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북한산에서 원효가 의상에게..."

 

북한산 북쪽으로 들어서면 우뚝선 의상봉 원효봉 두봉우리에

지금껏 속세를 굽어보며 지켜온 두 대사가 있으니

원효봉과 의상봉의 주인인 원효대사, 의상대사.

"엄청나게 춥더니만 오늘은 많이 풀렸네 그랴."

"삼한 사온이 사흘 춥고 나흘 덥다는게 맞는말일세 그려."

"그나저나 오늘 세밑 토요일, 엄청난 중생들이 몰려오겟구만..."

"그러게 말일세, 산벗들은 요즘 겨울이고 춥고를 가리질 않아요."

"저기 올라오는 떼거리는 서른 서너명 인터넷 카페 산 동호회일세."

"인터넷 카페가 차 파는데가 아니야?."

"아닐세. 인터넷 산 동우회는 저렇게 뜻깊게 모여서 매주말 우리를 알현하곤 하지."

"도대체 무슨말인지?..."

"자네도 컴퓨터 좀 하게. 배워서 남주나?"

"저기 올라오는 토요 단골 북한산 전문 산꾼 들은 교묘하게 요리죠리 온다네."

"신경 끊게나. 입장료도 페지되고 자네나 나나 연금 받긴 틀렸네"

"그런데 저 30명 넘게는 효자파출소에서 우리만 걷던 길을 갈짓자로 올라온 프로란 말이시."

"다 노하우가 있겠지. 그나저나 의상 자네가 더 햇볕을 많이 받아 따듯하겟네."

"천만의 말씀. 나로 말하자면 바윗길이 험하고 자네는 그런대로..."

 

토요일 오전 10시반, 30명 넘어 너댓명, 

효자파출소 앞에서 모여 산성 수영장 옆 계곡을 감아돌며 갈짓자 산에 오른다.

 

시구문 매표소도 따돌리고 원효봉에 오르는 길. 저 아래 꼬리가 힘겨워 한다.

오늘 예상을 배로 뛰어 새내기만 11명 그리고 모두 30여명. 대군단이다.

 

1차 고비 원효봉에 오르니 모두들 흥겨운 산행의 시작.

북문을 지나 대동사에 이르기까지 별로 눈이 없드니만

북장대 능선으로 접어드니 지난 일요일 쌓인눈이 그대로 있다.

 

늦게 시작한 산행이라 벌써 새로 한시, 노적봉 아래 노적사 못미쳐

넓지막한 바람 없는 명당에서 알싸한 정으로 점심을 펼친다.

 

모다들 이제 반쯤 왔다 생각하는 모양, 그러나 30% 쯤???

점심 먹고 오르는 중흥사 ~ 행궁지 ~ 상원봉 ~ 715봉 ~

깔그막에다가 눈이 하나도 녹지 않고 쌓여있다.

 

모다들 아이젠을 착용하라고 이르고 뽀드득 뽀드득 오른다.

바람이 불지 않고 그나마 포근한게 날씨가 좋아 다행이다.

 

후미가 조금 늦어서 몇번을 기다려서 다시 출발하고.

드뎌 오늘의 고비를 무사히 넘기고 봉우리에 닿는다.

 

파노라마 처럼 펼쳐지는 눈앞 의상 능선, 우리가 지나온 원효봉 노적사

그리고 북한산의 주봉우리들, 산성과 대문 암문들...

 

다시 눈이 아직 녹지않은 의상 능선 북족 끝을 내려와

나한봉에서 산허리를 따라 승가봉으로 접어든다.

 

그리고 마침내 이른 사모바위. 오후반 회원들이 모다들 거기 있다.

다시 오른 하얀 삼각산, 구기동 내려오니 빨간 해 저 산너머로 진다.

 

우리 지나온 길 원효 의상 능선에 남은 대사들 속삭일터이다.

 

"우리 둘은 당나라 유학길에 해골 물 먹고 깨달았지만

요즘 산에 오는 사람들은 막걸리 마시며 나홀로 대통령 다해"

 

아뭏든 북한산은 산세도 크려니와 갈길 많고 오밀조밀 좋다.

오늘 또 가도 새로운 세계. 새로운 만남, 새로운 깨달음이다.

 

"북한산에서 원효가 의상에게..."

 

일요일 연신내역 10시 반. 항상 모이는 범서 쇼핑앞.

정확히 시각 맞춰 엄청난 경사 계단 터벅터벅 올라가니 친구 왈.

"대단하시네요. 일분도 어김없이 곧 바루 솟구치십니다~ 그랴."

처음 보는 대장 왈~ 악수가 끝나자 마자 "자 출발합시다."

그러고 둘러보니 너무나 단촐한 식구~ 남 셋 여 하나 합이 넷이라.

 

만원버스 타고 백화사 입구에서 내려 조금 오르니 서서히 바윗길이 나타난다.

출발 후 쭈욱 지켜보지만 앞선 셋이 걷는 폼이, 의상봉 바위 오르는 폼이 심상치 않다.

