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 : www.photoseoul.com

 

11월11일(토요일)

 

오늘 문혁이와의 두 번째 산행이 11월 유일한 산행이 될 것 같다.

2주전에 삼각산 비봉,의상능선을 했는 데 오늘은 도봉산이다.

원정 산행보다는 일단 가까이 있는 삼각산, 도봉산부터

맛을 보여주기로 하고 8시30분경 집을 나선다.

 

어젯밤 비도 조금 온 것 같고 날씨도 쌀쌀하게 느껴지지만

하늘은 파랗고 길가의 은행나무는 노란 색을 더해간다.

예전의 칙칙하던 플라타너스 가로수를 생각하면

은행나무길은 얼마나  운치가 있는가. 

노란 은행나무길을 걷는 것은 산길 못지 않게 기분이 좋다.

 

지하철 입구에서 문혁이가 “아빠! 디카” 한다.

어젯밤 신경써서 충전까지 해놓았는 데..  요즈음들어 깜빡이가 잦다.

집까지 멀진 않지만 돌아가긴 귀찮다.

에이 모르겠다 모처럼 디카없이 그냥 가지 뭐...

 

요즈음은 산행과 함께 사진촬영 자체를 취미로 하는 분들이 많이 늘어나고

한산에 올라오는 사진들도 예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수준이 높다.

나의 경우는 산행자체에 비중을 두는 편이다 보니 사진촬영은

산행기록을 위한 정도이고 또 평소 산행취향이

손에 뭘 들고 걷는 걸 싫어해서 스틱도 사용하지 않는 스타일이다보니

카메라가 짐처럼 생각될 때가 많다.

 

도봉산역에서 1호선 망월사행으로 환승한다.

도봉산역에서 마주보이는 도봉의 흰 봉우리들이 아침햇살에 눈부시다

 

망월매표소를 지나 원도봉계곡을 따라 오르는 길은 도봉매표소쪽에 비하여

한적한 편이고 다락능선 북사면에 위치하여  한번 눈이 오면 잘 녹지 않고

겨울산의 정취 또한 빼어난 곳이다.

내가 처음 산행에 빠지게 된 것도 이 원도봉계곡의 설경에 반해서였다.

머지 않아 그 모습을 다시 보게 되리라.

 

망월사를 얼마 남겨 놓지 않은 곳에서 덕재샘이 나타난다.

목도 축일겸 식수대로 가보니 3회 연속 부적합 판정이다.

샘이 오염돼 있다는 것은 산이 오염돼가고 있다는 말 아닌가.

씁쓸해진다.

 

덕제샘을 지나 얼마를 오르면 머리위로 망월사가 나타난다.

망월사는 관음전,영산전등 여러개의 전각들이 포대능선을 배경으로

높이를 달리하며 빼어난 공간미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사찰이다.

이곳은 계절마다 독특한 아름다움을 보여주지만 특히

겨울에 눈이 내려 지붕의 곡선들과 도봉의 봉우리들이 어우러지면

그 환상적인 풍광에 눈을 떼기 힘들어진다

 

망월사 경내로 들어서 잠시 숨을 고른후

주방옆 자판기에서 레몬차 2잔(1잔에 100원)을 뽑아들고

범종각으로 향한다.  이 위치가 망월사 감상의 적지다.

 

망월사를 뒤로 돌아 오르면 포대능선과 사패능선이 만나는 곳이다.

포대능선은 도봉의 주봉들(선인봉,만장봉,자운봉,신선대)을

눈 앞에 가까이 두고 걸을 수 있는 곳이다.

특히 저녁 일몰무렵이면 도봉의 주능선과 주봉들의 실루엣이 매우 인상적이다.

 

포대에 도착하여 시간을 보니 11시30분경이다.

다락능선이나 포대능선에서 신선대 방향으로 진행하기위해서는 이 곳 방공포대에

올라서야 하는데 다리에 힘좀 써야 된다.

일단 올라서면 바로 코앞에 주봉들이 보이고 제법 쉴수 있는 공간이 많아

산님들이 한숨 돌리는 곳이다.

2년전 바위산과 5산종주를 할때 이곳에서 일출을 보았었는 데...

올겨울 바위산과 하기로 한 덕유종주가, 설산이 기다려진다.

 

점심은 아직 이르고 빵과 과일로 간식을 하고 Y계곡으로 내려선다.

맨손으로 쇠줄을 잡으려니 제법 손이 시리다.  이 곳 Y계곡은 쇠줄에 의지하여

아찔하게 떨어져 내렸다가 다시 그만한 높이를 역시 쇠줄을 의지하며

올라서야 한다  그다음 기다리는 것은 칼날 같은 암릉이다. 

