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음보살소리에 시름을 걷어낸 길고길었던 16시간의 여정


 

1)한계령-끝청(2시30분~ 6시 50분)

이번주 백두대간은 한계령 중청 대청봉에서 희운각산장을지나 공룡능선의 1275봉 나한봉 세존봉을 걷쳐 마등령에서 오세암 영시암을 지나 백담사까지의 진행이다.

가을의 문턱을 한참 넘어서인지 TV 신문 인터넷에 가을을 장식하는 여행지나 단풍절정인 명산들에 대한 소개가 즐비하다.


 

늘 주말을 산과함께하는 나로서는 이번주 산행에 대한 갈등도 생긴다.

무봉산우회의 숨은벽의 그림같은 단풍산행에도 참가하고 싶고

특히 큰키의 아직도 젊은 중년이미지의 회장님을 뵙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마지막 선택은 설악산이 되고 말았다.


 

죽령에서부터 시작된 종근이 아빠 김홍구씨와의 인연은 순전히 백두대간을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만들어 졌다.

나이도 나와 동갑이고 아들도 초교 5년째 동갑내기다.

안내 산악회 버스에서 만났지만 산에 대한 마음이 서로 통했던지 아이들 데리고 대간의 후미부대에서 삼겹살 구어서 산행중에 아이들 먹이면서 토닥거리고 힘들어할때는 달래서 백두대간 남한구간의 거의 종착역에 다달았다.


 

특히 설악의 공룡능선을 대간의 절정이자 꽃이며 최고의 능선종주라 할만하다.

산중미인 최고의 산답게 공룡능선은 어떤 명산의 능선을 능가하는 암릉미와 빼어난 단풍과 조화된 신비로운 형태의 기봉과 괴이한 형태의 바위가 만들어낸 봉우리는 신비감, 경이로움, 찬탄이 절로 나온다.

그리고 이봉우리 사이로 빠져나간 계곡의 소와 담들은 완벽한 조화로움과 신비함 그차체이다.


 

1000원 짜리 김밥 3줄 사과 2개 작은딸 머리통만한 큰배 1개 아미노업

이온음료 1리터 물 1.5리터 조금 넘게 9500원짜리 포도주 1개 캔맥주1개

윈드자켓2 겨울용상의2 슬리퍼(버스에서 신끼 위해준비)렌턴2개를 배낭에 밀어넣고 송내역에서 9시 10분에 지하철을 탄다.

10시까지 종로 5가 스위스레저앞 도착예정인데 시간의 좀모자란 듯 10시 5분에 내려서 10시 10분에 버스앞으로 가서 조금늦어서 기다리는 일행에 미안한마음인데 총무와 이익수대장이 웃는낮으로 반겨주는 바람에 그 느낌이 누그러 진다.


 

그러나 시간은 지켜야지 예의다. 조금의 반성의 시간을 갖는다.

간단한 산행에 대한 설명이 있다.


 

문제는 많은 인원이 단풍산행에 참가하여 제시간 도착이 어려우니 요령있게 지체를 피하기 위한 추월이 어쩔수 없다는 얘기다.

오랜 산행리더로서의 노련함과 중년미가 어우러져 일장연설을 외치는데

조리가 있고 앞뒤가 꽉차있다.

간결하면서도 무게가 느껴진다. 산행리더는 돌발상황에서 생길수 있는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회원들을 장악할수 있는 카리스마가 있어야한다.


 

클린턴 휴게소에서 한번휴식후 내설악광장에서 식사를 위한 30분의 휴식이 주어진다. 재우만 우동을 먹으라고 내보내고 잠을 청해보지만 여전히 오리무중, 오늘도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내고 산행을 할 수밖에 없다.


 

2시20분 한계령 휴게소에 도착하여 버스에서 내리는데 한기가 전신을 덮쳐온다. 배낭을 메고 몇걸음을 옮기는데 아랫배가 갑자기 요동을 친다.

빨리 화장실로 이동 다행히 빈자리가 있어서 천만다행이다. 금요일날 맥주가

탈을 일으킨것일까?


 

좌변기에 앉자마자 종근아빠의 다급한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덩치가 큰데다 목소리도 하늘을 찌르는듯한 사람이다.

뭐하고 있어 갈길이 얼마나 먼데 빨리 가야지 “빨리나와” 소리가 있고나서는 조용하다.


 

화장실을 나와서 매표소 입구에서 60명 가까운 인원이 숫자를 세면서 입장하고 있고 바로 동참한다.

아마도 우리 일행의 입장료계산때문이리라.. 종근이 재우 종근아빠는 보이지 않는다. 어둠속에서 찾을수도 없고 계속 인파에 떠밀려서 올라가야하니까

가다보면 만나겠지 가볍게 생각하며 본격적인 첫발을 내딪는다.

그러나 그건 엄청난 착각 종근아빠와 나의 생각의 차이는 우리의 만남을

무려 14시간 뒤로 미루어야 했다.


 

야간산행 초반은 멍한 머리와 무거운 발걸음 시차가 잘극복되지 못해서 인지 항상 힘이든다. 더구나 오늘은 온몸에 한기가 가득밀려온다.


 

이번가을은 설악을 3번째 찾는다 4주중 3주를 연속무박으로 설악산 종주길에 들어섯다.

