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혈전 덕유종주 재도전. 환상의 얼음꽃(氷花) 산행

산행일 : 2005. 2. 20(日). 맑은 후 눈.

산행코스 및 소요시간

  ☞ 영각사 입구(04:49)

  ☞ 능선(06:10)

  ☞ 남덕유산 정상(06:48~06:55. 1,507m)

  ☞ 월성치(07:33~07:36. 1,240m)

  ☞ 삿갓봉(08:53. 1,419m)

  ☞ 삿갓골재 대피소 (09:21~09:51)

  ☞ 무룡산(11:04~11:06. 1,492m)

  ☞ 1,380봉 (12:11)

  ☞ 동엽령 (12:58. 1,320m)

  ☞ 백암봉(송계사 삼거리) [14:18~14:20. 1,503m(정상석). 1,420m(이정표)]

  ☞ 중봉 (14:55. 1,594m)

  ☞ 향적봉 대피소 (15:19~15:32)

  ☞ 향적봉 (15:38~15:42. 1,614m)

  ☞ 무주리조트 곤도라 승강장 (15:52)

총 산행시간 : 11 시간 3분 (사진 258장 촬영하느라 약간 거북이 산행)

구간별 거리 :

영각사 입구→(0.5km)→영각사 매표소→(2.5km)→능선→(0.9km)→남덕유산→(1.4km)→월성재→(2.9km)→삿갓골 대피소 →(2.1km)→무룡산→(4.2km)→동엽령 → (2.2km)→ 백암봉 →(1.0km) → 중봉 → (1.0km)→ 향적봉 대피소→(0.1km) →향적봉→(0.6km)→곤도라 승강장

총 산행거리 : 약19.4 km

산행지도


 

산행기

  금요일 저녁 백운산님에게서 전화가 온다.  

 “서울로 이사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이번 일요일에 덕유종주 하려는데 같이 가실래요?

복수혈전해야지.”

“그려어? 그럼 가야지. 좋았어. 가자구.”

 

  새벽 두시에 일어나 씻고, 옷갈아 입고 아내가 싸준 보온물병과 보온도시락을 배낭에 넣고 광양으로 달린다. 세시 조금 넘어 백운산님을 만나 남덕유산으로 향한다.

  

  영각사 입구.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두 사람이 산행 채비를 하고, 랜턴불빛에 의지해 영각사 매표소 쪽으로 올라간다.

  저만치 매표소의 불빛이 환하게 빛나고 있다. 일요일이라 일찍부터 문을 열고 있는가보다. 하지만 공단 직원은 방에 들어갔는지 보이질 않는다. 그냥 지나간다. 뒤통수가 간지럽다. 

                 
         항상 앞서가던 백운산님이 오늘따라 뒤에서 힘들게 올라오신다. 어제 동악산 종주를 무리하셨는가보다.

 

 어제 토요일에 많은 산님들이 오르내렸는지 눈길은 잘 다져져있어서, 지난달처럼 길 잃을 염려는 없다. 정확하게 한 달 만에 다시 오르는 길이다.

  “형님! 잠깐만.”

항상 앞서가던 백운산님이다. 그런데 아까부터 계속 뒤에서 나만 따라온다.

“왜?”

“다리가 안 올라가요. 어제 너무 무리했는가봐.”

백운산님은 어제 동악산, 최악산 20여km를 선두에 서서 눈길 러셀 종주한데다가 잠도 충분히 자지 못한 상태에서 덕유 종주에 나섰으니 다리가 아픈 것은 오히려 당연한 것이었다.

“쥐가 났나?”

“아니, 쥐가 난 것은 아니고, 오른쪽 다리가 안 올라가네요.”

“다리가 아직 안풀렸구만, 천천히 따라와. 나도 천천히 갈 테니까.”

 

  그 뒤로 몇 번인가 물어본다.

“괜찮아?”

“안 괜찮아요.”

“지금쯤 풀릴 때가 됐는데…….”

