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산 

                        

                                             *산행일자:2010. 12. 19일(일)

                                             *소재지   :경기 포천/강원 철원

                                             *산높이   :명성산923m

                                             *산행코스:약사삼거리-약사령-명성산-팔각정-비선폭포 여우봉갈림길-산정호수주차장

                                             *산행시간:9시4분-16시1분(6시57분)

                                             *동행      :경동동문산악회원 16명

 

 

  명성산의 팔각정에서 빨간 우체통을 보았습니다. 이 빨간 우체통이 제 눈을 끈 것은 우선은 드럼통만한 그 크기였고, 다음으로 우체통 상단에 쓰인 하얀 글씨의 “1년 후에 받는 편지”라는 문구였습니다. 이삼일도 못 참아 등기 속달로 보내거나 그도 성이 안차 이메일로 보내야 직성이 풀리는 오늘날 1년 후에 편지를 받는 산꼭대기 우체통에 편지를 써 넣을 사람들이 과연 누가 있을까 궁금했고, 도심의 작은 우체통도 그 안에 온갖 쓰레기가 편지보다 훨씬 더 많이 들어 있다는데 이 높은 산에 너무 큰 우체통을 세운 것이 아닌 가 싶어서였습니다.

 

 

  여기 산 꼭대기 우체통에서 1년을 기다리는 편지들의 사연들은 과연 어떤 내용일까 또 궁금했습니다. 잘은 몰라도 대다수의 편지가 사랑을 노래하는 연서(戀書)일 것이라 짐작되는 것은 어느 누구도 젊어서 연애편지 한 번 안 쓴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는 해도 사랑에 빠져 수없이 편지를 나누면서 정작 결혼은 엉뚱한 사람과 해, 나중에 주고받은 연서가 문제가 되어 당혹했다는 경험이 회자되던 시대는 이제는 지난 듯합니다. 요즈음은 거의다가 컴퓨터나 휴대폰으로 이루어져 ID만 잘 간수한다면 물증을 남길 일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뀐 덕분입니다.

 

 

  이 산의 빨간 우체통을 보고 십 수 년 전에 상영된 일본 영화 “러브레터”를 떠올렸습니다. 1995년에 만들어진 이 영화가 우리나라에서 상영된 것은 그 4년 후인 1999년이었으니 당시만 해도 한일 간의 문화교류가 요즘만큼 원활하지 못한 때로 일본영화에 대한 거부감이 어느 정도 저와 같은 보통사람들에 상존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2년 전 등반사고로 목숨을 잃은 연인 후지이 이츠키의 옛 주소를 졸업앨범에서 확인하고 그 주소로 편지를 보내는 와타나베 히로코에게 답장이 날라 와 이를 위안 삼고 살다가 연인 이츠키의 옛집을 찾아가지만 답신을 보낸 사람이 죽은 연인과 이름이 같은 중학교동창임을 확인한다는 내용인데, 여 주인공 히로코가 연인이 등반사고로 숨진 산을 찾아 하얀 눈밭에서 연인을 부르며 절규하는 장면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뜬금없이 일본영화 “러브레터”가 생각난 것은 히로코가 절규하는 눈 덮인 산에다 빨간 우체통을 세워놓는다면 어떨까 싶어서였습니다. 편지는 어떨지 몰라도 적어도 산에서 죽어간 산꾼을 찾는 연인들의 눈물만은 담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 우체통에도 눈물로 적셔진 러브레터 몇 통쯤은 들어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기에 내년 이맘때쯤 집배원 아저씨와 함께 다시 올 생각입니다.

 

 

  아침 9시4분 약사삼거리를 출발했습니다. 포천 이동에서 택시를 타고 약사삼거리로 옮겨 “준희네”가게 집 앞에서 합동사진을 찍은 후 하루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가게 앞에서 서쪽으로 난 약사령 가는 길에 눈이 녹지 않고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산길에서는 아이젠을 차야할 것 같았습니다. 겨울바람에 뒷덜미가 써늘해 영하의 기온이 체감됐는데 아직은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되지 않아서인지 손끝이 아려오지는 않았습니다.

