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화순군/ 산과 절과 정자와 문화유산 이야기


옛날에 운주사(雲住寺)를 다녀왔지만 그곳이 화순(和順)에 있다는 것을 몰랐다. 관광버스를 따라 다녔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 7시에 ‘한국산하’ 모임 따라 ‘화순한마음산악회’의 초청을 받아 화순(和順)을 향하면서도 옛날에 다녀간
운주사(雲住寺)가 있는 화순(和順)이라는 것을 모르고 왔다. 산악회 버스를 따라왔기 때문이다.
작년에 무등산에 갔다가 규봉암에서 하룻밤을 잘 때도 그랬다.
그 산 아래 별들처럼 반짝이는 마을이 이제야 생각해 보니  지금 내가 온 화순(和順)임을 비로소 알겠다.
운주사를 보고도 화순을 몰랐고, 무등산을 오르고도, 그 규봉암, 입석대가 화순에 있는 것을 까맣게 모른 것은 왜서일까?
광주를 보고도 그 바로 옆에 화순을 모르는 것과 같은 이치다.
큰 것이나 유명한 것 옆에 있는 것은 언제나 그 그늘에 가려서 잊혀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출처: 물안개님 사진
화순(和順)에 와서 보니 우리 ‘한국산하’뿐 아니라 전국 12개 지역 산악동호인 600 명이 모후산(母后山, 918m)으로 초대되어 등반대회 및 자매결연 행사를 갖고 있었다. 
화순산악회에서는 '산악회 간의 정기교류 산행을 통해서 화합의 장을 만들면서, 전국 각 지역문화를 보고 배우고 익혀 국가 발전에 이바지하면서 아름다운 우리의 산을 가꾸고 보존하자는 것이 목적'이라지만 그보다 국민들이 잘 모르고 있는 화순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려 지역발전을 기하자는 뜻이 먼저인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이 기회에 '화순(和順) 사람들이 얼마나 행복한 고장을 고향으로 삼고 살고 있는가 '하는 것을 나그네의 눈에 대로 비친 ‘I Love 화순!’의 이모저모를 이야기 하려 한다.
이것은 그분들이 불러주고,  일용하던 음식과 술과 정성스런 선물 등으로 베풀어준 온정에 보답하기 위해서, 그리고 화순(和順)을 찾아간 갈, 앞으로 찾아갈 우리들을 위해서다.
그러나 더 솔직히 말해서 어제 나는 거창에서 불원천리(不遠千里)하고 나를 찾아온 S 시인(詩人)과 과음을 한 후 새벽에 갑자기 일어나 등산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은체 왔기 때문에, 모후산 '철철바위'에서 뒤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정상을 밟아보지 못한 이런 이유로 해서 모후산 이야기는 다른 분에게 미루고 화순의 전반적인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화순 읍내도 가보지 못한 이 눈으로 화순(和順)의 무엇을 말할 수 있으랴.
그래서 '전국 산악동호인 초청 등반대회'장에서 화순군(和順郡) 군 당국으로부터 받은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곳’ 이라는 관광책자 사진을 통하여 화순(和順)을 이야기 할 수밖에 없음을 고백한다. 게다가 그 모임에서 찍은 적지 않은 나의 사진들이 카메라 메모리카드의 고장으로 인하여 허무하게 날아가 버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 화순군의 산들
 화순(和順)은 전남 중앙부에 위치하여 있는 해발 400m~900m의 산악지대에 있는 군(郡)으로, 북쪽으로 도청소재지 광주와 접해 있어서 광주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은 780.95 ㎢의 땅에서 인구 8만이 사는 작은 군(郡)이다.
그러나 화순에는 무등산(1,187m)의 3대 절경 중에 하나인 입석대와 ‘규암을 보지 않고는 무등산을 말하지 말라’는 그 무등산의 절경인  규암도 화순에 있는 산이다.
우리가 오늘 오르기로 한 화순의 진산(鎭山) ‘모후산(母后山)’은 백운산(1,218m), 무등산(1,1,187m)에 이어 전남에서 3번째로 높은 산이다.
화순의 자랑 중에도 그중의 하나가 무엇보다 산이니 먼저 산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무등산 이야기:
 도립공원이면서 국립공원 승격을 꿈꾸고 있는 무등산은 광주광역시와 담양군 그리고 화순군에 걸쳐 있는 산이다.
지도를 통하여 무등 산의 최고봉 천황봉(1,187m)과 거기에서 시작하는 인왕봉, 장불재 등이 광주시와 화순시 경계 능선 상에 있고, 무등산 최고의 절경이라는 '4대 석경(石景)' 중 서석대를 제외한 입석대, 광석대, 규봉의 선돌(삼존석)이 화순에 있다.

