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일출

 

백두대간 땜빵 산행

2010.11.26-27(1박2일)

위치 충북 보은군, 경북 상주시

코스 신의터재(280m)-8.6km-윤지미산(538m)-2.7km-화령재-4.7km-봉황산(740.8m)-3.4km-비재-4.85km-형제봉(828m)-1.56km-피앗재-5.66km-천왕봉(1057.7m)-2.6km-신선대-1.17km-문장대-6.6km-법주사-0.4km-탐방지원센터

거리및소요시간  약 42.2km,(대간길 도상거리 35.2km, 문장재-법주사 버스터미널=7km 포함),대간길 13시간27분(식사 휴식 포함)

깃털 단독 산행

 

신의터재에서 문장대까지 도상거리 35.2km를 2구간으로 나누어 대간길을 잇기로 한다. 피앗재산장에 하루 묵기로 하고 두발에 내몸 실어 나라의 정기가 흐르는 백두대간 능선에서 바삭거리는 낙옆을 밟고 조망을 즐기며 무한한 자유로움을 만끽 할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설례인다. 06:40 부산발 영주행 열차는 여행자들이 타고 내리기를 반복한다. 옆 자리 아저씨, 아주머니, 노년신사가 번갈아 앉아 새로운 인연이 생겨난다. 속담에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했던가? 회전의자 노래 가사가 생각이난다. "빙글빙글 도는 의자 회전의자에 임자가 따로있나 앉으면 주인이지"  인생사 모두가 만나면 이별이라는 인연의  의미가 깊게 다가온다.

 

상주역이 가까워 지자 옆 자리 할머니가 "애야 상주역에 다가 간다. 쪼매만 기다려라" 전화소리가 들린다. 상주역에서 신의터재 가는 시내버스를 타야 하는 곳이 궁금한 터라 할머니에게 다가가 상주 가시지요?  할머지 왈 "그런데요." 역 앞에서 화동가는 시내버스를 이용할 수 있나요. "음~ 우리집 앞이 버스정류장이니 나를 따라 와 한다."  할머니를 따라 역 밖으로 나가니 할머니 왈 "내가 다리가 아파 잘 걸어가지 못하니 택시를 타고 가야한다. 택시 잡아~" 예~ "저기 있잔아" 하여 손짓으로 택시를 불러 세운다.

 

택시에서 할머니는 "기사양반 상주초등학교 앞 버스정류장(054-534-8250) 앞이 우리 집이니 세워주~"  5분 정도 가다 할머니는 치마 안 주머니를 뒤적이고 있어 할머니에게 차비를 주었습니다. 하였더니 "내가 차비를 내야 하는데 아저씨가 왜 냈는가?"  할머니 저가 기사 옆에 있으니 주었습니다.  택시에 내리자 할머니 "우리집이 건너 조금만 가면 되니 차를 한 잔 하고 가 응~  할머니 차 시간이 있으니 성의는 고맙지만 괜찮아요. 조심해서 가세요. 할머니는 가지 않고 승강장 의자에 앉는다.

 

할머니 어디에 갔다 옵니까?  대구에 있는 아들에게 댕겨 오지, 며눌 아이가 잘 해주어 잘 쉬고 오는 구마! 아들 둘인데 다들 서울에서 대학을 시켜 걱정이 없구먼 대구 아들에게 참기름를 짜서 갔다주고 오는 길이야. 사위는 미국에서 박사라 카더라 뭐라 카더냐 땄다 허~ 미국에도 한 번 댕겨 와야 할 낀데 다리가 쉰차아서~" 할머니 화동 버스가 10시30분에 오니까 집에 들어가세요. "내가 차라도 한 잔 대접을 해야 하는데 가계 문 열어 놓은 곳이 없구나" 하면서 여기저기를 서성거리더니 보이지 않는다. 화동버스는 1시간 정도 간격으로 있다.

 

승강장은 상주와 농촌지역을 오가는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타고 내린다고 제법 소란스럽다. 몇 분 후 할머니 커피를 한 잔 들고 와서 "이거라도 한 잔 하고 가~ " 할머니 괜찬다고 했는데 다리도 아프다면서 차를 구하여 오셨습니까? 고맙습니다. 의자에 앉으세요. 자리에 앉아 있는데 지인 할머니들이 어디를 댕겨 오는가? 대구 아들한테 댕겨 오는구먼~ 대화가 시작된다. 그리고 일어나더니 잘 댕겨가~ 하고 할머니들과 간다.

