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봉(춘천) 산행기/ Photo 에세이
(2005. 12.4 첫눈 오던 날/고양산악회 031-966-3335/011-347-5020)
'산'서 펌
*. 짝사랑 오봉 산행기
꼭두새벽에 일어나서 등산 준비를 하다 밖을 보니 어제 저녁부터 흩날리던 눈이 밤 사이천지를 하얗게 뒤덮고 있다. 첫눈 쌓인 춘천의 오봉(五峰)이 얼마나 황홀하랴 하면서 흥겹게 아이젠을 확인하고 약속 장소에 서둘러 갔더니 아가씨 둘이 관광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오봉 가시는 분이시죠?"
"네, 그런데 강원도 오봉이 아니라 송추의 오봉을 간데요. 강원도 일대는 폭설로 입산 금지라는군요."
'아차!' 하고 어제 그냥 확인하지 않고 무심코 지나친 핸드폰 문자 메시지를 급히 열어 보았다.
"내일 산행 강추위와 대설로 인하여 가까운 산으로 갈 예정입니다. -고양산악회"
그래서 오봉은 오봉인데 춘천 오봉 아닌 도봉산 오봉이 되고 말은 것이다.
춘천 오봉산에 가려던 것은 나의 산행기에 하나를 더 보태고 싶어서였다.
오봉은 1990년 초에 직장 동료와 함께 청평사를 둘러보고 오봉산 기슭에서 놀다온 산이었다.
그래서 어제 오후 내내와 오늘 새벽 3시부터 춘천 오봉산에 대한 많은 재료를 모은 것이 너무나 아까워 허탈한 마음으로 빙판길을 밟고 나의 서재로 되돌아 왔다.
짝사랑이 되어 버린 오봉에 대한 나의 연서를 산행기로 쓰기 위해서다.
그러니까 여기 쓰인 글은 불발탄이 되어 버린 오봉 산행이 아쉬워 가물가물하는 옛날을 생각하며 쓴 기록이라 해 두자.
지금부터 나는 내 몸으로 가지 못한 오봉을 마음 따라 가는 거다. 산에 가서 마시려던 커피와 과일을,서재에서 마시고 먹으면서-.
사진은 한국의 산하와 네티즌의 사진들을 이용하기로 한다. 나머지 오봉산 오름길은 다음에 직접 다녀와서 완성하기로 하고 청평사 일원만을 써야겠다.

*. 기차 타고, 배 타고
  여행은 기차 타고 혼자 떠나는 것이 제멋이다. 낯선 이들 속에 묻혀 창가에 홀로 앉아 덜컹- 덜컹- 소리를 들으며 창밖을 바라보며 가는 거다. 그러면 타원형 그리듯이 가까운 경치는 재빨리 도망치듯이 지나가고, 먼 경치는 수줍은 듯이 서서히 나타났다가 그렇게 사라져갈 것이다.
그 기차여행과 배 여행을 하면서 요산요수(樂山樂水)를 아울러 즐길 수 있는 산이 춘천 오봉산이다.
청량리 역에서 경춘선 열차를 타면, 북한강을 지나서 인제에서 발원하는 166.2km의 소양강을 끼고 달린다. 북한강과 소양강에 눈을 팔다가 보면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역 중의 하나인 강촌 역을 지난다. 그러면 호반의 도시 춘천이 2시간 정도면 성큼 눈앞에 다가선다. 
춘천에 내려서 '소양강 처녀'를 콧노래로 부르며 역전에서 소양 댐 행 버스를 타면 된다.
 
-Daum서 퍼옴
소양 댐은 중심부에 점토를 넣고 양쪽을 모래와 자갈을 다져서 돌을 쌓아 만든 사력(砂礫) 댐이다. 댐 높이 123m, 길이 530m, 호수 면적 960만 제곱m로 동양 최대이며 세계 제 4위에 해당하는 크기라서 내륙의 바다라고 일컫는 것이 소양 댐이다.
이 댐은 홍수를 조절하여 주고, 농공업 용수를 공급하며, 1일 20만 kw의 전력을 가동하여 주는 다목적 댐이다.

