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6월 6일 현충일을 기해 시인마뇽과 둘이서 광양에 있는 백운산 산행을 계획했다.

시인마뇽(이하 시인으로 호칭)은 최근 시작한 호남정맥 길을 가는 것이고 나는 3년전 도전했다가 등정하지 못했던 백운산 등정이라는 숙제를 풀기 위해서이다.

우선 둘이서 갔던 길을 구글어스 사진으로 살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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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를 쓰고 보니 너무나도 길고 두서없는 글이 되고 말았다. 많은 분들이 끝까지 읽기 힘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백운산산행시 지나갔던 주요지점의 도착시각과 고도를 표로 정리해 보았다. 긴 글을 읽을 시간이 없으신 분은 이 표와 아래에 게재된 사진만 훑어 보시면 산행의 대략적인 줄거리는 아실 수 있을 것 같다.

 

표. 백운산 산행의 주요지점 도착시각과 고도 및 특기사항

주요지점

도착시각

지도에 표기된

고도(m)

GPS에 나타난 고도(m)

특기사항

외회마을

07:53

 

227

버스종점

십자안부

08:27

 

382

호남정맥 백운산구간 시작

천황봉

09:16

511.1

520

헬기장 공터

매봉

10:43

867.4

865

삼각점이 설치된 곳

철제이정표

11:53

 

1,010

매봉이라는 표시가 있으나 잘못된 것임

헬기장(1115)

12:55

 

1,114

넓은 공터

백운산(상봉)

14:15

1,217.8

1,226

암봉으로 억불봉, 도솔봉과 산줄기를 전망할 수 있는 포인트

신선대

14:52

 

1,202

역시 암봉으로 전망이 좋음

한재

15:53

 

856

호남정맥 탈출지점

논실

17:20

 

531

광양행 버스 종점

진틀

18:04

 

426

논실 아래 마을

 

[들머리까지의 고행]

6월 5일 밤 10시 55분 용산역을 출발해야 할 기차는 40분이 연발되어 11시 35분 경 용산역을 떠난다.(기차가 제 시간에 떠나지 않은 것을 본 것은 거의 겪지 못한 경험이다.)  한참 졸다 보니 수원을 지나 천안역인데 시인이 탄다. 각자의 자리가 다르기에 눈인사만 나눈 채 선잠에 빠져든다.

 

남원역과 구례구역에서 기차는 지리산으로 가는 등산복차림의 산님들 여러 명을 내려놓고  6일 새벽 4시 20분이 조금 지나 순천역에 도착해서 우리를 내려 놓는다. 오늘 산행의 들머리는 광양의 외회마을인데 우선 광양으로 가야 하지만 5시 50분경 출발한다는 시내버스를 타기엔 이른 시각이다. 우선 근처 음식점에서 식사를 했다. 그래도 시간이 남기에 순천역 대합실로 돌아와 세수와 용변을 마친 뒤 텔레비전에서 틀어놓은 외화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5시 40분경부터 역앞 버스정류장에서 광양행 77번 시내버스를 기다리는데 금방 오지를 않는다. 광양에서 6시 20분에 떠나는 첫 번째 외회행 시내버스를 타야 하는데 이렇게 기다리다간 안 될 것 같다. 그런데 우리의 조바심을 알아본 어느 택시가 광양까지 만원에 태워주겠다고 제의한다. 그래서 우리는 택시에 올랐다.(5시 56분) 광양까지는 10km가 안되는 가까운 거리였기에 6시 15분 쯤 터미널옆 농협앞에 도착하였다.(광양에 도착해 보니 순천출발-광양행 시내버스가 이미 광양에서 손님을 내려 놓는 것이 눈에 뜨이는 것으로 보아 이 버스는 5시경에는 운행을 시작하는 듯 하였다.)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외회행 버스는 농협건물 건너편 정류장에서 떠난다고 하기에 농협 건너편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린다. 6시 16분부터 애타게 기다리는데 이상하게도 버스가 오지를 않고 시간은 이미 6시 30분을 넘어간다. 할 수 없이 5분거리의 터미널로 가서 하동행버스를 타고 진상까지 가기로 한다. 거기서는 택시를 이용하면 될 것이었다.(그날 첫 버스가 운행된 것인지 아닌지 또는 운행되었어도 농협정류장은 들르지 않고 간 것인지 정확한 확인은 해보지 못했다.)

