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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2봉에서 바라본 계방산 정상 능선, 비교적 한산한 정상 풍경-


계방산(반공소년 이승복과 집단 뒤에 숨은 청개구리를 만나다)

2018011007호        2018-02-04(일)


자리한 곳 : 강원도 홍천, 평창군

지나온 길 : 운두령쉼터-1,492m-계방산(1,577m)-주목군락지-노동계곡-2야영장(이승복생가터)-삼거리주차장

거리및시간: 4시간 17(10:59~14:35) : 총 10.9km(산행 : 8.9.km +도로: 2.0km)

함께한 이 : K - 산악회원 : 29

산행 날씨 : 맑음(가시거리 양호)


3년 만에 찾은 계방산 집단이기주의로 좋은 기분이 어긋난다.

화살처럼 흐르는 세월이란 말을 실감하며 기억 속에 생생하게 각인된 계방산은 고독한 산객을, 멋진 상고대로 축복해 주었던 3년 전의 환대를 기대하며, 역설적으로 지구온난화가 원인으로 금년겨울 한파특보가 자주 발령된 강추위속의 매서운 댓바람을 가르며, 생각해보니 오늘이 24일로 절기상으로 봄이 시작된다는 立春(입춘)절기다. 혹한도 아랑곳하지 않고 새벽부터 분주하게 움직여 산악회에서 통보받은 시간보다 10여분 일찍 양재역(가정법원)에 도착해, 버스를 기다리는데 살을 에는 추위가 실감난다.  강추위에 적응하느라 콧물과 눈물이 번벅인데 산악회장께서 전화로 출발이 지연되고 있으니, 노상에서 추위에 떨지 말고 양재역사에 계시면 전화로 연락하겠단다. 약속시간보다 17분 지각해 산악회 버스가 도착했는데 뜻하지 않게 28인승 리무진버스다.(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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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두령 고개에서 1km 능선까지 풍경-



자신이 위치와 해야할 일을 착각한 직업인을 환영받기 어렵다.

버스 정원 28명중 18명이 친목단체회원으로 그들 중에서 약속시간을 지키지 않아 사당역 출발부터 늦었다는 산악회장이 에둘러 변명하는 안색이 어두운 탓이지 스치는 예감이 싸늘했다. 회님들에게 마이크로 산행코스와 협조사항을 설명하려 했으나 잡음이 심해 전달하지 못한다. 버스기사가 펑크를 내는 바람에 회사대표께서 일일기사로 나왔다는 설명인데, 사용자(산악회)와 휴게소 휴식이란 기본적 부터 계속해서 어긋났고, 초보기사 때를 벗지 못함은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으나 皇帝(황제)인 고객을 대하는 태도와 기본적인 편의시설에 대한 숙지가 되지 않아 차안의 온도조절, 냉온식수, 마이크, 등이 무용지물 이였으며, 운두령 고갯길 도로의 난이도가 조금 높은 것은 사실이나 보통실력의 기사라도 거뜬한 길이라 알고 있는데, 필요 이상의 저속과 잦은 멈춤으로 조마조마 불안 불안했지만 무사히 운두령쉼터에 도착했음에 감사하며, 안도하는 숨을 길게 내쉰다.(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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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2봉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 설악산도 시야에 들어온다-


桂芳山(계방산) : 강원도 평창군 용평면과 홍천군 내면에 걸쳐 있는 해발 1,577m의 산이다

계방산은 대한민국의 척추인 백두대간 한강기맥((남한강과 북한강의 수계를 가르는 산줄기이며 백두대간 오대산 두로봉에서 분기해 양평 두물머리까지 이어지는 도상거리 166.9km 산출기의 최고봉)의 한줄기로 동쪽으로 오대산을 바라보고 우뚝 서 있으며, 한라, 지리, 설악, 덕유산에 이은 남한 제 5위봉이다. 계방산 서쪽에는 남한에서 자동차가 넘는 고개로서는 꽤나 높은 운두령(해발 1,089m)이 있으며, 북쪽에는 수미상의 반달곰이 서식한다는 깊은 골짜기 을수골이 있고, 남쪽에는 몸에 좋다는 방아다리 약수와 신약수 등 약수가 두 곳이나 있다. 계방산은 각종 약초와 야생화가 자생하는 곳으로, 특히 산삼이 유명하여 사철 심마니들이 모여드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이산에는 회귀목인 주목, 철쭉나무들이 군락을 이루며 자라고 있는 곳으로 산세가 설악산 대청봉과 비슷하며, 이 일대가 생태계 보호지역으로 지정될 만큼 환경이 잘 보호되어 있는 곳이다.

