졌으나, 건계를 따라 조금 나아가니 다시 소로가 이어졌다. 조금  ‘감나무를 톱으로 자르지 마시오표식이 보였으나 감나무는 보이지 않는다.

 

(14:11) 석축과  감나무를 지나니  바로 왼편에 해골 모양으로 패인 굴이 자리하였다. 이후  흔적이 덤불에 의하여 사라져 건계를 따라 올랐다. 석축 흔적은 이후로도 간간히 보였으나  흔적은 여전히 흐릿하거나 풀섶에 사라졌다. 막바지 북쪽 급경사를 치고 올라 정상 직전의 능선에 이르니 흐릿한 능선길 흔적이 보인다. 왼쪽(서북쪽)으로 꺾으니 모처럼 노란색 ‘전라북도경계밟기·전라일보사표지기가 눈에 띄고, 이내 무덤 모양 위에 삼각점(592m) 설치된 정상에 닿았다.

 

(14:46) ‘국기봉 해발고도 592m, 2512m’ 표시목이 설치된 정상에서 나뭇가지 사이로 천등산, 대둔산, 서대산, 진악산, 구봉산, 운장산, 등이 바라보였다. 여기서 ‘국기 ‘國旗인지 ‘國基인지  모르겠고 2512m 휴양림 입구로부터  거리인 듯하다. 북쪽으로 금남정맥 또는 휴양림으로 이어지는 뚜렷한 길이 보였으나 ‘산내들가든앞으로 내려서야 한다.

 

(14:49) 정상을 출발, 서남쪽으로 천등산을 바라보며 내려섰다. 잡목 사이로  흔적은 흐릿하나 덤불과 잡목의 저항은 별로 없었다. 언덕에 이르니 최근에  듯한 노란색 ‘황태자·대충산사표지기가 눈에 띄었다. 슬랩 바위를 내려서서 안부에 이르니 왼쪽 뒤편으로 흐릿한 사면길이 보였으나 직진하였다.

 

(15:03) 둔덕(×487m) 이어 떼가 벗겨진 무덤  개를 연이어 지나자  상태가 다소 뚜렷해졌다. 조금  ‘황태자·대충산사표지기가 다시 눈에 띄면서 가파른 내리막길이 지그재그로 이어졌다. ‘文化柳公志奉之墓  개의 묘지에 닿았는데, ‘字는 나의 아버지벌인 항렬이다. 고추밭과 배추밭을 지나서 이내 농로를 만났고, ‘산내들가든앞에 도착하니 시각은 3 22분을 가리킨다.

 

▣大屯山(877.7m) 산행기

 

▪일시: '04년 10월 28일

▪날씨: 맑음, 20℃

▪오후 3시 26분 경 완주군 운주면 말로은 마을 입구 ‘삼밭골·폭포가든’ 출발

 

국기봉 산행을 마치고 마지막 산행지인 대둔산을 오르되, 번잡한 곳을 피하여 오르기 위하여 말로은 마을 입구 도로(17 국도)변에 차를 세웠다.  쪽으로 대둔산은 처음 올라보는 것이다.

 

(15:26) 삼밭골·폭포가든 왼쪽으로  시멘트길을 따라 버려진 농가  채가 있는 말로은 마을을 지나 굿당과 벽돌집 사이 소로로 들어섰다.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가보니 폐밭에서 길이 끊어졌다. 다시 갈림길에 이르러 건계쪽으로 나아가니 양봉 농가가 나오는데, 벌집 사이를 지나니 길이 끊어졌다.   없이 건계를 따라 오르니 이내 왼쪽(서북쪽)으로 풀섶 사이 소로가 보였다.  쪽으로 나아가니  흔적이 뚜렷하다.

 

(15:46) 길은 왼쪽(남쪽)으로 휘어 이내 폐묘가 있는 지능선에 닿았다. 서북쪽으로 오르니 흐릿한  흔적이 보였으나 낙엽이 두텁고 경사가 가파르다. 간간히 각진 바위 오르막이 나오는데, 경사가 더욱 가팔라져서 나무기둥과 바위턱을 잡고 올라야 했다.  걸음에  걸음은 미끄러질 정도나 흐릿한 족적은 계속 이어지고 방향은 서남쪽으로 휜다.

 

(16:15) 지능선이 갈리는 바위에서  흔적은 완전히 사라졌다. 오른쪽(서북쪽)으로 나아가 암릉을 비껴 나가니 암벽이 가로막는다. 왼쪽의 가파른 너덜 지대로 비껴서 막바지 산죽 지대를 뚫는데, 굵기도 하려니와 빼곡하여 20m 남짓한 거리에 힘을 엄청 쏟았다.

 

(16:27) 드디어 안심사(安心寺) 또는 천등산 북쪽 개울에서 올라오는 등산로를 만났다. 오른쪽(북동쪽)으로 나아가니 길은 암릉을 피하여  나있다.

 

(16:35) 왼쪽에서 금남정맥 길이 합류하고 오른쪽 지척의 ×829m봉에서 북동쪽으로 산죽 길이 이어진다. 왼쪽으로 수락계곡 쪽에서 올라오는 갈림길  개와 낙조대 갈림길이 보이는데, 등산로는 거의 낭떠러지 왼쪽으로 비껴 나있다.

 

(16:57) 개척탑이 있는 마천대에 서니 진악산, 가스에 흐릿한 운장산, 천등산, 월성봉, 낙조대, 등이 바라보인다. 늦은 오후인데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단풍에 물든 암릉을 감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단풍의 색깔은 한창때의 설악산이나 계룡산에 비하면 초라한데, 아직 물이   탓인지도 모르겠다.

 

(17:01) 마천대를 출발, 철제계단을 내려서니 왼쪽으로 낙조대 갈림길이 보이는데, 이정표에는 ‘마천대 0.15km, 낙조대 0.9km, 용문골 삼거리 450m’ 적혔다. 직진하여 주등산로(오른쪽 동심바위골) 삼거리를 지나 북동쪽으로 조금  나아갔다.

 

(17:04) ‘용문골 삼거리 300m, 마천대 300m, (→)×위험 진입금지이정표가 있는 안부에서 오른쪽(동남쪽) 골짜기로 내려서니 경사가 몹시 가파른 돌길이다. 지금까지   정도 이용하였는데, 갈수록  흔적이 뚜렷해지고 있다. 용문골·곤돌라 갈림 사거리를 지나니 가파른 흙길이 이어진다.

 

(17:19)  갈림길에서 오른쪽 건계로 내려섰다. 길은 골짜기 왼쪽 사면으로 잠시 이어지다가 건계를   건너니 무덤이 나오고 마지막으로 건계를 오른쪽으로 건너 ‘대둔산토종닭가든에 이른다.

 

(17:30) 도로(17 국도) 닿으니 남쪽  걸음 아래의 집단시설지구 입구에는 차량과 사람들이 넘쳐난다. 주말을 맞아 대둔산이 등산 인파로 몸살을 앓았음에도 산을 오르내릴  등산객  명도   것이다. 재실마을을 지나 말로은 마을 입구에 이르니 시각은 5 47분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