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슬산 산행 Photo 에세이
(2007. 4.19'목'/경북달성군 유가면/유가사 - 도성암 - 대견봉 - 수성골 - 유가사/ 고양 늘푸른산악회 따라  ☏011-253-7094 )

*. 세 번째 가는 비슬산
비슬산이 보고 싶어서 그동안 산악회 따라 2번이나 가다가 삼천포로 빠졌었다. 한 번은 비가 오는 바람에 일산서 대구까지 빗길 운전이 위험하다고 춘천 오봉산을 향하였다. 작년에는 꽃이 피지 않았다고 비슬산이 마이산(馬耳山) 종주로 바뀌었다.
금년은 봄이 유난히 빨리 와서 강화도 고려산의 진달래가 만발하였다기에, 비슬산은 남쪽 나라이니 드디어 소원을 풀겠구나 하고 등산회에 예약을 하였다. 그런데 며칠 전 비슬산에 큰 눈이 내렸다는 소식이 찜찜하지만 약속은 약속이라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비슬산을 향하고 있다.
비슬산은 우리 고양시 일산(一山)에서는 360km 길, 왕복으로는 1,800리 길이라 꼭두새벽 5시 30분에 떠나서 5시간만에 유가사주차장을 들머리로 산행을 시작한다. 우리들의 오늘 일정은 유가사서 정상을 거쳐서 대견사지를 거쳐서 유가사로 내려오는 원점회귀 산행이다.
유가산 주차장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더니 산악회 총무가 어서 가시자며 유가사는 내려올 때 들리는 코스니까 그냥 가자고 독촉한다.
그러나 산꾼은 등산만이 목적이지만 나는 답사와 등산을 아울러 하러 왔으니 홀로 떨어져서 유가사를 먼저 보기로 하였다.
'하산 길에 보지- '하고 미루다 보면 대충 보거나 대개는 생략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서다. 산사(山寺)는 그 산의 역사를 간직한 보고인데 어찌 나까지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 비슬산의 전설
  비슬산(琵瑟山)의 어원에 대한 전설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인도 스님들이 신라에 왔을 때 이 산을 구경하더니 이곳은 영험이 있는 수도처(修道處)라 하여 인도의 옛말인 범어(梵語: 산스크리트)로 '비슬'이라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다.
그 비슬의 뜻이 한자로 포(苞)여서 옛날에는 포산(苞山)이라 하여 오다가, 산의 모습이나, 정상에 있는 바위의 모양이 신선이 비파와 거문고를 타는 모습과 같다하여 비파 琵(비), 거문고 瑟(슬) 琵瑟山(비슬산)이라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一然)이 이 산 보당암에서 20대를 보냈다는 유명한 곳이 바로 이 비슬산이다.

*. 유가사(瑜伽寺)의 어원

산사(山寺)는 항상 그 산의 가장 아름다운 곳에 위치한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경치 좋고, 물 좋고, 정자 좋다는 곳에는 대개 산사가 있다. 그 절이 평지에 있을 때에는 그 뒤에 우람한 산이나 바위가 있다.
주왕산의 기암봉(旗岩峰) 아래 대전사(大典寺), 내장산의 서래봉 아래 내장사(內藏寺), 달마산 아래 미황사(美黃寺) 등등이 그렇다.
유가사(瑜伽寺)도 이와 같이 비슬산의 주봉 대견봉(大見峰, 1083m)을 중심으로 1,000m가 넘는 바위가 돌병풍처럼 둘러있고 그 한 가운데를 이 산에서 가장 넓은 수성골이 푸른 옥류를 흘려 내리는 곳에 있다.
다음은 유가사가 말하는 유가사 소개의 일부다.
-비슬산 천왕봉 아래에 위치한 유가사는 유가종(瑜伽宗)의 총본산격의 사찰이다. 유가종이란 삼밀(三密, 부처의 몸, 입, 뜻)을 종지로 삼는 밀교를 뜻하는 말이다. 밀교(密敎)란 헤아리거나 설명할 수 없는 경전을 말함이다.
이 사찰은 진성여왕 3년(889년)에 도성국사(道成國師)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비슬산의 암석 모습이 아름다운 부처의 형상과  같다 하여 아름다울 '瑜'(유), 절 '伽(가) '瑜伽寺'(유가사)라 한 것이다.
현재 대웅전, 백화당, 동산실, 취적루, 천왕문 등의 건물이 있고 속암으로 수도암, 청신암, 도성암이 있으며 절 서쪽 약 500m 지점에 화강암으로 된 15기의 부도가 있다.

