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악산....................................여보!  제발 내려오세요

  

  

날짜: 2004/11/07(일)

동행: 여여와 마눌

날씨: 맑음..안개

산행경로

송계2교-보덕암-하봉-중봉-영봉-960-수직암벽-960-마애불-덕주사

산행거리: ?

산행시간 ( 8시~17시 총 9시간  휴식포함)

 

 



  

↗ 영봉에서 본 월악 남부 주능선......만수봉까지
 

 

1. 계획변경으로 고민에 빠지다.


 

매주 토요일 저녁 늦게까지 진행된 행사 참가로 이래저래 불수사도북은 뒤로 미루어지고 차선책으로 일요일 혼자 월악산 종주하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마눌의 일정이 바뀌어 같이 가겠다고 한다....헉! 종주하려면 마눌의 걸음으로는 좀 무리일거라는 생각이 들며 계획차질이 불가피해 보인다. 낮 길이가 점점 짧아지고 있기 때문인데.....설악산에서처럼 서로 헤어졌다 다시 만날까? 라는 생각이 들지만 월악산은 종주를 하려면 설악산과 달리 처음부터 헤어져야하니 같이 나누며 산행할 수 없다는 고민에 빠진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같이 종주를 해보고 안되면 중간에 탈출이다.

  

↗ 충주호의 물안개

↗ 가을 물안개


 

2.물안개 피어오르는 충주호


 

새벽 영동고속도로에서 충주로 빠지는 신설된 고속도로는 거의 차가 다니지 않는다. 충주호에 도착하니 여명이 밝아보며 물안개가 피어오르는데 붉은색 낙엽과 어울려 가을이 지나가고 있음을 이제야 안다. 한 10분간 헤메다 송계2교를 찾아내 “월악산통나무집” 간판을 발견하고 주차장에 차를 세운다. 간단한 10분정도의 알바를 하고 산불방지 입산금지 팻말 뒤로 오른다. 푹신한 낙엽을 밟으며 보덕암으로 오르는데 마눌은 힘이 드는지 발걸음이 무겁게 보인다. 들머리에서 출발한 시각이 8시인데 종주를 하기위해서는 너무 늦은 시각임을 느끼고...........

  

↗ 보덕암 가는길


 

3.종주시간에 집착하여 고통받다.


 

마눌을 기다리다 오면 같이 오르고 다시 기다리고를 반복하는 사이 가을로 둘러싸인 보덕암에 이른다. 작은 암자인 보덕암의 작은 마당에서 낙엽을 쓸고 있는 스님과 눈이 마주치자 합장으로 인사를 대신한다. 보덕암에서 하봉으로 오르는 길은 가파르다. 오르는 가파른 길에서도 걸릴 종주시간이 머리에 꽉 차있어 산에 있지 못하고 괴롭다. 수객님이 13시간 걸렸다하는 걸로 짐작컨대 내 걸음으로도 13시간 이상은 족히 걸릴 거리로 밤 9시 정도가 되어야 끝난다는 이야긴데.......... 너무 힘들어하는 나를 느끼며 마음을 보듬는다. 마눌과 함께 하는 종주는 포기하고 덕주사로 하산하는 방향으로 마음을 정하자 시간에 쫓기는 마음이 어느새 사라지고.........오름길이 편해지고 산에 온전히 있을 수 있게 된다. 대상이 그 무엇이든 간에 집착을 놓기가 참 어렵다는 생각을 하면서........

  

↗ 보덕암 앞마당에서 낙엽을 쓸고 있는 스님

↗ 보덕암에서 하봉 가는길


 

4.멋진 하봉과 파란 충주호


 

하봉을 직접 오르는 길을 우회하여 하봉과 중봉 사이의 안부에 먼저 도달한 나는 마눌이 올라오는 시간을 빌어 하봉으로 가보지만 한군데 수직 밧줄을 잡고 올라가보고 위험한 곳이 나와 다시 내려온다. 귤과 커피를 먹고 한 30분을 기다리니 마눌이 어슬~렁 나타나 잠시 쉬고 같이 중봉을 오르는데......철밧줄을 잡고 오르는 중봉에서의 조망은 참 아름답다. 충주호의 파란 윤곽이 보이고 그 위에 하봉이 우뚝 솟은 모양................산거북이님의 산행기에서 본 바로 그 멋진 그림이다.

