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길이 있기에....(Ⅱ)




(2),  (6월13일) 천왕봉, 하늘에 이르다!



1. (06:25)  여명 ,   길 ,   그리고   나



   

어슴프레한 여명에 지리산이 모습을 드러낸다.


  

나는 대피소에서 피곤한 몸을 쉬었는데
  
산은 잠들지 않고 밤새 바람과 별과 이야기를 나누었는가?

  

산은 잠들지 않는가!

  
잠시 깊은 잠에 빠졌다 눈을 뜨니 대피소 안은 텅 비어있다.
    
어제 저녁 벽소령 앞 마당에서 만났던
    
일곱살 사내아이와 열세살 딸아이 남매를 데리고
    
종주를 하는 여수에서 온 가족만이 남아있다.
    
이 대단한 아이들과 천왕봉까지 내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함께 한다.
  

어제와는 달리 너무나 대기가 맑은 아침이다.
  
아침 식사를 하고 빨간우체통을

다시 보고는
  
덕평봉으로의 숲길을 간다.
  
지리산의 아침 ...
  
능선길에는 햇살이 비치고 시원한 바람이 상쾌하게 불어온다.
    
발 아래에는 깊은 계곡이 끝없이 펼쳐지고
    
숲속은 우거진 나무와 이름모를 풀들이 내뿜는 자연의 향기로 가득하고
    
새들이 아름다운 노래를 부른다.
  

나는 숲길을 걸으며 한없이 평화롭다.
  
자연은 나와 다투어 경쟁하지 않기에...

  
나는 숲길을 걸으며 한없이 자유롭다.
  
자연은 나와 시기하여 비교하지 않기에...


  






덕평봉(1,651M)을 지나 물이 흘렀다 멈추었다 하는
    
선비샘에 도착하여(07:25) 물 한모금으로 목을 축인다.
  
오르고 내리는 능선길을 반복하자 바위 봉우리가 7명의 선녀와 같다는
  
아름다운 칠선봉(七仙峰: 1,576M)에 이른다.(07:55)



2.
(08:35) 영신봉, 하늘로 다가가다.

  
이제 점점 하늘로 다가가는 느낌이 든다.
  
마주치는 봉우리마다 속세가 아닌 천상의 이름을 갖고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한다.
  
고사목과 우거진 숲을 품은 아름다운 영신봉 암봉으로 향하는
    
가파른 철계단에서 멀리 천왕봉과 장터목대피소가 보이고
    

영신봉(靈神峰:1,652M)에 서니 삼신봉(三神峰:1,284M) )에서
    
청학동으로 이어진 남부능선과
    
품고 있는 대성골의 깊은 계곡이 짙은 푸르름에 잠겨있다.
  
그리고 멀리 한없이 이어진 산들 뒤로 푸른 남해 바다와 다도해가 보인다.
    
어제와는 달리 시계가 너무 좋아 바다위에 떠있는 배까지 보인다.
  
때 늦은 꽃이 핀 한그루 철쭉나무가 반기는 영신봉을 지나자
  
아래에는 또 다른 청학동으로 생각하였던 세석(細石)의 넓은 초원이 펼쳐지고
    
세석대피소가 반가이 맞는다.
  
아름다운 세석에서 한동안 노닐다가
  
촛대봉(1,703M)으로 향한 완만한 오름길을 걷는다.(09:30)
    
촛대봉 바위위에서의 조망이 눈부시다.
    
뒤 돌아 보면 노고단까지의 걸었던 길이 선명히 이어지고
    
코 앞의 연하봉뒤로 우뚝 솟은 천왕봉의 바위들이 힘을 자랑한다.



3.
(10:25) 연하봉, 선경(仙景)을 거닐다.

  
기암괴석과 야생화들이 늘어선 연하봉(烟霞峰:1,667M)의 아름다움을 보며
    
이 곳에 있으면 누구나 신선(神仙)이 될 것 같다는 착각에 빠진다.
  
