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팔공산(갓바위~신령재~동화사)

1:25,000지형도=동촌. 대율

2005년 2월 20일 맑음(-7.6~1.1도)   일출몰07:08~18:11

코스: 경산쪽 약사암 주차장10:30<1.0km>관봉11:00<2.0km>897.6m봉13:00<2.2km>993m봉경유 신령재15:00<3.8km>동화사경유 주차장16:00

[도상9.0km/ 5시간 반 소요]

개념도    개념도
 

개요: 경상북도 경산시 와촌면의 약수암 주차장에서 관봉으로 올라 인봉 경유 영천시 청통면과의 경계선상인 능성재에서 영천군 신령면과 경계를 이루는 993m봉 너머 신령재에서 동화사로 하산하는 이번 코스 는...  

북쪽으론 동명면. 가산면. 부계면. 신령면. 청통면. 와촌면이 남쪽 대구의 동구를 감싸고 있는 형국으로 팔공산 정상(비로봉1192.9m)은 군 시설물로 출입이 통제되어 있다.

그러나 좌. 우로 서봉(1150m)과 동봉(1155m)을 거느리고 있어 그 중 맏형격인 동봉이 정상을 대신하고 있는데, 이들 세봉우리는 삼존불을 연상시키는가 하면 그 들 뒤로 쭉 뻗은 능선은 봉황이 날개를 편 듯한 모습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인봉 아래서 본 비로봉    인봉 아래서 본 비로봉
 

동화사 저수지서 본 서봉    동화사 저수지서 본 서봉
 

동화사 저수지서 본 동봉    동화사 저수지서 본 동봉
 

중앙고속국도상의 소야고개부터 시작해서 경산 와촌면으로 넘어가는 능성고개까지는 한티재~파계재~마당재~오도재~신령재~능성재~선본재로 이어진다.

그런데 다같은 팔공산 도립공원이면서 한티재 동쪽만을 팔공산으로 부르고 한티재 서쪽은 가산산성으로 구분하기도 하는데, 수많은 인파로 몸살을 앓고 있는 동쪽에 비해 가산산성지역은 아직도 때묻지 않은 지역이 더러 남아 있기도 하다.

팔공산 주능선엔 이름있는 봉우리만도 가산. 파계봉. 서봉. 비로봉. 동봉. 염불봉. 인봉. 관봉의 여덟 개나 되고 도상거리만도 30km가 넘는데 주능선상의 크고 작은 무명봉까지 합치면 그 수를 헤아린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993m봉서 본 비로봉    897.6m봉서 본 비로봉
 

신령재서 본 관봉까지...    신령재서 본 노적봉까지...
 

신라 흥덕왕 7년(832년)에 심지화상이 동화사를 증축하면서 그 때까지 공산(公山)이라 했던 것을 팔공산으로 부르기 시작했다고 하고,  고려 왕건이 견훤과의 전쟁에서 아끼던 장수 8명을 잃고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한편으론 원효대사가 천성산에서 데려온 8명의 제자가 모두 이 산자락에서 득도했대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이 산자락의 고을이 여덟 개였다는 설과 봉우리가 여덟 개라는 설 등이 전해져 오고 있지만 어느 것 하나 확실한 것은 없다.

993m봉서 돌아본 이번코스의 전반부    993m봉서 돌아본 이번코스의 전반부
  

어쨌거나 이 산자락을 둘러싼 40여곳에 달하는 크고 작은 동화사를 비롯한 대찰과 암자들만 보더래도, 통일 신라이후 대를 이어 불교가 성행해 왔음을 알 수가 있고, 지금도 전국 각지에서 많은 불자들과 산악인이 찾아들고 있다.

그 중에서도 좌대 포함 5.6m가 넘는 갓바위(관봉석조여래좌상)의 영험은 너무 신통해서 영일없이 참배객들로 북새통을 이루는데, 욕심이 많아선 효과가 없어 딱 한가지 소원만 들어준다고 한다.

그 것도 부처님이 돌아앉은 등 뒤로 사는 사람들보다는 앞쪽 사람들의 기도발이 좋아서, 특히 부산 사람들은 밤낮으로 쌀자루 들고 찾아든다.

갓바위 부처 측면    갓바위 부처 측면
 

안내문
  안내문 
 

배불숭유가 강했던 조선시절에도 왕실의 비호를 받아왔던 팔공산자락의 절집들은 대를 이어 권력과 밀착해 왔다.

최근 들어 세계최대를 자랑하는 일만여평의 부지에 조성한 통일약사대불은 높이가 30m에 달하고 전체 무게는 오천톤이나 되는데, 궁궐보다 더 큰 [統一祈願大殿]의 현판은 당시 대통령의 친필 휘호로 쓰여진 글이기도 하다.

