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行 閑談 5

비움의 미학을 터득한 산행

 

 

  

 겨우내 잠자던 개구리들이 놀라 깨어난다는 경칩(驚蟄)에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와 함께 게릴라성 폭설이 100여년 만에 기습적으로 밀어닥쳐 엄청난 피해를 안겨줘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재해로 실의에 빠진 이재민 여러분께 심심한 위로를 드리고 빠른 시일 내에 복구가 이루어지도록 최선을 다해야할 것이다.
 

 함박눈이 펑펑 쏟아질 때면 서정적인 낭만을 자아내지만 내리고 나면 불편한 상황들이 겹쳐 일상을 답답하게 묶어버린다. 그러나 어찌 대자연의 섭리를 거슬리면서 살수 없는 것이 우리들의 한계가 아닌가. 이처럼 재해(災害)의 시간은 사전 예고가 없다. 미리 방재대책을 강구하여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는데 힘과 지혜를 한데 모으는 것이 우리 모두의 책무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침에 일어나 상고대를 이룬 무등산 설경을 바라보니 몸이 좋지 않다는 핑계로 그냥 집에서 소일하는 것은 고문을 당한 듯한 고통이기에 산에 가지 말라는 의사의 권고가 있었음에도 무등산 품에 몸뚱이를 맡겨버린다. 그동안 쉬는 틈에 몸 관리에 허술했는지 오르막을 오르기가 예전 같지 않아 꽤나 어려움이 많다. 그러나 모처럼 산길을 걸으니 기분이 상쾌해 절로 콧노래가 터져 나온다. 
 

 그동안 수없이 걸어 다니던 길이건만 오랜만에 다시 걸으니 생소하듯 장기 연수를 비롯해 꽤 많은 시간을 밖에서 맴돌다가 다시 복귀해 착임해보니 많은 것이 변했음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지나가버린 수많은 나날을 무의미하게 잃어버린 허송세월로 자리매김하지 않으려는 조바심에 사로잡혀 얼마나 번민했던가. 실로 감회가 새로워진다. 
 

 앞만 보고 무한 질주하던 어느 날 갑자기 기득권의 보호막이 순식간에 걷혀버리고 황량한 광야에 내팽개쳤을 때 그 참담함이야말로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러나 그대로 주저앉아 절분함에 쌓여 서러움을 곱씹을 수 없었기에 기어코 다시 서겠다는 확신을 가져보려고 수많은 시간을 고뇌하면서 홀로 지새웠다. 
 

 그러나 지금 되돌아보니 그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어렴프시나마 알 수 있을 것 같다. 불시에 닥쳐온 시련을 슬기롭게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다림을 갖고 자생력을 길러나가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누구나 혼자 있으면 외로움을 느끼고 외로움을 느낄 때에는 기다림을 배우고 기다림 속에서는 마음의 문을 열어둔다고 한다. 어려움은 누구에게나 느닷없이 어느 날 갑작이 닥쳐온다. 왜 이런 시련이 나에게 닥쳐왔는지 누군가를 탓하지 말고 모든 것이 “내 탓이요 내 탓이다”는 자세로 슬기롭게 대처하는 능력을 배양해야한다. 
 

 이처럼 고난의 시간을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지혜와 역량을 겸비하는 것이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지식기반사회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힘의 원천이다. 누구에게나 닥쳐온 시련의 시간을 자신을 변화시키는 계기로 삼아 삶의 무늬를 확 바꿔버리는 사람들도 많으나 고통의 멍에를 짊어지고 삶의 심연에 발도 디뎌보지도 못한 체 그저 주어진 일상의 언저리를 부유하는 사람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어 애처롭기만 하다. 
 

 또한 지난 시간들은 반목과 갈등의 굴레를 벗어나 용서와 화해의 방법을 터득케 했던 비움의 시간이었다. 우화(羽化)를 거치지 않은 번데기는 나방이 되어 훨훨 날 수 없듯이 기득권에 안주하여 구각을 탈피하지 못한다면 영원한 낙오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Off-Line에 매몰되어 화석처럼 경직된 일방적 사고를 쌍방간에 의사소통이 원활한 ON-Line 시스템으로 전환시키는 변화의 시간이었기에 너무나 소중한 시간으로 가슴속에 남을 것이다. 

 

 이상스럽게도 그동안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는 일들이 줄줄이 겹쳐 “머피의 법칙” 강박관념에 시달려왔다. 그러나 반드시 극복하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원칙에 준거하여 매사를 정려해 왔더니 점차 해결의 기미가 보여 다소 안도감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샐리의 법칙”이 찾아올 것이라는 기분에 들떠있었으나 호사다마라 했던가. 몸이 탈이 생겨 시련의 늪에서 헤어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생각이 들어 안타까움이 가슴을 짓누른다. 
 

 쉼터에 앉아 노송(老松)들이 흰 눈을 가득이고 버둥거리며 힘겨워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속이 텅 빈 가느다란 줄기로 넓은 잎을 지탱하고 있는 연잎을 생각해본다. 연(蓮)은 진흙 구렁텅에서 살지만 빗물을 힘겹게 보듬으려 하지 않고 흘려버리기에 세차게 비가 내려도 큰 잎이 상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도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는 자세가 필요하다. 지나치게 탐욕에 사로잡히면 “머피의 법칙” 망상(妄想)에 시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가(佛家)에서는 이승에서 저승으로 돌아갈 때 삼도천(三途川)을 건너려면 몸을 가볍게 해야만 무사히 정토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세상에서 쌓았던 그 어떤 지위나 재산은 물론이고 그 어떤 생각과 집착까지도 모두 버려야 한다고 한다. 참으로 봄눈 녹듯 허망한 우리의 삶의 본질이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가 아니고 그 무엇이란 말인가.
 

 또한 비움의 미학이 배어있는 대표적인 그림이 남종화풍의 산수화다. 어딘가 한부분이 텅 비어 있는 것 같이 여백을 중시하지만 그 여백은 공허(空虛)함을 내포하지 않고 오히려 목가적인 풍경과 조화를 이루어 관조(觀照)하는 사람의 마음을 흠뻑 채워준다. 이처럼 산수화의 여백은 비움의 미학을 십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비움을 실천하는 첩로(捷路)는 힘들고 고통스럽겠지만 기득권에서 과감하게 벗어나야 한다. 교만함에서 겸손함으로, 지시하는 것보다 경청하는 태도로 자신을 낮추고 자기보다 더 낮은 자를 배려하는 자세를 견지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연잎처럼 채우고 채워도 영원히 채울 수 없는 욕망의 찌꺼기를 비워버리고 조금함에서 벗어나 평상심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눈 덮인 산자락에도 화사한 봄의 향연은 서서히 시작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듯 우리들의 마음속에 희망의 움이 싹트도록 비움의 자세로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놓는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끝) 


▣ 밤안개 - 좋은 글입니다. 요지음 같이 어지러운 세상에 다 같이 한번 음미해볼 계기가 된듯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 봄내음 - 현촌님의 고뇌속 삶의 지혜로움을 가슴 깊이 느끼며 성숙한 참 사람으로 거듭나게하는시간이 된것같아 무척 고마움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