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지리산 벽소령 작전도로를 따라서...

 

 

                                               <창암 능선을 바라보며: 음정에서>

 

 

 

   -산행일시 :  2004.11.12

   -산행구간 : 음정-작전도로-벽소령-형제봉-삼각점-벽소령-작전도로-이현상 아지트-의신

   -날씨 : 몹시 바람불고 동부능선 상고대.

   -함께한 사람 : 나 홀로.

 

 

                                                     <의신에서 바라본 명선봉 능선>

 

 

 나에게는 Alarm Setting이 필요 없다.

언제나 그랬듯이 내가 일어나야겠다고 하는 시간이면 어김없이 눈을 뜬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습관화가 되어서일까?

그건 아마 정신적인 문제가 더 크다고 본다.

오늘 아침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새벽 4시 10분 잠에서 깨어난 나는 조용히 방문을 나섰다.

행여 집안 식구들의 수면에 방해가 될까 싶어 거실에서 모든 준비를 마칠 요량으로..

 


  

                          

   -05:10 집밖을 나서면서


 

 어느덧 절기상으로 입동을 지나 벌써 11월의 중순이다.

어제 내린 비로 인하여 갑자기 수은주가 급강하 하더니만 차가운 한기를 느낀다.

스산한 가을과 겨울 사이의 새벽바람을 맞으며 나는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바삐 움직이는 새벽을 여는 아침 사람들...

그들은 분명히 소식을 배달하고, 희망을 나르며, 우리의 정화를 쓸어 담는 새벽 사람들

속에 진지한  삶의 모습을 발견한 나는 희망을 찾을 수 있었다.

그곳에는 분명 나도 거기에 포함되어 있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의 위안을 삼아본다.


 


     

 

   -남원 역사에서.


 

 7시 조금 못되어 이곳 남원 역에 도착한 나는 이곳의 역사가 더욱더 활량하게 느껴진다.

8월 달에 이곳으로 옮긴 뒤로는 더욱더 그랬다.

주위의 건물들이 아직 형성되지 않아서일까?

혼자만 남겨두고 달랑 떠나버린 무심함 기차 뒤꽁무니를 쳐다보며 선로를 건너

역사를 빠져 나온다. 나 혼자만 내린 것을 알았을까.

빈 택시는 나에게 여유를 주지 않고...

한참 만에 잡아탄 택시기사님이 벌서 눈치가 9단이다.

앞지르기를 하신 것이다.

“지리산 어디 가십니까” 삼정리 입니다.

“그러면 운봉으로 가면 안 되겠습니까?”

“왜요”

이 차가 운봉택시인데 운봉까지 10000원에 해 줄 테니 나보고 코스 변경을 하라신다.

정말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과연 그런 산객도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봤다.

 


                                                           <음정마을의 아침>

 

 

   -음정 마을에서


 

가을빛도 잔뜩 머문 화려한 단풍산도 아니었고 능선을 따라 흐드러지게 핀 무채색의

억새도 보이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길가에 우수수 떨어져 나뒹구는 다갈색 낙엽더미를 밟으며 떨어져서도 아름다움을 간직함이 새삼 새롭구나.

한해 농사일이 끝났는가 싶었는데 저 아래  밭떼기에서 두 아낙네의 부지런함이 세월의 흐름을 막아서는 것 같다.

낯선 손님의 출입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저돌적인 황소만한 누런

개가 선창을 하자 이에 질세라 동네 개들이 엄청 쏟아내는 소음을 뒤로하고 황급히 작전

도로의 초입으로 돌아선다.

 

                            <전기 케이블 공사중인 작전도로: 음정에서 1.5km 지점>

 

   -문명의 이기가 만들어 내는 산물


 

 벽소령 작전도로는 1969~1972 10월까지 공사기간을 걸쳐 만들어진 도로로써 무장공비

들의 은신처나 거점으로 기능할 것을 방지한다는 군사적 요구에서 비롯된 도로인데

30년 이상을 넘게 방치해 두고 있다.

또 다른 아쉬움은 문명의 이기가 만들고 있는 현재의 공사다.

벽소령까지 전기 케이블공사와 전선케이블 배선공사로 인하여 포크레인과 짚차등이 이곳을 오가며

이곳 지리산에 오염물을 토해 내고 있다.

심히 걱정이다.

머지않아 벽소령 넘어 의신까지 짚 차 타고 지리산 허리를 넘나들지 모르겠다.

이렇다보니 주능선 구간에도 캐이불공사 한다고 그럴 날이 올까 두렵다.

벽소령에 촛불 키면 어떻고 심중산속에 잠시 문명의 이기에서 벗어난들 어떠하리오.

이렇게 인간의 이기심이 만들어내는 산물이 한심스럽게 여겨질 수 없다.

 

 

 

   -계속된 작전도로를 따라서

이따금씩 나타나는 공사자재의 불규칙한 시설물들과 정리되지 않은 바윗덩어리들이 나뒹굴고 빗물에

흘러내리는 토사는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다.

그들이 남겨둔 쓰레기는 과연 누구의 손에 의해서 치우 져야 할까하는 아쉬움이 앞선다.