유가사에서 특별한 볼거리로는 는 2.5m의 고려시대 삼층석탑도 있지만 사보에 해당하는 괘불[탱화]과 유형문화제 제50호인 유가사석조여래 좌상이다. 
석굴암의 본존불을 연상하게 하는 이 좌상은 불상과 대좌가 하나의 화강암으로 조각된 것이다. 욕심 같아서는 이 절의 자랑이라는 15기의 옛 부도군을 보고도 싶었지만 300m 아래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야 하는 곳에 있다하여 그냥 도성암을 향하고 있다.

*. 도성암(道成庵) 가는 길

유가사를 둘러보고 산을 오르다 보니 길가 오른 쪽에 조선 숙종 때 도경(道瓊) 스님이 지었다는 수도암(修道庵)이 있다. 아미타불을 모신 극락전 등의 작은 규모의 암자이지만 절이 깨끗하고 위치가 유가사보다 더 좋다. 절 뒤에는 병풍처럼 둘러선 비슬산의 기암과 암벽의 경치가 일품이다. 이 절은 현재는 비구니들의 수도처로 쓰이고 있다. 아미타불(阿彌陀佛)은 서방정토에 살면서 모든 중생을 제도하는 부처다.  불가에서는 나무아미타불을 염하면 죽어서 극락세계를 보내 준다 한다. 
  유가사에서 1km를 오른 갈림길에서 나는 한참이나 망설였다. 도성암까지는 1km요, 비슬산정상까지는 2.5km인데 도성암코스로 가면 정상은 되돌아 내려와야 한다는 표지판 때문이었다.
그러나 유가사보다 더 유서가 깊은 이 산에서 가장 오래된 절 도성암(道成庵)을 어찌 그냥 지나치랴 해서 속도를 내었다.
어쩌면 비슬산에 왔다가 정상을 오르지 못할 것 같아서다.

 

 


길은 아스팔트 차도인데 처음에는 정상을  향하는 등산로 근처에서의 오름길이더니 자꾸 멀어지고 있었다. 자연석으로 쌓은 멋진 돌탑을 지나다 나물 캐는 아저씨가 있어 물어보니 도성암에서는 정상 가는 길이 없다지만 되돌아서기에는 너무 많이 올라와 있었다.
드디어 저 멀리 산의 8부 능선쯤에 있는 도성사가 보이기 시작한다.
 

저 파란 지붕이 이 비슬산에서 제일 오래 되었다는 도성암이요, 그 위에 있는 바위가 그 유명한 도통암인가 보다.

드디어 도성사 주차장에 왔는데 섭섭하게도 '외인출입금지'란 간판에다가 나무를 가로 질러 통행인을 막고 있는데 반갑게도 좌측으로 정상을 가는 길이 있다는 표지가 현수막으로 걸려있다. 등산객들이 여기까지 차로 올라와서 좁은 주차장에 주차를 해 놓고 가는 사람들이 있어서 이 절의 입구에 등산로가 없다는 거짓 푯말을 세워 놓은 것이었다. 아무리 그렇다해도 절에서 이렇게 대놓고 거짓말을 하다니-.
그러나 여기까지 와서 어찌 유서 깊은 도성암을 지나치랴 하고 욕을 먹을 셈치고 경내를 향한 오름길에 들어섰더니 100년 묵은 반송이 나를 반가이 맞는다. 하나의 소나무에 가지가 수십여 개나 되는 특이한 모양의 반송이다.
이 절의 입구의 도성선원(道成禪院)을 지나면 축대를 쌓아 널찍한 마당에 1층이 없어진 고색창연한 3층탑과 그 앞에 대웅전이 있다. 이 도성암에 서면 달성군과 오른쪽으로 그 벌판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낙동강이 보인다는데 날씨가 흐려서 그걸 보는 안복(眼福)은 없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머리를 들면 가까이 다가서는 비슬산 정상이 으르렁거리듯이 버티고 서 있다.
 