 

7시 5분 하동행 완행버스를 기다려서 타고 진상에 도착한 시각이 7시 40분경이었다. 거기서 택시를 타고 외회마을에 도착하니 미터요금이 13,500원이 나왔다. 시각은 7시 53분이다. 광양에서 6시 20분발 외회행 첫 차를 탔다면 시간은 40분쯤 돈은 13,500원이 절약되었을 것이나 모든 것이 다 예상대로 맞아 뗠어지지 않는 것이 원거리 산행의 현실이다.

 

여기까지 장황하게 들머리까지의 교통편을 기술해 본 것은 호남정맥을 홀로 뛰면서 들머리와 날머리까지의 교통편을 주로 대중교통에 의존하는 시인의 노고를 생각해 보기 위해서다. 그의 수첩에는 광양과 순천에서 들머리로 가는 시내버스의 시각과 정거장 이름, 버스회사의 전화번호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메모도 버스가 제 시각에 나타나지 않을 때에는 무용지물이 되고 마는 안타까움이 있었다.(거기 반해 주로 안내산악회를 따라서 가는 나의 산행은 무책임할 정도로 편하다. 아침 7시에 관광버스에 타고 졸다보면 들머리에 내려주고 산에 갔다가 반대편으로 내려오면 밥도 주고 술도 주고 버스가 다시 서울까지 편하게 모셔준다. 메모는 커녕 어느 길로 갔다가 어느 길로 오는지도 생각지 않을 때도 많다. 이러니 늘 혼자서 산행준비하는 시인의 산행지식을 따라갈 수가 없다.)      

 

7시 53분 둘이는 고대하던 백운산으로 들어갈 입구인 해발 227m의 외회마을 버스종점에 섰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의 난제가 생긴다. 길을 조금 걸어 내려와서 지난번 호남정맥길에 시인이 찍고 내려왔던 십자안부(네거리)로 가려고 개울에 놓인 작은 다리를 건너 민박집 안으로 난 길로 올라가려 하는데 집주인이 멀리서 소릴 치며 달려 온다. 사유지인 그길로 가지 못한다고 한다. 제법 가파른 경사를 거슬러 산으로 올라가기 위해선 그 길로 가야지 만약 길도 없는 산비탈로 우회한다면 땀 좀 흘릴 것 같다.

 

주인의 말씀인즉 얼마 전 산에서 그 길을 따라 내려오던 산객들이 집에서 재배하던 고사리를 다 꺾어 갔다고 하며 우리도 같은 부류인 듯 우리에게 큰소리로 분풀이를 하는 것이었다. 난감하고 은근히 화도 났다. 몇 마디 말다툼을 하다가 나는 다른 길로 가자고 비켜섰다. 그러나 한참이나 큰소리로 주인과 말대꾸하던 시인의 목소리가 부드러워진다. 이건 웬일? 주인의 목소리도 부드러워지며 화해가 가능해진다. 통과다.

 

시인의 말씀인 즉, 주인은 누가 농작물을 망쳤기에 화가 났을 뿐 우리를 의심하거나 미워하는 것은 아니란다. 누군가 그분의 이야길 진지하게 들어주길 원한다는 것이며 우리가 그분의 이야길 들어주어 화가 풀렸다는 것이다. 자기가 시골 태생이라 시골 노인들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시골분들은 심성이 착한 분들이기에 쉽게 통과될 거라고 처음부터 믿었다는 것이다. 나도 시골 출신이었지만 생각이 거기까지는 미치지 못하였고 시인의 슬기와 여유에 놀랐다.(그의 노하우는 이렇게 깊고 유용하다. 나는 팩하는 성질을 못 이기고 30분이 더 걸리더라도 다른 데로 해서 가자고 주장했던 것이다.)

