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패, 도봉산 산행기

아침 일찍 나서려고 알람을 맞춰놓았지만 벨소리를 듣고 잠시 더 있다 늦게 일어나고 말았다. 어제 여러 가지 행사를 참석하고 늦게 귀가하고 잠자리에 늦게 들어서 그런지 노곤했다. 일기예보에는 날씨가 맑게 되어 있는데 바깥 날씨기 흐려 비나 오지 않을까 염려스러워 배낭을 꾸리다 가는 도중 혹시 비가 올지 몰라 우산도 챙겨 넣었다.

지난 불수사도북 종주 후 다시 사패산을 찾았다. 그 때는 날씨가 흐려 조망도 되지 않고 먼 거리를 걷는 부담으로 주변을 돌아볼 마음 여유가 크지 않았다. 그런데 일기예보에 날씨가 좋은 것으로 나타나 천천히 그 때 지났던 주변 풍경을 천천히 음미해볼 요량으로 나섰다.

들머리는 의정부시청으로 잡고 9시 8분 의정부역에서 내렸다. 의정부 시청을 가는 것도 처음이라 역 주변에서 만난 사람에게 물어보니 그냥 걸어서 가면 된다고 했다. 역 앞에서 김밥을 사서 점심거리로 챙겨 넣었다.

9시 35분 의정부 시청 앞에 도착해서 좌측으로 돌아가니 청소년 복지회관 뒤쪽에 산책로가 나 잇고 좌측으로 조금 가다보니 사패산으로 오르는 길이 나 있었다. 조금 올라 굴다리를 지나니 산길이 나왔다. 길을 모르는 것이 가장 불안스러운데 오르는 길에 접어드니 안심이 되었다. 산에서도 길에 의해 이곳저곳이 연결된다. 그 중 능선은 가장 지름길이 된다.

오르는 길 곳곳에 적은 양의 물이 졸졸 흘렀다. 오르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호젓하게 숲 내음을 맡으며 걸었다. 9시 52분 의정부시청에서 0.5km 올라온 곳에 있는 이정표에서 좌측으로 이어진 길을 올라가니 시청뒤 공원 지킴터가 나타났다. 그 곳을 지나 다시 완만한 길을 올라갔다.

10시 4분 의정부 시청 1.6km 지점에 지정표가 나타났다. 호암사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곳이었다. 종주길을 오르려 한 것인데 지도를 빠뜨리고 가서 그 길로 접어들지 못하고 조금 안쪽 능선으로 오르게 되었다. 회룡역을 지나 의정부까지 가서 내려온 결과가 겨우 20분 거리에 만나는 지점으로 오게 된 것이 조금 허탈하게 느껴졌다.

거기서부터는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산을 찾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근래 부쩍 많이 찾게 된 동기는 사람들의 환경이 점차 메말라 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사람이 사는 주거의 가장 대표적인 유형이 된 아파트 문화는 많은 것을 변모 시키고 있다.

아파트는 주거의 집적도를 높이기 위해 고안된 것이지만 기계적인 환경이 되기 쉽다. 그 기계적인 환경은 그에 따른 문화를 파생해서 인간이 삶도 더 기계적은 것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장례문화이다. 장례는 사람의 일생의례중 가장 중요한 것이지만 오늘날은 그 것마저 형식적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다. 가장에서 작고해도 장례식은 대개 장례식장을 이용하고 있고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도 형식적이기 쉽다. 얼마 전 어느 학회에서 그러한 문제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한 때 참석한 일이 있었다.

10시 8분 좌측에 솟아 있는 바위에 오르니 회룡역 뒤에 솟은 산봉우리가 훤히 바라보였다. 다시 오름 길을 걷다 10시 15분 우측에 골목처럼 들어선 곳에 한 분이 앉아 앞으로 트인 조망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쪽을 보니 숲 너머로 사패산 정상이 보였다. 나도 그 곳에서 잠시 위었다. 거기서 펼쳐보이는 능선이 당초 가려던 능선인데 놓치고 왔지만 그런 풍광을 보는 것이 위안이 되었다.