“형님 혼자 올라가셔야겠어요.”

“뭔소리여. 하산하려면 같이 내려가야지. 쉬었다 가자구.”

“도저히 안 되겠네요. 전 내려가고, 형님은 올라가셔서 종주해야 돼요. 지난번에도 실패했는데 오늘은 성공해야할 것 아녜요.”

“진짜 안 되겠어? 천하의 백운산이 이럴 때도 있는감? 이 시간에 혼자 내려가서 어떡하려고.”

“제 걱정 말고 형님 올라가셔요.”

진퇴양난이다. 같이 내려가자고 하니 그건 절대 안 된다고 하고, 그렇다고 아픈 사람 놔두고 혼자 올라갈 수도 없고.

오늘 산행을 접고 다음 기회를 노리는 방법이 최선의 선택인 것 같은데…….

 

  이 생각 저 생각 끝에 조심스럽게 한 가지 묘안을 제시해본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 아우님은 이대로 하산하여 내차 몰고 무주로 가셔서  찜질방에 들어가 피로도 풀겸 하루 종일 한 숨 푹 주무시고, 나는 종주를 하여 4시나 5시쯤 향적봉에서 아우님에게 전화하면 삼공리 매표소에서 상봉하면 좋을 것 같은데…….”

“그거 좋네요. 차량 회수할 걱정도 없고. 형님은 종주해야 되니까.”

산행시작한지 삼십 분 만에 둘은 서로 반대방향으로 갈라선다.

 

  지난달과 마찬가지로 또 다시 혼자가 되었다.

또한 고독과 고요와 어둠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얼마쯤 갔을까 갑자기 공포가 물밀 듯이 몰려온다. 심장 약한 놈은 걸음아 날살려라하고 다시 내려갈 것 같다.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갑자기 소복을 한 산발의 처녀귀신이 입에 피를 흘리며 앞에 서 있을 것만 같다. 그 처녀귀신을 마음속에서 몰아내는데 한참이나 걸렸는데, 이번에는 목없는 처녀귀신이 뒤따라올 것만 같다. 둘이 오르다가 갑자기 혼자가 되니, 이상하게 공포가 엄습해온다. 처음부터 혼자였으면 괜찮았을 텐데…….

  

  호러영화를 무척 좋아하고, 원래가 귀신을 안 믿는 성격에다가, 귀신을 한 번 구경이나 해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평소에 해왔었다. 만약에 귀신이 눈앞에 나타나면 스틱으로 얼굴을 냅다 후려칠 기세로 스틱을 꼭 잡고 간다.

귀신이란 본래 심신이 허약한 상태에서 자기최면에 빠져 헛것을 본 것이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게 귀신인지라…….

왜냐하면 우리 눈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만 보이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절대로 볼 수가 없게 되어있다. 카메라가 우리 눈의 원리와 똑같고, 바꾸어서 생각하면 우리 눈도 필름 없는 카메라의 일종이다. 그럼 디카인가? ㅋㅋㅋ

 

  랜턴에 비추이는 나뭇가지마다 온통 얼음꽃(氷花)이다. 가끔씩 빙화가 서로 부딪쳐서 울리는 낭랑한 소리가 적막을 깨뜨린다. 천상의 악기가 바로 빙화 부딪치는 소리다.

마치 가는 눈이 오듯이 밤하늘에서는 서리가 내리고 있다. 그 서리가 빙화에 눌러붙어 빙화위에 서리꽃(상고대)이 피었다. 언뜻 보아서는 상고대로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온 산의 나무가 빙화다.

  하늘은 맑아 밤하늘의 별이 초롱초롱하다. 오늘은 운 좋게 일출을 볼지도 모른다.

나무계단이 나온다. 얼마 안가면 능선이 나온다는 얘기다.

             

                                                  서리가 내리기 전의 빙화

  

      

                                                     드디어 능선에 올라선다.

