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산행일자 : 2004. 01. 01. 00:40 ~ 14:16

2. 산행형태 : 원정산행, 해맞이 산행

3. 교 통 편 : 버스

4. 날 씨 : 맑음

5. 산행코스 : 백무동(00:40)→하동바위(01:30)→참샘(01:50)→망바위(02:50)→장터목 산장(03:20,05:30)→천왕봉(07:20)→중봉(08:40)→치밭목 산장(10:30)→새재삼거리(12:04)→새재마을(14:16)

6. 산행기

동서울터미널에서 백무동으로 출발하는 막차(19:00)는 승객을 기다리느라 제시간에 출발하지 못하였으나 고속도로는 시원하게 뚫려 있다. 함양을 경유하여 백무동에 도착한 시간이 23:07분인데 관리공단직원이 새벽 1시부터 입산할 수 있으니 가게에서 몸을 녹이며 기다리란다.

매표소 입구에는 비닐천막으로 바람을 피하도록 배려하고 있었으며 함양 꿀 한 통과 커피 그리고 온수가 준비되어 있어 공단직원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다. 새해에는 여기 모인 모든 분들의 가정에 행복이 깃들고 하시는 일이 모두 잘되기를 바란다는 직원의 인사말과 함께 야간 산행이 시작되었다. 당초 예정시간인 01:00분 보다 20분 이른 시각이다.

천천히 오르는 등로에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랜턴불빛 행렬이 끝없이 이어져 있는데 길섶에 서 있는 하동바위, 참샘, 망바위란 안내 표지판만이 현재의 위치를 알려주고 있을 뿐이다.추위 때문인지 하늘에는 초롱초롱하다 못해 금방 쏟아져 내릴것만 같은 별들이 새벽길을 밝히고 있고...

쉼없이 오르는 등로에는 인간들의 발자국에 짓눌린 눈들이 어둠을 밝혀주고 있지만 고도를 높여 갈수록 배낭을 내려놓는 산객들이 점차 많아지며 불빛들이 희미해진다. 힘들어 하는 동행자의 어려움을 모르는체 쉬지 않고 내딛는 발걸음은 2시간 40분 만에 산죽밭을 지나 장터목 산장에 나를 데려다 놓고 있다.

산장에는 적막함만이 감돌고 있는데 취사장은 불을 밝히고 있다. 먼저 도착한 등산객들이 벽에 기대어 쉬고 있는데 계산이 서질 않는다. 지금부터 밥을 먹으면 너무 이를 테고... 그러나 4시전에 식사를 끝내면 잠시동안의 수면시간이 나을 것 같아 준비해간 떡국으로 진수성찬을 차려 본다. 동행자는 기다리고 있는 여자친구에게 문자메세지를 남기고 있고...

소주 한 병에 신년맞이 떡국에 시간 가는 줄 모르는데 일출을 맞이하러 온 인파가 취사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그 속에서 반가운 얼굴들도 몇몇 찾을 수 있고 하여 주섬주섬 배낭을 챙겨 산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토막잠을 자러...

제석봉을 오르는 등로는 인파로 발걸음을 제대로 옮길 수 없을 정도인데 가스가 몰려왔다 몰려가고 종잡을 수 없다. 일출이 가능할지 아니면 어려울지를, 백무동 관리직원은 내일 일출은 99% 볼 수 없을 거라고 예기하였지만 정상에는 바람이 많이 불고 있다니까 제갈공명이 동남풍을 빌어 적벽대전에서 승리하였듯이 천왕봉 세찬바람은 일출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줄지도 모른다고 얘기하니 볼 수 있을거라고 수정해 준다. 냉철한 이성이 감성에 지배되어 한 말이겠지만...

인간사 세상은 불법과 탈법이 항상 존재하는 가 보다. 120년 전에 김옥균,박영효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갑신정변을 일으켰었다. 비록 3일 천하로 끝난 미완의 혁명이였지만 혁명 그 자체만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데 오늘 우리는 새로운 정신혁명을 꾀해 볼 때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만이라도 산에서는 제발 갓길가기, 새치기를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에서...

지체되는 등로에서 본 동녘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저 빛은 오늘도 내일도 매일 뜨는 해의 일상이겠지만 새로움으로 다가오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불원천리 달려와서 일출을 보겠다고, 그리고 소망하는 그것이 무엇일까. 나 자신만의 안락함을 찾으러, 아니면 세상을 구하겠다는 큰 뜻이 있어서일까.