이건 워킹이 아니라 군대식 구보닷. 선수들이다. 아하 나는 꼴찌닷.

 

아마츄어한테는 무척 괴로운 순간. 내 실력이 확 뽀록나는 순간이다.

이 등산팀의 뒷꼬리를 부여잡고 오렛만에 땀을 뻘뻘 흘리며 거친 숨으로 오른다.

바윗길을 오르다가 앞을 보니 너무도 잘도 간다. 너무도 잘도 뺀다. 

 

12시가 조금 지나 능선 첫번째 봉우리인 의상봉에 도착.

동쪽으로는 원효봉, 염초봉, 백운대, 만경대가,

남쪽으로는 사모바위 비봉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앞을보니 오늘 우리가 지나야 할 용출봉, 용혈봉, 증취봉, 나월봉, 나한봉, 문수봉이

일렬로 쭈욱 서있다. 거기 산이 있고 전설이 있고 아름다운 풍광이 있다.

의상능선을 접수하는 재미도 재미지만 주위의 아름다은 풍광은 북한산 제일로 친다.

 

오후부터 비온다는데 정말 비가 오려나... 걱정 반 근심 반..

날씨도 날씨려니와 진도가 너무 빠르구나.. 너무 빡센 등산이야... ㅎㅎ

의상봉 한켠에 자리를 잡고 냉수 한잔 들이키고 하늘을 보니 이건 청명이닷.

 

안심하고 넷이라도 좋다. 간판 대문 사진부터 찍자. 로고 찍힌 깃발 들고 폼을 잡는다.

왼쪽 산기슭에 있는 국녕사의 청동대불의 엄청난 크기에 감탄하면서

가사당암문을 지나 두번째 봉우리인 용출봉에 도착한다. 

용혈봉을 거쳐 증취봉에 도착할 즈음에는 넷이서 이제 팀웍을 이룬다.

 

강아지바위며 부처바위며 할매바위며 돼지머리바위며...모두가 내 친구.

나월봉옆 바윗길을 지나 부왕동암문 지나 문수봉 이르기 전 포근한 봉우리, 점심을 푼다.

맥주 한잔, 쇠주 한잔~ 산에서 먹는 곡주는 힘의 원천. 우리의 홍일점도 쇠주 한잔...

 

나한봉을 지나 태극기가 있는 가짜 문수봉에 도착하여 기념 사진을 박는다.

문수봉에서 내려오는 길... 단단히 릿지까지 준비햇던 친구가 실망한다.

실력 필요없이 내려올수 있는 보조 철봉이 지난 주 설치되어 조용했던 문수봉이 인산인해.

이제 문수봉은 어제의 문수봉이 아니다. 만인이 오를 수 있는 연인봉, 인산인해봉이 됐다.

 

승가봉 지나 통천문 지나 사모바위 지나 김신조 바위 밑 동굴 분석하고

비봉 아래 인적 드문 길따라 하산한 후 구기동에서 엄청 긴 뒷풀이 한다.

"오늘 등산도 내게 이 한마디 남기고 역사속으로 떠나갑니다.

 

이 산 저 산 가봐도 북한산이 제일 마음에 드는건 어쩔 수 없습니다.

북한산이 좋습니다. 그 바위들이, 원효와 의상이 나를 그곳으로 부릅니다..."

 

원효[元曉. 617~686] 
신라시대의 고승. 성은 설씨. 원효는 법명, 아명은 서당(誓幢).
648년 황룡사에서 중이 되어 각종 불전을 섭렵하며 수도에 정진하였다.
일정한 스승을 모시고 경전을 공부하지 않고 타고난 총명으로 널리 전적(典籍)을 섭렵하여
한국불교사에 길이 남는 최대의 학자이자 사상가가 되었다.
34세에 의상(義湘)과 함께 당나라로 가던중 해골에 괸 물을 마시고
"진리는 걸코 밖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터득하고 의상과 헤어져서 돌아왔다.
이후 태종무열왕의 둘째딸인 요석공주와의 사이에서 설총을 낳았는데
이후 스스로 복성거사(卜性居士) 소성거사(小性居士)라고 칭하고 속인행세를 하였다.

 

의상 [義湘. 625~702]  
신라시대의 승려로 화엄종(華嚴宗)의 개조이다.
당나라에서 화엄종을 연구하고 돌아와 100여개의 사찰을 건립하고 화엄의 교종을 확립하는데 힘썼다.
그는 학승으로서 높이 평가될 뿐만 아니라 민중교화승으로서
당시 왕실 중심의 귀족화된 불교를 민중불교로 바꾸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또 종파주위적인 방향으로 달리던 불교이론을 고차원적인 입장에서 회통시키려하였는데
그것을 오늘날 원효의 화쟁사상(和諍思想)이라 부르며 이것은 그의 일심사상(一心思想)
무애사상(無 思想)과 함께 원효사상을 가장 특징적으로 나타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의 사상은 너무나 다양하여 헤아리기 어려우나 항상 '하나' 라는 구심점을 향하였고
화쟁과 자유를 제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