 

할머니와 헤어지고 화동가는 버스가 들어와  요금(1500원)을 통에 넣고 기사에게 신의터재에 좀 내려주셔요? 예, 어디요. 신의터재 말입니다. 기사는 잘 모른다. 버스 중간에 앉아 창밖을 열심히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뒷좌석 50대 아주머니가 "팔음산포도 밭 있는 고개마루 가는기요." 한다. 예, 큰 표지석이 세워져 있고 포도 밭도 있던데요. "그러면 가만이 있어요.내가 말하여 줄께요." 한다. 버스가  "어산-이소" 간이승강장을 지나가자 지도를 보니 어산을 지나고 있어 내릴 준비를 하니 뒤 아주머니 고개를 끄덕인다. 아주머니 잘가요.

 

등산 지도에 신의터재(어신재)로 표기되어 있지만 마을사람들에게는 어산재로 통하는 것 같다. 25분 소요하여 신의터재에 내리면서 버스번호를 봐도 없다. 시골마을로 다니는 버스는 번호가 없는 것 같다. 차 앞 유리창 행선지 패말을 보고 승차한다.

 

11시 05분 지난 번 비를 맞고 보았던 신의터재 표지석 3개가 변함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조용한 2차선 포장도로 고개에는 간혹 차량들이 지나간다. 비재까지 1차 구간 19.4km을 잇기 위해 화령재 표지석 방향 따라 낮은 포도밭 언덕을 넘어 작은 산 봉우리를 3-4개를 넘어간다. 호젓하고 뚜렷한 등로 주변에 나무가지 치기를 한 흔적을 느끼며 가는데 멀리 전기톱 소리가 들러오고 얼마 후 작업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다가가 어디서 왔느냐고 했더니 화서군 산림조합에서 백두대간 정비 작업를 하고 있다고 한다.

 

등로는 지나간 사람이 없었는지 낙옆이 쌓여 미끄러워 조심스레 흔적을 만들며 사람의 온기를 남긴다. 바스락 거리는 낙옆 소리를 들으며 걸으니 문떡 지나간 추억들이 떠 오른다. 산은 낮고 등로는 좋은 편이고 약간 차가운 바람이 불어 땀이 나지 않아 등산하기에 좋다. 시어나무군락지와 노간주나무군락지를 지나 무지개산 (437.8m)정상을 우회하여 윤지미산으로 오른다.

 

윤지미산(538m)은 원래 "소머리산"이었다고 하는데 언제부터 인가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어졌고, 이름이 품은 뜻은 "사서삼경"의 대학에 나오는 "윤집걸중"에서 나온 말로 "세상을 포용한다, 세상을 두루 알아 맞힌다,인생 전반을 다 안다."라고 전한다. 윤지미산 정상을 가파르게 내러서니 밭이 보이고 상주 청원간 고속도로 터널를 지나며 돌아보니 윤지미산 그림자가 배웅을 하고 있다. 우뚝 솟은 모습이 "윤집걸중"의미를 느끼게 한다. 

 

앞에 봉황이 날개를 펼친 형태의 봉황산을 보면서 금강과 낙동 분수령 화령재에 이른다. 피앗재산장에 예약확인을 하고 화령재에 내러선다. 봉황산으로 가는 등로가 애매하여 홀로 대간 꾼들이 많은 알바를 하고 있으니 밭 쪽으로 가지 말고 길을 따라 주의를 하며 가라는 피앗재산장 "다정"님의 전화(016-761-7761)를 받고  "백두대간 화령" 큰 표지석과 쉼터를 뒤로하고 시거널이 바람에 많이 휘날리고 있는 등로를 따른다.

 

길이 희미하다 좋아지고 묘지를 지나 다시 길이 희미하여 되돌아 "화령골가든"으로 내러서니 봉황산으로 오르는 길이 없어 "다정"에게 문의를 하니 "상주 방향으로 200여미터 올라서면 삼거리 옆으로 대간길이 열려 있다." 한다. 화령재는 삼국시대 싸움이 치열하던 국경지역으로 신라의 김유신 장군과 백제 견휜이 중요시 여겼던 군사요충지로 한국전쟁 때에는 치열한 전투가 벌여졌다고 한다. 