 

우리가 통과한 민박집에는 철창안에 개가 몇 마리 갇혀 있었고 닭과 염소도 키우고 있었으며 과수도 재배하고 있었다. 우리는 가파르게 언덕을 올라가 숲으로 난 희미한 경사길을 따라 지난번 시인이 보고 내려왔던 안부네거리를 찾아서 올라갔다. 호남정맥길이 거기서 다시 이어지는 것이었다.

외회마을 버스종점 : 호남정맥길은  여기서 우측으로 올라가야 함.

 

[벡운산에서 찾고 싶었던 것들]

8시 27분 십자안부에 도착한 우리는 잠시 쉬며 복숭아 통조림을 하나 따서 수분과 당분을 섭취했다. 호남정맥 3번째 구간을 하게 된 시인은 마냥 행복해 보였다. 오늘의 호남정맥 밟기 및 백운산 산행을 살펴보면 외회에서 이곳 안부에 올라와서 천황재->매봉->신선대->한재(정맥길 끝)->논실마을로 갈 계획이다. 그의 계산에 의하면 오늘은 서두를 게 전혀 없다고 한다. 논실에서 광양나가는 버스가 오후 6시 20분에 있기 때문에 그 전에 가봐야 소용이 없다고 한다. 산행시간으로 10시간이나 확보되어 있어 2시간 이상 여유시간을 즐길 수가 있다고 한다. 느긋이 사진도 찍고 백운산 산줄기를 감상하자고 한다. 물론 나도 대찬성이다.

 

백운산에 대한 나의 경험은 3년도 넘은 2004년 2월 눈 오는 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나는 100명산 등반을 거의 마쳐가던 시점인지라 멀리 있어서 가기 힘들었던 백운산 등정을 벼르고 있었다. 마음이 급했던지라 2월 어느날 준비도 별로 안된 상태에서 광양에 도착했고 시내버스를 타고 사람들에게서 들은대로 진틀 아레 어느 마을에서 내려 홀로 정상을 향해 돌진하였다. 그러나 눈이 마침 내리고 있었고 정상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런 기록도 사진도 없이 ‘백운산은 큰 산이다’ 라는 개념과 눈오는 날의 백색 공포만을 지닌채 백운산을 내려온 이래 3년하고도 4개월이나 흐른 것이다. 그래서 언젠가는 꼭 다시 한 번 가보리라고 생각했고 여러 정맥을 종주하는 틈틈이 100명산도 가고 있는 시인에게 같이 가자고 부탁해 놓았었다.

 

그런데 의외로 결행은 빨리 왔다. 그가 지난 달 낙동정맥에 앞서 호남정맥을 시작했고 그것도 남쪽 끝부터 올라가는 방식을 택했기에 백운산행을 둘이 할 기회가 빨리 온 것이었다. 이번 산행에서 나는 크고 아름다운 백운산을 오르며 몇가지 욕심을 부려 보았다. 우선 산줄기를 잘 파악해 보는 것은 기본이겠고(이를 위해 GPS를 휴대), 시원한 경치를 여러 장 카메라에 담으려는 욕심이 있었다(렌즈교환식 디지털 카메라 휴대). 또한 야생화의 작은 세계에도 들어가서 그들의 모습도 충실히 기록하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친구의 산행 모습을 많이 찍어서 그에게 전해주고 싶었다.(시인의 산행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추측컨대 성스러운 국토의 마루금을 밟으며 거기서 느낀 감상을 유려한 필치로 써내려가서 산행기로 남기는 것이리라. 주력이 나보다 달리면서도 그는 멈출 때마다 펜을 들고 도착시각을 비롯해 그 무언가를 메모장에 적고 있다. 현장에서의 정확한 시각과 감상을 산행기에 재현하려는 그의 노력이 눈물겹다.) 

 

만일 시인이 그가 써놓은 방대한 양의 산행기를 책으로 펴낸다면 그 자신의 산행사진도 책 속의 어딘가에 넣어야 할 필요가 생길 것인데. 그때는 내가 찍은 사진들이 쓰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여하튼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서 나는 무거운 SLR 카메라와 렌즈 두개를 준비하고 똑딱이 카메라는 아예 짐에서 빼어 버렸다. 대개 힘든 길에서 나는 큰 카메라는 배낭속에 넣어둔 채 똑딱이 카메라로만 찍는 버릇이 있기 때문이다.