 

  오늘은 능선에 올라서서 갈만하다. 이미 길이 잘 다져져있기 때문이다.

시멘트 구조물을 지나는데 지난번처럼 칼바람이 몰아친다. 마스크를 안 썼는데도 안경에 성에가 끼기 시작한다. 목밴드와 바라크라바를 가져갔지만, 착용만 했다하면 안경에 김이 서림과 동시에 성에가 끼어 앞이 전혀 안보이니 배낭 속에서 꺼낼 엄두도 내질 못한다.

얼굴이 무방비로 노출되어서인지 칼바람에 볼이 떨어져 나가는 것만 같다.

     

                                                 철근콘크리트 구조물 사이에서
 

  먼동이 튼다. 일출을 남덕유산 정상에서 보려고 속보로 오른다.

남덕유 정상이다.

아! 하늘도 무심하시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좋던 하늘이 일출직전에 갑자기 동쪽 지평선만 먹구름으로 뒤덮여 버린다.

강추위(영하 18℃. 체감온도는 영하 30℃가 넘었을 것임.)와 서있기 조차 어려운 칼바람과 싸우며 일출을 기다려봤지만 끝내 구름은 걷히지 않았다. 일출시간은 07시 10분 전후인데 앞으로 15분을 더 버틸 수 없을 것 같다. 장갑속의 손이 얼기 시작한다.

     

                                                  남덕유산 정상이 보인다.

 

      

                         남덕유산 정상. 갑자기 구름이 동쪽하늘을 가려서 일출을 보지 못하였다.

 

  일출 보는 것을 포기하고 월성치로 내달린다. 능선에서라도 일출을 볼 수가 있으면 좋으련만 끝내 일출은 보질 못하였다. 이번산행에는 스틱이 있어서 내리막길도 어느 정도 속도를 낼 수가 있다.

  서봉 가는 삼거리에 산님들이 대여섯 분 서 계신다. 서로 어디서 왔느냐며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려는데, 그 중 한 분이 부탁을 한다. 산너울 산악회 소속회원들인데 앞으로 가다가 우리일행 만나거든 우린 영각사로 탈출한다고 꼭 전해달란다.

     

                                                남덕유산에서 월성치로 가다가

 

      

 

     

 

  날이 새면서부터 미치겠다는 말이 나도 모르게 입에서 계속 튀어나온다.

갈 길은 멀고 환상의 설경과 눈길, 빙화, 상고대는 발목을 붙들어 사진을 안 찍을 수 없게 만든다. 사진찍고나면 뛰다시피 내달리고, 이렇게 배고픔도 갈증도 추위도 잊은 채 사진 찍는 시간만 빼곤 산악마라톤 하듯이 달려서 월성치에 도착한다.

산님 한 분이 스키용 고글을 꺼내 착용하고 계신다.

아까 그 팀은 아닌 것 같고, 단독종주하시는분 같아 보인다.

그분에게 사진 한 장 부탁하고, ‘한 장 찍어드릴까요?’ 했더니 정중히 거절하신다.

(강추위에 디카 배터리가 방전되어서 사진을 찍을 수가 없단다.)

     

                                               구름위에 이미 해가 올라와 있다.

 

      

 

     

 

     

 

     

                                                    덕유 주능선이 보인다.

 

     

                                                월성치.  산님 한 분이 계신다.

 

     

                          월성치. 윗 사진의 산님에게 부탁해 오늘 산행 중 유일하게 찍은 사진.

 

  심심한데 종주하는 동안 친구하면 되겠다 싶어, 자꾸 말을 붙여보지만 먼저 가시라면서 자꾸만 뒤로 처지신다. 혼자 산행하시는걸 좋아하시나보다. 사진 찍느라 지체하다보니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간다.

세 번째 마주쳤을 땐가 갑자기 ‘이 메일로 사진 보내주실수 있죠? 경치가 너무 좋아서…….’ 하면서 한 장 찍어달란다.

