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적도(德積島) (2) / 덕적도 종주산행

*. 덕적도 국수봉
 

1박 2일의 우리들 덕적도 여행의 오늘 숙소는 벗개(拔盖) 마을 인(印)선생 돌담집이다.
우리는 여기서 숙식 모두를 인 선생 내외의 정성에 신세를 졌다..
섬 마을이라서 식당은 물론 구멍가게 한 곳도 없는 곳이라서 그 찬거리를 서울에서 미리 준비해오신 모양이다.
우리들의 일정에는 이 섬의 최고봉인 국수봉(國壽峰: 314m)이 빠져서 홀로라도 국수봉에 가고 싶었다.
다음 날 4시에 일어나서 나 홀로 해드 라이트(head light)를 켜고 국수봉(國壽峰)을 향해 나서려는데 동내 개 한 마리가 나를 보고 반색을 한다.
멋진 누런 털옷을 입은 놈인데 크기로 보면 다 큰 개지만 사람을 따르는 것을 보니 7개월쯤 된 강아지 같다. 어떤 분은 정을 몹시 그리워 하는 개 같다고도 하였다.
“누렁아, 나와 함께 국수봉에 가지 않을래?”
누렁이가 반가와 하며 내 앞장을 선다. 낯선 고장 초행길을 꼭두새벽 캄캄칠야에 나서다 보니 으시시 한데 함께라니 든든하다.
서둘러 나오다 보니 준비해온 지도(地圖) 한 장 챙기지 못하였지만 그냥 가기로 하였다.
군자지대로행(君子之大路行)이란 말대로 우리는 큰길을 따라 언덕길을 오른다. 가다보면 그 입구가 나올 것 같아서였다. 아스팔트 위에 '쑥개선착장’이란 이정표가 흰 페인트로 커다랗게 쓰여 있다.
덕적도 지명에는 ‘쑥개’란 말처럼 생소한 순우리말이 많다.
우리의 숙소가 있는 벗개’(拔盖) 마을, ‘밧지름해변(農田路海邊)’, ‘능동자갈마당(陵東小石子)’이나 소야도의 ‘메뿌리해변(群根海邊)’ 등등.
주민들에게 그 어원을 물어 보았지만 아무도 아는 이가 없었다.
나는 국문학을 전공한 사람인지라 어원(語源)에 대하여 어느 누구보다 민감하여 어떻게라도 밝히고 싶었다.
그러다 ‘옹진군 관광 안내도’  관광책자에 중국인 관광객을 위해 간체자(簡體字)로나마 표기된 것을 발견한 기쁨이란.
한자는 표의문자(表意文字)라 한자어라면 대충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지명의 유래를 모르고 살고 있는 지역 주민에게 이를 밝혀 준다는 것은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가.
그래서 간체자 연구를 위한 ‘중국어 한자읽기 사전’을 구입하여 내 나름대로 고심하며 그 한자어를 위와 같이 ( )애 한자로 소개하였다.
‘쑥개(篙村)’는 옛날에 조기어장으로 유명했다는 어항의 순우리말 지명인데, 이를 ‘篙村'라 하는 모양이다.'篙’(고)는 ‘삿대’란 뜻이다. ‘개’를 ‘村’(촌)으로 표기 한 것을 보면 ‘갯마을’을 말하는 것 같다. 그래서 ‘쑥 들어간 갯마을’로 생각해 보았는데 그게 아니라 ‘삿대갯마을’인 모양이다.

숙소에서 한 30분 올라니 ‘벗개(渠盖)고개 ’다. 그 좌우에 이정표가 나를 기쁘게 한다..
고개 왼쪽은 이 섬의 최고봉인 ‘국수봉’(國壽峰: 312.7m)‘을 가는 길(1km)이요, 오른쪽은 조반 후에 우리들이 함께 가기로 한, 섬에서 가장 전망이 좋다는 ’비조봉(飛鳥峰: 292m) 가는 능선 길(3.6km)이었다.
‘벗개(拔盖)'고개’의 ‘拔(발)은 '뺄' , 개(盖)는 덮을 '개' 자이니 물을 빼고 개를 덮는다는 뜻으로 '벗개저수지' 근처의 간척지와 관계 있는 지명 같다. .
다음은 이와 관계있는 말을 함께한 고바우 이형태 회원이 오늘 아침 벗개저수지에서 만난 이곳 주민에게 들었다는 이야기다.

