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行 閑談 39

늘그막에 맘 편하게 살아가는 비결이 뭐래요.

 

 

 

 

 어느덧 11월의 마지막 토요일이다. 올해는 뭔가 확실하게 이뤄보려고 야무지게 밀어붙였는데, 아쉽게도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해 “닭 쫓던 개(犬)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되어버렸으니, 어찌 허전함이 밀려들지 않겠는가. 그러나 하루에도 수십 번 뉘우치면서 살아가는 것이 세상만사(世上萬事)이기에 내일을 꿈꾸면서 고단한 현실의 벽을 넘는다.
 

 추색(秋色)이 밀려가는 호젓한 산길을 걸으면서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싶어 오랜만에 무등산(無等山) 품에 안기련다. 괜한 일로 신경을 썼더니 심신(心身)이 지쳐 다소 무리가 예상되지만 너덧 시간을 진솔한 산과의 만남을 이뤄내고 싶어, 새인봉 능선을 타고 중머리재를 거쳐 서석대를 다녀오는 코스를 택한다. 가뭄으로 흙먼지가 일어나 산행의 흥취를 반감시키지만 느긋한 마음으로 오른다.
 

 오늘도 빈 몸으로 산행에 나섰다. 예전에는 항시 잡다한 물품을 넣은 배낭을 메고 다녔지만, 목포로 터전을 옮긴 이후, 형편이 여의치 않아 근교(近郊)산행을 시작하면서 배낭을 짊어지고 다닐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고, 빈 몸으로 다닌 것이 어느덧 익숙해져버렸다. 갈증이나 불의의 사고라도 생긴다면 어려움도 있겠지만, 웬만하면 서너 시간은 참고 견디겠다는 고행산행(苦行山行)의 묘미에 푹 빠져버렸다.
 

 삼십여 년 전, 지리산을 종주할 때 만만치 않는 무거운 배낭 때문에 혼쭐이 났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 시절에는 지금처럼 대피소가 잘 갖춰있지 않아 종주산행에 나서려면 많은 짐을 꾸려갈 수밖에 없었다. 짐을 최대한 줄이려고 애써보지만 가져갈 물건들이 왜 그렇게 많은지 정작 배낭을 꾸리는데 많은 시간을 허비했지만 그 무게를 크게 줄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살아가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단순하게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내 안에 있는 것들을 단순화시키는 것으로 이렇게 살면 인간관계뿐만 아니라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도 생기를 찾게 된다. 그러므로 늘리려하지 말고 줄이려고 노력하고, 쌓지 말고 비우려고 애쓰고, 될 수 있는 대로 긴장하지 말고 차분하게 대처하고, 급할수록 가속하지 말고 감속하는 것이 좋다”고 「단순하게 살아라」저자(著者) 로타르 J. 자이베르트는 말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단순하게 사는 것이 젊음을 유지해나가는 비결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집착하지 않고, 오해와 편견을 버리고, 작은 나눔을 실천하고, 바쁠수록 돌아가는 침착함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어차피 거친 옷 한 벌 얻어 입고 돌아갈 것이 자명한 사실임에도 강한 소유욕과 명예욕에 사로잡혀 몸부림치는 그 자체가 우리들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만들어 놓은 삶의 공간이 편하고 안락함을 안겨주지만 때로는 자신을 옭매는 올가미가 될 수가 있다. 힘들어 얻은 것, 그것은 소중하고 귀한 것이지만 자신을 속박하기도 한다. 이렇게 이루어 놓은 것들을 지키고 가꿔야 할 책임과 의무도 있겠지만, 인생 그 자체가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이기에 맘 편하게 늘그막을 보내려면 될 수 있으면 과감히 정리하고 버릴 줄도 아는 지혜를 터득해야 할 것이다.
 

 이제부터 앞만 보고 달려가지 않고 천천히 걸으려고 노력하고, 힘들고 지치더라도 좌절하지 않고 고단한 삶에 잠시 쉼표를 찍는 여유로움으로 산에 가련다.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에서 보듯이 자만(自慢)함은 금물이기에 어리석은 토끼보다는 지혜로운 거북이를 상기하면서 인생의 이모작(二毛作)을 차분하게 준비해나가련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