 

대간길에 들어서 숙박, 식당 안내판과 대간이정표를 본다. 요즘 대간길에 콜택시, 산장, 식당 등 상업적 안내판들이 자주 보인다. 중화지대를 지나온 대간길은 점차 용트림이라도 하려듯 부드러운 능선이 고도를 높여 산불감시초소에 올라서니 조망이 열리고 속리산 주능이 가까이 다가온다. 산불감시원은 사람이 지나가도 인기척도 없다. 노간주나무군락지를 지나 봉황산(740.8m)으로 오르면서 조망을 보니 속리산 천황봉과 신선대 능선이 아름답고 웅장하다. 된비알 봉황의 날개를 밟고 몸통으로 올라 머리 부분에 선다.(16:00)   

 

지나온 대간길과 가야할 속리산 조망이 시원하여 가슴이 벅차 오른다. 봉황산(740.8m) 안내판을 읽어본다. 1300여 년 전 봉황새가 날아들어 30여년을 살았다는 전설이 있으며 정상이 봉황머리를 빼어 올리고 양 날개를 펼친 봉황과 같다 하여 봉황산이라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속리산 조망에 시선을 빼앗겨 10여분 머물다 가파른 등로를 내러 능선을 이어 간다.

 

수많은 봉우리를 넘다보니 앞에 있을 것 같은 정상이 왜이리 멀리 숨어 있냐 한탄하며 힘들게 올라서면 지나온 작은 봉우리들은 잊고 가장 높은 봉우리와 능선만 본다. 인생살이도 한평생을 살다보면 작은 것들은 잊어버리고 잘 살았는지 행복했는지 돌아보게 될 것이다. 힐끔보니 봉황이 날개를 펴고 날아 오르는 모습 위로 해가 서서히 내러 앉고 계곡으로 산 그늘이 찾아든다. 멀리 비재(도로400m거리 정상문 댁에 식수 보충 가능)로 이어지는 고개길을 보면서 낙옆송 조림지를 지나 2차선 포장도로 비재에 내러 1차 구간을 마무리 한다.(17:15)

 

○ 피앗재산장의 하루 밤

2차선 포장도로 비재에서 10여분 옷 먼지를 털고 배냥과 스틱을을 정리하고 몸을 가다듬고 있으니 차량2대가 보은방향으로 지나간 후 반가운 화물봉고차 불빛이 고개를 비추며 멈춘다.  "한국의산하" "깃털"이라고 인사를 나누고 차에 올라 만수동계곡 피앗재산장으로 달린다. 다정님과 온라인" 한국의산하, 오케이만운틴" 모임에 대한 이야기로 산장에 왔다.

 

약간의 어둠이 내린 산장은 계곡 따라 많이 들어 왔기 때문에 깊숙한 산골로 느낀다. 사방이 산에 둘러 쌓여 있다. 방에 들어서니 벽면과 천정에 다녀간 사람들의 맨트가 빼곡하여 "산꾼의집" 냄새가 물신 풍긴다. 여장을 풀고 욕조와 샤워기가 있는 화장실에 들어가 바케스 더운 물로 씻고 황토방에 가서 다정님과 저녁 상을 앞에 놓고 앉는다.  황토방은 6개월 공사를 하여 완공을 앞두고 초벌 도배를 하던 중 일손을 놓고 손님 맞이를 한 것이다.

 

따뜻한 구들장 위에 앉아 다정님이 재배한 표고버섯과 직접 담근 된장으로 요리한 구수하고 단백한 뚝빼기 된장찌게, 버섯 장조림, 날 표고버섯을 초장에 찍어 먹는다. 산꾼들의 집에 왔는데 막걸리 한 사발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표고버섯 요리에 보은 대추막걸리먹 잔을 부딪히며 몇 순배 돌아 간다. 방석을 깔고 앉아야 될 정도로 떠거운 방바닥은 추운 날씨에는 몸을 녹이기에 제격이다. "홀·대모" 대하여 가끔 들어온터라 궁금사항을 여쭈어 보니 홀로 대간을 한 사람들의 모임 약자라고 한다. 

