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의 소중함을 느끼는 지리산산행

-언제: 2006.06.03.
-누구와: 북부능선님과.
-어디를: 동부능선의 한 자락.




 
며칠 전에 낯선 사람으로부터 핸드폰이 울려대기 시작합니다.
언제부터 나의 산행기에 눈팅만 하고 답 글을 쓸 줄 모르는 사람.
그러면서 나와 함께 산행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
통화내용이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인지 몰라도 좋은 얘기만 합니다.
그러면서 결국 수일 내로 산행에 동행하고 싶다 하여 오늘 산행 약속을 잡았습니다.
누구나 그러 하듯이 산행코스를 잡는다는 것, 초면인 사람과의 만남에서
산행코스를 선택한다는 게 만만치 않았습니다.




 
오늘 산행코스는 지 지난 가을 카페산행에서 아내와 함께했던 동부능선의
한자락을 걷기로 합니다. 산을 오르면서 아내와의 그때 아름다운 추색물결이
춤추던 그 시절을 생각하며 걸으면 쉽게 오르리라 생각 합니다.

순천역에서 만나 간단한 인사를 하고 서로가 갖고 있는 지리산의
모든 정보를 쏟아 내고 있습니다. 산꾼이 더 이상 무슨 얘기를 하겠습니까마는
주제가 산이다 보니 이야기는 추성리를 다 가도록 끊어질 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북부능선님도 닉부터 범상하다 싶더니 지리산 메니아 입니다.
언제 그렇게 지리산 구석 구석을 다니셨는지……




 
태극점의 시발점인 지리의 동부능선은 웅석봉을 시작으로 하여 밤머리재와
왕등재 그리고 하봉, 하봉에서 시작된 초암능선과 두류능선은
많은 산객들에게 유혹을 끌기에 충분 합니다.
아마도 초암능은 지리산 최고의 계곡인 칠선과 국골를 끼고 있어 그런지 모르겠다.
하봉에서 중봉으로 뻗어 올린 능선을 따라 청왕에 오르면 좌우 팔방으로 내리뻗은
능선과 계곡의 수려함을 가히 어떻게 표현하랴!





둘만이 호젓한 능선의 흙 길을 타고 오르면서 힘이 부치는지 잠시 말이 끊깁니다.
20~30여분을 오르니 고도 620 근처에서 전나무 군락지에 닿더니 이내
남동쪽으로 향하는 사면을 타고 갑니다.
이윽고 고도 720인 삼거리에 닿습니다.
아마 이곳이 또 다른 등로의 시발점인 아닌가 생각 되기도 합니다.



  
낙엽 활엽수 일색의 원시림이 하늘을 뒤 덮고 미련 없이 울어대는 홀딱벗고새는
누구를 위한 울음의 배려인지 모르겠으나 싫지는 않았습니다.
무질서하게 숲을 이룬 자연의 생태과정에서 나름대로 자신의 영역을 지키려는 흔적-
산죽밭이 나오다가 이내 활엽수의 군락이 자리를 차지하는가 싶더니
또 다시 소나무 군락이 생태적 영역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자연의 생태적 질서 속에 어찌 감히 우리 인간들이 어떻게
인위적으로 영역을 파괴 할 수 있다는 말인가 하고
우리의 뒤를 되 돌아 볼 때 부끄러울 뿐인 것 입니다.




 
어느덧 산행시간 1시간이 흘러 고도 1235 안부인 노송군락지에 닿습니다.
나뭇가지 사이로 살며시 드러난 제석봉이 속살을 내 보입니다.
그러더니 이내 산죽밭이 이어지더니 고도 1380인 안부에서
잠시 휴식 하기로 합니다.
우측으로 새로 난 길은 칠선 어디로 가는 것일까 하면서
당장 내려 서고 싶은 마음을 억누릅니다.



  
고도를 높이면 높일수록 수령이 감히 5~600년이 됨직한 활엽수 숲이 하늘을 가리고
잠시 너덜지대를 지나면서 암릉구간을 우회하기 시작 합니다.
암릉들이 날카로워 등날을 타고 오르기란 어려운 코스입니다.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경사는 급해지고 많은 암릉 群(군)을 맞이 합니다.
가끔씩 짙푸른 녹음 사이로 자신을 뽐내는 주변의능선과 
천왕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 옵니다.





몇 개의 암봉을 거치면서 혹시 촛대봉을 지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북부능선님이 고도를 물어 옵니다.
지난 산행 때 촛대바위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누워서 공간
확보를 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에 쉽게 잊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드디어 우측의 폭포로 향하는 갈림길에 닿는가 싶더니 이내 촛대바위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 놓습니다. 가을 산행 때 주변에는 오색의 단풍으로
수 놓았건만 오늘은 녹색바다 속에 촛대봉이 떠 있는 기분입니다.