계방산은 겨울철에만 만끽할 수 있는 환상적인 설경이 이른 3월 초순까지 이어져 등산인들에게 인기를 더하고 있다. 여기에다 어지간한 산 높이에 해당되는 해발 1,089m의 운두령에서 정상까지 표고차가 488m에 불과하기 때문에 크게 힘들이지 않고도 오를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이 산 정상에 오르면 백두대간 등줄기를 한 눈에 볼 수 있어 인근에서는 최고의 전망대로 손꼽히는데 북쪽으로 설악산, 점봉산, 동쪽으로 오대산 노인봉과 대관령, 서쪽으로 회기산과 태기산이 파노라마를 연출한다.                 -평창관광 홈페이지에 잘못된 부분을 수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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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방산 정상에서 바라본 한강기맥 능선,  매서운 추위 때문에 한산한 정상-


운두령에서 시작은 밝고 경쾌했으나 마무리는 더 이상 나쁠 수는 없었다.

우두령(1,089m)고갯마루에서 한파에 대비해 산행복장을 꾸리고, 대단한 강추위(영하 20)였으나 다행히 바람이 잔잔하고 햇볕이 좋아 회원님들께서 모두 출발하자, 후미를 살피며 순조로운 진행으로 완만하게 이어지는 능선까지는 그런대로 견딜만 날씨 덕분에, 단체(18)대표에게 하산시간을 지켜줄 것을 당부하고, 소그룹(4)에게도 하산시간을 숙지시키고 발걸음을 재촉한다. 조망이 탁 트인 1,492m봉 전망대를 경유해, 정상에 도착하니 고도 때문인지 바람이 불어 몸으로 느낀 온도가 10도가량 더 내려가는 혹한으로, 몸을 움직이기 힘든 탓으로 정상에서 머무른 시간이 짧아, 어려움을 느끼지 못하고 정상석을 인증 샷하고, 추위에 쫓겨 하산을 서두르지만 2%가 부족함은, 기대했던 상고대는 거의 없고 밋밋하게 느껴진 산행으로 아쉬움을 남기며 이승복 생가에 도착한다.(13:13)


반공 소년의 아이콘 이승복 50(1968129~201824)

이승복기념관은 분단의 아픔과 비극의 현실을 상기시켜주는 장소다. 수십 년이 지났음에도 이승복 사건은 아픈 손가락처럼 우리에게 상처로 남아있다. 이러한 가운데 평화를 의미하는 올림픽이 이승복 사건이 발생한 강원도 평창에서 열린다. 이와 관련, 이승복 사건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의미와 평화의 중요성에 대해 알아봤다.

196812월 강원도 평창군에서 무장공비에게 죽임을 당한 이승복군의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발언 보도와 관련해, 조작논란이 있었으나 법정소송 끝에 10년만에 진실임이 밝혀졌다.

처음 조작논란이 일어난 것은 1992년이다. 조선일보 기자가 작성한 이승복기사와 관련해 당시 미디어오늘편집국장이 저널리즘이란 잡지를 통해 최초로 조작설을 제기했다. 편집국장은 기자가 현장에 가지 않고 현장 생존자를 만나지 않고 소설을 썼다며 비판했다. 또 당시 언론개혁시민연대(언개연) 사무총장도 동일한 내용으로 1998년 오보 전시회를 열었다.