 

피앗재산장 다정님 부부의 생활사가 이어 진다. 부부 백두대간을 종주한 후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전국을 답사 중 어렵게 이곳 집을 구입하여 4년 전에 이사를 왔다고 한다. 그 동안 집을 수리하고 표고버섯을 재배하고 많은 일을 하느라 산에 가지를 못하였다고 한다. 얼마전 "홀·대모" 모임이 이곳에서 있었다고 한다. 계백님의 속리산 산행기에서 홀·대모 모임을 보았기에 조금 궁금하여 여쭈어 본다. "홀·대모" 는 홀로 대간을 한 사람들의 모임으로 백두대간을 종주한 산을 좋아 하는 사람은 가입할 수 있다. 홀로 백두대간을 하면서 많은 시행착오와 애환 그리고 많은 뒷이야기 정보를 공유하는데 의미가 있을 것이다.

 

다정님이 백두대간 얼마나 하였냐고 하여 10년 전 시작하여 시간나는데로 하고 아직 완주를 하지 못하고 3구간 땜빵을 해야 된다고 했더니 완주 후 홀대모에 가입을 해 달라 한다. 사실 백두대간은 멋 모르고 시작을 하여 시간 있으면 한 구간 하는 실정이었는데 조만간에 마칠 예정이다. 그동안 정맥과 지맥 답사에 관심을 보여 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온라인 오케이마운틴 싸이트에 접속하여 소카페에 들어가면 홀·대모와 여러 곳 산꾼들의 이야기를 볼 수있다. 사랑방 만수별곡을 클릭하면 피앗재산장 황토방 공사 등에 대한 다정님의 글도 볼 수 있다. 산꾼들의 이야기가 무르익을 무럽 약간의 취기를 머금고 내일 산행을 위해 잠자리에 든다. 새벽5시 일어나 등산 준비를 하고 아침을 먹으려 황토방으로 가는데  다정님은 최저 기온이 영하8도까지 내러 갔는데 잘 주무셨느냐고 인사를 한다. 오늘은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하는 백두대간 손님이 예약되어 있다고 한다. 영업이 잘 되기를 기원하여 본다. 

 

아침을 먹고 준비한 도시락과 식수를 배냥에 넣고 차가운 새벽 공기를 가르며 화물봉고차를 타고 충북알프스 장고개를 넘어 비재로 간다. 어둠이 깔려 있는 비재에 도착하여 다정님과 추억 사진 한 장을 남기고 작별을 고한다. 문장대까지 15.84km 2구간을 잇기 위해 철계단을 오른다.(06:10) 가파른 등로에는 낙옆이 쌓여 미끄러워 조심스레 510봉에 올라서니 동쪽 대궐터산(746.3m) 위로 여명이 감지된다. 대궐터산에서 암봉, 두리봉(873m)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아름답다.  

 

무명봉을 2개 넘어 바위 전망대에 올라 일출을 맞이한다. 바위 잘 생긴 소나무 사이로 붉게 타오르는 일출은 신비스럽고 장엄하다. 바위에 올라 벅찬 가슴으로 한참동안 작은 소망을 빌고 억시기마을 갈림길을 지나 충북알프스 갈림길 패말을 지나고 못제에 이르러 안내판을 읽어본다.(07:49)

 

못제는 대간 마루금에 유일한 못으로 약 오륙백평 정도인데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상주에서 후백제를 일으킨 견휜은 주변지방을 장악해 나갔다. 이때 보은군의 호족인 황충장군과 견휜은 세력다툼을 하며 거의 매일 싸움을 벌였다. 하지만 싸움을 벌인 쪽쪽 황충은 패하고 만다. 이에 황충은 견휜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캐기 위해 부하를 시켜 견휜을 미행했다.