9월 24-25일은 오색에서 12선녀탕까지 서북능종주 지난주는 한계령 삼거리에서 귀청에 잠시 들렀다가 단풍비경지대인 곡백운동 계곡에 백운동 폭포를 보고 수렴동 계곡 백담사 계곡의 용대리까지 걸었다

오늘은 드디어 설악의 심장부인 공룡능선이고 10월말은 미시령에서 황철봉

저항령 마등령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35구간에 접어들게 될것이다.


 

마른나무가지와 바윗길 사이를 수북히 매운 나뭇잎을 밞으며 걷는다.

우측에 큰바위인데 조금근사한 모습같은데 전체를 볼 수 없고 후레쉬불빛을 스친다. 50분쯤 걸으니 한계령 1km대청봉 7.6km 표지만을 만난다.


 

단풍시즌에 3번째 한계령에서 산행을 하다보니 지체구간이 어디인지 대충 알게된다. 오늘도 여지없이 그곳에서  기다리게 된다.

서있는것은 좋은데 여름옷위에 겨울 티셔츠를 입어도 가볍게 스며나온 땀이 식으면서 옴몸을 싸늘하게 식힌다.

윈드자켓을 입어봐야 걸으면 더워서 또 벗어야 하니 길게 줄지어서 걷다가 배낭풀고 벗어서 넣고 또 좁은길에서 한곳으로 비켜서야하고 여러가지 귀찮은게 많아서 추워도 그냥 참기로 한다.

그런데 몸이 더워졌다 추워졌다를 반복하면서 갈증이나서 물을 입에대도 냉기가 가슴속의 심장을 얼어붙게 하는것 같아 먹지않게 된다.

이것이 결국은 공룡능선에서 11시간여 뒤에 탈수증상으로 탈진과 어지러움을 일으키고 말았다.


 

30분을 더 걸으니 내리막 5-6분 대기후 다시 진행한다.

바윗길에다 산행경험이 적은분들은 조심조심 내려가야하니 지체구간이 될 수 밖에 없다.

다시 10여분 오르막을 오른다. 목도 마르고 배도 고프다 얼마걷지도 않았는데? 별수없이 오른쪽 작은 바위옆에 비켜서서 사과 하나를 깍는데 랜턴불빛에 사과깍는 방향을 맞추어야 하니 쉽지않다. 차갑게 시아시된 사과를 와구작 와구작 순신간에 먹고나니 배고픔도 갈증도 사라진다. 3끼 굶으면 뭐한다는말이 실감난다.


 

다시 10여분을 진행하니 30m도 안되는 내리막이 이어지고 그위로 랜턴불빛이 어두움 속에서도 등로를 누구나 알아볼수 있게 이어져 있다.

급경사 오르막을 가득채운 랜턴눈빛으로 한계령 삼거리가 다가왔음을 알수있다. 섰다 갔다 급경사 오르막을 30분 올라간다.

겨울에 대비해서일까 사고에 대비해서일까 쇠철째들이 좌우의 바위사이에 꽃혀있다. 어쨌든 걸을때는 도움이되는 구조물이다.

삼거리에 도착한다. 재우야.. 재우야..

몇번을 외쳐본다. 대답이 없다.

어쩌다가 저사람은 자기 아들같은 이름을 이 한밤중에 부르고 있을까?

등산객들이 딱하게 느낄만 하지 않을까?

야밤에 사람부르는 소리는 너무 크게 들리는 법인데 대답이 없는걸 보니 지금 이곳에 없는것이다.

재우와 내가 나누어 먹어야할 김밥인데 생각하면서 5개를 꺼내서 먹는다.


 

5분간 휴식후 다시 출발 시계는 4시 45분을 가리키고 있다.

생각보다는 빨리 진행되고 있어서 다행이다. 앞으로도 이정도면 2시간 30분에서 3시간 이면 중청에 도착한다고 예상했는데 이것도 나만의 생각이었다.

지체는 오를수록 잦아졌고 기다리는 시간도 점점 길어지는 것이 날이 밝을때 까지 계속되었다. 아마도 산행시간이 오래될수록 체력이 떨어지고 삼거리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일부 바윗길에 이슬이 맺혀있는데 찬공기에 얼어붙어서 상당히 미끄럽다


 

능선에 접어드니 바람도 강하고 차가워서 자켓을 입다가 문득 하늘을 본다.

하늘에 쏘아올린 불꽃놀이의 불빛들이 하늘에서 은빛옷을 입고 수를 놓는듯하다.

크고 작은 은별들이 너무 또렷이 초롱초롱 빛을 발산한다.

그중 한놈이 길게 하얀그림자를 새기면서 추락한다.

지체 시간이 길게되니깐 여유있게 하늘의 별잔치를 감상하게 되는구나. 언제 우리가 살면서 별을 보고 별을 헤면서 별의 존재를 생각할수 있겠는가

늘 우리의 주위에서 삶을 이어주는 존재에 대한(공기, 하늘, 땅등등)

생각에 시간이 주어진다. 야간산행하다보면 “인간은 생각의 나무다” 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갑자기 “ 앗 ” 하는 소리가 뚜벅뚜벅 이어지는 발자국 소리의 무덤덤함을 일시에 무너뜨리고 어둠속에서 비수처럼 꽃힌다.

이어지는 다급한 목소리 “괜찮으세요” 이어서 일그러진 음성이 나직히 들린다. 으.....신음소리 속에서도 나지막히 걷는것은 괜찮은것 같아요 휴!..

일행들의 목소리가 대열의 깊은 긴장감을 안도의 한숨으로 바꾼다.

걸을수 있다는것 지금 이순간 우리가 가져야할 최고의 최후의 선이다.

