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둥산 1,120m


위 치 : 강원도 정선군 남면

산행코스 : 증산초등 - 발구덕 - 민둥산 - 발구덕 - 증산초등

산행일자 : 2004년 10월 8일/아내와 나

 

◐민둥산 가는길

08:20 풍기출발

10:25 증산초등옆 주차장 도착

 

◐산행기록

10:30 증산초등주차장 출발

10:47 갈림길(완만한 등산로, 발구덕 이정표)

11:12/11:23 발구덕 오르는 등산로 다시 만남

11:37 발구덕 입구

12:20/13:20 민둥산 정상

14:10 발구덕 마을

14:41 등산로 갈림길(처음오를때 갈림길 : 완만한 등산로, 발구덕)

14:48 증산초등옆 주차장 도착


 

◐산행시간 4시간 18분(휴식기간 포함)

 

◈ 억새가 춤춘다! 민둥산이 춤을 춘다!!

겨울을 예고하는 한파가 한차례 휩쓸고 간 후 북쪽에선 절정으로 치닫는 설악산 단풍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하니 단번에 설악으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 굴뚝같습니다.

하지만 성치않은 다리로는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속으로 마음만 끓이며 생각하다보니 2년전 너무나 좋은 느낌을 받았던 민둥산이 떠오릅니다.

광활한 산정상부 능선을 가득 메우고 있는 억새의 물결...

그래 민둥산이야!


 

넘실넘실 춤을 추고 있는 억새의 물결 속에 이미 들어가 있는 나 자신을 상상하며 유쾌한 마음으로 민둥산으로 향하였습니다.


 

평일이라 그런지 증산초등학교 옆 주차장엔 이른 시간이 아님에도 몇 대의 차만 주차되어 있어 여유로운 산행길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간단한 준비를 마치고 잠시 민둥산 안내문을 읽어 본 후 아내의 뒤를 따라 설레는 억새산행의 첫걸음을 옮겨봅니다.


 

이번 산행은 정상에서 천천히 억새구경을 하고 느긋하게 식사도 즐기며 다녀오자 했더니 오랜만의 나들이에 신이 났는지 잔뜩 넣은 먹거리들이 만만찮게 어깨를 짓누르지만 끝없이 펼쳐진 억새밭의 장관을 상상하며 천천히 오름을 오릅니다.


 

오늘처럼 등산객이 적은 날은 발구덕 마을까지도 충분히 차가 올라갈 테고 발구덕에서 정상까지는 30~40분 정도 밖에 걸리지 않으니 수월할 테지만 산행의 의미는 반감시키는 일이라는 생각에서 정규등산로를 택한 것입니다.


 

이따금 하산하는 등산객들과 인사를 하며 15분여를 오르니 등산로 갈림길이 나옵니다.

한쪽은 완만한 등산로, 한쪽은 발구덕

처음 오르는 코스라 잘 모르지만 발구덕 마을은 2년 전 다른 코스로 오를 때 들러 봤으니 내려오는 길에 다시 들러볼 생각으로 완만한 등산로를 따라 오릅니다.


 

말 그대로 완만하게 펼쳐진 등산로는 최근에 정비한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있어 손님을 맞기 위한 억새 축제(10.16~10.17) 주최측의 정성이 등산로 곳곳에서 보입니다.


 

완만하고 잘 정비된, 산책로 같은 길을 조금 오르니 정상까지 4km 이정표가 나옵니다.

아마 완만한 대신 상당히 돌아가는 길인가 봅니다.

거리가 생각보다 멀다고 느낀 아내가 되돌아갈까 하며 잠시 망설이기도 했지만 그냥 천천히 가보기로 합니다.


 

잠시 완만하던 등산로는 산정산부를 향해 경사각을 높이기 시작하고, 이상하게 사람들이 지나다닌 흔적이 거의 없어 보입니다.


 

이번 축제 때 등산로의 혼잡을 피하기 위해 아마 안 쓰던 등산로를 열어 놓았나 보다 생각하며 묵묵히 오르는데 갑자기 허기가 들기 시작하니 다리에 맥이 풀리면서 다친 부위가 아프기 시작하고 땀이 빗물처럼 뺨을 타고 흐르니 무척 힘이 듭니다.


 

멀리 앞서간 아내에게 쉬어가자며 힘껏 소리를 지르고 힘겹게 쉬고있는 아내에게 다가가니 마침 그곳은 우리가 오던 길에 비하면 고속도로 같은 길이 나있는 것입니다.

좀 전에 갈림길에서 발구덕으로 바로 오르는 길입니다.


 

그럼 우리는 완만한 길을 따라 가다가 길을 잃고 등산로가 아닌 곳을 빙빙돌며 올라온 것입니다.

생각지도 못한 알바를 씁쓸한 미소로 넘기고 10여분간의 달콤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걸어보지만 아픈 다리로 인해 힘들긴 마찬가지 입니다.

걱정할 아내 생각에 내색도 하지 못하고 그저 힘든 걸음만 옮길 뿐입니다.