10시 47분 사패능선 0.9km 전에 있는 이정표를 지났다. 가다 경사진 암릉에 철 난간을 세워 놓은 곳을 지났다. 바닥의 마사토 알갱이가 풍화되어 있어 미끄러질까 조심하며 지났다. 그 곳을 지나가니 앞서가는 사람들이 완만한 숲 터널 끝에서 사라져 가는 모습이 보였다.

10시 53분 좌측에 바위가 놓인 곳에 당도하니 도봉산 쪽 시야가 트여 보였다. 오르내리고 구불거리는 길을 걸어 잠시 후 사패능선에 당도했다. 지난번에 지났던 곳인데 우측으로 사패산 정상이 0.6km 거리에 있었다. 정상이 그 접속지점으로부터 뒤에 위치해서 다시 돌아 나와 거쳐 지나가게 되었다.  

11시 15분 사패산 정상에 도착했다. 많은 사람이 올라와 있었다. 전에는 안개가 끼어 전혀 보이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산세가 보였다. 좌측 끝부분의 도봉산 정상부로부터 우측 끝자락 부분의 오봉산 등의 너른 산세가 펼쳐 있었다. 옆으로 길게 펼쳐져서 산세의 유장함이 크게 느껴졌다. 희미한 안개가 끼어 풍경이 더 그윽하게 보였다. 그 뒤로는 단지 그윽한 이상의 세계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았다. 바위에 앉아 그 풍광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스케치를 하다 문득 너무 지체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급히 배낭 주둥이를 여미고 출발했다. 사패산은 한북 정맥이 지나는 구간이다. 한북정맥은 백두대간 추가령에서 뻗어 내려온 산줄기인데 백암산 적근산, 대성산, 광덕산, 백운산, 국망봉, 운악산을 거쳐 이어져 오다 새패산으로 연결되는데 사패산으로 오르는 정맥 길은 송추 울대고개를 거쳐 올라야 한다. 오늘 오른 길은 그 들머리는 아니지만 이번엔 그 정맥을 걷는 마음으로 걷기로 했다.

거기서 도봉산 쪽으로 가는 길은 지난번 지났던 길이라 빨리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좋은 풍광이 나타날 때마다 감상하다 스케치를 하기도 하며 가는 중이라 진행이 더디게 되기도 했다. 능선길은 목적지가 선명해진다. 나는 종주를 좋아해서 내가 걸은 길은 종주길이 많았다. 종주는 산을 지나가는 것이지만 이 곳 저곳까지 흐름을 수반하게 된다. 대개 더 멀고 시간도 많이 걸려서 피곤해지기 쉽다. 그렇지만 어려운 길을 걸으며 힘을 다 소진 한 난 다음 새로운 환희가 찾아든다. 종주는 단지 하나의 산을 가는 것보다 시간과 힘이 많이 들지만 유장함을 느끼게 한다.

사패산과 도봉산을 가르는 안부 사거리에 도착했다. 거기서 회룡사, 그리고 반대쪽 송추로 가는 길이  가로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 안부를 출발해 조금 오르니 우측으로 송추쪽 계곡이 보였다. 그리고 오르막 숲길로 접어들었다. 안부를 축으로 양 쪽에 큰 산세를 이루는 형세라 안부를 지난 후 다시 한참을 오르게 되었다. 숲 길 오르막길에 긴 계단이 설치되어 있는 곳을 지나 차츰 능선 위로 다가섰다.

가다 좌측에 바위 덩어리로 된 봉우리가 솟아 보였다. 그곳에 오르니 능선길이 되어 앞이 훤히 트여 보였다. 능선을 지나가는 약간 내리막 길로 내려가니 소나무 그늘에서 일행 몇 분이 쉬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중 분이 “산이 종합 병원이야”라는 말을 했다. 병을 앓던 사람들이 사을 다니며 건강을 되찾앗다는 말을 종종 들어왔다. 사패산 안내 표지를 지나 오르는 길에 뒤돌아보니 멀리 사패산 정상 봉우리가 보였다. 가는 길이 능선이라 가는 도중의 봉우리에 오르면 그처럼 시야가 멀리 펼쳐 보였다.

