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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악산 675m 정상비 정상에는 향토유적 8호로 지정된 삼국시대 고비(古碑, 파주시 적성면 객현리 산 25번 지, 높이 170cm)가 서 있는데, 일명 '빗돌 대왕비 또는 설인귀비'라고도 한다. 이 비석의 글자가 마멸되어 그 생 김새가 북한산의 진흥왕순수비와 비슷하여 진흥왕 순수비라는 설도 있고 당나라 장수 설인귀가 이 고장 출신이라는 점으로 미루 어 설인귀비라는 설도 구전으로 전해 지고있다.
ⓒ 윤도균
감악산
 

고향 친구 후배 동생들과 함께한 감악산 산행길 

 

나의 손아래 동생은 취미가 낚시다. 그래서 형이 만날 때마다 함께 산에 다니자고 권유를 해도 무정한 동생은 들은 척도 않고 줄기차게 낚싯터 찾아 전국 팔도를 다니던 동생이 어느 날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아니면 형의 끈질긴 권유에 못 잊은 척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살아있는 형 소원 못 들어주겠느냐?" 생각을 했는지 어느 날부터 여동생과 매제를 대동하고 형의 산행길에 따라나섰다.

 

그것이 기회가 되어 생전 산과 담쌓고 살 사람 같던 동생이 우리나라 속담에 "가랑비에 옷 젖는다." 고 했듯이 자의든 타의든 산행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한 동생이 어느 날은 형! 언제 우리끼리 감악산 산행 한번 다녀오자고 제안하여 선뜻 그러겠노라 약속을 했다. 그런데 그 소리 나온지 벌써 몇 개월이 지났건만 늘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다 나중에는 깜빡 잊고 있었다.

 

그래도 형 입장 뻔히 잘 아는 동생은 더 이상 두 말 않고 이때나 저때나 형 눈치 살피며 감악산 갈 날만 고대했을 동생을 생각하니 미안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생각난 김에 7월 둘째 주(7월 10일) 감악산 산행 D-day를 잡고 동생에게 연락하니 친동생, 외사촌 동생, 그리고 고향 친구, 후배들까지 연락하여 20여 명이 감악산 산행에 참여 한다는 연락이 온다.

 

  
법륜사 대웅전 원래 감악산에는 감악사, 운계사, 법륜사, 운림사 4개의 사찰이 있었다고 전해지나 현재는 모두 소실되었고, 지금의 법륜사는 1970년에 옛 운계사터에 재창건되었다. 중앙에 대웅전을 중심으로 서쪽에는 머타전과 동양 최대의 백옥 11면 관세은보살상과 전면에는 9층 석탑과 자연석으로 세운 세계평화의 비가 있고, 절 입구에는 해탈교라는 작은 다리가 있고 경내에는 하얀 불상이 우뚝 서 있으며, 절 뒤편으로는 산신각이 있는데 그 안에서 시원한 석간수가 흘러나온다. 절 바로 밑에는 높이 20여m의 운계폭포가 있으며, 감악산 등산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 윤도균
법륜사
  
숫가마터 감악산에는 곳곳에 숫가마터 자리가 자리잡고 있다. 1960년대 말까지 이곳에서 숫을 구었다고 한다.
ⓒ 윤도균
숫가마터

그런데 문제는 교통편이다. 편한 대로 생각하면 승용차 운전하고 떠나면 되는데 모처럼 고향 사람들과 산행하면서 산행후 하산주 한 잔 못하면 그 무슨 재미냐고 형님 차 운전하지 말고 대중교통편 이용하자는 제안에 따라 부평에서 양주까지 지하철 1호선 47개 역이나 거치며 1시간 42분 걸려 양주역에 도착해 일행들을 만나 다시 25번 시내버스를 타고 감악산을 향하여 달려 간다.

 

그리고 또 한 팀은 불광동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적 성행 버스를 타고 온 팀과 감악산 계곡 법륜사 입구에서 만나 가벼운 인사를 나눈 후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오전 10부터 산행이 시작된다. 그런데 이곳 감악산 산행 법륜사 코스는 소문에는 경기 오 악으로 알려져 산이 되어 상당히 험할 것 같지만 의외로 이어지는 등산로는 너무도 편안한 코스로 이어진다.