 

[부드럽고 여유로운 길]

고도 372m의 십자안부부터는 정맥길인데 나무가 빼곡히 들어차서 전망은 크게 열리지가 않는데 경사가 완만하고 햇볕이 나무에 가려서 산행하기에는 아주 좋다. 정맥길에도 많은 사람들이 다녀간 듯 여기저기 표지기가 달려 있는데 오늘 산길은 호젓하기만 하다. 둘이는  숲의 향기와 경치에 취해 계속해서 걷는다. 시인은 산행 중 자주 ‘좋다’라고 외치며 그의 자유의지와 자연의 교감을 확인한다. 속세에서의 활동을 거의 접고 우리네 산줄기를 찾아가는 산행에만 매진하는 그의 산행길은 오늘도 천국길이리라.

 

안부인 천황재를 지나 9시 16분 해발 520m의 천황봉에 섰다. 헬기장으로 조성한 넓직한 마당인데 나무숲이 가리고 있어서 여기서 백운산의 정상이나 산줄기를 전혀 파악할 수가 없다. 큰 산을 이해한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아침결에 진상에서 택시를 타고 바라보니 우뚝솟은 봉우리 하나가 보였다. 백운산 상봉인 줄 알고 기사에게 물으니 그건 억불봉이라고 한다. 용문산의 백운봉처럼 우뚝 솟아서 멀리서도 잘 보이는 멋진 봉우리였다. 그러나 백운산의 정상인 상봉은 산이 큰 만큼 쉽게 조망되지 않았다. 다만 능선길을 가며 나무 사이로 가끔씩 암봉이 좌측으로 멀리 보였는데 그것이 상봉과 신선대였다.

 

10시 34분 매봉으로 해서 상봉으로 가는 길과 우측의 850봉으로 가는 갈림길에 도착하였다. 우측으로 가서 850봉에 가면 섬진강쪽의 경치가 잘 보일 듯 하였는데 우리는 좌측으로 틀어 매봉을 향하였다.


 10시 43분 해발 865m인 매봉에 도착하였다. 여기 쯤에선 조망이 확 트이리라고 기대하였지만 그렇지가 못하다. 해발 865m 까지 올라섰던 길은 다시 아래로 내려간다. GPS상 778m 까지 약 90m 나 하강했다가 서서히 상승하기 시작하여 정상까지 약간의 기복을 빼곤 거의 오르막길로 이루어졌다. 이 길은 매봉에서 상봉까지 동에서 서로 뻗은 능선길인데 길이 숲속으로 알기 쉽게 잘 나있고 경사가 심하지 않아 걷기에 아주 편하다. 백두대간길의 덕항산 구간이나 봉화산 구간처럼 완만하고 여유로워 걷는 사람에게 푸근함을 준다.

 

지금까지의 완만한 산길이 조금 급해졌나 싶었는데 공터가 하나 나오고 철제 안내판이 서 있는 해발 1,010m 고지에 도착하였다. 안내판에는 앞쪽으로 백운산 상봉이 3.0km 남아있고 뒤로는 관동을 8.4km 지나왔다고 씌어 있었는데 지금 이 지점은 매봉이라고 잘 못 적혀 있었다. 지도상 매봉은 이미 지나온 곳이었다. 상봉까지 가는 동안 백운산의 안내판은 매우 부실했다. 안내판이 아예 설치되지 않았고 하나 설치한 것이 지금처럼 잘 못된 것이었다.

해발 1,010m 고지의 철제 이정표 : 매봉이라고 잘 못 표기되어 있다.

 

[카메라를 꺼내어 들다]

시간이 충분하기에 이제 사진을 찍기 위해 배낭에서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야생화를 촬영하며 그 결과를 액정에서 다시 보며 지우고 다시 찍고 하다보니 시간이 꽤 걸리는 듯 하다. 문득 보니 시인은 이미 멀리 가고 없다. 카메라를 추스르고 발걸음을 재촉하여 급히 그를 따랐다. 12시 55분 해발 1,115m 가 되는 헬기장에 도착하였다. 풀이 난 작은 광장에는 초여름의 햇볕이 내려쬐고 있다. 그러나 이만한 높이에 올라왔는데도 전망은 아직 트이지 않는다.  