 

황충의 부하는 견휜이 못제에서 목욕을 하면 힘이 난다는 것을 알아내 이 사실을 황충에게 알렸다. 황충은 견휜이 지렁이의 자손임을 알아내 소금 삼백 가마를 못제에 풀었다. 그러자 견휜의 힘은 사라졌고 마침내 황충이 승리했다.(화북면 면지 화동승람 참조)

 

능선을 이어 헬기장을 지나 장고개 삼거리 이정표를 만난다. 암릉 구간이 시작되고 우회로가 있지만 암릉을 타고 오른다. 갈령(우복동천)삼거리에 이르니 나무벤치가 있고 119구조요청 속리산5번지점 패말 위 이정표를 읽어 본다.(비재 3.6km, 천황봉 6.6km) 능선을 내러 형제봉으로 향한다. 좌측 멀리 충북알프스 구병산 아름다운 능선을 바라보며 721봉을 넘어 된비알 올라서니 할배바위가 위태롭게 서서 반긴다. 바위에 올라서니 작은 정상석이 있고 속리산 주능이 파노라마 친다.

 

형제봉(828m)에서 직각으로 꺽어 내러서 충북과 경북 도경계를 따라 808.3봉을 넘어 피앗재에 내러선다. 소나무에 피앗재산장 소개 표시판이 붙어져 있고 119구조 속리산 62번지점 안내판이 있다. 이정표에는 천왕봉 5.8km, 형제봉 1.6km, 피앗재산장 1.2km를 표기하고 있다. 피앗재를 지나 639봉에서 만수동계곡을 내러다 보며 과일을 먹으면 간밤의 산꾼들의 추억을 회상해 본다.

 

만수동계곡을 둘러 쌓고 있는 667봉에 올라 우측 멀리 도장산(827m)을 보면서 무명봉을 2개 넘어 헬기장을 지나자 만수동계곡이 시야에서 사라진 후 위치 안내판 도화리로 내러가는 삼거리(지도 대목리 삼거리) 119구조목 속리 04-05앞에 이른다. 속리산국립공원 안내지도에는 "천왕봉"이라 표기하고 있다.  상주시에서 표기한  백두대간 안내판에 "천황봉"으로 되어 있고, 형제봉 정상석에도 천황봉으로 세겨져 있고, 월간산 별책 시리즈 백두대간 가이드 축적 1:50,000 지도에도 "천황봉"으로 표기되어 있다.

 

속리산은 1970. 3. 24. 6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도(道)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는데 사람은 도를 멀리 하는 구나, 산은 사람(俗)을 떠나지 않는데 사람이 산을 떠나는 구나(道不遠人 人遠道, 山非俗離 俗離山)  이 시는 신라말기 문장가 최치원이 지었다고 전해지는데 속리산이 지어진 연원으로 보기도 한다.

 

속세를 벗어나 신선이 되고자 고행길을 자초하면 가파른 정상부를 한발자국 밟아 올라간다. 한남금북정맥을 두고 금강과 한강 발원이 갈라지는 갈림길을 지나 천왕봉에 올라선다.(11:17) 금강물은 군산 앞바다로 흘러들어 간다. 충북과 경북 도경계를 따라 한강과 낙동강 발원이 나누어지는  능선을 바라보니 수 많이 넘고 넘은 봉우리들은 보이지 않고 놓은 봉우리를 거느린 능선만이 마루금을 긋고 있다.

 

속리산 천황봉은 일제 때 붙여진 이름으로 일본 왕을 뜻한다는 일제 잔재라는 이유로 2007년 중앙지명위원회가 동의하고 국토지리원이 지명 변경 고시를 해서 천왕봉으로 변경되었다.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 천왕봉으로 기록돼 있는데 일본 총독부에서 만든 1918년 지도부터 천황봉으로 표기되어 온 것이다. 지명 변경 후 "천황봉"이란 정상석은 제거되고 있다가 최근 국립공원 규모에 비해 작지만 "천왕봉"이란 이름의 정상석이 세워졌다.

 

정상석에 天王峯이라 세겨져 있는데 지리산 천왕봉과 구분 하기 위해서라도 옆에 속리산 글자가 추가 되었으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정상 삼각점과 위치 안내약도판 옆에 서 있으니 서쪽에서 구름이 몰려 오고 바람이 모자를 날려버리고 올라온 산님들이 서둘러 내러가도록 날씨가 심술을 부린다. 문장대 방향 주능선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기암괴석들을 바라보니 빨리 보고 싶어 발길을 재촉 한다. 정각동(3.7km)이정표를 지나고 상고암(0.8km) 갈림길에 이르니 싸락눈이 비로 변하여 내리기 시작한다.