 
 


그 절 앞마당 가에 수령이 400년 정도 된 느티나무가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이 암자를 세우고 불교가 대중 속으로 스며들게 한 대사를 기리는 뜻으로 '도성대사나무'라 이름 지었다는 나무다. 일연이 지었다는 삼국유사에는 이 암자에 얽힌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하여 온다.
-도성대사는 신라 혜공왕 때 도성암을, 흥덕왕 때 유가사를 창건한 스님이다. 
도성암은 유가사의 부속암자로서 참선도량으로 유명한 해발 700m에 자리 잡고 있다.
옛날에 이 비슬산에 도성(道成)과 관기(觀機) 두 스님이 숨어 살았는데 관기의 거처는 남쪽 영마루에 있었고 도성은 북쪽 도통바위 근처 초막에 살고 있어서 그 거리가 약 10리쯤 되어 가시덤불을 헤치고 휘파람을 불며 서로 찾아다녀야 했다. 그래서 둘은 도술로 보고 싶을 때에는 나무와 풀을 이용하기로 하였다.
관기(觀機)가 도성의 안부가 궁금할 때에는 나무와 풀들이 북쪽을 향하여 눕게 하고, 도성(道成)이 관기를 보고자 할 때는 남쪽을 향해 눕게 하였다. 두 대사는 이렇게 풍월을 즐기다가 도를 이룬 뒤 도성대사는 어느 날 도통바위 위에 앉아 있다가 하늘로 훨훨 날아가 버렸다. 도성이 입적했다는 소식을 들은 관기 스님도 따라서 열반에 들었다.
절의 곳곳에는 '이곳은 스님들이 참선하는 곳이니 일체 말 을 하지 마시오.'라는 표지가 있다. '절간 같이 조용하다'는 말이 있더니 그래서인가 이 암자에는 풍경도 달아 놓지 않았다.
정상을 향한 이 암자를 끼고 도는 길은 등산객이 적어서 잘못하면 길을 잃을 번하였지만 10분만에 등산로와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도통바위가 어디에 있을까? 그 이름처럼 성인 천여 명이 난다는 이 바위는 절 뒤에 있는 것 같은데-. 표지가 없어 확인할 수는 없었다. 암자 뒤부터가 가파른 오름길의 바위 지대인데 앉아서 천하를 굽어 살필 수 있는 멋진 바위 하나가 있다. 도통바위가 이 바위 같다.
비슬산의 특색 중의 하나는 철조망이 많았다. 처음에는 절의 울타리로 알았더니 그게 아니라 동물들의 사는 곳으로 출입을 제한한 자연보호의 철조망이었다.
도중 도중에 술과 물과 음식을 나르는 청년들이 쉬고 있었다. 4월 21일부터 29일까지 비슬산 참꽃 축제를 위해 한 짐에 3만원씩을 받고 짐을 나르는 사람들이다. 그래 그런가 헬기가 무거운 짐을 정상으로 나르고 있었다.
 
 
 
 
 
 
 
 
 
 
 
 
 
 
 
 능선이 시작되는 곳에 올라서니 서쪽으로 멀리 거대한 아파트군이 보인다. 대구시내였다. 길 양쪽으로 진달래나무가 작달막한 키로 도열해 서있는데 붉은 봉오리만 맺은 체 피기는 멀었다. 정상의 능선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대견봉(일명 天王峰) 400m 앞두고 있는 이정표가 있는 곳부터는 억새밭이었다. 그러더니 나타나는 같은 크기의 진달래나무는 30만평에 가득하여 평원 같이 보이는데 보고 싶어서 천리를 달려온 그 진달래는 나무뿐 꽃이 피기는 아직 멀었다. 우리는 2주일 정도 앞서 온 것이다.
저 아랫산은 산 전체가 붉게 물들어 있는 것을 보니 이 1,000m 내외의 능선이 높이 값을 하는 모양이다.
일산에서 고속도로를 달려오면서 불붙는 꽃들을 보며 전국이 꽃밭이로구나 하며 감탄하면서 왔는데 전국 제일의 참꽃나라 비슬산은 그 봉오리를 아직 열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천릿길 달려와서
애써 오른 大見峰

山上 참꽃 群落地는
봄이 막 시작일 뿐

찬란한
진달래꽃 名聲은
마음에만 핀 아, 琵瑟山



 
 
 
 
 
*. 대견봉(大見峰) 전설
 
 
 
 
 
 
 
 
 
 
 
 
 
 
 