창원대 교육학 교수와 경남대 사회학 교수는 이승복 동상을 없애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때부터 전국 학교에 동상이 하나둘씩 사라졌다. 이후 조선일보는 미디어오늘 편집국장과 언개연 사무총장에 대해 민·형사소송을 제기했다. 이승복군 아버지와 형도 2명의 교수 등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법정싸움 길고 길었다. 형사소송에서는 20029월 사무총장에게 징역 6, 편집국장에게 징역 10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2004102심 재판부는 사무총장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고, 200611월 대법원은 2심 판결을 확정했다. 다만 편집국장에 대해 대법원은 “(허위기사였다고) 믿을만했던 사정이 있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민사소송에서는 20092월 대법원이 사무총장에게 5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신문기사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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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방산 주목, 이승복생가, 버스주차장 풍경-


어렵고 힘든 시절엔 먹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었다

군사정권이 막을 내리고 문민정부가 들어서며 반공소년 이승복( 1959년 12월 9일 평창군 진부면 도사리에서 출생) 관한 논란이 많았었다. 당시(1968년) 필자는 중학교 3학년으로 고향(전남 신안 하의)엔 극심한 가믐으로 천수답이 90%이상이라 모내기를 못하고 먼지날리는 논에 작대기로 홈을 파는 모내기, 송충이가 극성이라 수업을 전폐하고, 준비물로 박케스와 대나무집게를 지참하고 산으로 송충이 사냥에 강제 동원됐었고, 늦가을 정부주도하에 저수지 공사 토지수용, 관정개발 동원 노임으로 미국이 援助(원조)한 밀가루로 지급했으나, 먹을 것이 없어 정부에서 저리의 구흘(安南米 3년쯤 묵어 특유의 역한 냄새와 상당량의 썩은 쌀을 골라내고 날아갈것 같은 밥)미로 연명했던 비참했던 참상을 지우려고 노력하면 할 수록 기억에 강력하게 남아 있다.

분명한 것은 사실이 조금 부풀려 졌는지는 알 수 없나, 이승복은 북한의 무장공비에게 잔인하게 1969년 12월 9일 죽임을 당했고 그것으로 인해 가족이 불행했던 것은 사실이며, 지금의 아이들은 상상하기도 힘든 삶에서도, 반공의식은 분명했고 차이가 확연하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이승복생가를 뒤로하고 오토캠핑장을 지나 대형차량주차장으로 이동하며 죽음이란 화두에 빠져든다.


에필로그

요즘에는 자녀들이 부모의 질병이나 간병 등에 대한 관심까지도 병원에 맡겨 버린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생명의 무게가 갈수록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연로하신 부모님의 죽음은 두려움의 대상이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은 헤어짐에 대해 불안해 한다. 삶에 대해 희미한 촛불이라도 잡고 싶은 사람들은 종교에 의지하기도 한다. 철학자들도 죽음을 앞두고는 통일된 해석이 없다. 스토아주의는 죽음을 삶의 격정적 올무에서 벗어나는 것’, 셸링은 본질로의 복귀’, 레싱은 영원한 새로운 탄생이라고 표현했다. 죽음은 한마디로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큰 주제인 모양이다. 시간을 향유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 쫓겨 내몰리는 사회에서 효도는 거추장스럽다. 복지가 발단한 사회에서는 아예 자식들 대신 국가가 효도를 대행해 준다는 현실이 씁쓸하고 심란한 기분으로 주차장에 도착한다.(13:53)

도떼기시장 보다 못한 송어회집에서 하산하는 회원님들을 기다리는데, 동창(초등학교)녀석의 부음이 문자로 날아들었다.

집단 뒤에 숨은 청개구리를 만나지 않기를 기대했었는데 바램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기다림에 지쳐 자포자기상태로 폭음하고 있을 때 약속시간보다 무려 1시간 30분 늦게 단체 팀이 도착했다.

귀경해 서둘러 장례식장으로 달려가 고인을 문상하고 유년시절 부터 녀석과의 60여년 추억을 반추하며, 퍼 마시다 보니 만취해 몸도 마음도 파김치가 되어 자정을 훨씬 넘긴 시간에 귀가했다.                              --.


~오라는 곳도 불러준 이도 없지만 찾아가 안기면 언제나 포근하기만 한 을찾아서~


2018-02-07

계백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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