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날 한옛날 그럭저럭 40여년전

대학입학시험을 치른 그해 한겨울

무작정 청량리역으로 나가 강원도로 가는 밤열차를 탔습니다.

밤10시40분 발 강릉행 중앙선 열차

  

생각으로는 하룻밤 숙박비를 아끼자는 갸륵한 마음도 있었지만

밤열차 한 번 타보자하는 호기심이 더 컸습니다.

  

참, 기차표.

잘은 모르겠지만 당시 철도청 직원에게는 기차 탑승권이 정기적으로 나왔다고 합니다.

다행히 친구녀석의 부친께서 철도청에 근무하고 계신지라 그러한 귀한 정보를 입수하고

친구녀석을 사흘밤 나흘낮을 쉼없이 꼬디겨 구한 왕복기차표였습니다.

  

요즈음 이 나이에도 먼 산을 갈라치면

누구누구랑 함께 간다는 둥 또는 산에서 결코 잠자는 일 없이 그 날로 돌아오겠다는 둥

새빨간 거짓말을 하고 슬그머니 달아나곤 하지만 그 당시라고 별 수 있었겠습니까?

아마도 친구와 함께 겨울 바다를 보고 오겠다고 거짓말을 했을 겁니다.

 

헌데 그 친구녀석이 내가 며칠째 돌아오지를 않자 더럭 겁이 나서

"사실은 혼자 설악산엘 갔습니다" 라고  집에 고자질을 해버리는 바람에.......

나중에 집에 돌아와 "으-------악"

소위 작살이라는 것이 났습니다. 어머니한테.......

  

하늘나라에 계신 어머니는 지금쯤 무얼하고 계실까.

  

여하튼

지루하고, 지리하고, 지겨운 밤기차를 타고 강릉역에 도착하니  

한 겨울, 한 추위,  한 밤중 새까만 새벽 5시인가 6시인가.

강릉역 앞 붉은 백열등만이 희미한 광장으로 나오니 남들은 다들 제갈길을 찾아 떠나버렸는데

나 혼자만이 어두운 광장에 떠억하니 서서 오갈데가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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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참, 그 황당함이란 참으로........  

지금도 가끔 그때의 그 황당함이 꿈 속에 나타나곤 합니다.

머물곳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행복하다는 진리(?)를 그때 깨우쳤습니다.

  

속초가는 첫차를 타도록 어디를 어찌 돌아다녔는지는

지금 기억나지 않지만  어쨋던 첫차를 타고 속초라는 항구마을을 향해......

꼬불 꼬불 아슬아슬한 산길 외길 비포장길에 흙먼지는 하얗게 피워오르고

오른쪽 차창 밖으로는 세상에 태어나 처음 대하는 동해의 푸른 바다가

놀라움과 두려움으로 가득 채워져 넘실대고 있었습니다.

  

아, 그리고 쉼없이 밀려오는 그 하얀 파도.

  

첫 경험!

  

어찌 그 첫경험을 잊을 수 있을까.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만을 보고 20여년을 살아온 자에게

동해의 푸른 바다와 하얗게 밀려오는 파도는 실로 경이의 세계였습니다.

요즘이야 강원도 동해바다 3시간이면 다가갈 수 있어 그까짓것이 되어 버렸지만.....

------ 다시는 볼 수 없는 동해바다------

  

얼마를 시외버스는 달려 지금의 해맞이 공원앞에 내립니다.

산첩첩 산첩첩으로 둘러쌓여 서너채 쓰러져 가는 민가뿐이었던 곳

바닷가 돌제방아래에서는  갈매기들이 떼 지어 오르내리고 있었습니다.

  

설악동까지는 반드시 서너시간 걸어서야만이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마냥 걸어 설악동 민박마을에 도착하니 벌써 해가 뉘엿뉘엿 서산을 향하는 오후

민박집에 짐을 풀고 앉았자니 민박 아주머니 다가와 내일은 어디를 갈거냐고 묻습니다.

  

설악산에를 왔으니 당연히 신흥사을 지나 계조암, 흔들바위를 거쳐 울산바위를 올라가야 겠지요.

해서 울산바위를 오를 겁니다 했더니

아주머니 펄쩍 뛰십니다.