 

그런데다 파주시에서 등산로 주변에 다양한 이벤트 휴식처를 마련하여 명상의 숲, 숯가마 쉼터, 그리고 여름철 산행길에 갈증을 풀어주는 오아시스 약수터가 몇 곳이나 있어 가볍게 단 산을 즐기는 사람들의 여름 산행지로 주목을 받는다. 그러다 보니 우리 일행들 그 누구도 부담없이 쉬엄쉬엄 너르게 산을 오르며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산행길 내내 하하 호호 웃음소리가 끊이질 안으며 오른다.

 

  
묵은밭 지대엔 망초꽃이 피어 멀리서 보면 영락없는 메밀꽃처럼 보인다.
ⓒ 윤도균
묵은밭
  
칼바위 위에 40년지기 전우가 까마득히 올려다 보이는곳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윤도균
칼바위

 

그러다 보니 내가 산행을 하는것인지 산책을 나온것인지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편안한 산행으로 약수터 너덜길 지나 사거리 안부에 올라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우측으로 가 임꺽정봉 정상에 올라 장군봉 일대 기암 절경을 조망하며 일행들 너도나도 한목소리로 감악산이 이렇게 아름다운 산인 줄 몰랐다며 내친김에 기념사진을 찍고 발아래 기암절경 암릉 단애 지역에 장정 한 사람 간신히 들락거릴 수 있는 임꺽정 굴에 도착하여 의적 임꺽정 활력 무대를 돌아보고, 

 

감악산 정상에 오르니 올해 초 구제역으로 감악산 기슭 객현리에서 "은잔디 목장"을 운영하다 자식 같은 젓소 100여두 넘게 생매장 살처분하는 어려움을 겪은 친구 부부가 내가 감악산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감악산 정상을 찾아 반가운 만남이 이어지고 함께 점심을 먹으며 자연스럽게 형님 한 잔 아우 한 잔 고향 떠난 지 수십 년 만에 모처럼 고향 사람들과 산상 향우회라도 열린 듯 화기애애하다.

 

그러다 보니 산행은 예정보다 늦어져 일행들은 서둘러 감악산 휴게소 방향으로 하산을 하고 나는 산 욕심 미련이 남아 영국군 전적비 방향으로 진행 하면서 마지막 헬기장 봉우리를 빡시게 올라 다시 내려서며 선고개 채 못 미쳐에서 세상에~~~ 뜻밖에도 40여년 전 내가 현역시절 예하 부대에서 1년여 근무할 때 대대 ATT 훈련 때면 이용하던 LMG 벙커를 만나는 기적 같은 일을 만났다.

 

  
임꺽정봉 676.3m 감악산 정상보다 1.3m가 더 높다.
ⓒ 윤도균
임꺽정봉
  
감악산 정상에서 고향 후배 동생들과 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다.
ⓒ 윤도균
감악산 정상

 

그동안 몇 번의 감악산 산행을 할때 마다 일행들이 있어 말은 하지 못하고 벙어리 냉 가슴앓듯 두고두고 그 당시 나의 LMG 사수 "최명규 병장"과 함께 근무했던 추억을 그리며 찾을 수 있다면 꼭 그때 그 벙커를 찾고 싶은 생각을 했었지만 새까만 이등병 시절 추억이라 지형이 아름아름해 감히 찾을 엄두를 못 냈었는데 이날 뜻하지 않게 40여년 전 내가 근무했던 벙커를 만날 줄이야….누가 알았을까?

 

아마 전군 지휘 검열 때 일인 것 같다. 그때 나의 사수 최명규 병장의 제대가 얼마 남지 않아 새까만 쫄병으로 의지하고 정들었던 최 병장과의 이별이 너무 아쉬워 벙커 시멘트벽에다 "사수가 떠나던 날"이란 시를 낙서로 남긴 일이 있었다. 그런데 마침 훈련 상황 점검차 25사단을 방문하신 1군 사령관별 넷 한○ 장군님께서 하필이면 우리 벙커엘 들어오셨다.