기암들과 고사목 그리고 아름드리 나무 사이 푸른 풀밭위로 난
    
길을 따라 연하봉으로 향한다.
  
일출이 아름다워 이름 붙은 일출봉(日出峰:1.590M)은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쳐 이윽고 장터목대피소에 다다른다.(10:45)
  
휴일이라 많은 사람들이 장날처럼 붐비는 장터목에서
    
컵라면으로 점심 요기를 한다.



4.
(12:05) 천왕봉, 하늘에 이르다.

  
장터목을 지나 고사목(枯死木)들이 늘어 서있는 제석봉(帝釋峰:1,806M)돌계단을 오른다.
  
동쪽을 수호하는 제석신에게 제사지내던 제석단(帝釋壇)이 있던 제석봉
  
울창하던 나무들은 인간들에 의해 잘리고 불질러져 이제 얼마 남지않은 고사목들이
    
인간의 탐욕을 경계하는 표지 역활을 하는 듯하다.
  
주위에는 인간들에 의해 심어져 다시 새생명을 돋는 어린 구상나무들이 피어나고
    
죽었기에 더욱 인간들에 귀히 대접받는 고사목들은.
    
돌계단 양켠 목책안에서
무언가를 나에게 이야기 해주는 듯하다.
  
철계단길을 얼마간 오르자 드디어 통천문(通天門)에 닿는다.
    
하늘로 오르는 길목이건만 부정한 사람은 통과하지 못한다는
    
전설에 순간 두려움을 느낀다.
  
부끄럽게도 통천문을 무사히 통과하여
    
이제 눈앞에 보이는 마지막 오름길을 올라 드디어 천왕봉(天王峰:1,915M)에 선다.
  
천왕봉 정상은 휴일을 맞은 사람들로 발디딜 팀 없고
    
나는 주위를 바라본다.
    
첩첩이 이어진 모든 산들과 자연들이 눈아래 있다.
    
오로지 푸른 하늘과 뜬 구름만이 위에 있을뿐...
    
한동안 나는 그 곳에 서서 하늘이 열리어 나를 인도해 주길 기다렸다.
    
영화속 장면처럼 빛이 내려와 나를 인도하여 주길 어리석게도 바랬다.

    

끝없이 펼쳐진 봉우리와 산들의 장엄한 광경
    
멀리 푸른 남해바다와 점점이 솟아있는 다도해의 섬들...
    
발 아래 푸른 계곡들을 넋을 잃고 쳐다본다.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하다"
  

그렇다 하여도 틀림이 없으리라...

  

나는 천왕봉에 앉아 천왕봉께 청한다.

  

"하늘의 왕(天王)이시여~ 어찌 나는 하늘로 인도하지 않으시는지요?"
  
"그대는 무엇때문에 하늘로 가려 하시는가?"
  
"그곳은 고통도 없고 힘들여 일하지 않아도
    
편하게 행복하게 살수 있는 곳이 아닌가요?"
  
"그대가 바라는 그런 하늘은 없다네.
    
하늘도 이곳과 크게 다르지 않다네.
    
자기가 있는 자리에 만족하고 열심히 한다는 것 뿐이네.
    
단지 다르다면 서로 미워하지 않고 사랑한다는 것만 다를뿐..."
  
"......"
  
"나는 하늘의 왕(天王)일쎄! 그러한 나도 이곳에 있다네.
    
여기가 내가 있는 자리고 나는 이곳에 있다는 것을 행복하게 생각하고
    
또 나를 찾는 , 나를 바라보는, 나를 생각하는 모든 것을 사랑한다네.


        
이것이 바로 하늘이라네..."


  
중봉(1,875M)과 써리봉(1,640M)으로 이어진 능선을 바라본다.
    
드러나지 않고 면면히 사랑받는 중봉을 그리며
    
장터목으로의 내림길에 들어선다.
  