미끄러운 바위에 털퍼덕 주저앉은것이다.


 

다시 긴지체가 이어진다. 뒤에서 사투리 섞인 목소리가 들린다

저기 밧줄잡고 올라가는데가 있는데 한걸음만 줄잡고 땡기면 되는데 그걸 못해서 이렇게 밀리는기다이~

잠시후 그사람은 일행1인과 함께 우측으로 우회해서 나무와 바윗사이를 요리조리 빠져서 정체를 벗어나 버린다.


 

기다리는것도 잦으니 아무렇지도 않다. 앞에 월산악회 표시기가 배낭에 걸린 아주머니에게 물어본다. 어디로 내려가요?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찬공기를 가른다 “잘 몰라요”

아마도 이런지체를 예상해서인지 산악회가 내려가는 최종지를 대청이나 소청부근에서 시간을 감안하여 결정하는것이라 생각된다.

다시 또다른 젊은 아가씨들에게 물어본다.

어디서 왔어요. 충주에서 단체버스로 25000냥씩내고 40명이 왔단다

희운각을 지나면서는 계속 경상도 산꾼들만 만난다.

전국각지에서 설악산 단풍여행을 온것이다.


 

잠시후 대청 3.6km 한계령 5km 이정표를 본다.

6시정도가 됐다. 아직도 랜턴이 없이는 걸을수 없다. 작은 오르막 내리막이 이어진다. 이따금씩 난이도가 요구되는 바위구간도 2-3군데 있다. 이전보다는 쉽게 걷고 정체도 풀리니 진행이 빨라진다

내좌석 뒤에서 소주1병이상을 차에서 마신 양정고 선생님이 내앞에 가고 있다.그런데 소주탓인지 잠깐 길을 잘못들어 좌측으로 갔다가 애이씨...

하면서 되돌아 온다. 그냥 직진하면 안되는데 선생님을 따라갔던 몇 명의 일행이 졸지에 나의 후미부대가 된것이다.


 

서서히 땅과 바위의 윤곽이 드러난다. 밤에는 땅만보고 걸으니 새벽도 땅에서 시작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능선의 오른쪽에서 붉은 기운이 서서히 층층의 구름사이를 뚫고 하늘에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본격적으로 설악이 자신의 자태를 드러낼즈음 다시한번 안내판을 만난다. 대청 2.3km표시가다. 끝청이 흩어지는 구름사이에서 나타났다 사라진다.


 

발걸음을 빨리 옮긴다. 끝청 바로밑 급경사 오르막직전에 이대장을 만난다.

아이들은 먼저올라가고 종근이아빠는 뒤에서 빵을 먹는 것 같다고한다.

참으로 아리송한 얘기다. 자세히 물어볼까 하다가 대청 봉정암 구곡담계곡팀을 데리고 가는데 이리저리 신경도 많이 쓰일텐데 하는 생각에 더이상 묻지 않고 끝청에 오른다.

끝청에서 일출을 보자며 주위산객들의 발길이 빨라진다.

내생각에 일출은 없다. 구름이 저리 많은데! 보통걸음으로 끝청에 오르니 6시 50분이다.


 

마찬가지로 인산인해다. 도시락을 내놓든지 술을 꺼내놓고 마시는 사람 환호를 연발하는사람 삼삼오오로 모여서 앉을만한 자리는 다차지하고있다.

여기서 재우일행이 기다리지 않을까 생각되어 다시 재우야 부를까하다 입을닫고 만다. 날이 밝았고 그다지 넓지 않기 때문에 내가 올라오면 재우가 먼저 나를 알아볼 가능성이 많다.

일단 다시 김밥5개를 배에넣고 왼쪽으로 몇걸음 옮기니 내설악과 외설악이 모두 조망되는 멋진 전망대에 선다.


 

절경에 취하여 “아 저기가 용아름이구나”나도 모르게 소리가 커진다.

이내 내주위로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모여 들더니 아저씨 저기는 어디에요

또 멀리있는 저파란지붕은 뭐예요? 물으면서도 저기가 울산바위인가 보다 힘을주어 말한다. 다른 지명들은 몰라도 울산바위가 유명하기는 한가보다.


 

설악을 처음 오르신다는 일행들에게 신이나서 봉정암과 그위의 소청산장 그

좌측으로 공룡능성 용아능등을 차례로 소개하고 덧붙여서 서북능선의 귀청과 휴식연제인 칠성봉 화체봉이 대청봉을 사이에 두고 멋진 조망대라는 설명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떠들어댄다.

남쪽으로는 구름에 가렸다가 모습을 들어낸 남설악점봉산을 설명하고 그좌측의 가리산은 거의 구름에 가려 보일 듯 말듯하다.

저멀리 동해바다가 구름과 뒤엉켜져 있고 유명한 대명콘도는 뚜렷히 성냥갑크기만 하다 구뒤로 속초앞바다의 하일락 비치콘도가 가물가물하다.

10여분이상 설악의 절경을 입으로 토해내고 또 듣고 하다보니 금방시간이 간다. 아저씨 산악가이드해도 되겠다. 이아저씨 따라가자  농이 이어진다.

20여분의 잡담과 휴식을 마치고 다시 중청으로 향한다.


 

대청에서 내려오는 인간띠들이 한줄이 아니고 무더기를 지어서 끝없이 이어진다. 중청과 소청으로 향하는 갈림길에 선다.

