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마고우의 그리움이 묻어나는 모산재


지리산 대원사 계곡이 많이도 그리웠다.
이제 15일이며 산불 경방 기간이 적용되어 당분간은 지리를 찾을 수
없게된다.
사립문 닫히기 전에 가보고 싶어 안달재신으로 돌아쳤으나 부산에
있는 초교 동창 몇놈들이 모산재로 온다기에 도저히 자리를 피치못해
대원사 계곡은 애시당초 물건너 가고 말았다.


가던날이 장날이더라고 마침 선배의 부인이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
하는통에   침통한 문상 자리에서 이어졌던 술자리가 지인들 몇과
두어자리를 거치는 동안 인사불성으로 이어져 곁에게 등짝에 누린내가
나도록 맞을 빌미를 만들어 놓앗으니 항차 이일을 어찌 할꼬 ...


장지가 훤히 밝아 오도록 일어나지도 못하고 이불속에서 곁의 눈치를
살피며 상추밭에 똥싼 개 꼬락서니로 뭉기적거리니 곁도 오랜만에
동창들 만나러 간다는데야 긴사설 짜른 소리를  늘어 놓기는 어찌
했던지 어서 씻고 준비하랜다.
똥마련년 국거리 썰듯 후다닥 씻고 나오니 아침을 차리는 곁의 퍼런
서슬이 동지섣달 설한풍이요, 잘벼린 칼날같이 섬뜩하다.


밥상을 대하기는 했으나 밥은 모래요 국은 소태라 두어숟갈 흉내만
내고는 보따리 챙겨 약속 장소인 터미널 앞으로 실실 내뺀다.
돌아보지 않아도 곁의 차가운 시선에 온몸이 얼어붙는듯 오싹허니
한기가 절로인다.
동창눔들은 주차장 앞 해장국집에 모여 설렁탕과 콩나물 국밥으로
얼요기를 하고 있다.


뚝배기에 고개를 쳐박고 저리 먹어도 무슨 동티가 나지 않을까 저어
할만큼 게걸스레 술질을 하던 동창회장 눔이 반갑게 손을 드는데
입주위로 벌겋게 묻은 고추가루만 따로 모아도 김치 두어포기는 실하게
담겠더라.
"우찌 가까이 있는 놈이 더 늦네.."
여기저기서 타박성 인사가 난무한다.


모다들 40고개를 막 딛고 일어선 터수라 개기름 낀 얼굴에 제법 경륜(?)이
도져하다.
객이 여리꾼 겸 길라잡이가 되어 초등학교때 소풍가는 기분으로 백리 벚꽃
길을 거슬러 모산재로 향한다.
역시 초딩 동창이 좋긴 좋은 모양이다.
각기 사는곳도 다르고 객같이 아랫도리 찬바람이 썰렁한 살림 두량축도
있고 쇠푼깨나 쩔렁거리는 놈도 있지만 어느 누구도 빈축을 당해 허물을
잽히는 경우는 없다.


낫살 값을 하느라고 낭자한 음담패설이 시금털털 걸죽하지만 여친들도 예같이
얼굴을 붉히지도 기죽는법도 없다.
황매산 주차장과 모산재 노둣돌엔 한치의 틈도 없이 차량들로 빼곡히 들어차
마치 철쭉제 때를 방불케한다.
객이 안면을 트고 지내는 모산재 식당 노둣돌에 친구놈의 로시난테(아차 이놈
차는 새거든디..) 를 매어두고 모산재 오름길을 장마통에 오간수 맹꽁이 모이디끼
한다리로 우르르 몰려간다.


모산재 바위 능선엔 잘익은 벼포기에 메뚜기 팔딱 거리듯 수많은 사람들이
달라붙어 마치 북한산 오름길을 보는듯한데 일부 험로 구간엔 정체현상까지
벌어지는 진풍경을 연출한다.
쉬엄쉬엄 오르며 저기는 악견산 저기는 금성산 어쩌구 하며 입술에 신명이 붙어
난체하며 선무당 작두 타디끼 어설프게 주절거리나 향골 촌놈들이면서도 여기
모산재가 처음인 초보들은 서울이 초행인 어리보기처럼 감탄만 연발한다.


