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물어 지는 마음 (경북 봉화 청량산)



산사의 세월,

풍경 소리 부산 하고,

독경은 안으로 흐른다.

그렇잖아도,

바람 조차 비켜 가는데,

나그네,

그림자 지울까 염려 한다.




35번 국도 안동에서 태백 쪽으로 가다보면 도산서원을 지나 10 여 분 거리의 집단시설 지구(광석) 오른쪽, 14번 군도 광석 나루터(광석교) 건너 매표소가 있다.

청량산을 찾는 길이다.

14일 12시 50분, 청량 폭포앞 주차장에서 시작된 산행 오름길은 의상봉과 선학봉*향로봉에 눌려 진땀 흘린다.

헐벗은 나신을 드러낸 이녁의 묵빛같은 투명 공간을 삼킨 햇살은, 발그레하게 수줍음 탄 오름길을 잡아 일으킨다.

에는듯 한 정겨움 가슴 속으로 스며들고, 그에게 부대끼고 픈 미련은 버릴 수 없는 몸서리다.

청량폭포가 토해내는 흰 피에 겨울은 못내 아쉬워하며, 청옥빛 말간 하늘을 파 먹어 들어간 의상*산학봉은 발걸음 뜨겁게 한다.

청량산은 12봉(장인`선학`자란`자소`연화`경일`축륭`탁필`연적`향로`금탑`탁립봉) 12대(어풍`치원`밀성`자하`경유`요초`풍혈`원효`연`청풍`만월`반야대) 4굴(김생`원효`금강`치원굴) 4우물(총명`갈로`청량약`김생약수)이 유명하여 찾는 이들을 매혹 한다.

12봉 저마다 천상을 이루기에 차라리 괴봉이라 불러 본다.

기대 찬 즐거움과 기쁨은 어느 새 앞서며 이 이의 품을 헤집어 놓는다.

들뜬 흥분은 거친 숨을 사정없이 몰아가고 몸을 감싼 열기는 당장에라도 터져 나올것만 같다.

조각 구름 한 눈 팔다 찢겨져 멍들고, 봄 햇살은 선들바람에 절승을 놓쳐 버려도 그들의 노님이 가슴 저리게하여 탄식 절로 나온다.

오름길 가파름은 흙냄새를 토하며 무작정 폐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의상 기암 정수리에 나래 편 청솔 귀청을 때린다.

붓 끝에서 살아 하늘로 치솟고 괴벽 세상 넓어 암흑 속이로구나, 두 눈 뜬 넋이 무엇인가 줄것만 같은데 받지 못하는 어리석은 아픔이 나를 잡고 놓지를 않는다.

숱하게 깔린 너덜 길을 쉼 잊은 체 기어 올라 13시 50분, 자소봉으로 갈라지는 안부에서 의상봉으로 닫는다.

잠시 겨울이 머물고 있는 듯, 채 녹지않은 눈이 오름길을 붙들고 있다.

여태 겨울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상수리나무는 일행들의 열기에 화들짝 놀라 실눈 뜨고 두리번 거린다.

14시, 870 미터 청량산 장인봉(의상봉)에 올랐다.

이 이는 경북 봉화군 명호면과 재산면, 안동시 도산면을 가르고 있으며 1982년 8월에 도립 공원으로 지정 되었다.

많은 기암 봉들과 청아한 계곡들을 간직하고 있어 풍치가 절경이며, 태백산에서 발원한 낙동강은 이 이의 향취를 물고 흐르기에 더욱 옥같이 맑다.

때늦은 끼니를 해결한 후 14시 30분, 경일봉 방향의 통제소쪽을 우측으로 흘리고 자소봉으로 내린다.

가는 겨울 애틋하여 응달 진 눈길 애정 스럽고, 바람 한 점 일지않는 꺼져내린 계곡길과 기암 능선길이 두 눈 가득 달려들며 심장을 파고 든다.

14시 55분, 육각정자로 내리는 갈림길을 버리고 자소봉으로 걷는다.

검푸른 이끼와 부처손에 제 살 먹히는 선학봉은 사는 한 잊힐리 없는 미소를 담고 있다.

열 두 봉 선물은 보는것 조차 아깝고 곁을 지나침은 애절한 인연이라, 이 자리 있음 억겁의 세월 마다 않는다.

15시 20분, 뒤실고개를 거쳐 연적봉으로 오르는 철계단을 밟는다.

