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귀때기청봉 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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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저녁 방학을 맞아 필리핀으로 연수를 떠나는 9살 막둥이가

공항에서 “아빠! 나 올 때까지 집 잘 지키고 기도 열심히 해.

응! 아빠 사랑해!” “응! 알았어.”부녀간에 짧고 뜨거운 대화 뒤에

형용할 수 없는 뭔가를 남겨놓고 막둥이는 엄마랑 떠났다.


집사람이 없어 군기가 빠진 건가, 아니면 막둥이와의 약속을 잘 지키려는 마음에선가.

뒤숭숭한 기분에 늦잠이 들어 새벽예배 시간을 넘기고 말았다.

 

예배 참석을 못한 찜찜한 마음으로 배낭을 둘러메고 적적한 집을 나서는데

현관에 “아빠! 빨리 따라와!” 하며 저만치 내쳐달리던 막둥이의 기아달린 분홍빛 예쁜 자전거와

인라인 스케이트, 킥보드 그리고 앙증맞은 운동화가 눈에 밟힌다.

 

하늘은 구름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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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안에서 정 신자님이 후미 산행하는 분들과 드시라고 콩 차와 닭발을 챙겨주신다.

늘 후미를 생각해주는 배려 깊은 고마움을 어찌하랴.

 

용문휴게소에서 미역국밥으로 아침을 챙기는데 우연히 같은 식탁에 마주한 정 신자님이

시집 ‘아버지의 강’(손 승의 지음)을 복실 총무 편에 보내주신 작가부인 나 영혜님을 소개시켜줘

뒤늦게 고마움을 표하고 잠시 쉬면서 동물공원을 둘러본다.(09:00)

 

진돗개, 토끼, 공작비둘기, 은계, 금계, 꽃 닭, 토종닭 그리고 공작새들이

우리 속에서 아침을 챙기느라 분주한데 공작 수컷은 수작을 부리려고

눈부시도록 화사한 날개 짓을 하며 암컷을 유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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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장면을 전 양규님이 놓치지 않고 한 컷 잡은 뒤 나까지 챙긴다.

 

공작이 수작 부리려 날개 짓을 했을 텐데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답고

보기 어려운 장면이라 산행에 좋은 징조인가 아닌가를 궁리 해본다.

 

지난해 엄청난 수마가 남겨놓은 상처자국이 아직도 아물지 않은 채

아픔을 그대로 드러낸 처참한 골짜기를 따라 차 두 대는 산으로 들어간다.

 

장마철은 다가오는데...

 

‘장수대 휴게소’에 이르자 B코스를 산행하려는 일행들이

김익태 고문님을 주축으로 하차를 하고(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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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분 뒤 인제군과 양양군 사이에 있는 해발 920고지의

‘한계령휴게소’에 도착하자 산객들이 산행준비를 한다.(11:00)

 

옛날 양양의 기녀 ‘소동라’의 이름을 빌려 ‘소동라령’이라 불리다가

‘오색령’으로 다시 ‘한계령(寒溪嶺)’으로 바뀌었다는 한계령은 비가 내린다.

 

하늘을 보니 하루 종일 내릴 기세다.

 

아름답고 장관인 기암의 산들은 어디가고 온통 먹구름뿐인가.

 

일회용 비옷을 구입 배낭 속에 넣고 일행을 따라 108계단을 오른다.

 

빛바랜 남루한 ‘설악루’와 한계령 공사 때 죽은

장병들의 영혼들을 위로하기위해 세운 ‘위령비’를 지난다.

 

70년대를 마무리하는 10.26의 주역 김재규와 인연이 깊은 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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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계단과 돌계단으로 이어지는 가파른 오르막길을 간다.

 

처음부터 힘에 겨운 빗길 노래 ‘한계령’이 입에서 절로 샌다.

 


저산은 내게 오지마라 오지마라하고

발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저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하고

내 가슴을 쓸어내리네.

아, 그러나 한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산 저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 가라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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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른 길 한숨 돌리려는데 일행들이 나 영혜님이 준비해온

홍어회와 정 신자님의 구수한 콩 차를 들면서 빗속에 반긴다.

 

콩 차 한 잔에 홍어회 한입 가득 담고 우물거리며 올라간다.

 

오늘은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하는 설악산을 산객이 아닌

산 꾼이 되어  최종 목적지만 찾아가는 독도법 훈련 중이다.

 

한계령에서 1km지난 해발 1307지점에서 능선을 간다.(11:57)

 

설악 8경중 제 2경을 운해위로 솟아오른 산봉우리가 기막혀

‘운악무해(雲嶽霧海)’라 했건만 오늘은 시야를 막아버린 비 내리는 운해뿐이다.

 

둘러 볼일 없으니 먹을 것만 생각하는가.

