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산행일자 : 2004. 06. 12. 05:43 ~17:08


2. 산행형태 : 능선산행


3. 교 통 편 : 승용차


4. 산행자 : 인자요산, 슬기난, 산인준치


5. 날 씨 : 맑음


6. 산행코스 : 구만교(05:43)-박씨묘 표식(06:36)-헬기장(07:53)-외국인별장(08:09,08:50)-전망바위(09:05)-왕시리봉(09:20)-느진목재(09:53)-싸리샘(10:24)-문바우등 우회로(10:43)-질매재(11:44,12:40)-주능선(13:45,시설물)-돼지평전(14:32)-피아골삼거리(15:14)-피아골대피소(16:06)-직전마을(17:08)


7. 산행후기


지리산은 그 크기의 웅장함에 따라 주능선은 물론이고 그에 따른 지능선들도 큰산들의 종주코스보다 더 웅장하고 긴 것이 사실이라 시작을 하면 10여시간의 코스가 된다. 섬진강과 맞닿아 있는 외둔에서 형제봉을 지나 세석산장까지의 남부능선을 오른후 다음 산행 예정지로 국립공원 구역내 1100m고지에 외국인 별장이 위치한 왕시리봉능선을 답사하기로 계획되었었다.


왕시리봉능선은 노고단에서 뻗어내린 힘찬 줄기가 질등과 문바우등을 만들어내고 왕시리봉을 잉태한 후 구례 토지면 소재지인 구만마을로 뻗어내린 장대한 능선이다. 들머리 확인을 위해 산행기를 검색하였지만 정확한 위치를 몰라 현지답사를 다녀왔으며 구만마을과 구만교를 확인하고 시멘트길을 따라 들머리도 확인하였다.


동행예정자에게 코스를 알리니 조금 짧은 코스이니 천천히 출발하고 느긋하게 운행하잔다. 그래도 12시간은 걸려야 할 코스인데...  산우님들의 의견을 따라 구례구역에서 차를 주차 후 새우잠을 자고 있는데 핸드폰 알람이 잠을 깨운다. 03시로 슬기난님이 역에 도착할 시간이다.


지금부터 1시간을 더 기다려야 준치님이 도착할테니 부족한 잠을 보충하려고 눈을 감아 보지만 잠은 멀리 달아나 버렸나 보다. 배낭족의 공통분모인 산이야기로 시간가는 줄 모르는데 어느덧 4시다. 맞은편에 있는 식당에 들르니 손님 맞을 준비에 바쁘다.


읍내를 빠져나와 구만리에 도착하니 05:30여분으로 산행준비를 위해 공터에 승용차를 주차하고 구만교로 들어서니 05:43분이다. 이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등로에는 부지런한 촌로가 아침을 맞이하느라 분주하고 시멘트 포장길은 가파르기만 하다. 지난번 승용차로 들머리 답사시에는 잘 몰랐었는데, 죽어봐야 저승을 안다고 내가 직접 몸으로 느껴봐야 아는 우둔한 사람인 모양이다.


잠시 오르니 Y자형 갈림길이 나타나고 좌측으로 운행하여 10여분을 오르니 작은 다리 직전에  어느분이 등로표식을 매달아 두었다. 이길이 왕시리봉을 오르는 길로 자료수집과 조언을 구할때의 그 등로다.


급경사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만하지도 않은 땀이 촉촉히 배어나는 산행길로 40여분을 운행하니 돌에 새겨진 "박↑"가 있다. 선행자의 산행기에서 박씨묘로 가는 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조상님 산소 표식을 아주 특이하게 해 두었다. 이길은 박씨의 조상묘로 가는 길이라고...