  

어제, 그러니까 내가 도착하기 하루전 성균관 대학교 학생 한명이 나처럼 혼자 와

울산바위를 올라갔다가 바위아래로 떨어져 죽었는데 아직도 시신을 못찼았다는 겁니다.

그러니 학생도 계조암까지만 올라갔다가 내려오라고 신신당부를 하시는겁니다.

  

한참을 망설이다 그러겠습니다하고 대답을 하고 다음날 아침,

도시락을 싸주시는 아주머니의 신신당부를 또 한 번 들은 후

쇠락한 신흥사을 지나 덩그러니 낡은 암자 한 채로 버티는 계조암을 거쳐

울산바위를 오르는 낡은 철계단 앞에 섰습니다.

  

어젯밤사이 눈이랄 것도 없는 눈이 내려 철계단을 살짝 덮었는데

발을 디뎌 보니 미끄럽기가 그지 없습니다.

하지만 한 점 망설임도 없이 소위 겁대가리 없이 철계단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어제 울산바위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성균관대생에 관한 아주머니의 말씀이

간혹 뇌리에 떠오르기는 했지만 그건 그거고......

  

미끄러운 철계단을 억지로 억지로 철봉에 의지하며 겨우겨우 울산암 꼭데기에 올라섰습니다.

와---

4방, 8방, 16방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둥근 철제봉으로 울타리를 해놓은 울산암 꼭데기에 드디어 올라섰습니다.

동해바다가 멀리 내려다 보이고 코 앞엔 대청봉이 떡하니 버티고 서있고

(당시에는 대청봉엔 사람이 못올라 가는 곳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엄청나게 커다란 바위덩어리가 우뚝 세워져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신비로울 뿐이었습니다.

  

더우기 그 엄청난 바위덩어리의 꼭데기 위에 올라섰으니 그 감격이야

뭐라 표현할 수 있었겠습니까.

떨어져 죽었다는 성균관대생은 관심밖으로 멀어진지 이미 오래이고

16방으로 머리를 돌리느라 정신을 놓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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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가 터집니다.

  

눈으로 만족치 못하고 사진기(Petry 7S)를 꺼내어 캡을 여는 순간, 그 순간, 

똑딱이 캡이 떨어지며 울산암 절벽바위 아래로 떨어져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본능적으로 캡을 주우려고 구부리는 찰라,

 

갑자기 불어닥친 강풍과 살짝 덮힌 눈에 미끄러져 몸을 가누지 못하고

넘어져 버리고.........

 넘어져 버리고..........

한바퀴정도 굴렀을까...............?

이렇게 죽는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떨어질 때의 기분은 어떨까하는

궁금중이 뇌리를 스쳐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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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다행히 울산바위 꼭데기에 설치된 철제봉이 허리를 붙안아 주었습니다.

휴---------------------

그래서 그 이후 40여년을 이렇게 살아있는 것입니다.

  

먼저 떨어져 죽었다는 그 성균관대생이 함께 가자고 기다리고 있다가

내의 사람됨됨이를 보니 함께 갈 위인이 되지 못해 혼자 왔드시 혼자 가 버린 듯 합니다. 

  

넋을 놓고 내려와 민박집 아주머니께 아무런 일도 없었던듯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인사드린 후

속초시내(랄 것도 없는 지저분하고 생선 냄세 가득한)에 나와

술에 취해 2,3일간을 돌아다닌후 가방을 열어보니 푸라스틱 빈술병만 가득합니다. 

  

떠돌이 아코디온 악사를 만나  함께 서울행 기차를 타고 돌아오며

그에게서 얻어먹은 김밥은 근 사흘만의 식사였고

(돈이 없어 맛대가리 없는 짝퉁 삼립 크림빵을 가방에 올려놓고 겨울 볕에 말려 먹었기 때문에)  

역시나 술에 취해 잠들어 깨어 보니

제천을 지나........

그 떠돌이 아코디온 악사는  제천에서 내렸답니다.

  

옛날 옛날 한옛날의 잃어버린 기억들......

오랫만에 옛날 책장 정리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40여년전의 먼지 가득 쌓인 

설악산 관광기념 사진첩

  

  

  

그 속에 들어있는 옛 봉정암의 모습

  

  

  

오색암지의 옛 모습

 

  

  

더불어

이 먼지 가득쌓인 사진첩이 타임켑슐이 되어

40여년전의 시간을 꺼내어 보았습니다.

히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