그뿐인가 그 유명한 너덜 중 지공너덜도 화순에 있다.
백운대가 서울 아닌 고양시에 있듯이, 지리산 천왕봉이 전남 아닌 영남에 있듯이 말이다.
그중 입석대는 서석대, 광석대와 함께 '무등산의 3대 절경'으로 10~15m의 돌기둥 수십개가 반원형으로 둘러서 있는 곳이다.
내가 작년에 하룻밤 유하고 온 규봉암은 신라의 고승이며 한국의 불교계의 거두인 도선대사, 보조국사, 지눌, 진각국사, 혜심 스님 등의 수행터인데 그곳이 바로 화순에 있는 명소인 곳이다.

  -백아산(白鵝山, 805m) 이야기:
 백아산은 화순군 북면에 있는 경관이 수려한 명산으로 봄이 오면 철쭉꽃이 만발하는 장관을 이루는 산이다. 백아산이 특히 아름다운 것은 그 정상 부근의 그 험준한 암벽 위에 솟아 있는 수려한 흰 마당바위봉 때문이다.
그 모습이 흰 거위가 앉아 구름 속에 움직이고 있는 것 같이 보여서 흰 ‘白(백)’, 거위 ‘鵝’(아) 白鵝山(백아산)이라 한 산이다.

 -옹성산(甕城山, 572m) 이야기 :
 높이로 산의 진가를 따진다면 옹성산(甕城山)은 572m로 야산에 해당하지만, 그 산의 기암괴석(奇巖怪石)만으로도 명산의 반열 위에 서게 하는 것이 옹성산(甕城山)  같은 산이다.
옹성산 정상을 보라. 항아리를 엎어 놓은 바위 같지 않은가.
그 형상으로 보아 항아리 ‘甕’(옹), 성 ‘城’(성)이라 하여 옹성산(甕城山)이라 이름 한 산이다. 튼튼하고 굳은 성을 ‘鐵甕山城’(철옹산성)이라 하니 그말의 준말이 옹성(甕城)이다. 고려 말 왜구의 침입을 방비하기 위한 철용산성이 거기에 있어 이 산은 단순한 산이 아이라 국토수호의 역사적인 탐방 코스의 산이기도 하다.
'오성산의 갠 하늘의 달을 바라본다'는  오성제월(烏城霽月)은 산으로 화순팔경(和順8景)의 하나를 칭하는 말이다. 옹성산의 새벽 종소리를 옹성효종(甕城曉鍾)이라 하여 이 또한 동복 8경(同福8景)의 하나가 되는 산이 옹성산이다. 


  아름다운 꽃들이 모여 살듯이 화순 옹성산의 미는 화순적벽(도 기념물 제60호)으로 이어진다.
옹성산의 적벽은 그 아래 동복호에 발을 담구고 백두산 천지와 같은 환상적인 모습으로 서 있다. 그 절경이 중국 삼국지에 나오는 적벽 같다하여 그 이름을 취하여 화순적벽(和順赤碧)이란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

이 이서 적벽이란 이름은 기묘사화(己卯士禍) 때 조광조 무리로 몰려 동복호에 적거(謫居) 중이던 신재 최산두(新齋 崔山斗)가 중국 적벽에 버금 가는 곳이라 하여 명명한 것이다.