중청에는 더많은 사람들로 우글거린다. 저 복잡한 곳에서 일행을 찾는니 차라리 소청마루금이나 최후에는 희운각에서 만나겠지 좌측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8시25분 소청에 도착해서 주위를 다시 두리번 거린다.

역시없다. 오늘은 하루종일 재우 일행을 찾으려고 두리번거린다.

오늘같은 날이 또 있을까? 별일도 다있다.

아까 끝청에서 산객들과 20분 노닥거리는 사이에 나를 못보고 지나쳤는지 먼저갔는지 중청에서 뭘먹는지 알수가 없다.

핸드폰을 켜고 전화를 한다. 신호는 가는데 받지 않는다.

또 김밥을 꺼내 먹는다. 이제는 아침시간이 되서 그런지 식욕이 더 땡긴다.

순식간에 10여개를 먹어치운다. 아미노업도 벌컥벌컥 김밥이 3/2는 없어져 버렸다.


 

8시 40분 희운각 내리막길로 접어든다.

그런데 이제는 정체가 아니고 지체다. 이대로가면 1시간도 더 걸리겠다

갈길이 먼데 어쩌나?

되는대로 새치기도 하고 길이 없는곳도 나같이 내려가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발자국을 남겨놓고 또다른 길이 만들어진다.

어떤 사람이 나처럼 내려가는 사람들 뒤에서 저러면 산이 망가진다고 한마디 한다. 가벼운 충고를 뒤로하고 하던방식대로 계속내려간다.


 

희운각 500m 남긴지점은 길이좁고 바위가 많아 더욱 지체된다.

이쪽저쪽 계속 빠지고 끼어드니 주위의 눈길이 심상치 않다.

속도는 다른사람보다 2배는 빨라졌는데 오늘산행에 최대의 오점으로 기록될 작은 사고가 발생한다. 마지막 희운각 내리막 계단이 보인다.


 

아! 이제 다왔구나 하는데 줄서서 있는게 장난이 아니다.

오른쪽 숲길로 우회하여 바위도 잡고 되는데로 가다가 적당히 끼어들 생각이다. 캔맥주를 꺼내 먹는다. 그런데 막상 계단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새치기 하자니 줄도 쳐져있고 지금 여기서 끼어든다면 수많은 산객들의 비난과 욕설이 빗발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할수없이 계단 오른쪽 나뭇잎이 무성하고 밟으면 구르는 낙석과 나무가 뒤엉켜있는곳으로 내려간다.


 

순간 작은돌이 발에 밟힌다.

오른쪽 발이 쭉밀리면서 엉덩방아 찧기 직전에 왼발에 힘을 주고 중심을 잡으며 넘어지는 것을 간신히 모면했다.

순간 계단쪽에서 줄지어 내려가는 사람들이 “ 저런 조심해야지 다칠려고”

왜 길이 아닌곳으로 가서 위험을 자초하지...

한사람의 입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이사람 저사람이 이구동성으로 한마디씩 한다.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라는 호언도 있지만 비난섞인 소리가 대부분이다. 남들 다 기다렸다가 내려가는데 왜 먼저 갈려고 새치기하나 힘이 남아도나봐 사서 고생도 팔자지...

다들어서 감수할수 있는데 결정적인 한마디가 속을 뒤집는다. 한국놈들은 청개구리 근성이 있어서 시키는 짓은 안하고 항상 반대로만 멋대로해.. 지껄인다.

말이면 다 말인줄 아나 입조심해 소리가 나오려가다 꾹 목속으로 밀어넣는다. 다 내가 초래한 일인것이다. 자업자득일수 밖에!


 

그런데 정말큰일이 일어날뻔했다. 급경사내리막에서 보면 바로 대피소밑에 물이 흐르는 개울이 있다. 보통때는 사람이 없는데 지금은 개울가 바위위에서 식수를 물통에 채우기도 하고 김밥도 먹고 간단히 손도 씻고 사람들도 우글우글하다.


 

조금내려가다가 큼지막한 돌이 밟힌다. 발을떼려는데 꿈틀하면서 돌이 푸성푸성한 흙에서 쑥빠져나온다. 그대로 놔두면 영락없는 낙석이 되어서 30-40m를 멋대로 굴러가다가 어떻게 될지 끔찍한 일이다. 만에 하나 사람들이 다치지 않는다 해도 이런일을 초래한 나는 도대체 어찌될것인가 뉴스에 나올사건이 될뻔했다.


 

다시 오른발에 꾹힘을 주어 누른다. 순간 흔들하던 돌맹이가 앞돌맹이에 걸리면서 움직임을 멈춘다. 순간 “휴” 소리가 절로 나오면서 뒷통수가 띵하다.

내려오면서 낙석에 대한 위험성에 긴장했고 개울가에 모여있는 인파도 보아서 주의를 했는데도 흙과 나뭇잎에 가려서 땅에 깊이 뿌리내리지않은 돌에 힘을 너무준것이다.


 

짱돌하나가 몇사람의 인생을 뒤바꿀뻔했다.

나의 산행인생도 그대로 종칠뻔햇다. 다시 계단으로 가고 싶어도 갈수도 없다. 어쩔수 없이 들어선길 한발한발 돌조심 낙석조심 다내려와서 이마에 식은땀을 쓰러내린다.


 

9시 30분 희운각에 내려선다. 주위를 살피니 줄이 크게 이열로 서있다. 하나는 컵라면줄 하나는 화장실줄이다.

화장실쪽은 여성들이80%를 넘는다. 어쩔수 없는 자연현상이다.