 

마침 내가 LMG 벙커 벽에 낙서로 쓴 시를 보시고 이 글 쓴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 이젠 꼼짝없이 영창에 가는구나 생각을 하며 덜덜 떨며 모깃소리만 하게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제가 했습니다. 하고 대답을 하니 뜻밖에 글 잘 썼다고 칭찬하며 장군을 따라나선 정훈참모에게 사진 찍고 낙서한 시 발췌케 하고 검열단 일행이 떠났다.

 

  

  
감악산 하산길에 40년전 내가 최명규 병장과 함께 근무했던 LMG 벙커를 만났다.
ⓒ 윤도균
LMG벙커
  
영국군전적비 입구 국기 계양대에는 대한민국 국기 유엔기 영국기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 윤도균
영국군묘지

 

그런데 나중에 이 시가 그 시절 "전우신문'에 개재되어 난 '벙커에 낙서했다고 꼼짝없이 영창 가는 줄 알았는데….' 이 일이 전화위복이 되어 나중에 포상휴가를 다녀오기도 했다. 그런 추억이 담긴 벙커를 생각지도 않게 만나니 나는 너무 기뻐서 망설이지 않고 벙커에 들어가 혹시 아직도 그때 내가 낙서한 시 흔적이라도 남아 있을까? 두리번거리고 찾아보아도 낙서는 보이지 않고 전방 임진강 일대 전경 모습만 옛날 그 모습 그대로 보인다.

  

그러다 보니 불현듯 최명규 병장 모습이 한없이 그리워 나는 잠시 눈시울을 적신다. 그립고 보고싶은 최명규 병장님 살아 있다면 꼭 한번 만나고 싶습니다.

 

  
영국군 전적비를 찾아 일행들과 묵념을 올렸다. 2008년 10월 1일 등록문화재 제407호로 지정되었다. 6·25전쟁 때 설마리전투에서 고지가 적군에게 완전히 포위된 상황에서도 최후까지 설전을 벌이다가 전사한 영국군들의 넋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전적비이다.
ⓒ 윤도균
영국군전적비

  

감악산에는 내가 알고 있기에도 6-7개의 코스가 있다. 그런데 나는 4개 코스로 감악산 등반을 한바 있다. 그 중에서도 법륜사에서 오르는 코스가 수월해서 많은 등산객들이 애용하는 코스이다. 이날 우리 일행도 (법륜사, 약수터, 임꺽정봉, 감악산 정상,) 코스를 선택하여 오르기로 한다.

  

  

감악산 안내 초소

  

의정부 지나 양주역에서 25번 시내버스(20분간격 운행)을 타고 신산리

 25사단 사령부 지나 감악산 계곡 법륜사 입구 하차하여 산행이 시작된다. 

  

  

부지런한 벌이 까치수염에서 꿀을 채취하고 있다.

  

  

대한민국 대표도시 안내판

  

파주시에서 감악산 등산로에 설치한 이정표는 유난스레 상세하게

 안내 하여 처음 이곳 감악산을 찾는 등산객들에게 편안함을 제공하고 있다.

 

 

법륜사 대웅전

 

원래 감악산에는 감악사, 운계사, 법륜사, 운림사 4개의 사찰이 있었다고 전해지나 현재는 모두 소실되었고, 지금의 법륜사는 1970년에 옛 운계사터에 재창건되었다. 중앙에 대웅전을 중심으로 서쪽에는 머타전과 동양 최대의 백옥 11면 관세은보살상과 전면에는 9층 석탑과 자연석으로 세운 세계평화의 비가 있고, 절 입구에는 해탈교라는 작은 다리가 있고 경내에는 하얀 불상이 우뚝 서 있으며, 절 뒤편으로는 산신각이 있는데 그 안에서 시원한 석간수가 흘러나온다. 절 바로 밑에는 높이 20여m의 운계폭포가 있으며, 감악산 등산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법륜사 조형물   

  

  

  

  

부도탑 5개가 나란히 숲속에 자리잡고 있다.

  

  

감악산 등산로 주변에는 곳곳에 숫가마터가 보인다. 1960년대말까지도 숫가마가 운영되어다고 한다.  

  

  

너널길 같은 감악산 등산로 그러나 험하지는 않다.

  

  

등산로 주변 묵은밭터에 개망초꽃이 만개하여 마치 멀리서 보면 메밀꽃 같아 보인다.

