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 구봉산 산행기

ㅇ 일시 : 2005. 2. 12(토)
ㅇ 코스 : 구봉산주차장-1봉∼8봉-구봉산정상-천황사방향-바람재-상양명마을-구봉산주차장 (8.5km. 4시간 20분)
ㅇ 찾아간 길 : 대진고속도로-금산 I.C-진안방향-주천면삼거리에서 좌회전-진안방향-구봉산주차장


   요즘은 주말이 가까워오면 이번에는 어느 산을 갈까 하고 궁리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안내산악회 광고를 뒤지고, 인터넷 싸이트를 뒤지고, 이산 저산 산에 대한 정보를 뒤지다보면 어느새 잠자리에 들 시간이다. 산을 뒤지다 보면 정말 시간이 왜이리 빨리 지나 가는지---가보고 싶은 산, 가봐야 할 산들이 왜이리 많은지---

  

   이 번 주에는 설연휴로 인하여 차량통행이 많을 것 같아 좀 쉬어 볼까 했더니, 지리선녀가 어김없이 옆구리를 찔러댄다. 그래 쉬면 뭐하냐 가까운 진안의 구봉산이나 다녀오자! 지리선녀 부부와 우리 부부의 구봉산행은 그렇게 결정된다.

  

   진안 구봉산까지는 1시간 정도면 가능할 것 같아, 출발시간을 여유 있게 잡고 출발하였는데, 금산을 거쳐 진안방향으로 달리는 도중 아무래도 길을 잘못들은 것 같다. 진안 방향으로 가다가 주천면으로 접어들어 주천면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조금만 가면 되는데, 자꾸만 용담댐이 보인다. 용담댐에서도 용담댐 다리가 끝나는 부근에서 진안방향으로 좌회전하면 되는 길인데, 운일암반일암만 생각하다 다시 길을 잘못 들었다. 결국 어느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구봉산을 찾아갔지만, 구봉산이 아직 잘알려지지 않은 산이라 그런지 안내표지판이 부족하여 길을 찾는데 애를 먹는다.

  

   그렇지만 용담댐의 풍경들이 너무도 멋있어서, 길을 잘못 든다는 것이 꼭 나쁜 일 만은 아니라는, 가끔은 잘못 든 길에서도 뜻하지 않은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착오이기도 했다. 
  

  구봉산 주차장이 가까워오자 '수줍어 숨어 있는 산'이라고 구봉산을 평 해놓은 커다란 안내판이 있어 길을 찾기에 편하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킨 후, 주차장 뒤쪽으로 나 있는 등산로를 따라 산행을 시작한다.

  

   약간은 가파른 길을 약 40여분 올라가자 능선길에 올라서고 10여분 더 올라가자 1봉과 2봉 사이에 도착한다. 1봉에 올라서자 멀리 덕유산의 능선이 고스란히 들어온다. 뒤를 돌아보자 2봉을 시작으로 연속하여 이어지는 암봉들이 참으로 보기 좋게 늘어서 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1봉에서 잠시 눈을 즐긴 후, 곧바로 2봉으로 서둘러 발길을 옮긴다.

  

   1봉을 거쳐 2봉과 3봉, 4봉--- 계속하여 암봉들을 넘어가는데, 암봉 하나하나를 오를 때마다 마치 다른 산을 오르는 것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보기 좋은 절벽과 소나무들. 먼 산들의 능선. 아찔할 정도로 내리깎은 단애. 유격 훈련장 같은 줄타기. 풍경에 취하였는지 아내는 계속하여 '행복하다, 행복하다'하며 전혀 피곤한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오늘 처음 산을 같이 한 지리선녀 부군도, 지리선녀도, '아름답다. 산 좋다'란 말을 입에 단 채 구봉산의 암봉에  빠져든다.