 

절벽 천연동굴 속에서 오 용숙님이 삶은 계란에 매실차를 차려놓고 산 꾼들에게 자비를 베푼다.(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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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령에서 2.3km를 지난 1350고지 능선삼거리에 도착한다.(12:45)

 

여기서부터 서북능선이 시작되니 가야할 귀때기청봉은 1.6km 남았고,

아직 올라보지 못한 대청봉은 반대쪽으로 6km가면 된다.

 

언젠가는 가야할 대청봉 쪽을 잠시 바라보다가 서북능선을 간다.

 

커다란 암석들이 산재한 너덜지대를 만난다.

 

부슬거리는 비에 미끄럽지만 돌들을 펄떡펄떡 건너뛰며 오른다.

 

1381m 암봉 고지에서 후미대장을 사퇴한 전 양규님과 전 택현님 그리고 형 대신 카메라 들고

사진 찍느라 산행도 제대로 못하는 박 수정님과 함께 오 용숙님이 밤늦게까지 준비했다는

돼지고기 수육과 묵은 김치에 곡차를 곁들이며 잠시 쉬었다가 떠난다.(13:40)

 

서북능선은 바위너덜지대가 많다. 산 라일락꽃이 많이 피였다.

 

구름 덮인 암 능선에 늘어선 구상나무들의 죽음과 삶은

인간에게 단지 자연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해발1580고지의 귀때기청봉에 선다.(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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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들은 이미 점심을 마치고 미련 없이 떠나는데 우리는 엉거주춤한다.

 

점심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망설이다가 떠나는 일행 뒷모습을 보면서

사진하나 남기고 '대승령6km'표지판을 따라 길을 떠난다.

 

남들은 오르내리는 암 능선을 잘도 가는데 힘이 부친다.

 

때 마침 필리핀에 잘 도착해서 짐을 풀었다고 전화가 온다.

 

어디냐고 묻기에 설악산... 하는데 전화가 끊어진다.

 

젠장! 이 눅눅한 기분을 전해주려 했는데...

 

허기야 사서 고생하면서 웬 소리냐고 핀잔이나 받았겠지만, 목소리까지도

귀엽기 짝이 없는 막둥이와 입씨름이라도 했으면 얼마나 기분이 승천되었겠는가.

 

요즈음은 팔불출도 피알이라고 했던가.

 

대승령 4.8km지점인 1456고지에서 오 용숙님이 제공하는 과일을

전 양규, 전 택현 양 전씨와 함께 들면서 잠시 쉬었다 간다.(15:10)

 

많은 향나무가 크지 못하고 땅에 낮게 깔려 자란다.

 

가는 길이 길고 험하면 볼 것이라도 있어야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지친다리로 무념의 길을 마냥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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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내지 말고, 속이지 말며 갈망하지 말고, 남의 덕을 가리지 말고,

혼탁과 미혹을 버리고, 세상의 온갖 애착에서 벗어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허기가 지고 발걸음은 더디다. 온몸은 비에 젖은 솜처럼 흐늘거린다.

 

배낭에 콩 차와 닭발이 있는데 자꾸만 더 가자고한다.

 

옛말에 손재주 뛰어난 사람은 항상 고달프고, 총명한 사람은 걱정이 그칠 새가 없으나

무능한 사람은 구하는 바가 없으니 배만 부르면 곧 아무 생각 없이 세상을 이리저리 떠다닌다.

 

이는 마치 받줄로 묶어 놓지 않은 배가 아무 걸림 없이 바다 위를 떠다니는 것과 같다고 했다.

 

더구나 배고픔에도 불구하고 먹을 것을 짊어지고 가며는

신경을 긴장시켜 건강에 악영향을 준다는데 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거기에 챙겨준 정성도 때를 놓치면 불손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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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8.2고지를 넘자 바위 너덜지대에 무조건 자리를 잡았다.(15:50)

 

정 신자님이 챙겨주신 닭발과 고소한 콩 차를 꺼내놓고

점심을 드는데 전옥란 총무를 포함한 여럿이 합류해 즐거운 휴식시간을 갖는다.

 

배만 부르면 만사가 편한 것이 민초라고 했다.

 

이제야 꽃도 보인다. 노란 양지꽃, 바위양지 등등 이름모를 꽃들...

 

구름 속에서도 신기한 기암 봉들이 눈에 들어온다. 보는 방향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비쳐진다.

 

직각수준의 계단을 네발로 엉금엉금 기어오르고 내리면서 깎아지른 공포의 절벽 능선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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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9고지에서 무릎이 아파 걷지 못하는 환자를 발견한다.(15:30)

 

때마침 임무를 맞교대한 장 경주 신(新) 후미대장과 전 양규 구(舊) 후미대장이

앞서가다가 뒤처진 나와 오 용숙님을 걱정해서 걸어온 전화에 사고를 알렸으나

반신반의 하는지라 빨리 후미대장을 되돌리려 발걸음을 재촉한다.