물론이죠. 세장이나 찍어드렸다. 그가 건네준 명함을 보니 서울의 모 중학교 선생님이신가 보다. 이후로 그 젊은 양반은 삿갓골대피소에서 다시 만난다.

     
                                                              지나온 능선들. 아래는 월성치

 

     

                                                             가야할 길

 

     

                                지나온 길. 왼쪽이 남덕유산. 오른쪽이 서봉(장수덕유)

 

     

 

     

 

     

 

     

 

                                       

                                            셀프카메라. 하얗게 보이는 것은 모두 성에.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며. 왼쪽봉이 남덕유산, 오른쪽봉이 장수 덕유산.

 

     

                                                                                雪 國

 

  삿갓봉처럼 생긴 봉우리를 세 개인가 지나니 진짜 삿갓봉이 나온다. 지난번은 우회했었지만 오늘은 시간이 충분하니까 삿갓봉으로 올라간다.

뒤돌아본 남덕유산과 서봉(장수덕유)이 흰눈에 덮여 신비롭게 보인다.

아! 절경이로다.

삿갓봉에서 삿갓골 대피소까지도 한참을 가야한다.

     

                                                                 삿갓봉


      

                              삿갓봉에서 되돌아본 남덕유산(왼쪽)과 장수덕유산(서봉)

 

     

                                         가야할 길. 왼쪽 제일 높은 봉이 향적봉

 

                                     

 

      

                                                       서울 모 중학교 최선생님

 

  삿갓골 대피소는 동토의 나라 한 가운데 서 있었다. 아까 그 서울분과 다시 만나 대피소 취사장에 먼저 들어가니 대피소안의 사람들이 난데없는 박수를 치며 맞아준다.

내 얼굴에 서리가 하얗게 내려 고생한 흔적 때문에 박수치는가 보다 했더니 그게 아니었다.

자기들 일행인줄로 착각을 한 것이다. ‘혹시 산너울 산악회세요?’ 물으니 그렇단다. ‘저 일행 아닙니다. 일행 중에 대여섯 분이 영각사로 탈출한다고 전해달라던데요.’ 했더니 고맙다며 어떤 분은 뜨거운 물과 국물을 권하기까지 한다.

정중히 사양을 하고 한 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보온도시락을 꺼내 늦은 아침을 먹는다.

     

                                                동토의 왕국 삿갓골재 대피소

  

     


      

                삿갓골재 대피소 취사장. 난로에 식수까지 나온다. 향적봉 대피소와 너무 대비가 된다.

 

  그러고 보니까 집에서 찰떡초코파이 세 개 먹고 출발해서, 대피소까지 오는 7시간 동안 월성치와 삿갓봉 중간쯤에서 뜨거운 보리차 한 잔과 백운산님이 주신 고구마 연양갱 (일회용 커피처럼 생긴 스틱형이라 보통 연양갱보다 절반크기) 한 개 먹은게 전부다.

그때 먹은 보리차 맛이 어찌나 달던지 아내가 설탕물을 잘못 넣은 줄 알았다.

중간에 바람 잦은 곳에서 밥을 먹고 싶었으나 워낙 추워서 밥을 먹을 엄두도 내질 못했었다.

잠시 후 그 서울분이 들어오신다. 그러니까 그 중학교 교사분이 맨 꼴찌로 들어오신 모양이다.

 

  갈 길이 머니 오래 쉬지도 못한다. 대피소를 빠져나와 능선을 오른다.

반대편에서 아까 사진 찍어준 서울 산님이 내려오신다.

“어! 왜 내려오세요?”

“종주 못하겠어요. 탈출하려고요.”

“저런, 아쉽네요. 조심해서 내려가세요.”

작고 둥그런 봉우리를 몇 개 넘으니 커다란 무룡산이 딱 버티고 있다.

경사가 그다지 급하지 않은데도 오르는 것이 무척 힘이 든다.

‘왜 이러지?’