마음에 담아 둔 바램이 이루어지고 새로운 출발을 위해 마음을 다잡는, 그리고 올해는 모든 일이 잘 되기를 바래보면서 한 걸음 한 걸음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다. 마당에 서 있는 감나무에 감이 열리듯 천왕봉에는 사람이 주렁주렁 열려 있다. 농사로 치면 풍년가를 불러야 할 만큼이나 많이.

일출 예정시간이 20여분 남았지만 동녘하늘에는 갑신년을 여는 산고의 몸부림을 하고 있다. 맛을 보고 눈으로 보아야만 알 수 있는 것이 세상사이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마음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구름 아래에서 세상을 밝히기 위해 몸부림치는 태양의 산고를...

붉은 기운속에 기다리던 해는 부끄러운지 살짝 얼굴을 내밀고 있다. 박수치는 사람, 환호성을 지르는 사람, 각양각색이지만 나는 한 마디의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건 장엄함 그 자체로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기쁨이지 인간의 표현으로는 부족한, 아니 표현하면 그 기쁨이 날아가버릴 것만 같은 희열이였다. 용솟음치듯 불쑥불쑥 솟는 해를 보면서 마음속으로 빌어본다. 가족,친구, 그리고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이 충만하기를... 그런데 정작 내 소망을 잊어버린 것 같다.

지리10경의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천왕봉 일출은 구름아래에서 솟아오르는, 바다에서 일출을 보듯이 하는 산과 운해 그리고 태양이 조화된 그런 일출을 말한다고 하는데 이 정도면 진정한 천왕봉 일출이라고 말해도 손색이 없겠다. 또한 천왕봉 일출은 삼대가 덕을 쌓아야 구경할 수 있다는데 이런 기회가 나에게 온 것은 지금부터 3대가 덕을 쌓으라는 계시 같다.

중봉은 희끗희끗한 노신사의 머리 같이 찬바람을 이고 서 있고 치밭목 산장을 지나 새재마을에 도착하니 14:16분이다. 이로써 신년맞이 일출산행을 마감하였다.


▣ manuel - 참 황홀한 순간이군요. 혹 老신사의 새해 소망은 존함에 있는 그대로 인자하신 분으로 산사랑을 이렇게 나눠주심이 아니었을런지요 ... 지리에서의 발원을 다 이루소서.
- 감사합니다. 선생님도 한국의 산하를 두루 섭렵하시고 행복한 산행 많이 하십시요.

▣ 모산재 - 산행기 잘 보았습니다. 새해에도 항상 좋은 산행 많이하시고 건강하세요.
- 모산재님 감사합니다. 선생님께도 솟는 해처럼 항상 희망과 정열이 넘치시기를 소원하겠습니다.

▣ 산초스 - 대단하신 열정으로 지리산 천왕봉에서 일출을 맞으셨군요. 축하드리며 덕분에 편하게 좋은 산행기 잘 읽었습니다.
- 저도 선생님 산행기 즐독하고 있습니다. 새해에도 항상 좋은 산행하시고 건강하세요.

▣ 산인준치 - 인자요산님 갑신년 새해를 님과함께 한 지리산 천왕봉 일출 너무 좋았습니다. 올 한해도 좋은 산행 이어가시길 바랍니다.
- 준치님은 항상 지방에서만 뵐 수 있었는데 인근산에서도 뵐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천왕일출을 같이할 수 있어서 고마웠습니다.

▣ 슬기난 - 좋은 산행기 잘 읽고 있습니다. 태극 3구간후 일정이 안 맞아 뵙지 못하는군요 . 언제 청계산 자락에서라도 뵙기를..
- 선생님 청계산에 왕림하실때 연락 주세요. 기회를 한번 만들어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 전화는 018-304-3801입니다.

▣ 북한산 - 인자요산님 갑신년 새해를 천왕봉에서 맞이하셨군요. 백무동 매표소 지나서 조금 오르면 펼쳐지는 대나무밭이 눈에 선합니다.새해에도 건강하시고 복이 넘치시도록 받으시길 기원합니다.
- 북한산님, 저는 여러 선배님들 조속히 찾아뵙고 싶었지만 저는 왕초보라 그러지 못했습니다. 제가 선배님들 들머리에라도 닿을때 까지 열심히 산행하고 연후에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산행기 즐독하고 있는 애독입니다. 기억해 주세요.

▣ 최병국 - 인자요산님 밤새도록 산행을...저는 불가능한 일... 끔직합니다...생각만해도...일출을 보셨다니 축하드립니다...새해 건강하시고 즐산하시길...
- 저는 아직 초보니까 열심히 다녀야 됩니다. 그리고 다음에 야간산행 한번 가 보세요. 그 기분도 좋을 것입니다. 갑신년 내내 행복하시구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