 

급경사 철사다리를 뒤돌아 기면서 급히 서둘러 후미대장을 만나 되돌린 후 ‘대승령’을 향한다.

 

후미대장 짐을 벗은 전 양규님의 발걸음이 빠르다. 뒤쫓기 힘들구나.

 

살아남기 위해 죽기 살기로 오용숙과 함께 뒤쫓는다.

 

탐욕과 혐오와 헤맴을 버리고 속박을 끊어

목숨을 잃어도 두려워하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먹구름에 서서히 옅은 어둠이 깔리는 해발1210고지의 ‘대승령’에 도착한다.(18:35)

 

박 수정님과 친구들 그리고 전 택현님과 담솔님을 만난다.

 

사고소식을 전하고 그들을 되돌린 후 우리 셋은 전 택현님과 함께 하산을 한다.

산행 능력이 못되는 나로서는 마음만 되돌릴 뿐 면목 없는 안타까움을 ‘대승령’에 남겨두었다.

 

가파른 경사 길이 돌 들 뿐이라 미끄러웠다. 교대로 허우적거린다.

 

스스로 자진해서 찾아 나선 피해갈 수 없는 길,

사서 걷는 고통의 길에서 끝없는 자신과의 싸움을 벌이며 종착지를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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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여 어디서 왔는지 묻지 마오.

물 건너 산 넘어 길이 있기에

굽이굽이 산길 따라 멀리서 왔소이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묻지도 마오.

그저 가야만 하기에 가고 있소이다.

쉬었다 가라고 붙잡지 마오.

먼 길을 떠나야하는 나그네의 발길

붙들어 맬 수 없는 것

바삐 서둘러 가야할 길은 아니지만

해저물기 전 그곳을 향해 가야만하오.

머물 곳이 있냐고 묻거든 나는 말하리라

발끝 닿는 그곳에 내가 머물 산천이 있다고

발끝 닿는 그곳에 내가 머물 산천이 있다고.

 

 - 如山 김 지명의 나그네-

 


산행 전에 17:30까지는 내려와야 한다고 고지를 받았는데 무슨 기준으로 했는지

도무지 나 같은 풋 산내기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한계점을 깨닫게 한다.

 

누군가 여름에 1000고지 넘는 산을 자주 찾는 것은 무리라고 말한다.

 

맞는 소리 같아서 고개를 끄떡이는데 계속 고개를 숙이고 길만 보고 와선지 목덜미가 아프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가라...

 

해발 720m지점에서 대승폭포 전망대를 만난다.(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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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m높이의 수직절벽을 타고 폭포수가 시원하게 쏟아 내린다.

 

전망대에서 용소를 내려다보려니 순간 힘이 부처선가 아찔하고 어지러운 현기증이 난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 대승이란 청년이 저 절벽에서 밧줄을 매놓고 돌 버섯을 따는데

죽은 어머니가 대승아! 대승아! 부르는 소리가 들려 밧줄을 타고 위로 올랐더니

신발만한 지네가 밧줄을 거의 다 갉아먹고 있는 절대 절명의 순간에

어머니의 부름으로 겨우 목숨을 건졌다 해서 ‘대승폭포’라 명했다고 한다.

 

계곡의 노송들도 폭포의 아름다움을 더욱 맛나게 장식하고 있다.

 

가파른 나무계단을 내려간다.

 

어둑어둑한 어둠속 된비알의 바위 길을 더듬어 내려간다.

 

‘무아원산악회’를 처음 찾아온 사람들인가 이구동성으로 선수들만 오는 산악회인 것 같다고

말하자 전 양규님이 안 그렇다고 극구 설명하는데

나는 후들거리는 다리하나 건사하기도 힘들어 초지일관 앞만 보고 내려온다.

 

세상은 요지경 잘난 사람 잘난 대로 살고 못난 사람 못난 대로 산다고

잘 가는 사람이 못가는 사람 심정을 이해 할랑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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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건너면 뗏목을 버린다고 했듯이 사람을 믿으면 언젠가 실망과 낙담을 하고 상처를 받는다.

 

그저 능력껏 자신을 믿고 꾸준히 가는 것이 산행이요, 삶이러니...

 

‘장수대 휴게소’ 300m전에서 골짜기 물을 만나 만신창이가 된 바지에 물을 끌어 붓는다.

 

허리 숙여 흙을 털어내는 것도 힘이 들어서다.

 

캄캄한 어둠속 장수대 휴게소에 주차해놓고

식사를 거반마친 일행들 속으로 휩쓸린 시각은 20시10분이다.

 

긴급히 119팀이 올라가고 모두가 하산한 10시에 서울로 향한다.

 

모두가 완전히 귀환했으니 천만다행 하나님이 보호하사... 만세다.

 

 

 

 


2007. 6.30(음력5월16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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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안상도    편집: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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