  

↗ 중봉 오름에서 본 하봉과 충주호

↗ 가파른 중봉 오름

↗ 중봉가는 길 ...무엇을 보고있나?

↗ 중봉에서 영봉 가는길.....여기까지는 아무도 없지만.....


 

5.북적거리는 영봉정상에 배낭을 벗고 오르다.


 

중봉에서 영봉가는 길은 아래로 내려가 영봉 좌측으로 돌아 올라간다. 여기서 동창교와 덕주사에서 올라온 사람들과 만나는데 지금까지의 호젓한 길과는 너무도 딴 판이다. 줄을 서서 올라가야하는 철계단과 만나는데....여러 산행기를 읽고 예습을 해온 우리는 배낭을 벗어놓고 가파른 철계단을 오른다.... 어차피 내려올 걸 짊어지고 수많은 계단을 오르는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는 뿌듯해 하며 보란 듯 가볍게 철계단을 오른다(설마 누가 배낭을 가지고 가버리는 불상사는 없기를 바라면서)......... 영봉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아침과는 달리 안개 때문에 시야가 흐릿하다. 남서쪽으로 주흘산과 부봉이 보이고 만수봉가는 종주 능선길이 낙타 등처럼 구비구비 펼쳐져있다.

  

 

  

↗ 영봉 오르는 계단에서 본 중봉과 하봉

↗ 예습한 사람은 안무겁지요....

↗ 영봉정상의 사람들

↗영봉 하산길에서 본 주능선길


 

6.점심먹을 곳을 찾아 능선쪽으로 가다.


 

북적이는 영봉 정상에서 우리는 아무런 미련 없이 철 계단을 내려와 그대로 있는 배낭에 감사하며 960봉으로 향한다. 일요일이라 단체 산행 객들이 여기저기 모여 점심을 먹는데 그렇게 시끄러울 수가 없다. 옆에서 그렇게 큰소리로 웃어재끼고 소리를 크게 질러 대는데도 참 잘들 먹는다. 덕주사 마애불로 갈라지는 960봉에 도달하니 1시 30분 .......점심을 먹고 덕주사로 하산하면 시간이 너무 이르다는 생각에 만수봉가는 월악산 능선길로 접어들면 호젓하게 점심을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50만원어치(?) 비싼 점심을 먹기로 한다. 그러나 월악 남부 능선길 초입에서 그렇게 많은 변선생님을 만나게 될줄이야......... 산행객들이 참다 참다 영역표시를 해놓은 휴지들은 여기저기 나뒹굴고........밥맛이 뚝 떨어져 버린다.

  

↗ 점심먹은 바위에서 본 구비구비 주능선 길

↗ 나무가지 사이의 주흘산과 부봉

↗돌아본 영봉


 

7.다시 집착과 만용이 생기다.


 

멀리 떨어져 간다고 얼마를 갔을까? 전망바위가 나와 여기서 점심을 해결하는데...점심을 먹으면서 생각해보니 수객님이 말하던 수직 10m 직벽 밧줄과 부천 김영도 대장님이 얼마 전 설치해 놓으셨다는 7m짜리 밧줄이 생각난다. 시간이 있으니 거기까지만 가볼까?하는 생각에 마눌에게 물어보니 자기 때문에 종주를 못하게 되었다는 미안함이 있었던지 거기까지 가보자 한다.......만약 가봐서 마눌이 올라갈수 있으면 저녁 늦게라도 야간산행을 해서 만수봉을 통해 만수휴게소까지 “월악산 종주 못할 것은 뭐냐?”고 만용과 집착이 서서히 다시 생기기 시작하는데.......점심을 먹고 한 30분 정도 바위를 잡고 오르내리니 드디어 절벽과 절벽 사이로 소나무에 묶여져있는 10m 내외의 밧줄이 나타난다.

  

↗ 가파른 절벽 사이로 내려가는 용감한 마눌

↗ 수직 밧줄
 

 

8.수직벽 10m 밧줄과 만나다.


 

수직의 바위에 매 달려 있는데 딱 봐도 이건 장난이 아니다. 물론 수직바위면에 크랙과 렛지가 있어 올라갈 수는 있어 보이지만 높이가 상당하다. 더구나 팔힘이 없는 마눌이 오르기에는 불가능........같이 한번 시도해보자고 마눌을 권유해보지만 마눌은 이미 밧줄의 길이와 경사에 이미 기가 꺾인 상황.....순간 나는 만수봉으로 종주하고 마눌은 덕주사로 내려가서 다시 만날까?라는 생각이 들지만 종주하기도 너무 늦은 시간...........할수없이 마눌과 함께 퇴각하기로 결정하고 나만 잠시 올라갔다오겠다하니 마눌이 걱정스런 눈빛으로 그러라하는데.......체면이 있지 그냥 물러날수는 없고 김영도 대장님이 설치해놓으셨다는 밧줄도 한번 보고 싶기도 하고........