당 문종(唐文宗)이 세수하다
대야 속서 본 절 하나
수소문(搜所聞)하다 신라서 찾았네,
대국(大國)서 보던[見] 모습을.
비슬산
대견사(大見寺) 터는
신의 게시로 지었던 절터

비슬산의 정상은 국(大國)의 황제가 세수하다가 절이라 해서 대견봉(大見峰) 이라 하지만 천황봉이라고도 한다.
정상에서는 북으로 팔공산, 서로 가야산, 황악산 등이 보인다지만 나침반도 지도도 그리고 물어보아 대답해 줄만한 사람도 없었다.
비슬산의 제1봉인 대견봉(1083.6km)에서 능선 따라 4km쯤 가면 제2봉 조화봉(照華峰)(1057.7km)이 있다. 이 봉도 당 문종이[태종이란 말도 있음] 세수를 하다가 대야에 비치는 것을 보았다 해서 그 산 이름을 비칠 '照'(조), 중화(중국:中華)의 '華'(화)라 한 것이다. 조화봉에서 다시 989.8봉을 지나가서 만날 수 있는 관기봉(980.3m)은 도선암 전설에 나오는 관기대사의 이름을 딴 봉우리다.
비슬산 정상은 순 암봉이고 그 끝은 천길만길 낭떠러지다. 등산 서적에는 베틀바위와 굴이 있다 한다.
-달 밝은 밤이면 선녀들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베를 짜고 갔다는 바위가 베틀바위요, 한 장수가 있어 그 선녀를 사모하여 하늘에서 내려오는 선녀를 기다리며 살았다는 굴이 있고 그 옆에 길수샘이란 우물이 있다.
하늘에서 요란한 헬기 소리가 들리더니 헬기 한 대가 대견봉 공터로 내려온다. 내일 모래 참꽃축제와 비상시 등산객을 수송하기 위해서 군부대서 핼기장을 만들어 주고 있는 모양이다.
여기서 4km/1:00를 더 가면 1,010m 사거리가 있고 1,034m 의 8각정 가는 길 중간에 전설에 나오는 대견사 사지(大見寺寺祉)가 있다.
대견사(大見寺)는 신라 41대 헌덕왕 때 세웠다는 절의 터다. 큰 돌을 다듬어 8m 높이로 쌓은 100여 평 정도 넓이의 터로 절은 없어지고 절벽 가 아슬아슬한 곳에 신라의 3층탑만이 고고이 서 있다.
 나는 거기까지는 아쉽게도 못갈 것 같아 정상서 유가사까지 가장 빠른 3.5km/1:20분의 지름길로 하산하여야겠다. 유가사와 도성암을 들려오느라고 우리 일행보다 더 많은 시간을 나홀로 보냈기 때문이다.


*. 진달래와 철쭉꽃은 어떻게 다를까
진달래와 철쭉은 어떻게 다를까.
-진달래는 '참꽃'이라 하여 먹을 수 있어서 술을 담으면 두견주(杜鵑酒)가 되고, 전(煎)을 붙이면 진달래 꽃전[花煎]이 된다. 그러나 철쭉은 독성이 있어 먹으면 위험하여 이름도 '개꽃'이라 한다. 진달래는 잎보다 먼저 꽃이 피나, 철쭉은 그 반대다. 철쭉은 진달래보다 꽃이 크고 색깔이 진한데, 진달래꽃은 철쭉꽃보다 색이 연하고 꽃잎이 얇다.

비슬산의 제1봉인 대견봉에서 제2봉 조화봉까지 약 4km로 이어지는 능선은 계절 따라 각각 다른 모습이 된다.
-봄날 꽃필 때를 맞추어 오면 30만평이나 되는 산 전체가 붉게 타는 참꽃 군락지가 되다가, 여름이면 유행가로 노래하던 '저 푸른 초원'이 되고, 가을이면 억새가 무성하게 우거져 바람 따라 흔들리는 억세밭이 된다.
나이가 들면 내년을 기약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힘 든 산행을 하면서도 '다음에는 다시 못 오지-' 하고 기를 써 정상에 오르고 있는 것이다. 하물며 예수님보다 두 배 이상을 살아온 나이에 서니, 요즈음은 가고 싶은 산은 서둘러 가봐야지- 하고 무릎보호대를 착용하고 등산길에 나선다. 지금 나는 그런 나에게 묻고 싶다. 너는 비슬산이 가장 아름다울 때를 보고 죽을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