좌측 봉우리에 초소가 보였다. 조망이 좋을 듯 하여 그리 오르니 초소가 잇는 곳에 국립공원 지킴이가 등산객들을 상대로 설명을 하고 있었다. 북산 산 주변에 얽힌 이야기들을 구수하게 하고 있어서 몇 분이 가지 않고 듣고 있었다. 옆에서는 3명의 일행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쉬고 있었다.  

진행방향으로 보이는 도봉산 정상부 주변 풍광이 좋아 보였다. 풍광은 크게 봉우리와 주변 산세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는데, 도봉산은 솟아 잇는 기암절벽의 산세와 주변으로 멀리 펼쳐있는 산세가 조화를 이룬다. 사패산에서 도봉산으로 가는 주 길은 사패능선 도봉 능선 등 능선길이 길게 이어지는 형국이다. 능선 마루를 걷는 길은 주변으로 시야가 트이는데다 중간 중간 솟아 있는 봉우리가 전망대 역할을 해서 조망의 맛을 잘 느낄 수 있다.

다시 봉우리를 올랐다. 하나를 넘으니 앞에 보였다. 정상부에 로프가 걸려 보였다. 그곳으로 올라 지나 갈 수 있나 보다 하고 올라갔다. 하지만 그 봉우리에 서니 앞이 절벽이어서 할 수 없 다시 내려왔다. 그런데 내려가기가 더 어렵게 되어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내가 내려갈 때까지 보아 달라고 부탁하고 조심스럽게 내려갔다. 다시 도봉산 정상부가 더 가까이 보이는 봉우리를 지나갔다. 조금 더 가면 포대 능선이 나올 것 같았다.

자운봉 등 정상부가 가까이서 뚜렷하게 조망되는 곳에 당도했다. 옆에 그 봉우리들을 설명한 표지가 있었다. 전망 포인트처럼 사람들이 잠시 멈춰서서 바라보다 갔다. 그처럼 기암괴석의 우뚝 선 자태에 빠져 있을 때면 다시 발걸음이 더뎌지게 된다. 거기서 보니 신선대가 마치 북한산의 숨은벽처럼 느껴졌다. 옆에 서 게시던 분은 일행에게 중국 장가계의 봉우리 같은 모습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곳은 경기도 만한 면적에 수많은 봉우리가 솟아 있다고 했다. 가보진 않았지만 여기서 유명한 장가계의 봉우리를 연상하는 말을 들으니 새롭게 보였다.

도봉산의 정상의 봉우리들은 설악산에서 보았던 기암괴석의 한 봉우리 같기도 했다. 도봉, 북한산은 전체적으로 그 같은 유려한 형상과는 다르지만 암봉들과 그런 여러 가지 요소가 어우러져 더 다양하고 깊이 있는 느낌을 자아낸다고 생각되었다. 도봉산 앞뒤로 사패산과 북한산이 있는데, 이쪽저쪽의 산이 함께 어우러져 더 깊은 산세를 이루게 된다.

다시 걸어 포대 능선 앞에 닿았다. 포대 능선을 날 씨 좋은 날 지나기는 것은 처음이었다. 뚜렷해진 모습을 보니 더 험해 보였다. 그 곳의 험한 바위 들은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자운봉 등의 산세 흐름과 이어진 형국이었다.

포대 능선을 지나 자운봉과 신선대 사이 계곡길을 지나 신선봉에 올랐다. 뿌연 구름이 끼어 멀리 백운대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그러나 전체의 너른 산세는 느낄 수 있었다. 그 주변 풍광을 천천히 바라보다 다시 길을 나섰다. 대부분 마당 바위 로 내려갔지만 뒤로 돌아 우이암 방향으로 갔다.