오후 1시 15분 쯤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자리를 잡았다. 화창한 날씨에 숲속에서 친구와 식사를 하는 것이 맛도 있고 운치도 있다. 서두르지 않는 점심식사를 끝내고 나니 오후 1시 35분이 되었기에 천천히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오후 1시 56분 정상 오르기 직전 전망이 좋은 바위에 도착했다. 드디어 억불봉을 비롯하여 먼곳을 조망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동안 밀린 원경 사진을 위해서 10분 정도 머물렀다. 그러나 황사 탓인지 하늘이 뿌옇게 흐려 있어 먼곳을 잘 조망할 수가 없는 점이 아쉬웠다. 

 

카메라를 꺼내어 참나무 숲을 찍다.

 

얽혀있는 나무들

 

양치류

 

관목류

 

해발 1,115m 헬기장

 

야생화 1

 

[산딸나무]

산딸기나무를 찍었다. 그러나 오늘의 주제는 산딸나무이다. 능선에서 떨어진 먼곳 비탈에 많은 나무들이 꽃을 피워놓고 환하게 산을 빛내고 있다. 그의 존재로 산을 환하게 밝히는 좋은 나무다. (한재에서 내려오는 길옆에서 마침 그 실체를 만나게 되었다. 논실마을 내려오기 전 큰 산딸나무 한 그루를 만났다.)

논실마을 직전에 때죽나무도 만났다.  때죽나무의 감각적인 모습이 매우 아름다웠다. 찔레꽃은 너무 많았다.

  

산딸나무 1

 

산딸나무 2 : 산딸나무와 그 밑을 가는 시인

 

산아래에서 찍은 때죽나무

 

[정상에서의 전망]

전망바위에서 5분을 걸어 올라가니 암릉으로 되어있는 해발 1,216m 로 오늘의 최고점인 상봉에 도착한다. 시각은 오후 2시 15분이다. 드디어 동서남북으로 시야가 거칠 것 없이 툭 터진 최고의 봉우리에 도착한 것이다. 정상은 커다란 한 덩어리의 바위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그 위에 길고 둥그스름한 정상석이 서 있고 거기엔 잘 쓴 한자로 白雲山上峯이라고 씌어 있었다. 우리는 오래 정상에 머물며 사진을 찍고 산세를 살피며 경치를 감상하였다.

남쪽으로 난 능선을 따라가면 해발 1,006m의 억불봉으로 가게 되어 있었는데 잘 생긴 억불봉은 흐린 대기에 가려 카메라에는 잘 잡히지 않을 정도로 시야가 좋지 않다. 동쪽으로 보면 우리가 걸어온 능선이 펼쳐져 있고 섬진강 너머로 제법 높은 산이 보이는데 그 이름은 알 수가 없었다.  서쪽으론 바로 앞쪽에 신선대의 넓적한 바위가 솟아있고 그 뒤로 멀리 둥그스런 따리봉과 약간 뾰족한 도솔봉이 보였다. 내일 시인이 혼자서 가야 할 도솔봉에서 이어지는 산줄기도 희미하게 보였다. 북쪽으로는 멀리 지리산의 봉우리들이 보여야 할 것이나 흐린 하늘 탓으로 볼 수가 없고 가까운 산들만 보였다. 하늘이 좀 더 맑은 날이었다면 상봉에서 내려다 보는 경치는 더욱 절경이었으리라. 오늘따라 한반도 상공을 덮고 있는 먼지들이 더욱 밉다.