이 구간은 초보자에게는 만만하지 않은 곳이라 자주 정체현상이 일어나는 곳인데

오늘은 토요일이라  그리 붐비지는 않는다.

도봉산을 처음 오는 산님이라면  이 곳 Y계곡의 스릴이

기억에 남는 것중 하나가 될 것이다.

 

Y계곡을 지나니 산님들로 붐비는 봉우리가 보인다.

도봉산에서 일반등산객이 오를 수 있는 최고봉. 신선대이다.

도봉산도 오랜만에 온 것 같다.  신선대 오름길에 못보던 보조 난간이 설치되어 있다.

 

산에 안전시설물들이 계속 늘어나는 것을 보며 한편으로는 산이 자연미를 잃고

관광지화 되어간다는 생각에 섭섭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산에 산행인구가 늘어났고

다양한 산객들에 대한 안전 또한 무시할 수 없을 터이니 어쩔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신선대를 넘어서 뜀바위를 우회하고 오봉능선으로 접어든다

자리를 펴려고 생각했던 명당자리들은  이미 먼저온 산님들이 선점하고 있다.

하지만 아들과 함께 산행의 맛을 전수하려는 산행인데 아무곳에 자리를 펼 수는 없다.

 

다음에 예비해 놓은 장소는 오봉 가기전 우봉 부근이다.

다행히 이곳은 비어있다. 먼저 명당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전망이 있고

무엇보다 바람이 불지않고 햇볕이 따듯한 양지바른 곳이다.

 

점심은 저번 산행과 같이 샌드위치, 치킨, 보온병에담아온 따듯한 국물, 귤, 토마토,

그리고 사춘이 한병이다.

점심을 먹고 햇볕이 따듯하니 바위에 눕고 싶은 모양이다. 배낭으로 베개를 만들어 주고

손수건으로 얼굴을 덮어 햇볕을 가려주니 씨익 웃는다. 

문득 이 녀석에게 내 피가 흐르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 한구석이 더워진다.

 

우봉을 지나 능선을 조금 진행하고 한차례 오름을 하니 바로 코앞에 오봉이 나타난다.

오봉은 다섯 개의 봉우리가 만들어내는 독특한 풍광으로 도봉산의 명소중 하나이다.

오봉에 오니 뜻밖의 선물이 기다리고 있다.  바위꾼들이 2봉과 3봉사이에 줄을 걸어놓고

건널 준비를 하고 있고(전문용어로 뭐라 하던데 생각이 안난다.)

3봉 벽에도 바위꾼 한명이 붙어 있다.

전망 좋은 곳에 자리잡고 오랫동안 그 과정을 관람(?)하다 도봉 주능선으로

진행하기 위해 오봉샘을 향해 내려선다

 

오봉샘에서 목을 축이며 샘의 명칭과 주변지형에 대해 설명해준다.

산행을 즐기려면 자연과 교감하려는 감성적인 마음도 중요하지만

지형을 파악하고 분석하는 탐구적인 자세도 필요하다. 

백운대님의 유명한 말이 있지 않은가   “아는만큼 보인다.”

 

도봉주능선으로 진입한다. 우이암을지나면 보문능선으로 하산하게 되나

우이암까지 가지 않고 도봉계곡쪽으로 내려선다.

능선에 시원한 조망의 남성다움이 있다면

계곡에는 분위기와 정취의 여성스러움이 있다.

계곡으로 들어서니 늦가을의 분위기가 물씬 난다.

 

도봉서원을 지날 때 즈음 등산로에 하산객들이 점점 늘어난다

도봉매표소를 지나 등산용품점들과 먹자골목을 지나는 데 

나의 새로 생긴 산친구가 배고프다며 팔을 잡아 끈다.

장시간 산행하고 거리에서 풍겨오는 냄새들이 식욕을 자극한다.

개성순대국집에 들어가니 식탁마다 산님들로 붐빈다.

이 곳의 순대는 통후추를 넣어 독특한 풍미가 있다.

 

순대국을 먹으며 문혁이 한마디 한다.

“아빠 다음에 산에 갈때는  미리 말해주세요”

그렇지. 이 녀석도 자기 생활이 있는 데.. 

아마 한달에 한번 정도 같이 할 수 있으면

그것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 것 같다.

 

횟수보다는 아빠와 같이 한 산행에서 산이 주는

그 무언가를 느꼈으면 하는 바램이다.

 


 

사진출처 : www.photo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