삿갓골 대피소까지 변변히 먹은 것도 없이 쫄쫄 굶으며 너무 무리를 했나?

장거리 종주란 마라톤과 비슷해서 초반에 오버페이스하면 막판에 지쳐서 완주를 포기하고  주저앉는 법인데, 내가 너무 오버페이스했나?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

     

 

      

 

     

 

     

                                                                무룡산

 

     

                                                         무룡산 오르다가

 

     

                                                  멀리 남덕유산이 보인다.

 

     

 

     

 

  무룡산에서부터 동엽령까지는 그다지 심한 급경사구간은 없고 대체로 평탄한 능선길이라 겨울 산을 만끽하며 걷기에 너무 좋다. 다만 조심해야 될 것은 빙화가 떨어져 산행로에 무수히 깔려있는데, 작은 것은 주먹만한것에서부터 큰 것은 어린이 머리만한 것이 떨어져 있다. 자칫하면 그 얼음덩이를 잘못 밟아 발목을 접질리기가 다반사라는 것이다. 눈(雪)과 구분이 잘 되지 않아 눈(目)에 잘 보이지도 않는다.

또 한 가지 조심해야 될 것은 나무들이 빙화의 무게 때문에 축 늘어져서 등로를 막고 있기 때문에 고개를 숙이고 지나가야하는 곳이 너무 많다.

동네 뒷동산 같은 분위기의 키 작은 산죽길도 나오고 산님들도 자주 마주치기 시작한다.

1,380봉에서 온도계를 보니 -8.7℃를 기록하고 있다.

     
                                                           무룡산 정상

 

     

                       무룡산 정상에서 바라본 지나온 길. 멀리 남덕유산과 장수덕유산이 보인다.

 

     

                                                          노인과 강아지

 

                                       

                                                           키 작은 산죽길

 

     

                                           왼쪽부터 무룡산, 남덕유산, 장수덕유산

     

                                                                             산호초

 

     

 

     

                                                            가야할 길

 

     

 

     

 

     

                                                           1,380봉

 

  동엽령엔 사방에서 오르내리는 사람과 점심을 먹는 사람들로 북새통이다. 여기서부터 중봉까지는 많은 산님들로 인한 정체구간 때문에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힘들어 죽겠는데 오히려 잘된 셈이다.

  이런 유명 산에 서로 비켜가지도 못할 정도로 등산로가 좁아서 정체구간이 생긴다는 것도 이해가 안 될뿐더러, 산님들의 산예절도 형편없으니 어떤 때는 짜증까지 난다.

힘들게 올라가는 사람이 우선이니 그들을 위해, 내려가는 사람이 길옆에 비켜서서 길을 양보하는 것이 예의이거늘 그 반대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갈 동안 한쪽에 비켜서서 인내심을 가지고 그들이 다 지나가도록 서있어도, 고맙다거나 미안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

     
                                                                             동엽령

 

     

 

     

 

  백암봉 오르는 길과 중봉 오르는 길은 제법 급경사구간이라서인지 죽을 맛이다. 오전에 오버페이스만 하지 않았다면 한 번도 쉬지 않고 오를 수 있을 텐데, 평균 세 번 정도 쉬고서야 꼭대기에 오를 수 있었다.

중봉에서부터 날씨가 흐려지기 시작하면서 멀리 남덕유산은 구름에 가려 보이질 않는다. 눈발이 약간씩 날리기 시작한다.

향적봉 대피소까지는 평탄한 길에다가 가끔씩 멋진 주목이 나타나서 피로를 씻게 해준다.

     

                                                             백암봉

 

     

                                                         중봉을 향하여

 

      

                                                                 중봉

 

     

                                             중봉에서 향적봉 가는길의 주목

 

     

 

     

 

        

                                                  오른쪽으로 향적봉이 보인다.