 

↗ 소나무에 걸려 있는 밧줄 상단......괜찮나?

↗소나무 너머 남서쪽

 

9.제발 그만 내려오세요.


 

배낭을 메고(실전과 같이) 렛지에다 발을 올려놓고 밧줄을 잡고 오르는데 몸무게가 팔에 실린다. 마눌 앞에서 뭘 보여줄려고 마음이 앞섯던지  2/3정도 올라간  지점에서 약간 갸우뚱하며 휘청한다. 아래에 있는 마눌은 급기야 소리를 지르고....“여보 제발 그만 내려오세요!”.....갤러리 마눌의 간절한 목소리를 들으니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로서는 전의가 약해지며 “처자식이 있는 내가 이렇게 무리하면 안되지~잉” 꼬리를 내리며 밧줄을 잡고 내려온다. 마눌이 내려오라고 해서 내려왔지만 체면이 말이 아니고 영 기분이 착찹하다.. 한마디로 “일보고 밑닦지 않은 기분”이라고나할까? 혼자 종주를 했으면 아마 죽기살기로 올랐을텐데...라는 생각이 들며 처음부터 나의 발길을 더디게한 마눌에게 짜증이 난다. “당신 다시 오르고 싶죠? 앞으로 당신이 혼자 월악산에 간다고 하면 잠이 안올 것 같은데....” 내 성격을 아는 마눌은 나를 위로한다고 말을 하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처자식이 있으면 마음이 이렇게 약해지는구나?”라고 자위해보지만 뭔가 큰 좌절을 겪은 것 같이 우울하다.

  

↗다음을 기약하며

  

↗ 서쪽 조망


 

10.집착을 느끼며 마애불에서 머리를 숙이다.


 

마눌과 함께 960봉으로 다시 퇴각한 나는 흩어져있는 변선생주변의 휴지만큼이나 마음이 혼란스럽다. 처음 들머리에서 종주하고자하는 마음을 잘 보듬고 편안해졌었는데 조그마한 일이 내뜻대로 되지 않자 바로 이렇게 고통에 휩싸이니.......조그마한 집착도 놓지 못하는 내자신의 초라한 자화상을 느끼며 마애불로 내려간다. 누군가 이야기했듯이 풍상의 세월 속에서도 마애불은 음각과 양각이 뚜렷하다. 조그마한 자극에 쉽게 짜증내고 집착하는 내 모습처럼 두드러져 보이는 마애불에 머리를 숙여 합장을 하며 그나마 사고 없는 산행에 감사한다.

  

↗마애불 가는 낙엽길

↗ 뒤돌아본 주능선

↗마애불
 

 

11.청산처럼 ............


 

마애불에서 덕주사로 내려오는 길은 이미 잎사귀가 떨어진 나뭇가지들을 만나 겨울이 바로 앞에 왔음을 말해준다. 벤츠 SUV를 과감하게 얻어 탄 우리는 지금까지 얻어 탄 차중에 가장 좋은 차라며 비위를 맞추지만 SUV 안은 무표정한 남편 표정만큼이나 조용하다. 감사의 인사를 하고 내린 우리는 저물어가는 충주호 선착장의 불빛을 바라본다.  “청산응소백운망”(靑山應笑白雲忙) “청산이 바삐 움직이는 흰 구름을 보고 비웃는다” 라는 뜻의 초의스님의 시 구절이 떠오르는 것은 묵묵한 청산을 닮아보고 싶은 마음에서였을까?

  

↗가고 있는 가을

↗월악선착장

 

 

사진모음

 


 

↗ 하봉과 충주호


 

↗ 주흘산과 부봉

 


 

↗ 중봉에서 본 영봉


 

↗ 주능선길


 

↗ 중봉 하봉 그리고 충주호


 

↗ 구비치는 남쪽 산세


 

↗ 멀리 주흘산과 부봉


 

↗ 주흘산 부봉 실루엣


 

↗ 서쪽 방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