  

  

  

  

명상의 숲 쉼터에서 이날 내가 몇 몇 동생 후배들과 감악산 산행을 간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고향 후배들 그리고

친구들 무려 20여명이 모여 마치 향우회 하는듯한 화목한 분위기속에 이날 감악산 산행은 널널 산행으로 이어진다.

  

  

가다가 힘들면 쉬어가자

  

  

  

  

약수터

  

  

너덜길도 지나고

  

  

멀리 올려다 보이는 안부에서 우측 임꺽정봉으로 향한다.

  

  

고향후배들인데 넷이 내외종 이종간이기.

  

  

40년지기 전우가 서슬이 시퍼런 칼 바위에 올라 마치 박수무당처럼 칼을 타고 있다.이사람아 내친김에 감악산에 자네도 아예 감악산에서 내림굿이라도 걸판지게 하고 자리 잡아 보는것을 어떨런지 ...ㅎㅎㅎ

  

  

임꺽정봉 정상 감악산 675미터 보다 1.3미터 더 높다.

  

  

우리들이 잠시 쉼터에서 쉬고 있는데 느닷없이 나타나신 두분 서울아주머니들께서 방울 토마토를 우리 회원들에게 일일이 나눠 주셨다. 아주머님들 고맙습니다. 사진 몇 장 더 있는데 필요하시면 저에게 메일 주소 보내 주시면 원본 사진 보내 드리겠습니다.

  

  

모처럼 후배들과 도영할베 청파도 증명 사진을 찍었는데 사진 구도가 비스듬하네요.

  

  

임꺽정굴

  

  

  

  

임꺽정굴 앞 단애 지역을 내려다 보면 천길 낭떨어지다. 이곳을 의적 임꺽정이

 내집 드나들듯 관아의 눈을 피해 오르내리며 의적 활동을 하였다니...

  

  

임꺽정봉 들렸다 감악산 정상 가는길에 어떤 등산객이 마치 신통력 마술을 하듯 이렇게 돌을 기술적으로 쌓아 놓았다.

  

  

감악산 정상 모습이 바뀌었다.

  

정상비 뒤에 몇 년전 KBS 송신소를 건설하였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감악산 정상보다 임꺽정봉이 1.3미터 낮다. 

  

  

감악산 정상에서 일행들과 함께

  

  

지난 겨울 구제역으로 젓소 100두 넘게 살처분한 고향 친구 부부와 함게 ...

  

그런 어려움 이겨내고 현재 젓소 6-70여두 재 입식 하여 재기 중이다. 내가 감악산에 온다는 소식 듣고 막걸리와 어렵게 구한 백두산산 송이버섯을 싸들고 와 막걸리는 나누어 마시고 송이버섯은 배낭에 가지고 와 도영할망에게 보이니 세상에 이렇게 소중한 선물을 받아 어떻게 하냐며 어느틈에 친구 농장 한번 다녀오자 한다.

  

  

  

  

  

  

감악산 정상에서 마치 청파의 고향 향우회를 하는것처럼 산행길 내내 하하 호호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 이어진다.

  

  

성모마리아상

감악산 정상 오를때마다 의문인데 아니 왜? 성모마리아상이 감악산 정상에 세워진것일까? 성모마리아상과 감악산이 무슨 관련이 있는걸까? 아무래도 나의 생각에는 일종의 종교적인 기 싸움을 보는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옛부터 감악산은 경기 5악으로 알려진 산이다 보니 미신을 숭배하는 무속인들이 곳곳 도처에서 기도처를 마련하고 기도를 한다고 하는데 그래서 아마 무속을 견제하는 의미에서 감악산 정상에 성모마리아상을 세운것은 아닌지?

  

아무리 그 이유를 확인하고 싶어 찾아 보아도 알 수가 없다. 그런데 감악산 정상에 오르신 파주 적성면 객현리 노 OO (66세) 주민 말씀에 의하면 이곳 감악산 정상에 에 1998년인가 성모마리아상을 세우고 난 후 그해 여름 장마철에 임진강 유역에 큰 수해를 입어 엄청난 피해를 본바 있다고 말하시며 감악산 정상 성모마리아상을 세운것은 자연보호 차원에서 볼때도 타당치 않다고 말씀을 하신다. 필자의 생각도 같은 생각이 든다.