(박씨묘 표식↓)



다시 1시간 20여분을 오르는데 헬기장이 나타나고 연속하여 2개가 더 나타난다. 용도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연속으로 3개가 있는 능선은 처음 보는 것 같다. 시간체크를 위하여 카메라 셔터를 눌러 보지만 왠지 개운한 마음은 아니다. 헬기장을 지나 5분여를 오르니 좌측으로 소로가 보이고 또 하나의 소로가 보인다. 이곳이 외국인 별장으로 통하는 길인지 몰라 계속 운행하는데 봉우리가 저만치 보이는 것 같다. 지나온 좌측길이 별장 들머리인 것이다.(오르는 길 우측 바위에 페인트 표식이 있음)


다시 돌아내려 9부능선을 걷는데 길 위쪽으로 물 없는 수영장이 보이고 창고 같은 파란 지붕이 보인다. 이곳이 우리나라에 기독교 전파를 위해 이역만리 먼길을 달려온 선교사들의 임시 보금자리였던 것이다. 동행자의 말로는 1920년대 여름, 창궐하는 전염병을 피하여 인가가 없는 노고단에 별장을 세우고 여름 한철을 기거하였는데 40년대 일본의 적산가옥으로 몰수되었다가,


여수·순천반란 사건, 빨치산, 한국전쟁 등의 역사적인 세파를 거치게 되면서 황폐화돼 앙상한 건물 뼈대만 남게되었단다. 지리산에 평화가 깃들고 사람들이 지리산을 다시 찾을 무렵인 57년 외국인 선교사들은 노고단에서 움막을 치고 허물어진 별장을 복원하려했으나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오염되면서 별장을 옮기게 되었다.


(외국인 별장↓)





선교사들이 지리산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한 곳을 찾아나선 끝에 고산지대면서도 양택의 조건을 고루 갖춘 왕시리봉을 발견하고 별장을 건축하였으며 지금은 10여채의 건물이 남아 있다. 첫번째 별장에서는 햇볕을 쬐이는 옷들이 사람의 흔적을 느끼게 해주는데, 인기척은 없지만 건물안의 물소리만 관리인의 존재를 알려주고 있다.


별장이라하여 양평에 있는 우리나라 별장처럼 궁전같은 건물이 아닌 창고보다 조금 더 좋으나 일반주택보다는 많이 불편할 것 같은 수준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건축물처럼 일률적이 아닌 건물마다 다 나름대로의 특색이 있으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도록 신경을 쓴 흔적들이 곳곳에 배어난다. 터널형의 건물, A자 형태의 건물, 구부러진 나뭇가지를 이용하여 만든 문의 손잡이, 그리고 촛대와 사슴뿔 모양의 장식품 등등.


(자연친화적인 외국인별장의 장식물들↓)







약간의 간식으로 허기를 달랜 후 별장 사잇길로 오름짓을 하는데 지나온 수영장은 저수지 같은 형태를 취하고 있다. 전망바위를 지나 도착한 왕시리봉은 시루를 엎어 놓은 형태라고 하는데 멀리서 보지 못하였으나 정상에 서니 완만한 능선과 봉우리가 시루를 닮긴 닮은 것 같다. 삼각점을 찾으려 하였으나 눈에 보이지 않고 산악회 리본만이 몸매를 자랑하듯 나풀거리고 있다.


이제부터는 오르내림이 많지 않고 평이한 길이며 나무잎이 무성하여 주변을 볼 수 없으니 오직 전진 또 전진이다. 문수사 갈림길인 느진목재를 지나 능선을 타는데 샘이 있다. 주변에 싸리나무가 많은 것을 보니 싸리샘이다. 비치된 스텐사발로 목을 축이는데 슬기난님이 물그릇을 샘에 띄워두고 사진 촬영을 한다. 나도 사진을 많이 찍으면 센스가 생기겠지.


멀리 보이는 바위 봉우리가 문바우등으로 보이는데 직진하는 코스가 없고 좌측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 능선에 다시 올라설 때까지 등로 흔적을 찾아보지만 없어 그냥 지나가기로 한다. 위험하면 돌아가고 길이 없으면 가장 안전한 길을 찾아서 가는 것이 우리의 진행방식이니...


질매재에 도착하니 피아골과 노고단, 왕시리봉을 가리키는 표지목이 있다. 이제껏 6시간의 산행중에 산우한분 만나지 못하였으며 처음 만나는 표지목이다. 푸짐한 점심으로 배를 채운 후 하산로를 의논하는데 천왕봉 방향의 주능선을 타다 피아골로 하산 하잔다. 서울행 기차시간이 19:01분이니 시간을 맞출 수 있을 것도 같다.