남자들은 대충 할수있는데...! 역시 생태계가 망가지는 일일것이다.

화장실 옆쪽으로 줄서서 있는 여성산객들을 정면으로 볼수있는곳에 식탁이 아무도 없이 비어있다. 족히 6-7명은 앉을 수 있는 곳인데 얼른 앉는다.

이쯤이면 재우를 만나야하는데 또없다. 벌써 갔다는말인가 아니면 소청에서 봉정암으로 내려갔나? 핸드폰을 한다.

역시 신호는 가는데 받지 않는다. 잠시후 종근아빠에게서 핸드폰이 온다.

재빨리 받는데 금방 끊어지고 만다.


 

아미노업만 몇모금 마시고 사과 1개 먹고 김밥만 줄곧축내왔다. 1.5리터이상의 물이 그대로 남아있다.

포도주도 그대로 있고 엄청큰 배는 배낭의 무게만 올려놓고 여기까지 왔다.

혹시 만날수있지않을까 생각에 포도주를 축내면서 기다리고 산행기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대강메모하고 “펑” 포도주 뚜껑을 여는순간 앞에 앉아도 되겠십니꺼? 굵직한 경상도 사투리이다.

물론입니다. 앉으시죠 그냥 말없이 앉아도 될일인데 굳이 동의를 구하는 모습에 그가 살아온 인생의 방식을 조금이나마 알수있다.

여자분1인과 같이 앉는다.

그러면서 포도주를 보고 신기한듯“설악산 희운각과 포도주라” 속삭이듯 혼잣말이다. 이분들은 컵라면 2개를 사서 라면이 끓을때까지 기다린다. 무겁고 과묵한 인상이다.


 

마주보고 앉았는데 나는 포도주와 큰배와 사과가 들은 도시락통과 산악용소형컵 그리고 앞에는 컵라면 2개가 들어서서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쪼르르 한잔을 따라놓고 잠시 침묵.. 침묵은 이내깨지고 덩치가 정말 좋은 사내가 “옆에좀 앉죠” 하며 무겁게 내려앉는다.


 

목은 타는데 정신은 한없이 맑아져있다. 자작하여 따르고 쭉 쭉 5-6잔 하니 절반이 빈다. 20-30분이 순식간에 간다.약간의 취기가 오르고 앞의 일행은 컵라면을 다 먹는다.

술을 한잔권할까 하다가 에이 한명도 아니고 일행도 있는데 여기까지 힘들게 가지고 온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먼저이면서도 또다른 구실을 내세우며 내가 아닌 또다른 나와 작은갈등 끝에 혼자마셔버리기로 한다.


 

나는 사과를 깍고 그분들은 오이를 미리 깍아서 도시락에 넣어 가져온 것 같다. 꺼내자 마자 먼저 나에게 한조각을 권한다.

아차!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차없이 뚫어버린다.

나의 작은 마음에 깊은 충고를 한것이리라 어설프게 사양하고 거의 깍은 사과를 한조각 권한다. 감사합니다 하고 얼른 받아서 가벼운 목례와 함께 맛있게 드신다.


 

오늘은 왜이렇게 특별한 일이 많은가 사람이 많아서 인가?

어설픈 분위기를 털어내려고 어디로가세요 묻는다.

공룡능선으로 가서 오세암인가 설악동이라고 했나 지금글을 쓰면서 생각해도 기억이 잘나지 않는다.

자리를 일어서면서 스님처럼 합장을 하면서 “선생님 옷깃만 스쳐도 인연인데 산에서 오랜시간 마주보고 있다니 큰 연입니다”.뜻밖의 인사에 흠칫놀라 앉은 상태로 가벼운 목례를 대신하면서 정수리가 띵하는 충격을 받았다.


 

포도주 한잔 권하지 못하는 소인배의 마음을 스스로 질타하면서 반이상 비워버린 포도주를 혼자 바라본다. 또 다른 일행이 앉았지만 그들은 자기들끼리의 대화에 열중한다.

남덕유산에서도 포도주 1병을 혼자 비웠는데 (그때는 재우가 따라줬다)오늘도 포도주를  혼자 비워야 할 것 같다.

올가을은 포도주와 산행에 얽힌 사연이 많은가보다 40이 넘으니 소주는 목넘김이 힘들어 과일주를 자주찾게된다.

나머지 술을 비운다. 쓰레기 치우는 사람이 사과 깍은 것과 빈병을 꼭 수거하셔셔 가져가라고 부탁한다.

10시30분 일행과의 만남보다 더욱큰 사연과 가르침을 가슴속에 담고 공룡으로 향한다.


 

2)공룡능선 - 오세암 (10시 30분-2시 30분)

공룡길은 오르막 내리막의 경사가 매우심하고 낙석과 암릉구간이 줄곧이어지는 힘든구간이다. 좌측으로 가야동계곡의 내리막을 확인한다.


 

무너미를 지나 능선으로 접어든다. 간간히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이고 갑자기 한가로워진 기분이다. 공룡의 암능은 직전넘어서 갈수가 없고 암릉구간의 좌측으로 샛길이 능선길이 되어서 진행된다.

따라서 능선길 곳곳에서 조망을 할 수가 없고 드문드문 경치를 볼려면 암릉 구간으로 올라야 한다.


 

이것이 설악서북능과의 차이다. 서북능은 능선의 정중앙을 관통하기 때문에 걷는도중에 좌우의 조망이 계속 펼쳐진다.