  

   봉마다에 표식이 되어 있지 않아서 정확하게 몇 봉인지는 모르겠지만 5봉이라고 생각되는 봉우리에 올라서자 조망이 절정을 이룬다. 지나온 암봉들과 가야할 암봉들, 뒤편에 든든하게 버티고 서 있는 천황봉이 시선을 쏙 빼앗아 간다. 한참을 눌러앉았다가 간신히 시선을 되찾아 다음 산행길로 접어든다.

  

   이제 오르지 못하는 암봉 밑을 지나서, 천황봉으로 향하는 본격적인 오름길에 들어선다. 그런데 길이 정말 엄청나다. 응달지어 눈이 하나도 녹지 않은데다 몇 미터씩 빙판길이 이어지고, 경사도는 거의 70도를 넘을 것 같은 비탈길이 계속하여 이어진다. 하나의 비탈길을 올라서면 또 다른 비탈길. 그 비탈길을 올라서면 또 다른 비탈길이 계속하여 이어진다. 지리선녀도 아내도 결국은 한번씩 위험하게 넘어지는 고비를 넘긴 후, 약 1시간의 오름질 끝에 간신히 정상에 오른다.

  

   정상에 올라서자 멀리 용담댐과 덕유산의 줄기가 그림처럼 다가선다. 아름답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멀--리, 언제 보아도 특이한 마이산도 두 귀를 쫑긋 세우고 바라본다. 막판의 힘든 오름질 끝에 오른 정상이라 그런지 풍경이 더 멋있어 보이는 것 같다. 사방을 한바퀴 죽 둘러서 가슴에 담아두고, 얼른 라면을 끓여 이제 늦은 점심을 먹는다. 산에 오면 편의상 컵라면을 먹을 때가 많지만, 산정상에서 끓여 먹는 라면 맛은 언제 먹어보아도 맛이 좋다. 거기에다 정상주로 쓴소주 한 잔. 캬---소리와 함께 연거푸 술잔이 오간다.

  

   약간 과하다 싶을 정도의 정상주를 마신 후, 이제 천황사쪽으로 하산을 시작한다. 하산길 능선에 들어서자 지나온 구봉산의 암봉들이 한 눈에 고스란히 들어온다. 그런데 암봉 하나 하나를 넘을 때는 참 높고 위험한 암봉들을 넘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었는데 정상에서 보는 암봉들은 굉장히 낮아 보인다. 마치 커다란 고난을 이겨내고 바라보는 자잘한 일상의 고통들처럼---하찮아 보이기까지 한다.

  

   아! 산다는 것이 저와 같은 것이구나! 슬픔도, 고통도, 아픔도, 지나고 나면 저렇게 빛바랜 풍경 사진 한 장처럼 무덤덤하고, 사소해 지는 것을---

     

   약간은 씁쓸해진 마음을 안고 바람재에서 본격적인 하산길로 접어든다. 하산길도 엄청난 비탈길이긴 마찬가지다. 오름길에서 넘어지며 무릎을 찌은 아내의 하산길이 무척 힘들어 보인다. 조심조심 얼어붙은 하산길을 힘들게 1시간여 내려와 산행을 마친다.

  

   하산지점에 내려오자 비로소 구봉산의 암봉과 천황봉이 한 눈에 들어온다. 산행을 다 마쳐야 자신의 모습을 온전히 보여주는 구봉산. 인생길을 다 마치고 나면 나도 저처럼 한 폭의 풍경으로 삶을 담아낼 수 있을까---그럴 수 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양명마을에서 본 구봉산 암봉)



  

(1봉과 2봉 사이 오름길에 본 암벽들)


 

(1봉)
 

(지나온 암봉들)


 

(천황봉 오름길의 고드름)


  

(구봉산 정상)


 

(정상에서 본 용담댐)


  

(하산길에 본 구봉산 암봉)


 

(하산길에 본 구봉산 정상과 암봉들)


 

(마이산 방향 능선들-멀리 희미하게 마이산이 보인다)


 

(하산하여 본 구봉산 암봉들)
 

(하산하여 본 구봉산과 암봉들)


 

(상양명마을에서 본 구봉산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