 

 

  10시10분 약사령에서 명성지맥 길에 복귀했습니다. 고개 너머가 강원도 철원 땅인 약사령에서 아이젠을 꺼내 찬 후 왼쪽 산길로 올라섰습니다. 각흘산과 명성산 사이의 가장 깊숙한 안부인 약사령에서 고도를 200m 가량 높여 두 번째 헬기장에 올라서기까지 반시간 남짓한 오름 길이 이번 산행에서 가장 힘든 깔딱 코스였습니다. 첫 번째 헬기장을 지나 좌측 사면이 거의 낭떠러지인 가파른 길을 몇 번은 로프를 잡고 오르면서 아이젠을 잘 찼다는 생각을 한 것은 오름 길에 하얀 눈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인데 덕분에 겨울 산행이 마냥 썰렁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짐을 많이 진 후미의 한 친구와 보조를 맞추느라 천천히 오르는 동안 나머지 대원들은 앞으로 내달려 따라잡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10시45분 제5지점 안내판이 세워진 삼거리를 지났습니다. 두 번째 헬기장에서 명성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주위는 나무들을 베어내고 그 자리에 키 작은 억새들이 뿌리를 내리고 있어 시야가 탁 트였습니다. 한 여름이라면 햇빛이 내리쬐는 땡볕의 능선을 지나는 일이 엄청 고역일 것이기에 겨울에 지나는 것이 참으로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지난번에는 해토 때 이 길을 지났는데 길이 미끄럽고 진흙이 바짓가랑이에 철떡 들러붙는 등 애를 먹은 기억이 생생해 더욱 그러했습니다. 왼쪽 아래 움푹한 넓은 곳이 이름난 포사격 장으로 군사도로도 얼기설기 잘 나있었습니다. 헬기장에서 내려선 제5지점의 안부삼거리는 바람이 지나는 길목이어서 귀가 시렸습니다. 안부삼거리에서 계단 길을 걸어 올라선 봉우리에서 오른 쪽 바로 아래 삭풍을 피할 만한 곳을 찾아 과일을 꺼내들며 잠시 숨을 돌렸습니다.

 

 

  11시43분 해발923m의 명성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잠시 쉬고 나자 앞서 간 일행들이 보이지 않아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저희들이 이번에 종주하는 산줄기가 한북명성지맥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은 이 산줄기가 명성산을 지나서인데 정작 명성산의 정상은 명성지맥에서 0.3Km 북쪽으로 떨어져 있어 잠시 마루금에서 이탈하여 우정 다녀와야 했습니다. 지맥 길이 왼쪽으로 꺾이는 능선삼거리에서 오른 쪽으로 이어지는 북릉 길을 오르내려 앞서 다녀간 산객들로 바닥의 눈이 단단하게 다져진 명성산의 고스락에 올라섰습니다. 곧바로 함박눈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날씨로 북쪽 지근거리의 궁예봉에 자리하고 있을 비운의 사나이 궁예와 인사말도 제대로 나누지 못한 채 능선삼거리로 되돌아갔습니다. 삼거리에서 남쪽으로 몇 분간 걸어가자 바람을 가릴 만한 넓은 곳이 눈에 띄어 이곳에서 산행을 멈추고 전 대원이 빙 둘러 앉아 점심을 들었습니다. 언제고 그랬듯이 이번에도 김주홍동문이 손수 가져온 식재료로 겨울산행에서 진가를 발휘하는 오댕 국을 끓여 주어 으스스한 한기를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13시55분 팔각정에 다다랐습니다. 따끈한 오뎅 국과 동문들과의 훈훈한 정담으로 40분 남짓한 점심시간이 내내 행복했습니다. 13시가 다 되어 자리에서 일어나 남쪽으로 뻗어나가는 지맥 길을 다시 밟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앞 910m봉에서 팔각정 쉼터까지의 남릉 길은 고도차가 별로 없어 오르내림이 심하지는 않았지만 곳곳의 암릉 길에 눈이 깔려 있어 조심해야 했습니다. 로프를 쳐놓은 우회 길로 암봉을 왼쪽으로 에돌아 능선에 올라선 후 남진을 계속하자 얼마 후 오른 쪽 아래 먼발치로 산정호수가 눈에 잡혔습니다. 우측 사면이 낭떠러지인 능선을 지나 삼각봉에 이르자 팔각정과 빨간 우체통이 보였습니다. 명성산 정상에서 시작된 아기자기한 능선 길은 삼각봉에서 끝났고 너른 안부로 내려가 팔각정 앞에서 바로 옆의 빨간 우체통에 눈길을 주며 잠시 숨을 골랐습니다. 마루금은 바로 위 봉우리에서 왼쪽으로 이어지는데 저희들은 명성산이 자랑하는 광활한 억새밭을 지나고자 왼쪽 아래로 곧바로 내려갔다가 얼마 후 오른 쪽 능선으로 붙어 지맥 길로 복귀하기로 했습니다.