아름다운 자연이 더 아름답게 되는 것은 자연이 인간을 만나 인공과 조화를 이룰 때다.  아곳은 방랑시인 김삿갓이 생을 마감한 곳이요, 이조 3대 가객의 한 분인 송강 정철(鄭澈)과 같은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찾아들던 삼남(三南)의 승경(勝景)이기도 한 곳이다.
'적벽에 비친 저녁노을'을 적벽낙조(赤壁落照)이라 하거니와 이는 옹성산의 아름다운 경치를 말하는 동북8경의 하나라는 말이다.  

*. 화순의 정자들

 정자(亭子)란 경치가 좋은 곳에 사방을 둘러 볼 수 있도록 기둥과 지붕뿐 벽이 없는 놀이공간이다.
마루바닥을 지면에서 한층 높게 다락식으로 지은 집이 정자다. 그 정자가 한 차원 높아지면 대(臺)가 된다. 은밀대, 경포대 태종대가 그러한 것이다.
그러나 그 정자는 아무데나 있는 것이 아니다. 산과 물이 어울어진 곳에 짓는 한국 특유의 자연미의 일부인 것이다. 
  산악의 고장이라선가.  화순에는 강과 호수가 많다. 
 동복호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물염정, 망향정이다. 능주면의 영벽정도, 예성산 기슭의 송석정도 다 그러한 정자들일 거다.
  그 정자 중 환산저수지를 굽어보는 것이 환산정(향토유산 제35호)이다.
조선조 병자호란 때 의병장 백천 유람 선생이 청나라에 항복하는 나라님 인조의 모습에 비분강개하여 고향에 내려와서 은거하기 위해서  충절로 지은 정자다. 서암 절벽과 호수 위에 비친 물그림자가 한폭의 그림 같은 정자다. 그 정자 하나하나를 보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 인구 8만의 작은 고을에 정자가 왜 이리 많을까?
화순(和順)이란 말은 온순하고 순하다는 말이다. 온순(溫順)이란 말은 고분고분하고 양순하다는 말이다. 양순(良順)하다는 것은 어질고 순하다는 말이니 화순이(和順)이란 말은 고분고분하고 어질고 순한 인정많은 사람들이 사는 고장이란 말이다.
예로부터 화순(和順)은 그런 선비들이 사는 고장이요, 그런 선비들이 찾아드는 고장이기 때문이었으리라.

*. 운주사의 천불들

 화순에는 천탑(千塔)과 와불(臥佛)로 유명한 사적 제 312호의 운주사도 있지만 그보다 더 유명한 쌍봉사가 화순군(和順郡) 이양면(梨陽面) 계당산(桂棠山)에 있다.
이 쌍봉사 대웅전(보물 163)은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목조탑 형식을 취하고 있는 희귀한 양식의 건물이지만 1984년에 화재로 아깝게도 소실되고 다시 지은 당우이다. 그러나 절 경내에 있는 팔각원당형의 철감선사탑(국보 제57호)은 그 옆에 있는 쌍봉사철감선사탑비(보물 제170호)와 더불어 그 조각의 화려함과 정교함이 한국 탑 미의 극치를 보여주는 한국 최고의 부도(浮屠) 중에 하나다.
이 부도의 주인공은 쌍봉 도윤(道允)으로,  당(唐)나라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창건한 절로 도윤 스님의 법호를 따서 쌍봉사라고 한 사찰이다.