 

법주사 갈림길(5.1km)과 천왕석문을 지나 비로봉(1032m)과 입석대를 우회하여 휴게소에 이른다. 눈보라에 지친 몸을 녹이고 점심을 먹기 위해 들어가니 자리가 없어 서서 기다리다 겨우 자리를 얻어 육개장 라면(3,000원)과 잔막걸리(3,000원) 한 잔을 구입하여 밥과 함께 먹고 청법대를 지나고 문수봉을 넘어 문장대로 향한다. 운무가 능선을 덮어 가시거리가 2-3미터 정도다. 아름다운 바위들의 조망이 운무에 가려 있어 속리산의 진면목을 볼 수 없어 아쉽다. 문장대 표지석 앞에 이르니 눈보라가 더욱 거세진다. 미끄러워 철계단 난간을 잡고 조심스레 난간을  한계단씩 천천히 올라 백두대간 2차 구간을 마무리 한다.(13:27) 

 

조망이 뛰어난 문장대 시계는 제로이고 문장대 정수리 바위홈 얼음이 뚜껍게 얼어 밟아도 깨어지지 않는다. 지나온 천왕봉 능선과 관음봉 능선의 아름다움을 조망 안내판으로 대신하고 내러선다. 휴게소터에 이르니 부산청암산악회 리본을 달고 무전기를 소유한 산행대장이 있어 반가워 인사를 하며 부산으로 함께 갈 수 있느냐고 하였더니 차 자리 여분이 있다며 승락을 한다. 

 

처음 계획은 1,2차 구간을 끝내고 시어동 화북탐방지원센터로 하산을 하여 늘티마을에서 오후 4시30분과 6시에 있는 상주시내버스를 이용하려 하였으나 부산 차편을 만났 청암산악회원들을 따라 법주사로 하산을 한다. 부산청암산악회는 화북주차장에서 올라 문장대에서 날씨가 좋지 않아 상학봉 능선 등산 계획을 수정하여 바로 법주사로 하산을 하면서 바위 밑에서 비를 피해 점심을 먹는다.(13:49)

 

냉천골휴게소(국수 4,000원, 막걸리 뚝빼기 7,000원, 도토리묵 7,000원)와 용바위골휴게소를 지나  저수지 다리에 이른다.(15:04) 비는 그치고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저수지와 어우려진 속리산을 보며 법주사 금강문에 들어선다. 법주사 경내를 돌아보고 일주문과 매표소를(입장료 3000원) 나와 법주사 탐방지원센터 등산안내도 앞에서 지나온 산행을 갈무리 한다.

 

법주사터미널에 들어가 차편을 알아보니 서울행은 자주 있는데 부산노선은 없고 2시간정도의 간격으로 있는 대전행을 이용하여야 한다. 후미 일행들을 기다리며 따끈한 국밥과 소주까지 대접을 받고 부산까지 산악회 버스를 이용하여 무사히 잘 왔다. 이틀 동안 "산꾼의집"에서 산꾼들의 흔적을 몸소 느끼며 즐겁고 유익한 산행을 하였다. 지면을 빌어 상주에서 만난 할머니와 피앗재산장 다정님 그리고 부산청암산악회에 고마움을 전한다. 모두 복 많이 받고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 화령개인택시 ☏ 011-533-4149, 화동택시 011-522-2838, 화서택시 054-533-0633, 화령터미널 054-533-0466, 화북탐방지원센터054-533-3389

 

○산행이미지 

  최근 변경된 상주터미널 시내버스 운행표

 

 

 

 

 

 

봉황산

 

 

화령 대간 들머리

 

     

  봉황산의 일몰

 

     비재

     피앗재산장 메모

 

    산장마당 시거널 

     산장지기 다정님

     대궐터산 일출

 

 

 

아침 엷은 운무

 

형제봉 할배바위

 

 

      만수동계곡

 

 

    천황봉과 논란이 있던 천왕봉에서 관음봉 조망

 

      올려다 본 천왕봉

천왕석문

 

 

 

 

 

문장대 아래 화북 갈림길

 

 

    문장대 정상 우물 얼음

돌 위에 자라는 소나무

    속리산 저수지 풍경

       법주사 금동미륵대불

 

     산행개념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