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악산 (단풍이 들었는가? 들지 않았는가?) =

   밤을 달려온 버스는 양양에서 내려 국도를 달린다.
  어둠 속 차창가로 보이는 희미한 일직선의 선이
  동해바다임을 직감으로 알 수 있다.
   짙은 어둠 속에 유난히 크게 들리는 파도소리 속에
  3.8선 휴게소에서 산행을 위한 간단한 식사를 하고
  설악산의 구불구불한 끝자락을 돌아 이윽고 차는 출발지에 도착한다.
   차안에서 가이드가 안내방송을 통해
  오색의 너덜 길을 피해 흙 길인 관터골 코스를 택한다고 거기는 주차시설이 없어
  준비를 갖추었다가 차가 도착하면 바로 산행을 시작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01시15 관터골로 산행 시작

   계곡 옆으로 난 길은 한사람이 다닐 만큼의 넓이이고
  여름내 자란 풀들이 우거져 있다.
  어둠 속이어서인지 계곡의 물소리는 더욱 크게 들리고
  랜턴으로 내려 비쳐본 계곡은 깊이가 상당하다.
  어둠 속에서도 부서져 내리는 물줄기의 하얀색이 선명하게 보인다.
   들어서는 입구가 어찌 닫혀진 철문 옆 쪽문이다 싶더니
 얼마 오르니 산행코스가 아니라는 입 간판이 있다.
 산행질서를 지키고 선도해야 할 산악회에서 오히려 불법을 부추기다니
 불쾌한 기분이 든다.
 가이드조차 어둠 속 희미한 길을 찾기 위해 두어 번 맴돌다
 코스를 찾아 이동한다.
   30여명의 산객들이 한 줄기 랜턴 빛에 의지하여 줄지어 편평한 숲길을 오른다.
 이윽고 커다란 바위 암벽 밑을 돌아 흐르는 계곡에 이른다(01:50).
   계곡은 며칠전 비로 인해서인지 큰소리를 내며 급히 흐르고
 미끄러운 돌 사이를 건너뛰기에는 위험함을 느낀다.
 불빛이 몇 갈래로 나뉘어 계곡을 건너뛰는 것을 내려다보며
 꼭 반딧불의 불빛이 움직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곡의 바위를 수 차례 넘어 이제 가파른 오름 길이 시작된다.
 이제부터는 외길이니 길만 잘 찾아가면 대청봉이니 자기의 능력에 맞추어
 오르라는 가이드의 말이 들린다.
 또 다시 불쾌해진다.
 안내 산악회가 어찌 안내를 안하고 알아서 가라니...
   우리 일행(각 자 알아서 찾아 온 네명)은 앞서서 가파른 오름길을 오르기 시작한다.
 랜턴의 불빛에 의지하여 길을 찾아 걷기 시작한다.
 일행 중 하나가 컨디션이 안 좋다며 계속 뒤쳐진다.
 기다리며 랜턴 불을 꺼보니 숲 속은 완벽한 어둠에 묻힌다.
 설악의 깊은 골짜기, 우거진 숲 속의 한 밤중
 불빛하나 없는 칠 흙의 어둠 속이다.
   두시간여를 가파른 오름 길을 오르다 다시 길은 평탄해지더니
 다시 물소리가 들린다.
   길은 잠시 내림길이 이어지더니 계류와 만난다.(03:30)
 식수를 보충하고 설악산 깊은 골짜기의 맑은 물을 배불리 마신다.
   다시 가파른 오름 길이 시작되고 한참을 걷다가 나무에 기대어 사위를 바라본다.
 어둠 속 깊은 숲 속은 아름드리 나무들이 쏟아있는 것 같고
 하늘에는 음력13일 이지만 흐려서인지 희미한 별 두어 개만 보일 뿐이다.
 건너편에는 속초항의 불빛이 반짝이고 희뿌연 바다가 보인다.
 
  가파른 오름 길옆에는 랜턴불빛에 단풍들이 빨갛게 물들어 있다.
 갑자기 여러 생각이 든다.

   '지금 단풍이 붉게 물들었는가?' 하고 묻는다면
 내가 랜턴 불빛에 비쳐 볼 수 있는 이 설악산 한 자락 오름 길의 범위 내에서는
 단풍이 물들었으니 날이 밝아서 보면 설악산에 단풍이 들었을 거라고 여겨
 '단풍이 붉게 물들었다'고 할 것인가!
 아니면 이 어둠 속에 내가 보지 못했으니 '단풍이 들지 않았다'고 할 것인가!