 

발구덕 마을을 조금 남겨두고 햇빛도 미치지 못하는 빽빽한 낙엽송 숲을 걷던 아내가 나를 향해 뒤돌아보며 얘길 합니다.

“어머! 꼭 안개가 낀 것 같아!”

낙엽송 밑둥의 잔가지들이 공간을 가득 채운 어지러운 모습이 흡사 안개가 자욱히 낀 느낌을 들게 합니다.

잠시 아픔도 잊고 그 모습을 신기해하며 걷는 사이 어느새 발구덕 마을 입구에 도착합니다.

포장마차와 휴식할 수 있는 의자가 마련되어 있어 잠시 쉬어갈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의외로 몸이 회복되어 힘들지 않으니 그냥 정상을 향한 오름길로 접어듭니다.


 

우측 사면으로 보이는 발구덕 마을의 수확이 끝난 고랭지 채소밭과 그 뒤로 듬직하게 서 있는 산줄기들이 아름답고 깨끗한 한 폭의 그림을 연상시킵니다.


 

발구덕 마을을 출발한지 30여분이 지나자 드디어 억새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금빛, 은빛 물결이 바람 따라 출렁이는 억새의 바다가 펼쳐져 있습니다.

사방 어디로 눈을 돌려도 환상적인 억새의 물결이니 온 정신을 빼앗겨버립니다.

벌어진 눈과 입을 다물지 못하고 그렇게 난 환상적인 억새밭으로 들어갔습니다.


 

금빛, 은빛 반짝이는 억새들이 물결칩니다.

광활한 산등성이를 가득 메운 억새들이

일렁이는 바람 따라 황홀한 색깔의 마술을 연출합니다.

박자도 다르고 몸짓도 제각각이지만 모두들 흥에 겹습니다.

흥이 넘치는 분위기에 등산객의 발길에도 흥이 실리기 시작하고

여태 고요하던 마음에도 한껏 흥이 실리니

온 산은 축제의 흥겨움이 물결치고

급기야는 만둥산이 흥에 겨워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10월의 민둥산 정상은 황홀한 억새 축제의 한마당입니다.


 

느릿느릿 황홀경에 빠진 발걸음은 12:20분이 되어서야 민둥산 정상에 이릅니다.

억새밭 한가운데에 전망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한층 여유로운 점심을 먹습니다.

은빛 물결 출렁이는 황홀한 억새의 바다 그 너머에는 증산 시내가 납작 엎드려 입습니다.

증산 시내를 지나 산 쪽으로 고개를 드니 강원랜드가 산 속에 우뚝 솟아있고 그 뒤로 함백산과 태백산이 눈에 들어옵니다.


 

함백산 밑에는 유명한 사찰 정암사가 있고 거기서 조금 더 내려가면 유년시절 한 때를 보냈던 탄광촌 고한이 있겠지요.

내가 살았던 두문동과 마골, 걸으면 탄가루가 푸석푸석 일어나던 도로들...


 

잠시 지난 시절 아련한 추억을 떠올려보고 다시 억새의 축제 속으로 들어갑니다.

아무곳에서나 포즈를 잡아도 멋진 풍경이 연출되니 아내와 나는 서로에게 모델이 되기도 하고 사진사가 되기도 하며 거의 1시간을 정상에서 보내다가 돌리네 정상부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천천히 억새밭을 걷습니다.


 

키만한 억새가 가득한 오솔길을 아내와 손잡고 걷노라니 아련한 옛 생각이 떠오르는 추억의 길입니다.

복잡한 세상사도 근심도 걱정도 모두 떨쳐내고 오로지 억새와 산들 바람과 푸른 하늘이 연출 해내는 축제의 한마당을 구경만 할 뿐입니다.


 

가벼운 탄성과 함께 이어지는 황홀한 억새 능선길은 화암약수 갈림길에서 다시 발구덕 마을로 잠시 더 이어지다가 끝이 납니다.

아쉬운 마음에 억새능선을 다시 올려다보니 마치 눈이라도 내린 듯 능선이 온통 하얗습니다.


 

발구덕 마을로 내려오는 동안 아직도 가슴에 남은 잔잔한 흥을 느끼며 몇 번이나 억새능선을 되돌아 보아야 했습니다.


 

마치 조그만 분화구 같이 생긴 발구덕 마을은 등산객들이 타고 온 차들로 주차장을 방불케 하니 조용한 산골 마을과는 영 어울리지 않은 모습입니다.

게다가 여기저기 뜨문뜨문 흩어져 있는 몇 안되는 집들은 사람들이 살지 않은지 오래된 듯 폐가로 방치되고 있어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발구덕 마을을 길게 한 바퀴 돌아 널따란 길을 무심코 따라가다가 수확이 끝난 고랭지 배추 밭에서 길이 멈춰버린 것을 확인하고 발길을 되돌려  또다시 10여분간의 알바끝에 정규등산로를 찾아 증산초교로 돌아 올 수 있었습니다.


 

10.16~17일 민둥산 억새 축제가 열린다는데 아마도 그때쯤이면 민둥산 억새가 더욱 아름답고 원숙한 몸짓으로 산행객을 맞이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