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    :  2004년 늦은 가을 어느 날, 늦은 오후부터..
* 누구와    :  홀로..
* 산행코스   :  구기동 - 탕춘대능선 - 향로봉 - 비봉 - 승가봉 - 구기계곡 - 구기매표소  


혼자서 야간산행을 하고 싶다 는 생각이 자꾸 든다.
그러니까 ' 홀로산행 + 야간산행 ' 말이다.
왜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일까 ?

 

일단, 계획은 구기동 -탕춘대능선 -향로봉 후회 - 비봉 - 대남문 - 구기계곡으로 하산 일정이다.
지하철을 타고 버스로 갈아타고 해서 구기동에 내렸다.

구기동에 내리니 비록 낮이 많이 짧아졌다고 하나 (추분 지난지 한참 되었으니..) 아직 날은 밝다.
골목길을 걷고있는데 강아지가 졸졸 따라온다. 이런 녀석 보게 ?  카메라를 꺼내들고 찰칵~
어느 집 담벼락에 붙어있는, 옆의 가지들은 모두 시들었지만, 파릇파릇한 자그마한 잎사귀가 유난히 눈길을 끈다.

천천히 탕춘대 능선으로 오르면서 산행을 시작한다.
탕춘대 능선길은 시원하고, 노을이 지기 시작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산행을 본격적으로 시작한지, 이제 3년.
그동안에 일주일에 한번 정도 꼴로 산행을 해왔던 것 같다.
주로 일요일에.. 산행을 하고나서 오후 늦게 또는 저녁에 미사를 드리는 방식으로..
 
올해 초, 산행이 생활습관이 되었다는 것을 느낀적이 있다.
가끔 반나절 이상의 시간이 나면, 언제나 배낭을 메고 산을 행하는 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공휴일 또는 월차 등등 쉬는날이면 거의 산에 있을 정도였다.

 

나는 왜 산행을 하는 것일까 ?
어째서 그렇게 산을 찾는 것일까 ?

 

언제나 감탄과 외경을 불러 일으키는 대자연의 장엄함을 느낄수 있어서 ??
체력과 정신력을 기를수 있는 운동과 레저를 겸한 활동으로 ??
땀을 쭈욱 흘리고 난뒤 걷는 산길의 상쾌함이 좋아서 ??
산을 좋아하는 동호회 사람들과의 만남과 같이 산행하는 것이 좋아서 ??
요즘 조금씩 재미드는것 같아 스스로 절제하려 애쓰는 릿지의 아슬아슬함과 짜릿함이 좋아서 ??
복잡다단하고 머리아픈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일생생활을 벗어나 호젓할수 있어서 ??

 

아무튼, 오늘은 그냥 혼자서 조용히 자신을 되돌아보자 라는 생각이 담긴 산행이다.

 

이미 닫혀있는 탕춘대 매표소를 지나서 걷고 있는데 눈길을 끄는것이 또 있다.
빛바랜 단풍과 낙엽들 사이로 개나리가 올망졸망 피어있다. 개나리는 봄에 피지 않나 ?
지나가던 사람들도 신기해서 쳐다보더니 핸드폰으로 찍는다. 다른사람에게 알려야 겠다며..
그러면서 사람들이 믿어줄지 모르겠네 ? 하면서 마구 웃는다. 그말에 나도 웃으며 디카로 찰칵~

 

탕춘대 능선에서 보았던 노을은 아름다웠지만, 어느새 향로봉 사면에 도착하자 날은 어두워진다.
준비한 헤드랜턴을 꺼내 머리에 부착하고 산행을 계속한다. 여러번 다녔던 코스라 길에 대한 부담은 없다.
향로봉 옆 사면의 바위, 보통 산행할때 잠시 쉬면서 시내 풍경을 구경하곤 했던, 위에서 오늘도
잠시 쉬다가 시내 야경을 한장 찍는다. 불경기에다가 많이 오른 유가를 반영하듯 시내는 생각보다
어둡다. 빌딩의 불빛보다는 오히려 가로등이 더 밝게 빛나는 듯..