 

바윗길로 올라서서 진행한다. 혼자이니까 가능하다. 아기자기하게 오르막 내리막 바위를 잡고 몸을 숙이고 허리를 굽히고 다양하게 통과한다.

우측으로 펼쳐지는 조망은 끝청의 풍광이 훨씬 가깝게 잡힌다. 주로 동북쪽의 암릉과 봉우리 일것이다.

장쾌한 조망과 아기자기한 산행이 이어진다. 그런데 이러다 보니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암릉길을 내려와서 기존의 길로 들어선다.


 

힘든오르막을 10분가까이 오르니 신선대다 희운각 1.1km 마등령 4.1km 표지기가 들어온다 시계를 보니 11시가 넘어간다 쉬지 않고 그냥진행한다.


 

1275봉을 가기전 이번에는 대구에서 온 30대의 젊은 일행들을 만난다.

걸으면서 대화한다 대구에서 친구들과 같이 차를 몰고와서 4시부터 설악동에서 시작하여 희운각 마등령 공룡능선 설악골로 간다고 하는데 이능선길이 만만치 않다고 푸념이다.


 

이곳의 산행은 마능령을 거쳐 희운각으로 가는데 힘이 덜 들고 천불동계곡의 멋진 풍광을 보기도 좋다고 말한다.

마등령의 높이가 훨씬 높으니 틀린 예기는 아니다. 아 그렇겠군요하면서 동의한다


 

그러나 어디에서 꼭 어디로 가는 것이 정답은 아니다 반대로 갈수도 있고 역으로 진행할수도 있는것이다. 그렇다고 산이 거꾸로 보이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12시 30분 안부에 도착하여 조망을 뒤로하고 지나가는 산객에 기념촬영 부탁하여 오늘 나의 인물사진을 최초로 남긴다.


 

다시 보조자일을 잡고 내려가고 낙석지점을 통과한다.

봉우리의 우측으로 우회한 능선길을 힘들게 오른다.


 

15분 정도를 오르는데 “수고 하십니다” 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휘운각에서 인생의 큰가르침을 주신 분이 여자분에게 최선생님 이분이 산에서 포도주를 드시는 멋진분이다. 소개한다.

같이 수고 하십니다. 인사를 나누지만 쑥스럽다.

“힘들어도 좋은 산행되십시오” 마지막인사를 끝으로 그분과의 인연은 가슴속에 깊이 묻는다


 

1275봉 직전 급경사를 손과팔의 구분이 없이 오른다. 순간 머리가 “띵” 현기증이 밀려온다.

그동안 많은 산행으로 체력이 단련됐기 망정이지 이 급경사에서 추락하면 어떻게 될지 뻔한 일이다.


 

작년 겨울에 공룡능선을 적설기에 등반하려고 했다가 기회가 안되어 포기했었는데 오늘 다시 그 판단이 옳았는지 생각하게된다.


 

1275봉을 올라 비로소 휴식을 취한다. 물한잔을 먹고 편평한 암반에서 다리를 쭉 펴고 쉬니 조금은 살아난다 오른쪽은 암반으로 이루어진 봉우리인데 체력과 리지 등반능력이 좋으면 이 봉우리를 오르면 될것같다.


 

여기서 또다시 경북에서 온 30대가 조금 넘는듯한 젊은이와 만나서 산얘기를 나눈다.


 

오색에서 12선녀탕을 무박으로 15시간에 해내고 용와장성도 오른 상당한 능력의 하이커다


 

특히 용와의 장쾌한 암릉미와 조망의 탁월함을 극찬한다.

더불어 용와의 위험성의 대한(널뛰기구간) 경고도 덧붙인다.

이구간에서 추락하면 높이를 알수 없는 절벽이니 그대로 자연으로 사라지는것이다.


 

용와를 오르지 않고 설악을 안다고 할 수 없다. 용와가 인간의 심장이라면 공룡은 등뼈이다. 심장을 올라야 주위의 중요한 구조물이 연결되고 동맥이 꽤 뚫는곳이니 당연하다.

내년에는 반드시 용와를 오르리라 다짐한다.


 

20분 가까운 휴식후 출발한다.

얼마를 걸은후 몇명이 내 가슴속에 붙은 안내 산악회 표시기를 보고는 “어 늘보는 마등령에 벌써 도착해서 기다리는데” 한다.

내가 꼴찌다 당연하다.

희운각에서 지금까지 일행을 아무도 못 만났으니 말이다.


 

반가와서 아이들 둘을 보지 못했느냐고 묻는데 고개만 갸웃한다.

봤다는것인지 못봤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애매한 제스쳐다.


 

큰바위로 층층이 된 오르막을 오른다. 1시 45분 세존봉에 도착한다.

역시 훌륭한 조망이다 이른 동틀때부터 절경이 계속 이어지고 이곳에서 최고를 시작하고 마등령에서 완벽한 조망의 완성이 이어진다.


 

지난 겨울에 설악을 찾았을때 25시 산악회 대장은 매주 설악산만 오니까

마등령에 소주를 숨겨두었다가 계속 올때마다 마셔도 너무 좋아서 취하지 않는다는 산꾼들이 많다고 한다.

다시 같은곳을 매주 찾아도 전혀 싫증이 나지 않을 정도로 겨울에는 멋진곳이다

물론 다른 계절에도 훌륭하기는 마찬가지다.


 

대간능선의 마지막인 마등령 직전 오르막 내리막을 이어가며 생각에 잠긴다

왜 오늘 탈진 증세가 나타났는다.