*. 운주사(雲住寺) 이야기

  운주사는 전라남도 화순군(和順郡) 천불산(千佛山) 기슭에 있는 천불(千佛) 천탑(千塔)이 있는 사찰로 운주(雲住)라는 스님이 지었다는 절이라 하여 운주사(雲住寺)라고 하지만, 운주사(運舟寺)라고도 하는데 이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전하여 온다.
 -천불산에 있으니 좌우의 산등성이에 있는 석불과 석탑이 각각 1000개씩이다.
영암출신인 신라의 고승 도선대사(道詵大師)는 한국의 지형을 배[舟]로 보았다. 그 배의 선복(船腹)에 해당하는 호남 땅이 영남보다 산이 적어서 그대로 두면 배가 호남 쪽으로 기울 것 같았다. 도선대사가 이를 염려하여 노(櫓)의 위치인 이곳에 하루 동안에 천불천탑(千佛千塔)을 도력(道力)조성하여 놓았다.

 이 절 근처 춘양면에 그 전설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돛대봉이 있어 신기하기가 그지없다.
옛날 사람들은 이 탑들을 영험하다고 믿고  그 부처의 코를 갈아 먹으면 아들을 낳는다고 하여서 천불천탑이 수난을 당하는 바람에 현재는 석탑 12기, 석불 70기만 남아있을 뿐이다.
그 탑들보다 더 유명한 것이 운주사의 와불(臥佛)이다.
이 와불은 실크로드를 여행 시에 돈황에서 보던 석가의 열반상(涅槃像)이 아니라 불상을 만들고 세우려다가 무슨 일로인지 세우지 못하고 중단한 불상이다. 그러니까 누운 불상이 아니라 세우지 못한 불상이다.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화순 지석묘군

 화순군 북면 서유리에는 고인돌 유적지가 있다.
약 1억년 전의 육식 공룡과 초식 공룡의 발자국들의 발자국들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화순군 서쪽의 효산리, 대신리 일대에 있는 고인돌유적지(사적 제 410호)는 세계문화유산 제977호로 지정된 고인돌군이다.

 이집트 아스완 땜을 가면 오베리스크 채석장이라는 곳이 있다. 그중 미완성 오베리스크는 만들다가 세워놓지 못하고 그대로 둔 이집트의 문화유산을 보면서 얼마나 부러워하였는지-.. 그런 세계유산이 우리나라 전남 화순  일원에도 있다.

화순 보검재(보성재) 계곡 56km의 일대에 596기의 고인돌과 이를 만들었던 고인돌 채석장이 바로 그것이다.
세계에 고인돌 유적지는 몇 있으나 고인돌을 만든 채석장이 발견된 것은 세계 역사에 드문 일이다. 이는 화순의 자랑을 넘어서 우리나라 아니 인류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호남에만 이상하게 없던 온천이 최초로 발견 된 것이 화순의 도곡온천이요 게다가 이듐 온천인 화순온천이 더해 진다,

 나는 화순 모후산(母后山)에 서둘러 왔다가 정상(頂上)을 밟아보지 못하였지만, 1,000년 잠을 깨고  일어나려는 화순인(和順人)의 몸부림을 아름다운 산과 정자와 세계유산 속에서 보았다. 그리고 우리가 도시를 살며 잃어버리고 찾아 헤매던 잊지 못할 정(情)을 화순에서 만난 것이다.
그 자랑스런 화순(和順)을 고향으로 사는 사람들에게 시조 한 수 바치고 싶다.

화순 군민(和順 郡民) 에게


운주사(雲住寺) 다녀오고도 화순(和順)을 몰랐다.
입석대(立石臺), 규봉암(圭峰庵)을 올라서도 화순(和順)을 몰랐다.
화순(和順)의
인정(人情)을 만나고야
화순(和順) 것임을 알았다. 

쌍봉산(雙峰山) 대웅전(大雄殿)  닮은 속리산(俗離山) 팔상전(八相殿) .
고인돌 채석장(採石場)과 화순(和順)의 지석묘(支石墓)가
세계의
문화유산(文化遺産)임을
화순(和順) 와서야 알았다.

이제는 화순(和順)을 아노라 말하리라.
무등산(無等山) 참모습을 화순(和順) 와서야 만났다고.

화순군(和順郡) 
그 옆에 있는 도시가

빛고을 광주(光州)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