하긴객도 처음 왔을때의 그 감동을 여태 있지 못하고 있으니 피장파장 고추장이긴
매일반이다.
황포돛대에 이르 감과 귤을 까먹으며 한참이나 퍼질러 논다.
누구도 제출물로 먼저 가자는넘이 없다.
무슨 얘기가 그리도 많은지 끝이없이 계속 나온다.
온갖 세상 걱정 근심을 다 털고서야 겨우 일어선다.


천하명당 무지개 터를 앞에두고 널찍한 떡판바위에 올라 묵방사 코스인 누룩덤을
조망하며 쉬어가는데 근디 어떤 용감한 아줌마 한분이 하얀 탱크탑을 안이 훤히
비치게 입고 있어 어찌나 황홀하던지..
도시 자리를 뜨기가 힘이드는데 여친들이 소매를 잡아끌어 겨우 위기를 모면한다.
숨겨놓은 소나무 분재 지역을 둘러보고는 그렁저렁 정상에 닿으니 많은 사람들로
입추의 여지가 없다 .


철쭉제 지역과 정상에서 법연암으로 떨어지는 일주코스를 설명하고는 조바위(남근석)
로 내려선다.
여친에게 힐끗 눈으로 가리키니 그 신묘한 모습에 혀를 내두른다.
모산재 최고의 명물 누운 소나무와 정으로 쪼아 만든 듯한 천상의 바윗길을 지나
순결바위에 닿으니 여자보단 남성이 단연 많다.
전설이기는 하나 이바위에서 쉽게 자신의 순결을 증명하려는 여성은 그리 흔하지
않을겄이다.


순결바위에서 난간을 의지해 급경사로 떨어지는 길은 병목 구간이 되어 정체가
극심하다.
뒤쳐진 녀석들을 기다리기가 진력나 제일 예쁜 여친 손목을 나꿔채 황망히 줄행랑을
놓는다     '낄낄 먼저 줍는게 임자지...'
위험한 암릉 급경사 구간이 끝나면 소나무의 아취가 은은한 오솔길과 함께 국사당이
신령스러운 분위기를 머금었고 길은 순하게 아래로 내려선다.


등로 끝자락엔 삼백초 장모님이 환한 미소로 반겨주신다.
달랑 차 두잔만 주문했는데도 덤으로 식혜를 한사발이나 공다지로 안기신다.
아마 여친을 곁으로 아시는 모양이다.
영암사지에 들러 그 유명한 쌍사자 석등과 귀부(비석 받침대  모두 보물로 지정)을
구경하고 모산재 식당으로 휘적히적 내려서니 쳐젔던 친구넘들도 장모님 가게에서
정력에 좋다는 삼백초차에 얼굴이 벌겋게 고무되어 뭔가를 잔뜩 벼르며 따라온다.
허.. 낼이면 쌍코피 여러눔 터지겄네.


식당에서 소고기 국밥과 두부로 점심을 간단히 한다.
아무래도 밥보다야 술이 제격인지라 쉴새없이 도는 술잔속에 도끼자루는 기약없이
썩어가고 늦가을 짧은해는 겨우 노루꼬리만큼의 볓을 던져 놓고는 황포돛대 뒤로
사위어 간다.
도저히 그냥 헤어질수가 없어 다시 향골로 자리를 옮겨 술추렴이 늦도록 이어진다.
아쉬운 정 접어 잡은손 겨우 놓으니 한저녁이 빠르기도 하도할샤..


천안서 고생하는 우리 동창회장 명영이, 최고의 섹시가이 진영이, 벌써 한몫 잡았다는
상영이, 가게일로 너무 바빠 서방 얼굴도 잊었다는 미시몸짱 명영이2, 남편의 적극적인
두호아래 전국 명산을 찾아 다닌다는 복많은 미모의 아줌마 정영이 ..(이름뒷자에 우리
모교 영전의 영을 붙였음)
모두모두 고맙고 반가우 얼굴들 ...
내년에 또 볼려나.


그나저나 어제 지은 중죄의 대한 곁님의 판결도 아직 유예된 상황에서 또 고주망태가
되었으니 도대체 객의 목이 몇개나 있어야 할꼬 .
그냥 침낭 두러메고 모산재 너른 암반에 송풍명월과 대작하며 진진밤을 지새울까,
아님 절간 새우젖 훔친 상좌놈처럼 죽비들고 스스로 대죄할까..
밤은 실솔 울음 처량한 야삼경이나 객은 갈곳을 잃었더라.


                              끝. 2004년 11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