거기에다가 양구와 인제의 물길 1백 50리(64km)를 1시간대에 달리는 관광쾌속선이 설악산과 동해를 이어주고도 있다.  
소양호 선착장에서 1시간 간격으로 운행되는 배(요금1,500원)에 오르면 10여분 동안 운무를 헤치고 잔잔한 물을 가르며 청평사 선착장을 향할 것이다.
청평사는 이 소양 댐으로 해서 지금은 관광의 명소가 되어 미약했던 사세(寺勢)를 오히려 자랑하고 있다.  

*. 흔한 오봉산보다 청평산으로 고쳤으면 
 배가 청평사 선착장 가까이 가면 오봉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오봉산(五峰山)이란 이름은 춘천의 오봉산, 도봉산의 오봉 이외에도 경북 상주 오봉산(235m), 전남 보성 오봉산(일명, 칼바위392m), 전북 완주 오봉산(  m), 함남 장진군 오봉산(2,000m) 등등 수없이 많은 흔한 이름이다.
물론 이들 이름은 산봉우리가 다섯이라 해서 오봉(五峰)이라 한다.
춘천 오봉산은 제1봉 나한봉, 제2봉 관음봉, 제3봉 문수봉, 제4봉 보현봉, 제5봉 비로봉으로, 보통 '오봉산' 하면 779m의 제5봉 비로봉을 말하는 것이다.
오봉산의 이름은 현대에 쓰는 말이고,  동국여지승람에는 이 산 이름을 경운산(慶雲山)라고 하고 있지만, 동국여지지도와 세종실록지리지와 동국여지승람, 산경표 등 많은 옛 기록에는 모두 다 이 산 이름이 청평산으로 나온다. 그래서 흔한 이름 오봉산이라 하지 말고 청평산이라 부르자는 의견에 나도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싶다.

*. 왜 청평사(淸平寺)라 했을까
-야후서 퍼옴
신흥사의 말사인 이 청평사는 신라 진덕여왕 때 아도화상이 창건하였다가, 고려 때 무명선사가 백암선원(白岩禪院)으로 개창 되면서  뚜렷한 역사를 갖게 되었다.
그 후 폐사 된 이 절을 고려 문종 때 이의가 중건하면서 보현원(普賢院)이라 하여 오다가, 그의 아들 이자현이 중건하면서 문수원(文殊院)이라 하였다.
이자현은 10대에 걸쳐 고려 왕실과 인척관계를 맺어온 명문가의 후예였다. 문과에 급제하고도 산을 유난히 좋아하여 벼슬을 버리고 전국 명산을 유람하던 중에, 아버지 이의가 계시던 이 산에 들어와 보현원(普賢院)을 문수원(文殊院)이라 개칭하고 산 이름을 청평산이라 하였다.

스스로 자기의 호를 청평거사(淸平居士)라 하면서 이 곳에 당(堂)과 암자를 짓고 선학(禪學) 연구를 하며 여생을 보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청평거사 이자현이 이곳에 내려와 은거 하면서부터 세상이 맑고 깨끗하다는 '청평(淸平)'이란 뜻처럼 그동안 들끓던 도적이 사라지고 그 무섭던 호랑이와 이리도 자취를 감추었다 한다.
그래서인가, 많은 세월이 지난 이조 명종 때 보우(普雨)가 절 이름을 비로소 청평사(淸平寺)라 개칭하였다.