 

밤길 + 산길을 조심조심 진행하다보니 어느새 한백봉.  이곳도 내가 좋아하는 곳 중의 하나..
주로 워킹을 하기에 향로봉을 오르지 않는 나로서는 비봉능선에서 북한산 주봉우리등과 의상능선을
모두 볼수있는 최초의 곳이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오늘은 봉우리들은 전혀 보이지 않고 암흑 자체일뿐..

이곳에 동서남북 모든 방향으로 주변을 둘러보게 된다.
불빛을 배경으로 능선의 실루엣만 보이는 향로봉 능선과 그 뒤로 서울 서쪽 방향의 시내 불빛들.
간간히 보이는 가로등과 도로 불빛의 송추방향.
암흑에 쌓여 보이지 않는, 그러나 실재 자리잡고 있는, 비봉과 문수봉과 주봉우리들.
약간 어둡지만 아름다운 야경을 보여주는 서울 시내의 불빛과 북악산 스카이웨이의 가로등.
암흑같은 어둠속에 저 멀리 시내의 불빛만이 조금식 보여지고 사방은 아주 고요하다.
바로 이 조용함, 호젓함을 찾아서 밤에 혼자 산을 찾아온것이다.
주위 풍경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산행을 지속한다.

 

사모바위 부근 한적한 곳에서 준비해 온 저녁을 먹는다. 내 주요메뉴인 김밥과 마실것과 과일.
저녁을 먹으며 시내를 바라보니 야경이 생각보다 밝지가 않다. 오히려 어둡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
점점 늘어나는 청년 실업자와 신용불량자,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일반 서민들의 생활
장기적인 불황 또는 스태그플레이션에 진입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한국경제.
전 세계가 하나의 생활권으로 되어가는 지구촌. 그속에서 아웅다웅 살아가는 국민들과 나라들..
이런..  산에까지 와서.. 그것도 밥먹으면서 그런 생각을 하다니..   

 

식사를 끝내고 나서 목을 축인다음에 산행을 진행하다가 호젓한 곳에 앉아 생각에 잠기게 된다.
오늘 산행은 혼자 조용히 나자신을 되돌아 보기로 한것이다.

 

이제, 내 나이 40대.  
40대의 10년은 어떠한 기간일까 ?
인생에서 가장 많은 활동을 해야 할 시기...
사회에서는 어느새 중추세대로서 역할을 해야하는 시기.
절박한 밥벌이로서는 이제는 월급장이를 벗어나 나만의 일을 이뤄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고..

 

일전에 어느 유명한 아티스트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라고 물었을때
사회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립하는 것 즉 일 하는 것이 바로 행복이다 라는 대답을 하는것을 본적이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밥벌이를 하는 것, 그것이 바로 행복이다 라는 말에 충분히 공감한다

현재, 내가 몸담고있는 분야 프로그래밍은 고도의 정신노동을 요구하는 일이다.
우리들은 정신 노가다라고 자조하기도 한다. 그러기에 퇴직(?) 연령이 아주 낮다.
이 분야에서는 이미 환갑의 나이를 지난 셈이다.
내가 아직도 코딩 ( 물론 분석, 설계 포함이지만..) 하고 있다 말을 하면 많이들 놀란다.
왜 관리직으로 나가지 않으셨냐 하고..  물론 그런 주변머리도 없지만 별로 적성에 맞지도 않고
게다가 우리나라 소프트업계 특성상 대기업 몇몇을 제외하곤 모두 영세업체라서
관리직의 기회가 별로 주어지지 않았던 것도 이유일 것이다.
아무튼 이미 월급장이로서는 한계에 다다른 셈이다.
주변 상황은 나에게 결단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과연 사회에서 나는 어떠한 일을 하고 위치를 담당해야 하는 것일까 ?
나의 개성과 밥벌이를 충족시키면서 보람찬 일이란 과연 무엇일까 ?

과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무엇일까 ?
내가 가장 잘할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
아직도 나는 자기자신에 대해 조차 제대로 알고있지 못하는 걸까 ?
과연 나의 존재이유와 삶의 이유는 무엇일까 ?
사회적 가치는 무엇이며 행복한 삶을 지속해서 이룩할수 있을까 ?
요즘, 내가 가장 고민하고 있는 일들을 가지고 여러가지 생각을 하며 상념에 잠기게 된다.