통일대불    통일대불
 

현판 현판
 

전체 면적 122.08㎢에 달하는 팔공산은 동화사지구, 파계사지구, 갓바위지구, 은해사깃점, 수도사깃점별로 등산코스가 워낙 다양하고 명소들이 즐비해서 많은 걸 적시할 수는 없고,

다만 어느쪽을 등산 깃점으로 삼더라도 교통편은 대체로 수월하다.

동화사   동화사
 

245 안내문       안내문
 

초반 경산쪽의 갓바위지구로 올라 신령고개에서 동화사지구로 내려서는 이번 코스 북쪽의 신령천과  청통천등은 곧장 경호강으로 빠져들고,

남쪽의 대구방면 골짝물은 동화천 타고 금호강으로 합류해서는 고령군 다산면을 휘어도는 낙동강으로 흘러가서 김해 앞바다에서 태평양과 만난다.

와촌면 대한리 골짝    와촌면 대한리 골짝
 

하산길 폭포골    하산길 폭포골
 

가는길: 경부고속국도 경산 나들목에서 919번도로 금호강을 건너 동강삼거리에서 와촌면 대한리의 약사암 주차장으로 내려서는 교통편이 갓바위부처에게 가장 빨리 다가가는 길로, 주로 부산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코스다.

포장길과 계단길을 번갈아 가며 약사암 연등 아래를 지나면 약사여래마애불 앞에서부터 수많은 참배객들로 북적거리기 시작한다.

약사암의 약사여래 마애불    약사암의 약사여래 마애불
 

돌계단 가파른 오르막을 한참 치오르면 등산로와 갈라지는 삼거리 지점에 선본사 법당이 자리하고, 그 뒷편의 암봉에 오르면 선본사 뒤편으로 지능선 너머 경산시가지와 영천방면은 물론, 팔공산 동부자락이 펼쳐진다.

관봉 정상의 암벽을 조각해놓은 갓바위부처 앞에는 사시사철 주야장천으로 참배객이 몰려 드는데, 특히 대학입시철에 피크를 이루지만 이곳을 찾는 등산객들의 경유코스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위에서 본 선본사   위에서 본 선본사  
 

갓바위 부처 정면    갓바위 부처 정면
 

간구하는 참배객    간구하는 참배객
 

관봉에서 날등따라 나 있던 등산로는 폐쇄되었고 대신에 선본사 갈림길에서 애자모 지장굴을 통과하여 공양가람 아래로 내려선 갈림길 등산로 초입엔 [정상등산로①]이 있어 종주코스의 시작지점을 알리고 있다.  

이 숫자는 [정상등산로~②~③...]이런 식으로 팔공산 등산로의 날등길엔 그 숫자가 끝없이 이어져 현위치 확인에 도움을 주고 있다.

땡겨본 노적봉    땡겨본 노적봉
 

가면서 본 인봉    가면서 본 인봉
 

인봉서 본 관봉    인봉서 본 관봉
 

인봉 가는길 주등산로의 안부에 서면[동봉6.6km/갓바위600m/북지장사2.0km]의 스텐리스 이정표가 길 안내를 해주고, 인봉 가는 날등길엔 관봉에서 바라볼 땐때 커다란 병풍으로만 보이던 노적봉을 우회해서 돌아나가며 암릉을 타게 된다.

그 길엔 양쪽이 커다란 협곡으로 형성된 인봉 절벽지대가 있어 굵은 동아줄이 얼기설기 설치되 있는데 우회로가 없어 진행을 더디게 한다.

절벽지대    절벽지대
 

통과해서 돌아본 인봉   통과해서 돌아본 인봉 
 

절벽 위험지역을 통과한 인봉 아래론 선본암으로 내려가는 날등길이 열렸는데, 그 길 초입엔 높이 5m정도의 커다란 도장바위가 있어 지명에 관한 궁금증을 풀어주고 있다.

오묘한 그 바위를 아래서 쳐다보면 누군가 페인트로 이름을 적어넣어 무병장수를 빌었는데, 도립공원의 자연석에 낙서처럼 쓰여진 그 글씨는 흔적없이 지워낼 수 있다고 본다.

도장바위    도장바위
 

아래서 본 도장바위    아래서 본 도장바위
 

선본암이 잘 내려다보이는 선본재 능선길에선 팔공산 정상부가 막힘없이 조망되지만, 대구쪽의 공원을 깔아뭉갠 골프장 시설이 보는이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자아내게 한다.