 

 

  15시6분 얼어붙은 등룡폭포의 물줄기를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지난 번 팔각정 아래 억새밭을 지날 때는 저녁 시간이어서 이 밭에 몸을 숨긴 작은 새들이 억새풀 사이를 떼거리로 날아다녀 억새들이 부딪치며 사각사각 내는 소리가 산상의 화음이다 했는데 이번에는 시간이 일러서인지 그 소리를 듣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지맥 길이 지나는 능선에 다시 올라선 지 얼마 후 오른 쪽으로 꺾어 내려간 것이 지맥 길을 놓친 직접적인 원인임을 알게 된 것은 집에 돌아와서 지형도를 보고 다른 분들의 산행기를 읽고 나서였습니다. 직진하면 마루금을 타게 되지만 사격장을 지나게 되어 사격훈련을 쉬는 일요일이 아니라면 누구라도 저희들처럼 오른 쪽으로 꺾어 계곡을 따라 내려가다가 비선폭포 즈음해서 계곡을 건너 왼쪽의 여우봉으로 오르므로 길을 잘 못 들었다고 부끄러워할 일도 아닙니다. 짧은 너덜 길을 지나 만난 계곡 길에서 한참 동안 숙고 끝에 시간이 여의타면 적당한 지점에서 계곡을 건너 여우봉으로 붙기로 하고 오른 쪽으로 방향을 틀어 산정호수 쪽으로 내려갔습니다. 얼마 후 다다른 등룡폭포는 물줄기가 얼어붙어 또 다른 비경을 연출했습니다. 등룡폭포의 물줄기를 얼어붙게 한 동장군이 세월도 같이 얼어붙게 한다면 그 때만이라도 나이가 들지 않아 몇 년이라도 더 산에 다닐 수 있겠는데 과연 그런 자비를 베풀지 모르겠습니다.

 

 

  16시1분 산정호수 버스정류장에 도착했습니다. 산정호수로 흘러들어가는 계곡물이 얼어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물이 예전처럼 탁류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넓은 공터에 세워진 격자  창살모양의 모던한 쉼터에서 산행대장이 여우봉 산행을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결정해 이제 멀지 않은 산정호수로 하산해 버스를 타는 일만 남았습니다. 비선폭포(?)를 막 지나자 “여우봉 2.5Km"의 표지목이 서 있어 여우봉으로 오르는 길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사격장을 지나서라도 반드시 마루금을 타야겠다고 고집하지 않는다면 다른 산객들도 저희들과 같은 코스로 산행했을 것이라 생각하자 뭔가 찝찝한 기분이 사라졌습니다. 산정호수 버스정류장에서 택시를 불러 운천으로 나가 저녁을 들었습니다. 모처럼 동서울터미널에 일찍 돌아와 동기들과 인근 맥주 집을 들러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 후 자정이 다 되어 귀가해 산 나들이를 전부 마쳤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영화 “러브레터”의 여주인공처럼 편지를 보낼 곳이 있습니다. 10년 전에 제 곁을 떠난 집사람이 머무는 천국이 그 곳입니다. 당신의 막내아들이 반듯한 규수를 만나 장가를 들었고, 당신의 남편이 방송대국문과에 입학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으며, 막내 녀석 결혼을 축하하는 고마운 분들에 올릴 수 있도록 때 맞춰 “섬진강둘레산줄기에서 길을 찾다”라는 제목으로 책을 냈다는 소식을 담은 편지를 써 갖고 명성산을 올랐다면 우체통에 넣을 수 있었을 텐데 진작 우체통이 세워진 것을 알지 못해 그리하지 못했습니다. 기왕 늦은 김에 한 해를 더 기다려 당신의 두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남편이 정말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음을 사진 찍고 글을 써 편지를 보내고자 합니다. 혹시라도 주님께서 제 편지를 보시고 집사람에 답장을 보내라고 명하실지 누가 압니까? 그래서 저는 내년 이맘때쯤 편지를 보내고 1년이고 10년이고 기다려볼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