마침 정상에서 만난 산님의 힘을 빌어 둘은 함께 서서 하늘과 산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한 장 찍어 받을 수 있었다.  나는 다시 정상의 바위위에 서서 사방을 꼼꼼히 카메라로 찍어 두었다. 사진을 찍어 그 사진을 여러 번 보면서 산행기를 작성하는 것이 백운산을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정상부근에서 10여분을 보낸 우리는 다음 암봉인 신선대를 향했다. 그래서 오후 2시 52분 바위로 된 신선대에 도착하였다. 이곳의 고도는 GPS로 1,202m 이다.(해발  1,216m 의 상봉이 GPS로 1,226m 이니 상봉보다는 24m 낮은 셈이다. 여기서는 상봉의 서쪽 면을 온전하게 조망할 수가 있다. 백운산은 그 면적이 크고 정상까지의 오름이 서서히 솟아오르기 때문에 최고봉인 상봉이나  제2봉인 신선대를 온전하게 조망할 수 있는 포인트는 드물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능선에도 나무가무성하여 시계는 더욱 제한된다. 

만약 남쪽에 우뚝 솟아있는 억불봉에 오른다면 맑은 날에는 상봉의 자태를 더욱 뚜렷이 조망할 수 있을 것 같다.(언젠가 꼭 실행해 보리라 생각해 본다.) 우리는 좋은 경치를 감상하며 신선대 위에서도 제법 시간을 보냈다. 여기서 정맥의 분할점인 한재까지는 가까운 거리여서 시간은 충분했다.  한재로 가는 길엔 가씀 철계단이 설치되어 있어 길이 약간 험해졌음을 알 수 있었다. 

오후 3시 29분 해발 1,068m 고지의 헬기장을 지나고 5분후인 오후 3시 34분 해발 1,050m에 있는 또 하나의 헬기장을 지났다. 계속해서 내려가니 자동차도 지나다닐 정도로 넓은 길이 지나가는 안부에 도착했는데 이곳이 오늘 호남정맥이 끝나는 지점인 한재였다. 

  

해발 856m 의  한재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3시 53분이었다.  여기서 왼쪽으로 2.3km 내려가면 논실마을에 도착한다. 쉬지 않고 급히 내려간다면 30분 밖에 걸리지 않을 거리이다. 논실에서의 광양행 버스 출발시각이 오후 6시 20분이니 시간은 충분하다. 우리는 한재에 앉아 한참 쉬다가 널게 난 길을 따라 천천히 논실을 향했다. 서두를 일이 없기에 나무와 풀을 살피며 아주 천천히 길을 갔다.

백운산 정상이 상봉이다.

 

정상 오기 전과 정상에서의 시인 모습

 

이 넘의 모습도 보인다.

 

정상에서 돌탑이 있는 곳으로 내려서서 정상을 올려 보다.

 

정상에서 남쪽으로 억불봉을 보다.(아쉽게도 날이 흐려 희미하다.)

 

정상에서 바라본 신선대

 

(신선대에서 본) 도솔봉

 

파노라마 1/4 : 우측 끝에 억불봉이 보인다.

* 여기 4장의 파노라마 사진은 상봉 위에서 우측방향으로 360도 회전하며 12장을 이어지도록 찍은 것인데, 사진을 3매씩 엮어서(Stitch) 전체를 4장으로 구성해 본 것임.

 

파노라마 2 /4 : 낱장 사진 3매를 엮은 것으로 이은 자죽이 보임.

 

파노라마 3/4 : 우측 후방에 도솔봉이 보인다.

 

파노라마 4/4 끝 : 한 바퀴 돌았음.

 

신선대에서 북으로 본 경치

 

신선대에서 건너다 본 정상(상봉)의 위용

 

[찔레꽃을 보고 상봉을 올려다 보다] 

포장이 된 넓은길 옆에는 온갖 야생초와 나무들이 무성한데 특히 찔레나무가 많이 눈에 띄었다.  찔레나무에는 하얀 찔레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나그네를 맞아준다.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목놓아 울었지.'하고 찔레꽃을 노래한 장사익의 노래가 생각나는 길이다.

논실에 도착하기 한 300m 전 우리는 돌이 깔린 시내의 가장자리에 앉았다. 신과 양말을 벗고 발을 씻으며 오늘의 산행 성공을 자축하고 마음을 가라 앉혔다. 신을 다시 신고 길을 내려가 버스 종점인 논실에 도착하니 아직도 이른 시각인 5시 20분이다. 그곳은 민박집과 음식점이 들어서 있는 관광마을이었다. 잠시 그곳을 둘러 본 후 우리는 좀더 아래인 진틀마을까지 내려가기로 했다.