  

  

동생들과 함께

  

  

감악산 정상에서 본 임꺽정봉

  

  

영국군 묘지 방향으로 하산중 만난 팔각정 

  

 

 

  

무슨 열매인가?

  

  

  

  

청파의 사랑하는 후배들

  

  

이 두 동생들은 초등학교 시절 부터 줄기차게 도영할베를 따르는 못 말리는 후배들이다.

  

  

하산길 전망처에서

  

  

감악산 저 소나무 

 

  

1968년 1월 28일 청아대를 습격하기 위하여 북한군 31명이 남하하여 청아대 습격이 있은 후 북한 접경지대 최 전방에는 무수히 많은 작전용 벙커가 설치되었다. 그런데 나는 이 벙커만 보면 왜? 그렇게 김정일 가족 납골당 생각이 나는지 ? 하루속히 평화통일 되어 수많은 벙커 용도 변경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니 이게 무슨일이란 말인가요?

  내가 40여년전 약 1년간 예하대 중대 시절 근무하던 LMG 벙커를 만나다니 ...위 기사 참조 하세요.

 

  

  

사람들은 군사시설 보안이라 사진 찍지 말라지만 요즘 세상엔 이정도는 보안 대상도 안된다.

  

  

대전차 장벽 지대를 지나 영국군 묘지로

  

  

영국군 묘지 계양대

 

 

영국묘비

 

영국군 묘비에  도착하여 우리들은 다 함께 머리숙여 우리나라 대한민국을 위하여 숭고한 피를 흘리며 죽어간 영국군 전몰장병을 위한 묵념을 올렸다. 그리고 영령들의 뜻을 기리기 위하여 아래글을 펌글로 게제를 한다.

6.25 전몰 영국군 여단 영령들 영전에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감악산!  6.25참전 영국군이 1 여단이 중공군 3 사단을  맞이하여 3일을 저항하다 몰사한 영국군의 젊은 피가 땅을 적신 치욕의 !  영령이 서러워 구천을 떠돌며 한국민을 향하여 날이면 날마다 서러워 웁니다. 황량한  비탈, 참전 기념 돌덩이 하나가 서글프고 외롭게 지키고 있을 .  감으면 58년전 영국군과 중공군의 함성과 단발마의 비명이 귓전을 때린다.

  

1951 422, 일명 캐슬고지(칠중성) 영국군 29여단 휘하의 그로스터  대대가 따사로운 한국의 기운을 맞이하면서 전선을 응시하고 있었다. 4월의 싱그러운 향기가 묻어난 임진강 북안엔 정적이 흘렀다.  , “적이다정적을 깨는 병사의 고함소리.  하나, 개미  보다 많은 중공군이 함성을 지르고 총을 쏘면서  3 사단 병력이 임진강을 도하하기 시작했다.  인해전술!!! 

  

낫으로 풀을 베듯기관총을 쏘아댔지만··· 결국 총알이 떨어지고 한국의 자유와 한국인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지구의  바퀴를 돌아 낮선 , 지지리  사는 우리나라를 위해  땅을 피로  들이고 죽어갔습니다. 대영제국의 자존심은 파주 적성면 전투에서 무너져 내렸고, 영국 청년 800용사는 죽고 50명은 포로가 되는 치욕을 당하였습니다. 영국군 사령관은 필사적 사수의 결과를 예상했을 것입니다.

  

도대체 그들의 고귀한 생명은 누구를 위하여 버려져야 했습니까?  정말, 은혜를 잊고 싶어하는, 기억하기 조차 싫어하는 우리를 위하여 입니까? 그들의 생명으로 지연시킨 3일간의 서울 진입 저지는  많은 서울 시민의 생명을 지켰고  반격의 시간을 벌어 주었습니다.  포로 교환으로 귀환한 영국군 장교는 회고록 ‘한국인  몰랐던 파란 아리랑에서 한국민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위령비 하나 세워 주지 못한 한국민이 어찌 영국인의 낯을 쳐다   있으리요! 비정한 전쟁 보다 비정한 한국민의 태도와 무관심에 치를 떨게 하여서는 안됩니다.  누가 보드라도 방문객에게 비정함과 분노를 자아내게 하는 죄를 한국민  사람,  사람은 매일 매일 짓고 사는 것입니다. 공식 항의 한번 않는 영국민의 사랑과 젠틀맨쉽에 삼가 경의를 보냅니다.