금요일 아는 치과후배와 오십세주에 2차로 맥주를 2000cc정도 마셨는데 그다음날 식욕이 없어서 점심은 만둣국 저녁은 냉면으로 떼우고 장거리 산행에 나선 것이 문제인 것 같다.

13시간이사의 산행이 예상되는데 충분한 탄수화물과 물을 섭취했어야했다.


 

마등령 직전에서 남자1인 여자 2-3인 정도의 타산악회 일행을 만난다.

꽤 힘이드는지 언제 도착하지 서로 말을주고 받는다. 남자분이 기다리겠지 우리만 놔두고 먼저가겠어.. 한다.

역시 단체로 설악을 찾은팀이리라이분들만의 문제가 아니고 바로 나에게

닥친 문제가 아닌가?


 

3)마등령 ~ 백담사 (2시 30분 ~ 6시 20분)

2시20분 드디어 마등령이다.

이제는 다리에 힘이없다 주저 앉자마자 5-6개의 김밥을 정신없이 먹고 물을 들이킨다. 순식간에 전신으로 흡수되는 느낌이다.


 

역시 찬물에 찬김밥이다. 새벽부터 지금가지 계속 찬것만 몸속으로 밀어넣고 있다. 긴급상황에 대비해 김밥 5개 물 0.2리터만 남기고 무거운 몸을 일으킨다. 경치는 구경할 힘도없고 움직이는것도 귀찮다.


 

오세암 1.4km표지기다. 30분에 내려가려고 계획한다.

경사가 급하다 다리에 힘이 없는데 급경사는 상당한 무담이다. 힘겹게 천천히 내려간다. 10여분쯤 가니 남자2인을 만난다. 마등령에서 내려가면 어둡기전에 하산할수 있냐고 묻는다. 20분 올라서 마등령에서 비선대까지 보통걸음으로 걸으면 2시간이면 가능하다고 대답하니 안도하는 모습이다.

백담사 -오세암 - 마등령 - 설악동 훌륭한 하루의 산행 코스다.


 

이후로는 아무도 만나지 못하고 계속 내리막이다.


 

15분쯤 내려갔을까 급경사가 완만한 길로 바뀌면서 목탁소리와 염불소리가 아스라이 들려온다. 연불소리가 관세음보살이라는 것이 뚜렷해지고 소리가 커지면서 또 심한 내리막이다.


 

좌측으로 봉정암 우측으로 백담사 표시기가 눈에들어온다.

작년폭설때 찾은곳을 이번엔 가을에 다시 찾는다. 오세암 암자지만 정말멋진곳이다. 비로소 조금색이바랜 단풍을 만나다. 단풍나무와 이름을 알 수 없는 암봉과 산능선 그리고 여러 가지종류의 나무들이 멋진 조화를 이룬곳이다.


 

연이어 “관세음보살”소리가 너무나 조용한 암자에서 계속 울려퍼진다.

여승의 목소리인듯하다 암자의 왼편으로 2군데 수도에서 물을 공급받을수도 있고 비를 피할수도 있는 마굿간보다는 좋은듯한 쉼터가 마련돼 있다.

아마도 등산객들을 위한 배려도 있는 것 같다. 그곳에서 한무리들이 뭘 우물우물 먹고 있어서 보니 한무더기의 김밥주먹밥이 열댓개 남아있다.

참기름 섞은 밥을 김밥으로 말은 비상식이다 .

아마도 이일행을 이끄는 산악리더가 자기 동료들을 위해서 남기고 간것이라 생각된다. 


 

아직도 재우와의 만남을 생각하며 그냥 1개를 집는다.

우리일행것은 아니지만 미안한 마음을 버리고 한입 베어서 먹고 다시 은박지에 말아서 배낭옆구리에 구겨넣는다. 아무도 탓하는이는 없다.


 

암자우측은 정자로 되어있다. 정자에 푹 주저앉아 암자를 보고 기념촬영을한다. 일어서기 귀찮아서 찍어서인지 암자가 비스듬하게 찍혀버렸다.


 

관세음보살소리는 계속 이어진다. 청하한 듯 낭랑한 목소리는 산사를 둘러싼 자연과 기막힌 조화를 연출하며 만추의 대미를 장식하는듯하다.


 

낮에 만났던 50대분이 다시 눈앞에 아른거린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끝없이 이어진다. 염불소리에 취해 나도모르게 따라한다. 저염불은 누구를 위한것인가?


 

똑같은 반복속에서도 염불의 리듬은 일정하게 규칙을 이루는 듯 하다가도 또다른 불규칙을 만들어낸다.

무와 유 허공에 올렸다가 사라지고 다시반복되는 파공음은 이세상의 모든 이치를 담아내고 있는듯하다.


 

인생은 늘 반복이다. 해가뜨면 지고 산을오르면 내리고 어려움이 있으면 성취의 열매도 있다. 새삼 이 깊은 산중에서 맞는 관세음보살소리는 오늘의 산행의 최고의 화룡정점이라 할것이다.


 

깊음과 엶음 또한 낮은듯하면서도 낮지않은 무한의 세계에 빠져 잠시 몸을 낮추고 있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언제 다시 이곳을 찾을것인가?


 

아쉬움을 접고 영시암 2.5km표지판을 지나친다.

낮은 오르막 내리막 2군데를 지난다. 별것도 아닌곳인데 힘이든다.