앞에 놓인 암봉을 넘어 갔다. 바위 봉우리를 지나는 암릉은 조금 위험하지만 조망이 좋았다. 스케치도 하고 싶지만 힘이 떨어져 그냥 보며 지나갔다. 다시 봉우리를 넘으니 두 분이 바위 위에 앉아 쉬면서 내려가는 길을 알려 주었다.  

우측에 오봉으로 가는 이정표가 나타났다. 오봉을 가보려다 너무 늦을 것 같아 앞 봉우리만 오르고 내려왔다. 그 봉우리에 서니 다시 멀리 북한산과 사패산 풍광이 조망되었다. 전체 산세의 중간 지점쯤이 되어 뒤로도 앞으로도 깊은 산세가 펼쳐 보였다. 북한산과 도봉산은 별개로 불리지만 사실상 하나처럼 인식된다. 그리고 사패산에서 불광동으로 가는 길은 가장 먼 길이다.

저녘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해가 지기 전에 내려가려면 부지런히 가야 될 것 같았다. 석양이 반사되어 산의 빛깔이 달라 보였다. 가는 도중 우이암이 계속해서 이정표처럼 보였다. 그것이 평소보다 더 중요한 지점으로 느껴졌다.

우이암 가까이 이르러 작은 봉우리를 올라 뒤돌아보니 도봉산 정상부와 아래로 길게 늘여진 산세의 풍광이 보였다. 평소 도봉산은 정상부에 올려 보이는 봉우리가 다 인양 느껴졌었다. 그리고 그 뾰족하게 솟아 있는 인상이 사람의 범접을 허락치 않으려는 듯 보여 마음에 썩 들지 않았었다. 그런데 능선을 다 지나다보면 그런 요소가 자아내는 유려함과 깊이감을 함께 느낄 수 있어 좋다.

이것저것 보고 간간히 스케치도 하느라 시간이 지체되어 오후 늦은 시각이 되었다. 이제 해 질 것을 생각해야 했다. 가다가 우측으로 작은 석문 같은 곳을 지났다. 지난번 불수사도북종주를 할 때 길에서 만났던 김재석씨가 알려주었던 곳이다. 이번에는 스스로 길을 찾아 가기로 했다 정상부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병풍처럼 서 있던 바위를 찾아 내려가다 한북 정맥 길로 접어들었다.

한북 정맥 산줄기는 사패산에서 도붕산 북한산으로 줄기가 이어진다. 그 산맥의 기운이 막바지에 응축되어 장엄한 산세를 이루어 놓았다. 그리고 산세에 면해 드넓은 삶터가 펼쳐져 있다. 그러한 지리적 조건의 아룸다운 산세를 배경으로 시원하고 드넓은 명당이 되어 삶에 기운을 북돋워주는 형국이다.

도봉산 수유리 아카데미 하우스 근처로 내려오니 주변이 온통 유흥지여서 산이 좀 먹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전에 산을 잘 찾지 않았던 것은 그런 것과도 연관이 있었다. 이 주변 업소의 손님들은 대부분 산을 찾지 않고 숲 속에서 먹고 마시며 즐기려고 온 사람들일 것 같았다. 많지는 않지만 산에 왔다 가는 사람들도 질펀하게 먹고 가려는 일이 있다. 그것은 산을 사랑하고 다가가려는 마음과 다른 모습일 것이다.

우이동 계곡으로 내려왔다. 막바지에서 만난 그 번잡스러움으로 산길을 지나오면서 청량해진 기분이 상하게 되어서인지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그린 파크 호텔 앞을 지나며 개울이 흘러 내려오는 위로 북한산 산세가 보였다. 어둑해진 시각이지만 산세의 윤곽이 드러나 보였다. 앞의 개울과 뒤의 산세가 그윽한 느낌을 자아내듯 하여 평온을 되찾으러 산을 다시 찾는 마음으로 올라다보며 스케치를 하고 왔다.
(09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