통천문(通天門)을 내려서며 나는 일순간도 두렵지 않았다.
  
하늘을 그리다가 나만의 하늘을 만났기에...



5.
(13:00) 장터목, 신(神)들 속의 사람들...

  
장터목(M)에 도착, 바라던 것을 이루어 냈다는 편안한 마음으로
  
잠시 지친 발을 뻗는다.
  
지리산 많은 신(神)들의 봉우리 아래 선 장(場)터
  
그래서 장터목이라고 불리는 이곳에서 나는 사람 임을 다시 깨닫는다.
  
그렇게 신(神)과 사람은 다를 바가 없건만...
  
하늘에 이르고자 하는 커다란 바램은 이렇게 작은 깨달음에 만족하고...



6.
(15:40) 백무동, 사람의 땅으로...

  
노고단까지 이어진 지리산 주능선을 앉아서 조망할 수 있는
    
화장실 옆으로 난 길을 따라 백무동으로 내림길을 나선다.
  
지리산 주능선을 바라보며 산허리를 돌아 평탄한 내림길을
    
얼마간 내려와 망바위에 이르러 잠시 숨을 고른다.
  
다시 끝없이 이어진 가파른 돌계단 길을 내려와
    
참샘에서 시원한 물 한잔을 마시며 쉰다.
  
백무동계곡은 오랜 가뭄으로 물들이 줄어있고
    
출렁거리는 철다리를 지나 가게들이 늘어선 매표소에 닿는다.
  
지리산 넓고 깊은 자연의 품속에서 벗어나
    
다시 사람들과 함께 한다.




7.
(18:10) 지리산을 떠나며...

  

실상사를 지나 도착한 뱀사골 입구에서
    
저녁과 땀에 젖은 몸을 씻고는 가족이 있는 대구로 향한다.
  
점점 멀어지는 지리산에게 나는 안녕을 고한다.

    
지리산에서의 이틀간
    
나에게는 오랜 그리움을 이뤄낸 시간이며...
    
또 다른 큰 그리움을 품게되는 시간이 되었다.

  
점차로 보이지 않는 지리산을 향해
    
나는 마음속으로 또 다른 그리움을 고백한다.

    
"화엄사에서 대원사까지...라고"



산행시간 : 9시간 15분   (09:35 ~ 17:15 )
  

산행거리 : 24.2 Km + @   (벽소령 ~ 백무동)

    
배경음악 : 한대수 "바람과 나"



▣ MT사랑 - 일곱살산꾼 아빠입니다..저도 산님이 생각나네요 산행기 감사합니다..꼬마에게는 세번째 종주네요 어릴때 산행이 성장에 지장이 있다는데 걱정입니다 산을 넘 좋아해서요..저는 법계사로 하산했습니다..
▣ 노을진 산 - MT사랑님~ 잘 귀가하셨군요. 벽소령대피소에서 마지막으로 베낭 꾸리던 대구에서 온 초보산꾼입니다. 님은 대단한 자제분들을 두셨습니다. 물론 MT사랑님도 그러시고요. 자제분들이 훌륭하게 성장하기를 기원합니다.
▣ MT사랑 - 넘 겸손하십니다..아직도 시원한 영신봉골바람의 여운이 남아있군요 이 번 산행은 다소 씁씁합니다 세석대피소 취사장쓰레기며 산악회원들의 양보없는 다수횡포? 양보해도 기본적인 인사도없고..그래도 지리산은 말이없음..
▣ 어린왕자 - 어떤 날은 그리움이 너무 커서 컴 앞에서 왕복 종주 합니다
▣ 똘배(山梨) - 한편의 잔잔한 동화를 읽는 기분으로 제마음도 잔잔해 지는군요. 잘보았습니다.
▣ 길문주 - 천왕님에게서 진리중에 진리를 다시 깨우쳤군요. 신선이 된 느낌과 생각으로 덕분에 지리산 잘 둘러봤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