발걸음이 만근은 안되도 천근은 되는 것 같다.


 

이따금씩 빛이 바랜 단풍잎 보기를 위안삼아 심호흡을 하면서 마지막 하산길을 서두른다.

앞쪽으로 작은 안부인듯한데 아직은 보이지 않는곳에서 소년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린다.


 

순식간에 내달리다. 재우다.. 종근이는 드러누워있고 아빠가 발목을 주무르고 있다. 종근아빠는 왜 이제야 보이느냐는 표정이다.


 

걱정이 되어 물어보니 다리가 풀려 내려오다 돌을 밟고 넘어졌단다. 14시간이 다되가는 시점에 다시 만났는데 반가운 마음보다 걱정이 앞선다.

아직도 5km는 더가야되는데 다행히 절룩이며 일어나서 걷는다.


 

일단 큰문제가 해결되니 나와 종근아빠는 서로 어떻게 된거냐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성급한 홍구씨가 상황을 설명한다.

코스가 너무길어서 처음부터 이리저리 추월해서 우리 공룡팀중에서 최고 선두에 서서 8시에 희운각에서 도착했단다.


 

일단 여기까지 빨리오고 공룡능선에서 천천히 진행하면서 비경을 감상한다는 산행구상 이었던 것이다.


 

나는 주력이 있으니깐 금방 따라 붙을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전혀 틀린말이 아니다. 다만 빨리갈테니 쫒아 오라는 말한마디만 했으면 이렇게 오랜시간 헤어져 있지는 않았을것이다.


 

어쨌든 공룡을 무사히 완주한 훌륭한 소년 대간종주자들에게 20km이상을

가져온 큰배를 깍아서 선물한다.


 

재우는 왼쪽입술과 볼사이가 시커멓고 입주위도 시커멓다.

왜냐고 물어보니 모른다고 한다. 포도를 먹어서 일까? 혼자생각한다.

나중에 알고보니 급격한 피로로 생긴 HERPES VIRUS감염 증세다.


 

대간길중 가장 힘들고 험한길을 걸어온 두소년에게 우리아빠들의 칭찬은 입이 마르도록 계속된다. “대단하다. 장하다” 오세암에서 간직해온 은박지로싼

김밥을 재우에게 먹을래 하니까 “뭐야” 하면서 빼아듯이 얼른 집어들고 한입에 꿀꺽한다.

종근에게는 남은 김밥을 먹을래 하니까 많이 먹었어요 한다.

아빠가 과자와 마지막남은 빵을 주어서 먹었다고 하는데 너무 힘들어서 식욕이 없는듯하다.


 

어쨌든 반가운 일행과의 만남이 되자 발걸음이 많이 가벼워졌다.

잠시후 수렴동대피소에서 이어지는 등산로가 보이는 조금한 다리를 만난다.

본격적인 하산길에 접어드니 지난주만은 못하지만 붉은 단풍들이 드문드문 계곡과 조화를 이뤄내며 빛을 발하고있다.

단풍에 취해서 잠시 서로를 위하여 기념 촬영


 

잠시후 백담사 3.5km표지기 앞에 선다.

아직도 많은거리다 피곤함을 감안하면 아이들이라 짜증도 낼 만한테 아무말이 없다 어지간이 내공이 쌓인것이다.


 

평탄한 직선길이지만 종근아빠만 힘이남아있는 듯 잘걷고 나머지는 속도를

내지못하다가 계곡주변 바위에 앉아 휴식을 취한다.

물이 맑다목해 푸르른 차가운 빛을 내는듯하다.


 

손을 넣었는데 냉기가 바로 머리로 전해진다. 푸르디푸른 물속에 하얀돌들이 드러난다. 물쪽으로 소년들이 돌을 던진다.


 

물속에 돌이 떨어지자 펑하는 파열음이 적막을 가르며 작은원기둥이 갈래를 지어가며 크기를 더한다.

아직도 장난기 어린 아이들이다.


 

돌을 던지며 물고기가 흩어지는데 이곳은 그런모습을 볼수 없다.

물이 특1급수 이니 사는 고기도 정해져 있을것이다. 물이 너무 맑으면 어쩌고 하는 속담이 생각난다.


 

맑은 계곡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새벽에 본 하얀별과 푸른 계곡물을 비유해본다. 이물속에 하늘의 별이 잠긴다면 어떨까!


 

그리고 그사이에 희운각에서 만난 50대의 합장인사가 눈에 선하다 그리고 오세암의 관세음보살소리 이런것들이 구슬처럼 내머리 속을 얽고 이어간다.


 

6시 20분이 다되는 시간 땅거미가 하루의 마침표를 찍을즈음 백담사에 도착버스에 오른다.


 

장장 16시간의 대미를 장식하는 순간이다. 버스에 타자마자 재우가 너무좋다는 말을 남긴다.


 

용대리에 도착하니 따뜻한 시레기국을 산악회가 준비하였다.


 

하루종일 찬것만 먹다가 이제는 따뜻한 국물을 먹으니 속이 풀리고 심장도 따끈따끈 해지는 것 같다.


 

7시 출발하여 양재역에 11시 20분 도착한다.


 

좌석버스로 옮겨 부천상동에 12시20 도착했다.


 

지금까지 어떤 산행보다 깊은 추억과 깨달음을 뒤로하며 길고도 지루한 산행기를 읽어주신 분들께 오늘 하루의 여정을 같이하면서 감사합니다.


 

2004년 10월 19일 새벽2시에..재우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