“옛날 이 마을 섬사람들은 아주 가난하게 살았답니다. 그때 미국인 선교사 신부인 최 xx이 있어 지금의 벗개저수지인 국수봉산림욕장 근처의 만(灣)을 막으면 몇 십만 평의 농토를 간척할 수 있어 농사에 큰 도움이 된다하며 미국의 원조를 받아 막았다 합니다.”


그 일과 연관하여 보면 ‘벗개’란 지명은 바닷물을 빼고 갯벌을 덮어 간척했다는 위의 해석이 분명하다.. 
‘벗개고개’서 시작한 국수봉은 육산 길인데 들머리에서 30여 분 이상을 지나니 날이 점점 밝아오지만 나무에 가려 좌우 전망이 전혀 없더니. 우측 바다 소재해변(素材海邊) 쪽에서 불빛이 나뭇가지 사이에서 보이기 시작하고 뱃고동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가는 길에는 이정표는 물론 리봉도 쉬어갈 의자 하나 보이지 않은 비정의 등산로였다.
‘아아, 그래서 그랬구나! 이 섬의 최고봉인 국수봉이 주 등산로가 아닌 것이. 좌우의 조망이 이렇게 없을 수도 있는가.'.
누렁이는 항상 나보다 5m 정도 앞서 가다가는 뒤돌아서 나를 기다리다가 다가오는 나를 확인하고 다시 앞서 달린다. 
어려서도 그랬지만 단독 집에 살 때에는 나는 언제나 개를 키우며 살았다.
아파트에 이사 온 후 견공과 함께 하지 못하는 신세가 된 것은 오로지 개를 질색하는 아내 생각 때문이었다.
옛날에 키우던 진돗개를 두고 이런 시(詩)를 쓴 일도 있다.

이름: 진돌
호적: 전라남도                   활동적이고, 적극적이며
근면성: (가) 나 다               사교적이고, 식사적이며
준법성: (가) 나 다               인간을 사랑하고, 복종적나,
협동성: (가) 나 다               편애와 차별이 극심함.
자주성: 가 나 (다)
                                                      -행동발달 사항

생각해 보니 여행 중 누렁이와 산행을 이렇게 동행하게 된 것이 우연만은 아니다.
젊었을 적 ‘월출산의 최고봉 영봉(808.7m)까지 동행한 발발이 개, 그리스 아트로포리스 언덕에서 만난 황소만한 안내견 세파트, 바로세로나에서 주인 옆에서 깡통을 놓고 눈치를 보며 구걸하던 개와 놀던 일, 캐나다 벤큐버의 거리의 악사 주인 앞에 하늘을 향해 발랑 누어 구걸을 돕던 개’ 등을 잊지 못해 하는 것도 그렇지만, 동내 개를 볼 때마다 쓰다듬어 주다가 아내에게 퉁을 맞는 일도 부지기수(不知其數)다.
국수봉(國壽峰)은 덕적도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길게 놓여 있는 산이다.
그 정상에 해군 군부대가 있어 오를 수가 없어서 철탑 아래 이정표에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거기서 직진하여 2.54km 산록까지 하산하면 국수봉산림욕장에 이르게 되는데-.
문헌을 보니 국수봉 정상에는 옛날 백제를 치기 위해 나당연합군으로 온 소정방이 천신(天神)에게 제사를 올렸다는 제천단(祭天壇)이 있는 모양이다.
임경업 장군도 이 섬을 지나다가 국수봉에 올라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輿地勝覽)도 있다.
군부대서 이곳에 중계탑(1982년)을 세우기 전인 1950년대부터 기독교인들의 산상기도처로 국수봉을 사용하였다는 유서 깊은 곳이 국수봉이었다.
원래 덕적도 종주 산행을 한다면 북리 벗개저수지 쪽에서 비조봉까지 하여야 한다.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덕적도 종주를 한다면 그 코스는 다음과 같았을 것이다.
우포경당- 벗개저수지- 용담(바닷가수로봉)- 국수봉- 벗개고개- 기지국철탑- 용솔- 운주봉- 비조봉- 옹진군휴양소 / 총 6시간