 

결국, 오늘 아무런 정답도 찾지를 못했다.
하긴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해답을 찾아낼수 있으랴 ?
평생 삶에서 계속 질문하고 대답을 구하며 살아야 하는 것을..  그래도 해답을 얻지 못할수도 있는것을..

 

다만
살아있다는 것..
내가 현재 존재한다는 것,
그것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고 해결이 아닐까 ?

 

오늘 올라올때 보았던 담벼락에 붙어있는 자그만한 잎새 그리고 계절에 어울리지 않게 피어잇는 개나리.
나를 잠깐이나마 졸졸 따라왔던 강아지, 오늘도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 태양과 구름 그리고 바람.
언제나 묵묵히 나를 받아주는 산.. 그 안의 무수한 객체들. 나무, 숲, 바위,
그리고 각기 개성을 지닌채 다른 생각을 지니고 살아가는 그 수많은 사람들..
그 모든 것이 바로 생명, 그리고 나도 한 객체이자 그 일부.

그렇다면 역시 살기위해 먹고 일하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우리가 매일 해나가는
일상생활이 바로 해답이라는 이상한 결론에 도달하고 혼자 산에서 조용히 웃게 된다.
아마 다른 사람이 보았다면 이상하게 생각했을지도..

 

산행을 계속 할때는 몰랐는데, 산속에서 가만히 앉아있으니 무척 추워짐을 느끼게 된다.
문수봉을 넘어 대남문으로 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어차피 오늘 산행은 그냥 자신을 조용히 돌아보자는
계획이었던 만큼 더이상 진행하지 않고 하산하기로 한다. 나중에 다시 야간산행을 하자 생각하며..
다시 되돌아가 승가사 방향으로 내려가서 구기계곡을 통과한다.  

구기매표소는 불이 꺼져 있고, 당연한가 ?, 옆에 위치한 북한산 구기분소 사무실에는 불이 환하게 켜져있다.
밤늦게까지 무슨 일을 하고있는 것일까 ?  저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

 

구기동에서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서 지하철을 타기위해 종로에서 내린다.
종로거리. 고등학교때 통학땜시 자주 다녔던.. 수많은 선남선녀들이 어울렸던 번화가..
지금도 번화가요 젊은이들로 가득차 있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예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당시와 많이 달라진 모습과 분위기를 느끼게 된다.

 

아파트 입구의 수은등이 무척이나 반갑게 느껴진다. 전에는 이렇게 느껴지지 않앗는데..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일상에서 벗어나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일부러 그럴려고 했었기 때문일까 ?

 

시계를 보니 비록 시각은 밤늦었지만 자정을 넘지는 않았다. 즉 아직 내일은 아니다.
내일은 보다 나은 하루가 되기를 바라며 오늘의 산행을 마치게 된다.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하여...

 

 


* 지하철로 이동하며..   


* 오후 늦은 시각의 서쪽 하늘


* 구기동 어느 담에 붙어있던..


* 그 옆에 같이 붙어있던 잎새 


* 잠시 졸졸 따라왔던..


* 계절은 만추  늦은가을


* 탕춘대 능선 길


* 탕춘대 능선길에서 바라본 족두리봉


* 탕춘대 능선에서 바라본 향로봉


* 저녁 노을


* 탕춘대 능선길 이정표 


* 저녁 노을.. 해가 급히 지는..


* 닫혀있는 탕춘대 매표소


* 탕춘대 능선에서 발견한 개나리.. 단풍도 지는 늦가을에..


* 계절을 잊어먹은 건가 ? 암튼, 신기했슴


* 향로봉 사면의 이정표


* 어느새 어둠이 깔린..   족두리봉 정상에 사람 두명.


* 시내 야경 


* 향로봉 사면의 바위 틈새길


* 이정표


* 향로봉의 실루엣과 시내의 불빛


* 이정표


* 비봉 안내문


* 어둠속의 비봉 모습


* 비봉능선


* 사모바위 옆 향나무


* 아름다운 풍경


* 등산배낭과 기타..


* 승가봉 가는길에 본 도시의 야경


* 구기계곡으로 하산


* 구기 매표소


* 버스안에서 찍은 광화문


* 종로거리


* 아파트 입구의 수은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