 

     

                                    향적봉 대피소. 왼쪽위가 덕유산 정상인 향적봉

 

  하도 배가 고파 향적봉 대피소 비좁은 취사장에 들어가 한쪽에 앉아서 라면과 버너를 꺼낸다. 코펠에 물을 부으려고 매점직원에게 식수 구할 곳을 물어보니 뒤쪽으로 돌아가서 없으면 아래로 500m를 내려가 보란다. 이런 빌어먹을.
(삿갓골 대피소 취사장의 수도는 콸콸은 아니더라도 수도꼭지를 틀으니 부족함 없이 졸졸 흘러내리고 있었다.)

대피소를 둘러보아도 수도가 없어서, 다시 취사장으로 돌아가 보리차물을 모두 코펠에 쏟아 부었다. 컵라면 하나도 데울 수 없는 분량이다. 라면 끓이는 것을 포기하고 코펠의 미지근한 물을 벌컥벌컥 다 마셔버렸다.

삿갓골대피소와 향적봉 대피소 사이에 대피소 한 곳이 더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느껴온다. 동엽령 정도가 적당할 것 같다.

  

  대피소로서의 기능(수억, 수십억 원을 들여서라도 우리 산님들이 이용하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해야 할 것 아닌가. 취사장이라는 곳이 열명정도만 들어가도 꽉 찰 정도로 비좁은데다가 식수시설이 너무 열악하다. 공원의 입장료는 받아서 다 어디다 쓰는지 원…….)을 제대로 하지도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까움을 뒤로하고 마지막 기운을 내서 향적봉으로 올라간다.

     
                             향적봉 대피소. 물이 얼어 없으니 충분한 식수를  갖고 가야한다.

 

  몇 년 만에 오르는 향적봉인가. 대학 때 세계 잼버리대회가 그 해 여름에 덕유야영장에서 열렸었다. 그 몇 달 전 봄에 삼공리에서부터 구천동 계곡의 절경을 감상하면서 올랐었는데…….

그때가 이십오륙년전의 일이었는가 보다.

오늘 그 길을 되새기며 구천동 계곡으로 내려가려했는데, 체력이 따라주질 않는다. 남에게 부탁해 정상 기념사진 찍기도 귀찮다.

  백운산님에게 전화하여 곤돌라타고 내려간다고 하니 벌써 향적봉이냐고 깜짝 놀란다. 그때까지 거의 시계를 보지 않고 있었다. 무주리조트 곤돌라 승강장까지 가는 길은 너무나 아름답다.

     
                                                    덕유산 정상인 향적봉

  

      

                            향적봉에서 내려다본 무주리조트 리프트와 곤돌라 타는 곳.

 

  리프트를 타고 올라온 스키어들이 신나게 슬로프를 내려간다.

탑승권(6천원)을 끊어 두 쌍의 부부와 같이 곤돌라를 타고 내려간다. 거의 다 내려갈 때까지 조망은 별로다.

백운산님에게 전화를 걸으니 동시에 그쪽에서 먼저 전화가 걸려온다.

“식당에서 뭣 좀 먹고 가자구. 배고파 죽겠구먼.”

우거지 해장국(9천원)을 시키고, 백운산님은 우동(7천원)을 시켜 먹었다. 음식값 되게 비싸다. 왜 전국의 스키장 음식은 한결같이 비싼 것인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그렇다고 음식맛이 일반 음식점보다 빼어난것도 아니다.

     

                                                            스키어들

 

     

                                                         스노우 보드

 

     

                                                     곤돌라 타고 내려가면서

 

     

                                 무주리조트. 오른쪽에 타고 내려온 곤돌라가 보인다.

 

     
                                                                              스키어들

 

  백운산님이 운전하시고 옆에서 안 자려고 노력하였지만 쏟아지는 졸음을 참을 수가 없다. 이내 곯아 떨어진다. 차창 밖으로 폭설이 내리고 있다.


 

이 산행기를 서울로 영전하셔서 올라가시는 우정어린 산우 백운산님에게 바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