  

한국은 결코 그들의 죽음을 잊어서는  됩니다. 호커리 대위를 숨겨주다가 중공군에 들켜 죽도록 구타당한 우리네 할머니를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전쟁의 참화 속에서 이리 쫓기고 저리 쫓기며 죽어간 조상의 넋을 잊어서 안됩니다.

  

!   받아  땅에서 살아가는 자랑스런 대한의 국민이여!

자랑스런 조국 대한민국이여!  지금 당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일을 합시다.

  

그들  값으로  세계 10위권 경제대국 대한국민은 야만족이 아닙니다. 그들의 영령을 추모하고 기념하는 제대로  위령비 하나쯤 세웁시다! 참전 영국군이 전우를 위령하려 왔을  쉬고  숙소    지읍시다! 16개국 참전 용사가 찾아 왔을  대접할  있는 식당 하나  지어봅시다! 참전국 국민과 유족이 젊음을 산화한 현지를 찾았을  감사와 감동을 전합시다!. 참전국 국민과 유족의 자존심을 세워 줍시다!

  

내년이면 6.25 한갑을 맞이 합니다.  일은 참전용사와 참전세대가  땅을 떠나기 전에 행동에 옮겨야 합니다. 한국민은 은혜를 기억하는 민족으로 세계속에 기억되게 합시다.16개국을 혈맹국으로 날인하는  일에 꾸물거리지 맙시다.

  

   있다면 “6.25참전 16개국 기념공원 만듭시다. 한국민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참전한 16개국 기념관과 홍보관을 만듭시다6.25세대가 자녀에게 전쟁의 비참함을 가르치지 아니하면 그들은 반드시 전쟁을 겪게  것이라!  역사가 전쟁을 잊은 국민에게 주는 교훈이 아니든가!

  

국가 원수께 상소로  글을 올립니다.

자녀에게 말로 국방과 자유를 가르치기 보다 기념비와 위령탑를 세우고 은혜를 갚는 행동을 여주는 것이  유익합니다. 은혜를 갚고 감사를 전하는 아비의 행동을 보며  자녀들도 아버지를  받고 참전국 국민의 자녀와 화목하려  것입니다. 또한 한국민이 문화민족임과 국제 사회의 책임있고 성숙한 국민임을 세계에 알리는 일입니다. 일본은 은혜 갚을 나라 없는 국제 외톨이가 되어가지만 대한민국은 피를 나눈 나라와 함께 세계의 정의와 질서를 지키는 대한민국의  대한민국 됨과  민족의 위대함과 우수함을 만방에 고할  있었으면 합니다.

  

어떠한 애로가 있더라도 국가원수께서는  일이  임기내 이루어   있도록  주세요. 3 요인  아니라 정당 대표, 헌법재판소장, 국방부장관, 통일부장관, 국정원장, 검찰총장  국가 경영의 지도자 들께서 국가수반의 힘이 되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천년  후손이 위령탑을 보며 아빠 저게 무엇이예요?”라고 묻는 우리의 아들 딸들에게  나라를 지키다가 죽어간 16개국의 용감한 용사들에 대하여 이야기를 들려   있도록  주세요. “6.25참전 기념공원 북한의 야욕에서 우리를 지킨 그들의 우정을 담는 국가 명소로 만들어 주세요

  

 들은  땅에서 죽었습니다.   땅에 사는 우리가  영을 위로하지 않으면  영들이 우리를 엄습하지 않으리요! 머나먼 이역 , 한국에서 영혼이나마 평안을 누리게  드려야 합니다.    모두에게 6.25참전 훈장을 60돌을 맞이하여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수여하고 한국 시민권을 바쳐 영령이 힘을 얻어  땅을 계속 지켜 주시게 하고 영혼이  땅에서 영원한 평안과 안식을 누리게  주세요  

 

2009 1 7

대한민국 해병 노병 김창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