그러다가 대체로 스쳐가기만 하는 897.6m봉 암봉으로 올라서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그 곳엔 무어라 명명하기 힘든 기암이 고스락을 차지하고 있고, 그 뒤론 팔공산 정상부분은 물론 993m봉에서 동북으로 가지쳐 내려간 신령능선의 암봉들이 뚜렷하다.

뒤돌아보면 인봉~관봉까지의 날등이 뚜렷하고 팔공산 동부자락을 감싸고 도는 도심과 야산 구릉들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897.6m봉의 기암    897.6m봉의 기암
 

 897.6m봉서 본 신령능선     897.6m봉서 본 신령능선
 

 897.6m봉서 돌아본 인봉     897.6m봉서 돌아본 인봉
 

897.6m봉에서의 조망을 즐긴후에 내려선 능성재엔 옛 팔각정 축대만이 썰렁하고, 이정표엔 [은해사5.5km/갓바위1.8km/동봉...]로 표기를 해서 은해사로의 등. 하산로 포인트가 되고 있다.

헬기장을 지나친 능성재 바로 아래 안부엔 팔공산 칸츄리클럽으로 샛길이 열려있어 비상 탈출로로 용이하고, 그 곳엔 [신령재2.3km/갓바위2.2km]이정표가 있다.

안부를 통과한 또 다른 헬기장에선 993m봉과 신령능선의 암봉들이 클로즈 업 되다가, 이어지는 능선길에선 빽빽한 수림으로 더 이상 조망이 트이질 않는다.  

신령능선의 암봉들    신령능선의 암봉들
 

기껏해야 소나무 틈새로  신령능선의 아름다운 암봉을 힐끗거리다가 993m봉 정상에 서면 지금껏 진행해온 관봉까지의 주능선이 적나라하다.

그 아래로 내려서면 마치 양손이 서로 마주하며 손뼉을 치는 모습의 기암이 쌍수로 환영하며 먼길의 노고를 치하하고 있다.

그 자리에선 더욱 가까워진 정상이 일목요연하긴 해도 시간에 쫓긴다면 신령재에서 하산해야하고 여유가 있다면 동봉까지 진행해도 무리가 없다.

손뼉바위    손뼉바위
 

더욱 가까워진 정상    더욱 가까워진 정상
 

한겨울에도 간단한 식음료를 팔고 있는 신령재엔 암석으로 된 옛 이정표와 [동봉2.7km/갓바위4.5km/공산폭포km3.0/동화사3.5km]의 새 이정표가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폭포골로 내려선 완경사길은 하단에 이르러 오른쪽으로 한고개 넘어야 동화사 부속암자인 약사암에 당도하게 되는데, 폭포골의 폭포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너무 초라하고 통일대불은 거창하기 이를데 없다.

신령재서 돌아 본 993m봉    신령재서 돌아 본 993m봉
 

폭포골의 폭포    폭포골의 폭포
 

산행후기: 대구 팔공산은 내게 너무 많은 추억을 안겨준 산이다.

가산산성 부근에 흐드러진 복수초를 보고, 눈 속에 피어난 그 꽃에 홀딱 반해 처음으로 야생화에 눈 뜨기 시작한 지가 불과 10여년 전의 일이다.

거길 가기 위해서는 다부동 전적 기념탑 앞에서부터 올라야 했는데 그 당시 아무도 다니지 않았던 그 길은 산길은 커녕 짐승길조차 없어 잔솔밭을 발발 기어야만 했던 기억이 새롭다.

빙화-1    빙화-1
 

파계사 뜨락엔 희귀본인 귀룽나무가 흐드러지면서도 소담하게 꽃을 피어올렸었다.

그 마당을 가로지르는 스님들의 행렬이 군인들의 열병식처럼 너무도 질서정연해서, 자연 속에 살아가시는 스님들이 계율과는 또 다른, 엄격한 규율속에 사시는 모습을 보게된 곳도 팔공산 자락이다.

빙화-2    빙화-2
 

꽃피는 오월 중순에 팔공산에 오르면 신령재에서 파계재까지의 주능선은 온통 함박꽃의 천국이다.

전국의 웬만한 유명산 함박꽃을 다 들이대도 평균고도 천미터대를 오르내리는 이 지역의 함박꽃만큼 밀생해서 자라는 지역은 없을 것이다.

함박꽃은 북한의 국화라던데...! 남북분단 그 이전부터 이 지역만큼은 이념의 갈등같은 것은 없었다. 비록 야생화일지라도...

빙화-3    빙화-3
 

염불봉에서 동봉 오름길의 암릉코스는 바위타는 재미가 제법 쏠쏠해서 우회로를 벗어난 날등을 즐겨타기도 한다.