*. 운주봉, 비조봉 종주

조반(朝飯) 후 봉고를 타고 새벽에 올랐던 벗개고개로 다시 올라와 덕적면에서 최근에 조성해 놓았다는 '덕적도 종주산행'을 시작한다.
우리 일행은 한 분이 먼저 서울로 올라가는 바람에 8명이었는데, 그중 85세 신(申) 회원이 함께 하시어 노인 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힘을 실어주고 주신다.
우리들의 오늘 산행 일정은 다음과 같다.
벗개고개 -1.8km- 기지국철탑 -1.5km- 운주봉 -0.7km- 비조봉 -0.9km- 옹진군휴양소 총 3.6km/3시간
 

가는 길에 이곳이 고향인 인(印) 선생이 부모와 조부모의 산소를 찾아 성묘를 한다. 추석이 가까와서 성묘도 할 겸하여 온 모양이다.
금년에 내가 한 가장 중요한 일은 멀리 떨어져서 성묘를 자주 가지 못하였던 조부모와 부모 산소를 충북 옥천에 있는 종중묘에 납골묘를 구해 함께 이장한 것이다. 이장한 길에 우리 형제 내외 묻힐 곳도 마련해 두고 비석에 이름도 새겨 놓았다. 그리고 얼마 전 5남매가 함께 모여 성묘를 다녀 온 흐뭇한 생각이 나니 회심의 미소가 입가에 맴돈다..
내가 사후에 묻힐 곳까지 마련하여 놓았으니 술을 마실 자격이 있지 않은가 해서다. 술꾼은 모든 것을 술과 연관하여 생각하는 버릇이 있기 하는 말이다.
섬 산행의 멋은 능선에 올라 해풍을 맞으며 좌우 바다를 굽어보는 호연지기(浩然之氣)를 맛보는 것이다. 그것이 덕적도 산행에 있다.
그런데 오늘 따라 인색하게도 불어오지 않는 바람이 야속하지만 그 탓만을 할 일이 아니다. 금년엔 너무 오랫 동안 비오는 날이 많아서.곡식이 여물 날이 없었기 때문에 늦여름이나 무더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벗개(拔盖) 고개에서 기지국까지는 1.87km로 완만한 오름길을 오르내리는 능선길이다.