진틀로 내려가는 길에선 다행히도 상봉과 신선대를 올려다 볼 수 있었다.  각도가 맞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백운산 정상인 상봉을 조망한다는 것은  백운산의 아래쪽 아무데서나 가능한 것이 아니고 산줄기가 상봉을 가리지 않는 곳이라야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그런 곳이 널지 않기 때문에 상봉의 모습은 수수께끼처럼 가려져 있을 수 있다. 이런 모호함이 백운산의 매력이자 약점은 아닐런지.

오후 6시 4분, 진틀에 도착한 우리는 슈퍼에서 맥주를 사서 마시며 버스를 기다렸다. 예정보다 늦게 논실로 올라간 버스는 잠시후 돌아나와서 오후 6시 30분 쯤 진틀에서 우리를 태우고 광양으로 떠났다. 

 

야생화 2 :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프다고?

 

산을 내려와서 진틀로 걸어가는 길에 신선대와 상봉의 수려한 모습을 황홀하게 올려다 보다.

 

진틀 거의 다 가서 우측으로 바라본 도솔봉 줄기의 산그림자 : 시인의 꿈은 그쪽에 머문다.

 

[시인은 다시 산으로]

버스에서 내린 우리는 택시를 타고 시인의 숙소가 될 베스파라는 찜질방으로 갔다. 시인은 그곳에서 묵은 다음 내일 다시 산으로 가서 호남정맥의 4번째 구간을 이어갈 예정이다. 둘은 찜질방에서 가까운 식당으로 들어갔다. 저녁식사후 우린 헤어져야 한다. 나도 내일 모든 스케쥴을 접고 친구와 같이 하고 싶다. 그래서 내일 다시 도솔천국(도솔봉)에 들고 싶은 마음 뿐이다.

 

그러나 그런 나의 일탈은 친구도 원하지 않는 것,  우린 보통 캔보다 기다란 맥주 한 캔 씩을 손에 들고 아껴 마시면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람사는 이야기 그리고 산 이야기였다. 이제 밤 9시 반이다. 22시 10분발 동서울행 심야고속버스를 타려면 일어서야 할 시간이다. 난 찜질방 앞에서 택시를 세웠다. '내일 산행 잘하게'  친구에게 작별을 고한 다음 나는 세워둔 택시에 올랐다. '버스터미널로 갑시다.' 

하산길의 시인
 

[백운산에서 찾은 것들]

늘 있는 일이지만 이번 산행도 미완으로 끝나고 말았다. 백운산 산줄기를 파악해 본다는 목표는 반 이상은 달성된 것 같기도 하다. 실제 현장을 보고 지도와 사진을 보며 산의 짜임을 어느 정도 익힐 수 있었다. 하늘이 흐려 지리산과 섬진강, 바다가 보이지 않아 아쉽기도 했다. 따라서 시원한 경관사진을 찍겠다는 야심도 달성이 안 되었다.

 

야생화 사진도 여러 장 찍었으나 욕심처럼 잘 나오지 못 했다. 친구인 시인의 모습은 여러 장 찍어 보았으나 그가 만족할런지 모르겠다. 카메라를 향해 포즈잡는 것을 즐겨하지 않는 그인지라 기획된 사진은 아예 기대도 안했지만 모처럼 여유있는 산행인지라 그의 모습을 여러 장 찍어 본 것으로 만족해야겠다.

고작 하루 백운산에 올라 내가 찾고자 했던 이 모든 것들을 다 찾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그것은 과욕이리라. 힘들이며 노력하는 과정을 즐긴 것으로 만족해야 하지 않을까?  나의 지식과 실천이 미진함을 고백하며 후속작업으로 보충해야 함을 절실히 느낀다. 다음 번엔 억불봉과 도솔봉에도 올라서 백운산의 진면목을 파악해 보리라는 야심과 꿈을 간직한 채 글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