*. 청평사 회전문과 3층 석탑 전설
-tourguide서 퍼옴
이자현 이후 교통 관계로 사세가 미약하던 이 청평사는 6.25 동란에 극락보전(極樂寶殿)과 구광전(九光殿), 사성전(四聖殿) 등이 소실되고 겨우 하나 남은 것이 보물 제164호의 회전문(廻轉門)이다.
일주문 없이 서 있는 회전문(廻轉門)은 글자 뜻처럼 빙빙 회전하는 문인가 했더니, 아미타불을 모신 극락보전 앞에서, 중문의 역할을 하는 사천왕을 모신 문이었다. 중생에게 윤회의 전생을 깨우치기 위한 마음의 문이어서 회전문(廻轉門)이라 한 것이다.

이 절은 왼쪽의 사진처럼 특이하게도 회전문, 극락보전, 대웅전 등으로 가람 배치가 오봉산과 일직선상에 있어 운치를 더해 주고 있다. 서방정토에서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는 아미타불을 모신 국보였던 극락보전(極樂寶殿)의 소실은 무엇보다 청평사에서는 안타까운 일이었다.
이 청평사의 사지(寺址)에는 우아한 돌계단, 주춧돌, 축대 등이 번창했던 옛날을 말하고 있어 기념물 제55호로 지정되어 있다.
절이 불타도 남는 것이 탑이듯이 청평사에는  3층 석탑(문화제자료 제8호)이 있다. 2중의 기단 위에 3층  탑신인데 상륜부의 장식이 아깝게도 없어져 버렸다.
이 탑은 공주 탑이라고도 하는데 이 탑에는 다음과 같은 애화 맺혀 있는 전설이 전하여 온다.
-www.hallym.ac.kr서 펌


 

 


 

원나라 순제(元順帝)와 고려 여인 기황후(奇皇后) 사이에 절세미인 딸 평양공주가 있었다.
어느 날 궁정을 거닐고 있었는데, 이 아름다운 공주를 본 총각 관리가 짝사랑하다가 상사병을 앓다  죽어서 뱀이 되었다. 이 뱀은 공주가 낮잠 자는 틈을 타서 공주 몸의 배꼽에 머리를, 꼬리를 하체에 밀착하여 아무도 뱀을 떼어낼 수가 없었다.
사람들을 피하여 다니며 살다가 조선 금강산이나 한 번 보고 죽는다고 금강산을 가던 길에 청평사를 들러 가사불사(袈裟佛事)라고 가사를 반들던 중, 상사뱀을 떨쳐버리게 되었다. 원 순제가 이 말을 듣고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 세워 준 탑이 3층 석탑이다.


 


*.구성폭포와 고려정원 영지


 

-야후서/tour.chuncheon에서 퍼옴
선착장에서 매표소까지는 25분, 거기서 선동계곡을 따라 다시 조금 더 오르면 높이 7m의 구성폭포(九聲爆布)가 나타난다. 물줄기가 불어나는 여름철이면 두 줄로 흘러내리는 폭포수의 소리가 아홉 가지 소리를 낸다는 운치 있는 폭포다.

청평사에서 놓치지 않고 봐야 할 곳이 이자현이 만든 자그마한 고려정원 영지(影池)다. 지금까지 발견된 정원 중 가장 오래된 이 정원은, 일본이 가장 오래 된 정원이라고 자랑하는 경도(京都)의  사이호사(西芳寺) 고산수식(枯山水式) 정원보다 200년이나 앞선 정원이다. 이 영지 위로 2km를 올라가면 바위에 청평식암(淸平息菴)이라고 새긴 네 자의 각자가 이를 증명하여 주고 있다.
이자현은 구성폭포에서 식암(息菴)까지 9,000여 평의 드넓은 지역을 수로로 만들어 자연스럽게 이 정원으로 물이 들어오도록 하고 주위에 암자와  정자 등을 세웠던 것이다.
이 영지는 북쪽의 길이가 16m, 남쪽이 11.7m로 돼 있다. 연못 안에 돌이 있어서 돌 위에서 보면 연못이 정확히 정방형으로 보인다 한다.
이 영지(影池)는 비칠 영(影), 못 지(池)로 오봉산이 못에 굽어지지 않고 바르게 비친다니 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우리 조상의 유산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