오름길 가장자리 비켜 서 있는 진달래*철쭉은, 기다린 계절 찾아 옴 느꼈는지 가지끝 봉오리 마다 배시시 웃고 있다.

뒷 머리채를 잡아당기는 자란*연화봉과 병풍바위가 희부연 대기를 뚫고 소리를 마구 지른다.

눈살에 찢기는 아픔을 물고 있으면서도 가슴 벅찬 감동을 나눠 주고있는 한 폭의 동양화 같은 이녁들이, 외면할 수 없는 정으로서 흐르는 구름 처럼 세월을 넘긴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피돌기 닿는 심연깊이 당신은 다가서지만, 서러움 삭일 줄 모르는 스스로가 안스러워 눈을 감아 버린다.

그러나 환상으로 살아나는 너는 영원이라는 선물을 지워 주길래, 낙심한 마음으로 기쁨의 구렁텅이 속으로 빠져 들게 한다.

연적*탁필봉을 돌아 15시 55분, 840 미터 자소봉에 올랐다.

발끝에 채인 대지위의 기암은 능선을 이뤄 계곡을 패지 못하고 바다 속 같은 아늑함이 온 누리에 잠들어 있다.

메마르고 삭막했던 겨울이 털고 일어나며 달려 드는것을 염치불구하고 속깊이 들이마신다.

몇 일 전 억산(가지산 도립공원 내에 있다) 북바위를 타고 내리다 접지른 오른쪽 발목에 통증을 느낀다.

무리하지 않으려 했으나, 오래전 이 이의 넋에 취해버린 가슴이 널뛰듯 뛰는 통에 주체할 수 없어 오르고 말았다.

여간 조심해서 걷는 수밖에 없다.

칼날위에 서듯 날세운 등성길과 부엽토가 쌓인 길을 걸어 탁립봉을 곁눈짓 하며 경일봉으로 내린다.

오후 늦은 공간 속으로 빠져드는 이녁은, 종일토록 찾은 손님들을 품에 안고 즐거움을 나누고 있으나 지친 기색 하나없이 연신 싱글벙글 한다.

16시 32분, 750 미터 경일봉을 지나 금탑봉 쪽의 급한 길을 굴러 내린다.

아름드리 적송은 하늘을 날고 이름모를 깜찍한 새 뜬구름 쫓는다.

날개짓 한 번 쉰 건너편 축융봉이 해질녘을 잡고 있으며 9층 금탑봉은 층층마다 치마 자락 들추고 있다.

아린 아픔을 느끼는것은 그동안 찾지못한 부끄러움 앞섰기 때문 아니겠는가, 얽은 기암은 요동치는 한숨이요 제몸 꺾인 괴목은 오금 저린 번뇌라, 발길 쉬 떼놓을 수 없다.

힘차게 절벽을 파고 들어간 김생굴은, 넋 된 님을 기리며 낙수로서 겨울을 한량없이 떨어뜨린다.

굴 앞을 지나 자소봉 이정길을 던져놓고 청량사로 내린다.

신라 문무왕 3년(663) 원효대사께서 창건한 청량사는 33개의 암자를 거느린 신라 불교의 요람이다.

고개 꺾은 기암 봉들이 군상을 이뤄, 청량사를 두르고 가슴을 방망이 질 하는통에 다리 힘 빠진다.

눈으로 본 자태에 허물어지는 뜻을 가늠할 수 없고, 무작정 안기고 싶은 느낌 또 한 지울 수 없어 무딘체 굳어 버린다.

섭리에 끌려야 함을 무언으로 알려주는 흐릿한 진실을, 미리 알지못한 바보스러움 내탓 아닌가.

17시 30분, 순간이라 하기엔 너무 가혹할것 같은 시간 동안, 이 이의 휘둘림에 맡겨버린 아쉬움을 돌아보고 또 보며 님을 훑는다.

기암 석벽따라 흐르는 눈빛만큼 가슴도 흘렀다.

매몰차게 가로막고 선 그들에게 날아가 꽂힌 눈빛에는 정을 담고 있었기에 그들도 허물어 졌었다.

그러나 한없이 빠져드는 발길 돌려야 하는 심정을 당신은 이해 하리라고 믿지만 새겨진 아픔은 어쩌랴.

이 후 그어놓은 약속이라 여길란다.



- 안 녕 -


- 2004, 03, 14.-


_ eaolaji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