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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산꾼 가리왕산을 지키는 견신(犬神)들을 만나다!




산행일시:2006년 12월 24일 일요일 오전 10시 30분 출발~오후 5시 하산 완료

산행코스:강원도 정선군 가리왕산 자연휴양림 심마니교 기점 가리왕산 상봉(해발1,561m)왕복코스

산행팀원:아빠와 나(천지인, 초등학교 4학년)




새벽 해가 뜨기 전에 집에서 출발했다. 아빠가 스키시즌이라 영동고속도로가 막힐지도 모른다고 했다. 중간에 휴게소에 들르니 스키나 보드를 실은 차들이 많았다. 고속도로는 다행히 크게 막히지 않았으나 고속도로를 나와 새말이란 곳부터 안흥, 평창을 지나는 도로는 눈이 갓길 쪽에 그대로 있는 구간(결빙주의!)이 많아 조심스레 지나왔다. 가리왕산 휴양림에 도착하여 주차할 곳을 찾아 주차를 하고 산행갈 준비를 마치고 나니 오전 10시가 조금 넘었다.

아빠가 겨울산행 출발치고는 좀 늦은감이 있다고 하셨다. 그래서 산행코스를 수정해서 가리왕산 정상을 왕복하는 코스로 정했다. 혹시 기상악화로 어둠이 예상보다 일찍 찾아 오면 그래도 지나온 길을 그대로 돌아오는 길이 안전할 것이라고 하셨다. 매표소를 통과할 때 오늘 등산하러 이곳을 지나간 차량은 대략 두어 대(나머지는 휴양림 이용객들)라고 하는 것을 들었다. 지난 11월에도 장구목이 기점으로 가리왕산을 등산하러 왔었지만 그 땐 산불방지기간이라 입산통제한다고 해서 꼭대기오름을 다음 기회로 미루었던 적이 있었다. 
지난 11월 초 장구목이입구



이제 출발이다.

낙엽이 아주 두껍게 쌓여있다. 눈은 거의 녹아있다.



조금 올라가니 녹지 않은 눈이 군데군데 남아 있었다.



어은골임도에 도착해보니 눈길위로 무언가 차가 지나간 흔적이 보인다. 여기부터는 눈 반 낙엽 반이다. 게다가 남향의 겨울햇살에 녹기 시작해 아주 미끄러웠다. 아빠가 아주 걱정하시는 눈치다. 해빙기(겨울이 지나 눈이나 얼음이 녹을 때)에 산행하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는데 아마 그와 비슷한 느낌이 아닐까하고...눈은 겉에만 눈이고 그안엔 물기를 잔뜩머금은 낙엽, 그 밑엔 이미 질퍽거리는 진흙이 되어버린 상태다. 등산화가 금방 진흙 낙엽 범벅이 된다. 미끄럽다고 준비해간 아이젠을 차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조금더 오르니 이제 땅바닥이 온통 은빛이다.



이렇게 눈이 쌓인 상태(스틱으로 찔러보니 대략 40cm정도 적설량)로 정상까지 오른다.

"아이젠을 찰까?"하고 아빠가 말씀하시는데, "미끄럽지만 그냥 가요."라고 했다.

...

마항치 삼거리를 지나 상봉에 오르니 사방이 탁트인다. 정말 멋진 경치다. 그리고 산이 아주 묵직하다고 느꼈다. 개미가 코끼리 등을 타고 오르니 따분하고 지루했을 수 있는데 막상 등에 오르니 세상이 다 보이는 것 같고 주위의 산들이 여기 정상부를 우러러보는 것 같았다.











그런데 뜻밖에 여기서 개를 두 마리 만났다. 누군가 데려온 개는 아니고 이 가리왕산을 찾는 산님,산꾼들에게 벗이 되어 주는 가리왕산의 견신(犬神)이 아닐까 생각해봤다. 아빠는 문득 지리산의 방사 반달곰 얘기를 하시며 등산객들의 호의(먹을것을 나눠줌)에 기대어 따라 다니는 개들일 수도 있다고 하셨다. 아마도 집을 나와 지금은 개주인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고 하셨다. 그들은 한번도 우리에게 공격적으로 다가오지 않고 계속 꼬리를 흔들었다. 이 산꼭대기에서 개를 두 마리씩이나 만나다니...한동안 설원에서 이름모를 개들과 함께 놀았다. 임시로 이름도 붙여줬다. 갑돌이와 을순이(암,수 확인을 정확히 하진 못했지만)라고...





갑돌이와 을순이는 우리가 하산완료할 때까지 끝까지(휴양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따라왔다. 조금 앞서가길래 아빠가 휘파람을 세게 부니 금방 앞에서 달려왔다. 그리곤 또 우리랑 함께 걸음을 내딛었다. 아이젠도 차지않은 우리는 미끌미끌 조심스레 내려오는데 개들은 평지에서처럼 잘 달렸다.

우리는 매우 즐거웠다. 전혀 심심하지 않게 내려올 수 있었다. 오후 4시가 조금 넘으니 이 커다란 산에 더 이상 오르내리는 사람이 없었고 해가 저 서쪽능선 너머로 넘어가 산에 어두운 그림자가 지기 시작했으나, 이 견신들과 함께 내려올 수 있어서 별 걱정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견신들은 우리가 휴양림 근처에 다다랐을 때 다시 산속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휴양림여기저기에서 우리들 말고도 인기척이 나기 시작했다. 그게 아쉬워 아빠가 휘파람을 크게 불었더니 좀 있다 모습을 드러내었다. 하지만 이제까지와는 달리 우리한테 아주 가까이 다가오지는 않았다. 이제는 헤어져 돌아 가야할 시간임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아쉬웠다. 내가 반가움과 고마움의 표시로 남은 간식을 주려고 다가가니 견신들은 점점 산쪽으로 뒷걸음쳤다. 더 이상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 추운 겨울산 어디에서 지내려고 돌아가나...이제 거의 어둠의 세상이 되었다.

잘 돌아가 가리왕산의 견신들이여~~~~!!!!

인연이 있으면 또 만나자~~~~!!!!

산행은 무사히 잘 끝났다.


올가을부터 우리나라 여기저기에 있는 산을 다녀왔다. 한라산(1,950m), 지리산(1,915m), 설악산(1,708m), 덕유산(1,614m), 계방산(1,577m), 함백산(1,573m), 태백산(1,567m), 오대산(1,563m) 등의 정상을 다녀왔다.

그리고 ‘우리나라(남한)에 있는 주봉기준 해발1,500m이상 고봉들 모두오르기(일명 1,500프로젝트)’의 마지막을 이 가리왕산(1,561m)으로 계획하였는데(사실은 12월 15일까지 산불방지기간이어서 어쩔 수 없이 맨 나중으로 미룸), 눈과 낙엽 진흙 때문에 산행길이 미끄러워 무척 힘이 들었지만 그들(견신들, 갑돌이와 을순이)을 만날 수 있어서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그리고 초등학교 4학년의 한산꾼이 계획한 ‘1,500프로젝트’를 무사히 마치게 되어 다행으로 생각한다.


올가을부터 올라간 산들.



여러 가지로 부족한 산행기를 읽어주신 모든 분들게 감사드립니다.

여러분 모두 즐거운 산행하시고 건강하십시오.

미리 새해 인사 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06년 12월 25일

어린이산꾼   천지인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