 
그 뒤로 하봉을 향하는 바위 군락들,
아마 지리산 능선에 이렇게 많은 바위 군락이 있는 곳도 저곳이 아닌가 싶습니다.
바위 사이에 얹어있는 구상나무의 외로움을 덜어 내기라도 하듯이
간간히 피어있는 철쭉이 늦은 봄을 마무리 한 것 같기도 하고
그 사이로 펼쳐지는 서부의 반야봉이 우리에게 환상으로 다가 옵니다.






 
<최고의 조망 처에 서서>
비바람과 거친 자연의 시련을 버텨 가면서 외로이 서 있는 구상나무와
함께 최고의 조망 처에 섰습니다.
아름다운 비경에 도취되어 넋을 놓고 바라본다.
짙푸름이 물결치는 초록의 향연을 감히 누가 막을 소냐.
산자락이 겹겹이 펼쳐지는 조망 앞에서 감히 우리 인간이 어떻게 욕심을 낼 수 있겠는가?
지금 우리가 세월의 아쉬움을 탓하기 보다는 앞으로의 삶에 대한 지혜를
이곳에서 터득해야 할 것 같은 아쉬움을 달래면 자리를 비켜 섭니다.






<산행중에 만난 사람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언제부터 나는 이상한 버릇이 생겼습니다.
내가 느끼는 감정에서 상대도 그런 감정을 느꼈을까 하는 그런 궁금함과
아쉬움이 밀려오기도 합니다.
그러는 사이 산객 3분과 조우를 합니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저를 알아보는 고마움에 주변의 지형 상황을 설명합니다.
정말 인터넷의 파장이 상당한 효과가 있는 모양입니다.






 
<얻은 만큼 배 푸리라>
자연에서 내가 얻은 만큼 배 풀기로 하였습니다.
지난 주 청소 산행 후 느낀 감정이 너무도 많고 때로는 창피해서
더 이상 방관자로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배낭에서 백을 준비하면서 능선에 늘려진 쓰레기를 줍기로 합니다.
주변 주변에 널려진 대형페트병 속의 물은 누구를 위하여
그렇게 많이 방치시켜 뒀는지
아마 여러분이라면 과연 그 물을 드시겠습니까?
쵸코파이의 빈 봉지. 담배꽁초. 비닐. 사탕봉지. 등등……






 
함께하는이가 주변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없을까 하여 배낭을 그 자리에 숨겨두고
새로난 길을 찾아 나섭니다. 그러나 의외로 길은 뚜렷하며 길은 열려있고
주변에 아름다운 야생화와 함께 버려진 양심을 회수하고
제자리로 돌아오는데 걸리는 시간이 1시간 25분을 소비했습니다.






 
가야국 마지막 왕인 구형왕이 신라에 쫓겨 이곳에 진을 쳤다
하여 붙여진 이름인 국골을 바라 봅니다.
40여분을 내려 오면서 고도를 895까지 낮추더니 이내 우측의 지계곡과
합류하는 합수부에 닿고서야 계곡산행이 이어집니다.
좌측으로 이어지는 계곡의 청류를 바라보며 때로는 가까이에서
흐르는 소폭의 흐름을 카메라에 담습니다.




 
<산행종료>
계곡산행이라고 하여 큰 기대를 하면 잘못된 생각입니다.
물론 합수부 위의 계곡의 진미는 경험 해 보지 않아 잘 모르겠습니다만
사거리에서 산행종료까지 2번의 계곡을 건너니 끝입니다.
그렇지만 사람의 통행이 많지 않은 곳이라 때 묻지 않은
순수함과 소박한 맛은 있어 보입니다.
잠시 후 민가가 나오면서 村老(촌로)의 부지런함을 발견함과 계곡 합수부에서 들려오는
향락객들의 웃음소리에 속세로 돌아 왔다는 현실감으로 산행을 마칩니다.




 
돌아오는 길에 달궁 야영장에서 기쁜인연님과의 만남은
또 하나의 기쁜 인연으로 다가왔습니다.
청소산행 때 초면이 지금은 구면이 되어 비록 마시지 못하는 술잔을 기울이면서
보내는 아쉬운 시간을 멀리하면서 그 자리를 비웠습니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에필로그>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갖습니다.
만남에는 선택이 있듯이 또한 因緣(인연)을 무시 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나 역시도 산행 때마다 산과의 만남을 위해서는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산이 들려주는 소리와 시각적인 눈높이를 맞춤으로서
산과 내가 공유 한다는 느낌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도 일상에서 假植(가식)적인 만남이 아닌
즉, 나 혼자만이 아닌 너와 내가 공유 할 수 있는 그런 만남-
그런 만남이 진정 좋은 사람으로 기억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무튼 오늘 나와의 만남이 인연의 소중함을 느끼는 그런 만남이었으며
하는 바램으로 이만 산행기를 마칩니다.
2006. 06.06.
청 산 전 치 옥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