덕적도 관광이나 산행에서 가장 특기할 만한 것은 소나무 숲이다.
진리(鎭里)의 덕적초중고등학교를 둘러싼 200년 300년이 넘는 노송의 소나무 숲, 밧지름해변과 서포리해변의 방풍림의 소나무, 북리의 국수봉산림욕장, 능동자갈마당도 그러했지만 산에 올라오니 붉은 적송의 오솔길은 너무나 많고 너무나 환상적이었다.
지금까지 70 이 훨씬 넘도록 많은 산을 탐하며 다녀왔지만 덕적도만큼 크고 많은 소나무 길은 처음이다. 그것도 모두 붉은 종아리를 높이높이 들어낸 키다리 적송 숲이다..
지중해 문화를 '올리브문화'라고 하듯이 영국문화를 '장미문화'라 한다면 우리나라의 문화는 ‘소나무문화’라 할 수 있다.
우리 민족은 소나무로 지은 집에서 태어나, 소나무 장작으로 취사하며, 그 온돌 난방에서 겨울을 보내면서, 그 관솔로 불을 밝히며 솔잎으로 송편이나 송엽주를 만들어 먹으며 소나무와 함께 살다가, 죽어서는 소나무 관 속에 누워서, 솔밭에 묻히는 민족이기 때문이다.
그 소나무 중에도 가장 귀한 적송이 덕적도에는 이렇게 지천으로 많아서 덕적도 종주 산행은 삼림욕장 아닌 곳이 한 곳도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지국철탑을 지난다. 철탑은 공동기지국으로 무선설비가 장치된 국가 중요 시설인 모양이다. 거기서 0.7km를 내려가니 거기가 '똥고개'라 하는 동봉(東峰)이다.
이 고개는 덕적면의 진2리와 서포2리 사이에 위치한 해발 200여m 고개다.
이 고개를 서포리 쪽 섬 사람들은 서포리의 동쪽에 있는 높은 고개라 하여 한자어로 '동고령(東高嶺)'이라 한다. 그 음이 '똥고개'와 유사해서 마을 사람들은 이 고개를 '똥고개'라 한다.
그 똥고개를 넘어서 인선생이 다녔다는 학교가 지금은 폐교가 된 (구) 덕적초교 건물이 보인다.  진2리 면사무소가 있는 부근이다. 그 이개해변(亦盖海邊) 너머에 낚시터로 유명하다는 목섬도 보인다.
 
 그 똥고개에는 산에 가서 만나면 반가운 이정표가 여럿 서 있고 주위에 의자가 있는 쉼터가 있는데 멋진 맨발지압 시설을 만들어 놓아 운치를 보태고 있다.
게다가 소나무 중에 지름 1.5m, 높이 30m의 가지를 힘겹게 늘어 뜨린 '용솔나무‘도있다.
그 고개를 지나 얼마를 더 오르니 거기가 구름도 머물다 간다는 운주봉(雲柱峰; 231m)이다.

정상석이 어딘가 찾아 보니 정상목(頂上木)으로 대신하였다. 덕적도의 자금 사정이 좋지 않은 모양이다. 
날씨가 더 청명하였더라면 저 낚시로 유명한 목섬 밖의 바다와, 여러 섬을 볼 수 있으련만 우리는 그런 복까지는 갖지 못한 것 같다.
저 봉이 비조봉이겠지 하면서 기를 쓰고 올라가 보니 아깝게도 200m나 내림길이 계속된다. 그 안부가 ‘망재’ 고개였다. 
이정표가 ' ←0.7km 비조봉/ →1km 서포리'이니  비조봉은 700m를 더 가야할 모양이다.
서울의 남산(南山)을 올라 보지 않았는가. 남산은 겨우 260m밖에 안되지만, 그곳을 오르기 시작하는 곳은 그 높이의 1/3지점에서부터다. 이에 비하여 섬의 산은 해발이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시작하는 산이니 섬 산이라고 어찌 가볍게 볼 수 있겠는가.
덕적도의 비조봉은 해발 292m나 된다. 바람 한점 없는 늦더위에 기진맥진, 맥진기진한 몸으로 망제산을 통하여 이제는 토산이 골산의 비조봉을 향하여 난 하얀 로프에 의지하여 오르고 있다. 길도 제법 바위가 많은 돌길이다.
봉이 있어 저기가 조비봉인가 했더니 또 오름길이 있어 아아, 여기가 망제산이로구나 하였다.

정상은 시끌시끌 떠드는 선착객들의 소리로 다가 오더니, 드디어 드디어 숲 사이로 8각정이 보이기 시작한다.. 
지금부터 아름다운 덕적도는 나의 마음에 남아 너가 아닌 나의 일부가 될 것이다.


덕적도
비조봉에 오르니
나도 굽어보는 한 마리 새가 된다.
배 타고 보던  
배에서 못 보던
어제를 주고 바꾼

찾아온  곳-    
꿈꾸던 세상이 .
찾아온 행복으로 열려 있다.
거기가
덕적도
(飛)
(鳥)
(峰)이네.

  -덕적도 비조봉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