그러나, 치기로 오른 그 길에선 낭패당하기 일쑤여서 한번은 등산화 뒤축이 돌 틈새에 끼여 그냥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었는데, 소시적에 배워둔 낙법이 아니었다면 안면을 모두 갈아부칠 뻔 하기도 했었다.  

그 날 이후론 절벽지대만 만나면 무조건 자세를 뒤로하고 오르내렸다.

빙화-4    빙화-4
 

그 당시 또 다른 절벽길의 오버행 지역에서, 일행중 한 분이 팔 힘이 빠지자 그대로 대롱대롱 매달려 사경을 헤맨적이 있었다.

마침, 곁을 지나던 또 다른 일행의 구조로 무사하긴 했지만 앞배 볼록했던 그 분과 나는, 그 날 이후로 서너달 실내암장에서 바위타기를 익히기도 했었다.

지금껏 해 본 운동 중에선 그래도 실내암벽이 가장 재미 있었고 힘들었었지만, 다시금 워킹으로 돌아오고보니 이젠 흥미가 없어졌다.

빙화-5   빙화-5 
 

몇 번이고 가본 갓바위는 항상 흥미롭다.

토테미즘과 불교문화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갓바위부처님의 영험은 너무도 신통해서 매일같이 인산인해를 이루는데, 속세의 소원을 산꼭대기에 올라 간구하는 모습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실제로 우리 큰아들이 미대 시험 볼 때 얼떨결에 화선지 뒷면에다 실기그림을 그렸는데도 장학생으로 선발되기도 했던 것은, 갓바위부처님 영험이라고 아내는 지금도 굳건히 믿고 있다.

 빙화-6     빙화-6
 

벌써 십수년의 세월이 흘러간 그 갓바위부처님 앞에는 오늘도 수많은 군중들로 북적댄다. 각기 다른 차로 왔는데도 우리동네 사람도 두 분이나 만났다.

옛날엔 갓바위 뒤편으로 등로가 열려 있었는데 지금은 철망 펜스로 봉쇄를 해 놓아, 싫어도 공양식당이 있는 용왕단 아래까지 내려섰다가 주능선으로 올라야 한다.

빙화-7    빙화-7
 

팔공산 도립공원엔 다른지역과는 또 다른 특징이 있다. 정상등산로 ①②③...이 있지만 그 숫자표시가 특정지역을 지칭하는 것인지 아니면 지리산처럼 500m간격으로 있는 것인지 이해가 잘 가질 않는다.

이정표도 다른 지방과는 달리 스텐레스 구조물로 설치를 했는데 정작 있어야 할 봉우리 표시는 하질 않아서, 어느 게 미륵봉이고 인봉인지 확실하질 않다.

 빙화-8     빙화-8
 

추측으로 도장바위가 있는 근처의 최고봉이 인봉이려니 확신할 뿐이다.

그 인봉 아래의 양쪽 봉우리 사이엔 절벽 지역이 있는데 안전시설이라곤 한사람씩만 통과할 수 있는 낡아빠진 동아줄이 고작이다.

세찬 바람이 몰아치는 영하 칠팔도를 오르내리는 강추위속에서 지체된 행렬로 이곳에서 근 반시간이나 머물러야 했었다.

빙화-9    빙화-9
 

덕분에, 원래 계획했던 동봉까지의 진행은 접어야만 했고, 시덥쟎은 폭포 한 곳 있는 폭포골로 쫓기는 시간에 신령재에서 내려서야만 했었다.

그 계곡의 끝에서 세계 최대라는 통일약사여래불 광장앞으로 내려서고 보니 98년도 5월24일 이후로 다시찾은 이 곳 모습은 전혀 변한 것 없고, 단지 내 마음 속에만 통일 무드가 무르익어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날자 산행일기에는 [화면에서 봤던 김일성 궁전보다 더 화려해 보이는 통일약사여래불은 왜 있는 것일까? 북쪽에는 굶주리는 사람들이 많다던데...! 오늘자 K신문 사회면엔 부산의 결식아동이 9,973명이나 된다고 한다....]

빙화-10    빙화-10
 

7년전의 그 모습과 오늘은 어떻게 다를까? 북쪽에도 남쪽에도 기아선상에 허덕이는 그 숫자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을 뿐이다.

암울했던 지난날의 회상을 떨치고 동화사를 거쳐 언덕넘어 저수지에 당도하니 팔공산 정상부가 에베레스트의 흰산처럼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힐난하고 있다.

이사람아, 좀 긍정적으로 바라볼 순 없겠나?

해빙 무~드    해빙 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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