 

 

 

 

    -벽소령에서

가진 것 죄다 내려놓고 떠날 채비를 하는 저 숲과 겨울 채비에 들어간 지리는 제

모습을 잃어버렸다.

초록으로 무성하던 나무숲은 어느새 이파리를 몇 개만 달랑 남겨두고 빈가지로 서있구나.

거세게 몰아지는 삭풍에 끝까지 버텨가는 너의 모습이 안쓰럽다.

이제 첫눈이 내릴 날도 멀지 않았구나.

그때면 또다시 동면의 세계에서 벗어나 벌써 움트기 연습을 할 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무릇 이토록 아름다운 자연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때가 되면 채우고 비울 줄 아는 식물들의 겸양이 있지만 아집과 오만을 일삼고, 명예와 물질을 최고를

아는 우리 인간에서 저 자연물은 과연 어떤 격을 지녔는가를 곰곰이 되새겨

본다. 결국 개개인의 마음 한구석에 욕심과 이기심의 병이 깃든 탓이 아닐까?

욕심과 이기심을 버리면 우리도 저 식물처럼 순수 해 질수 있을까 하는 순수한 마음을

가져본다.

 


 

 

     

   -뜻하지 않은 생각

벽소령의 명상도 잠시 뒤로 하고 가야 할 주능선을 타고 있다.

형제봉의 조망도 거세게 불어 닥치는 바람을 비켜 갈 수는 없었다.

손끝이 시려오고 저 멀리 동부능선 쪽으로는 희뿌연 상고대가 피어있고 천왕의 머리

위에는 한 움큼의 솜 덩어리를 이고 있구나.

연하천 못 미쳐 삼각점에 다다랐을 때 뜻하지 않은 생각들이 나의 이성의 판단을 혼동의

나락으로 몰아 부치고 있었다.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사막의 방랑자처럼...

잠시 시계를 쳐다본다.

12시 10분

 

   

 

 갑자기 발걸음이 바쁘게 움직였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고 있었다.

결코 주능선을 포기하고 계곡과 능선을 타고 있었다.

역광의 가을 햇살에 눈부신 산등성이의 억세 꽃이 나부끼고 있으며 나무와 가지 사이로

파고드는 눈부심의 햇살은 스펙트럼의 연속처럼 이어지고 있었다.

이따금씩 가슴 속 깊이 폐부로 파고드는 매서운 바람은 이미 콧등을 세우게 하더니만 하얀 액체의

분비물을 쏟아내게 하다.

 


                                                          <이현상 아지트의 주변>

                                                     <이현상 최후의 격전지>

 

 

  -이현상 아지트와 격전지를 찾아

숨 가쁘게 계곡을 내려왔을 때 어느덧 이현상 아지트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최후 격전지를 보는 것보다 이현상 아지트가 우선일 것 같아 임도가 끝나자마자 우측의

이정표를 따라 이현상 아지트를 찾기로 하였다.

주위의 가지런한 단풍나무들이 빼곡히 차 있었고 아직 떨어지지 않은 빨간 단풍은

가을 햇살에 꼬실려 지고 있었다.

 

 


                                                     

                                    <이현상 아지트 주변의계곡(사진 위)과 능선에서>

 

 

    이현상-

 빨치산들의 사이에서 영웅적인 존재로 알려진 사람

남부군 총사령과 이현상 아지트는 외부에 대한 조망이 쉽고 바위, 소 동굴, 산죽,

수목등이 어울러져 아지트로써 모든 것을 지니고 있는 곳이라는 이곳에 내가 와 있다.

천해의 자연 조건에서 장기간 동안 게릴라전을 펼친 그가 1953.9.18 오전 11시경 서남지구

전투 경찰 사령부에 의해 숨졌다는(자기가 자살했다는 설도 있음)  최후 격전지에서

나는 무엇을 생각할까?

동족상잔의 씻을 수 없는 6.25 전쟁이 만들어내는 인간 생명의 경멸 사상이 우리와의

단절의 의미할까?

힘없는 발걸음을 내딛으며 내려오는 나의 가슴속에 슬픈 연민의 정이 느껴져 온다.


 

 

                                                  <내려오면서: 좌측능선의 지계곡>

 

 

 

 

 

 의신에서 17시 10분 차를 타기로 여유 있게 내려왔건만

시간 때우기로써는 몸의 한기가 느껴져 그냥 계속 내려가기로 하였다.

연료 주입 헬기장을 거치고 대성교를 거쳐 단천교 갈 때까지도 히치 할만한 차는

내려오지 않고 있었다.

한참만에야 행운이 내게 다가왔다.

히치 성공이다.

그곳에는 벌써 두분의 부자지간이 동석하고 있었으며 나를 포함하여 5명이었다.

정말 미안하기도 하고(혹시 이글을 보시면 다시 한번 감사 말씀 올립니다.)

어쨌든 그러한 고마움에 내가 아는 지리산 일편적인 얘기를 들려주는 사이 벌써

터미널에 도착하였다.

조용히 지친 몸을 창가에 가누며 해 저문 섬진강을 바라본다.

그리고 부딪히고 깨지면서 묵묵히 제 길로 흘러가는 가을의 강 섬진강을 바라보면서

                         이만 산행기를 마칩니다.


 


 

                                                        2004.  11.  14.


 

                                                                             전   치   옥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