  세상의 진리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밝음 속에서 본다면 당연히 그러한 순리조차
 나 자신이 어둠 속에 있으니 그러하다는 것을 모르는 것처럼
 '윤회'도 '구원'도 '내세'도 그러한가?

 

   누가 나에게 묻는 것 같다.
 "지금 단풍이 들었는가? 아니면 들지 않았는가?"

 복잡해지려는 생각을 나는 늘 그랬던 것처럼 단순하게 정리하고 더 이상 생각지 않기로 한다.
 " 내는 모린다"

 

   가파른 오름길에서
 가쁜 숨소리와 좁은 길옆으로 자란 풀들을 스치는 발자국 소리만 들릴 뿐이다.
 이제 능선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3시간이 넘는 오름길에 무척이나 힘이 든다.
 얼마 가지 못해 다시 쉬었다가 가기를 반복한다.
   멀리 동해 바다는 이제 더욱 선명해 지고 희미하던 능선도 더욱 가까이 다가온다.
 지친 발을 힘내어 옮기자 드디어 희뿌연 하늘이 나타나며
 능선상의 이름 모를 봉우리에 선다(05:00)
   능선에서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뒤편 대청봉에는 불빛이 반짝인다.
 여러 불빛이 대청봉을 향해 밀려드는 것이 보인다.
 어둠 속 이름 모를 대청봉 아래의 봉우리에서의 조망 또한 일품이다.
   구름의 바다(운해)가 봉우리 아래 사방으로 빈틈없이 펼쳐지고
 바라다 보이는 동해바다에도 구름이 잔뜩 일고
 이제 해 오름을 준비하는지 붉은 기운이 구름 사이로 비친다.
   이 봉우리가 대청봉에서 권금성 쪽으로 이어지는 화채능선인가 싶다.
 화채능선도 금지구역이니 오늘 본의 아니게 많은 잘못을 저지른다 하는 생각이 든다.
 관목이 자라있는 능선의 희미한 길을 헤치고 대청봉으로 향한다.
 이윽고 오색에서의 오름 길 과 만나

 

05시25분 설악산 대청봉(1,708m)에 선다.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는 대청봉에 서니 쟈켓을 두 겹으로 입어도 추위가 느껴진다.
 대청봉에서의 조망을 잠시 즐긴다.
 짙은 구름의 바다(운해)가 대청봉 주위를 둘러싸고
 동해에서는 더욱 붉은 빛이 세기를 더한다.
 일출을 보고자 기다리려 하였으나 시간이 많이 남았고
 오늘은 바다에 구름이 잔뜩 끼여 있어 일출을 보기가 힘들다는 말에
   중청봉(1,676m)으로의 너덜 길로 내려선다(05:40).
 많은 산객들이 대청봉으로의 오름 길로 올라오고
 중청 대피소를 지나 소청봉으로 향한다.
   길가에는 벌써 단풍이 다 들어있고
 동해에서의 붉은 빛은 더욱 선명해 지나 구름 또한 짙게 드리워져 있다.
   소청봉으로의 내림 길에 이제 천불동 계곡으로 이어지는 내설악의
 아름다운 암봉 들이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설악산의 아름다움이 시작된다.
   소청봉(1,570m)에서 가판에서 파는  따뜻한 커피 한잔을 마시며 설악산의 아름다움을
또렷하게 느낀다(06:00~06:13).
  주봉인 대청봉을 향해 여러 줄기에서 밀려 든 암봉 들의 행렬들...
 용아능선, 공룡능선 들의 빼어난 암봉 들을 느껴본다.
 멀리 용대리 백담사의 불빛도 보이고, 바로 앞 용아능선이 시작되는 빼어난 암봉 아래의
 봉정암의 불빛도 보인다.
   잠시 넋을 잃고 설악산의 진면목을 바라보다 희운각 대피소로 향한다.
 다시 천불동계곡으로 이어지는 줄지어 늘어선 아름다운 바위 암봉 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계단을 내려와 희운각대피소에 도착한다(07:00).
   김밥과 컵라면으로 든든하게 아침 식사를 한 후 공룡으로 향한다(07:40).
 무너미고개를 지나 단풍이 곱게 물든 대청에서 소청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을 건너다보며
 평탄한 길을 지나 이제 가파른 오름길을 올라 빼어난 절경인 공룡능선을 조망할 수 있는 능선에 선다(08:10).
 
08시10분 공룡능선을 향하다
   아름다운 설악산에서도 빼어난 공룡능선이 눈앞에 펼쳐진다.
 암봉 들의 행렬이 줄지어 있고 구름에 걸쳐진 그 유명한 1,275봉의 모습도 보인다.
 다른 쪽으로는 울산바위의 크고 멋진 모습이 보인다.
   공룡의 등뼈처럼 높은 기암들이 늘어서 있는 공룡능선의 아름다움을 즐긴다.
 하지만 공룡능선의 아름다움은 이내 운무에 가려져 아쉬움이 든다.
 
'지리산이 자애롭고 넉넉한 어머니의 품 같다면
 아마 설악은 아름답지만 사귀기 까다로운 애인 같다는 생각이 든다'
   첫 번째 봉우리가 신선대인가?
 내림 길을 지나 가파른 오름 길을 올라 공룡의 등을 밟는다.
   암봉으로 올라가지 못하니 진면목을 볼 수는 없겠지만 이렇게 공룡능선을 지나는
 것만으로 만족을 느낀다.
 운무에 가려 능선에서의 조망을 할 수 없음이 아쉽지만
 두 손 두 발로 내리고 오르는 힘든 길을 걸어 1,275봉 아래 도착,
 뒤쳐진 일행을 기다리며 잠시 쉰다(09:35~09:55).
   다시 공룡의 힘든 길을 내리고 오른다.
 로프까지 잡고 내리고 오르는 길을 반복하여
 빼어난 공룡의 암봉 들을 지나 마등령 고개에 도착한다(11:40).

11시40분 마등령(1326.7m), 공룡능선을 지나다
   마등령 고개의 넓은 공터에 앉아 김밥으로 점심을 먹으며 휴식을 취한다.
 오세암으로의 숲길이 보인다.
 오세암, 봉정암을 찾아보러 다시 오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다.
 

12시10분 비선대로의 내림길
   휴식을 끝내고 이제 비선대로의 내림길에 들어선다.
 가파른 내림길을 얼마간 걷자
 점점 내설악의 아름다운 암봉 들이 눈에 보인다.
 기암들의 깍아 지른 봉우리들...
   공룡능선으로 내. 외설악이 갈라진다 하니
 이 내림 길에서 볼 수있는 아름다운 암봉 들은 모두 우리가 쉽게 찾아오는 
 내설악의 절경을 만들어 내리라!
   세존봉 인가(?) 암봉 위에서 보는 조망 또한 빼어나다.
 커다란 울산바위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이고
 내설악의 빼어난 암봉 들이 늘어서 있고
 일부는 깍아 지른 절벽을 이룬다.
   한동안 내설악의 아름다움을 즐기고는 다시 너덜길을 내려선다.
 이제 많이 지쳐 내림길에서도 발을 딛는 게 힘이 든다.
   금강굴이 있는 깍아 지른 절벽에 암벽등반을 하는 사람들이 여럿 매달려 있다.
 금강굴 갈림길에서 계단을 올라 금강굴을 갈지 말지 고민을 하다,
 굴 안에서의 울림 때문인지 선명히 들리는 목탁소리에 철계단을 올라
 금강굴로 향한다(14:20).
   잠시 유선대에서 조망도 즐기다가 비선대로 내려선다. 

 

14시45분 비선대에서 탁족을 즐기다
   암봉 들에 둘러싸인 비선대의 푸른 물이 아름답다.
 잠시 비선대에 앉아 신발을 벗고 발을 담근다.
 시원한 설악의 계류에 뜨거워진 발을 빼기가 싫어진다.
 얼굴도 씻고 팔도 씻고는 설악동으로 향한다(15:00).
   비선대를 지나 계곡 가에 있는 식당에서
 막걸리와 파전으로 설악산 산행을 자축하며 하산주를 한잔 마신다.
   이제 평탄한 내림길을 빠른 걸음으로 내려온다.
 설악의 계곡은 지난 매미로 인해 많은 피해를 본 것 같고
 아직도 곳곳에서는 공사중인 것 같다.
   이윽고 커다란 신흥사 통일기원 청동대불이 보인다.
 청동대불에게 무사히 설악산 산행을 마친데 대해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
 설악동에 도착한다(16:00).


 산행거리 : 약 21KM (관터골 ~ 대청봉 ~ 공룡능선 ~ 비선대 ~ 설악동)
          만보계 기준 ; 4만1800보
 산행시간 : 15시간 45분 (오전 1시 15분 ~ 오후 4시 ; 아침, 점심, 휴식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