지리산의 유명한 암자의 하나로 손꼽는다는 문수대를 찾지 못하고 오름짓을 계속하는데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설치한 시설물이 머리 위에서 번쩍이고 있다. 길을 잘못 들은 것 같아 망설이는데 조용조용 지나가기로 의견일치를 본다.


시설물을 지나 바위에 서니 우리가 지나온 능선과 노고단, 천왕봉 방향의 주능선이 뻗어 있는데 카메라가 없어졌단다. 이제껏 특징 있는 경치와 외국인 별장을 많이 담아 왔는데... 쉬고 있는 카메라를 찾으러 되집어 내려가는 길은 두리번거리느라 운행속도가 늦지만 시간이 넉넉하니 별 어려움이 없다.


(왕시리봉 능선↓)



20여분을 되돌아 내려와 홀로 있는 카메라와 합류한 후 돼지평전방향의 작은 길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너덜길과 우거진 잡목이 운행에 지장을 준다. 앞이 보이지 않아 현재 위치를 가늠해 보지만 알수 없어 하는데 산객들의 잡담이 들려 오고 돼지평전 안내판이 나타난다. 이제 왕시리봉 능선을 종주하고 주능선에 올라선 것이다.


지금부터는 고속도로에 들어섰다. 천천히 운행하며 주변을 조망하는데 간간이 스치는 산객들과의 인사가 반갑게 느껴진다. 피아골 삼거리 표지목을 지나 산장을 향하는 등로는 나무계단이 설치되어 몸을 괴롭히는가 보다. 동료한분이 무릅에 이상을 느끼고 있다. 천천히를 외치고 있지만...


50여분에 걸쳐 도착한 피아골 산장은 간 맞춘 음료수를 마시는 몇분의 산객만이 보이고 적막하기만 하다. 이제부터는 계단이 적을테니 기차시간을 위해 속보로 운행하자고 하니 선두가 날아간다. 언제 무릎에 통증이 있었냐는 듯이...  1시간여만에 직전마을에 도착하여 산인준치님에게 몸상태가 어떠냐고 물어보니 기차시간이 아픈 무릎을 가져갔다고 한다.


(피아골 산장↓)



오늘의 산행은 오르고 싶었던 왕시리봉능선과 거닐고 싶던 주능선을 답사한 하루로 기억에 남을 산행이었고 앞으로도 이어질 지리산을 사랑하는 가슴 한켠에 고이 간직될 것이다. 즐거운 산행이었다.


(별장에 있는 산목련 꽃?↓)





▣ 고니 - 오랫만에 왕시루봉 산행기를 봅니다. 통제구역으로서 등로상태가 상당히 열악할텐데......산행기 즐감 하고 갑니다. 그리고 산행코스란에 왕시루봉을 불무장등으로 오기 를 하셨군요 .즐거운 산행 하십시요.    ++ 고니님 불무장등은 심설산행이었는데 그때 생각하다 잘못 표기하였습니다. 수정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 이수영 - 작년,, 어느분의 왕시리봉 산행기만 믿고 피아골로 올라가 왕시리봉으로 가려고 했었지요. 피아골 대피소에 와서야 금지구역임을 알았고 할수없이 다른코스(토끼봉까지)로 가다가 아내와 헤어져 의신마을에서 눈물의 상봉을 한적이 있었답니다.(저의 산행기 '거대한 함정') 이 산행기를 보고 다른 사람들이 따라서 산행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금지구역 산행을요? 너무나 떳떳하게 산행기를 올려서 염려스러운 마음에 몇자 적었습니다. 덕분에 귀한 사진은 잘 보았습니다. 기분이 상하셨다면 죄송합니다.   ++ 이수영님의 고견은 잘 받아들이겠습니다. 조금 수정하였습니다만... 즐산하세요.



▣ 정상 - 저는 일반적인 산행로는 알바없이 정확하게 찾아 다니지만 초절정 고수님들의 흉내는 내지않습니다. 능력부족.자신감부족.   ++ 정상님 저도 마찬가지 입니다. 아직 배우는 중이니까요. 항상 행복하세요.



▣ 슬기난 - 날라가는 두분,따라가느라 발바닥 불나는줄 알았습니다.즐거운 시간을 공유하게되어 기쁩니다.   ++ 동호회 홈피에서 후기랑 사진 잘 보았습니다. 다음에 또...   



▣ dk - 금지구역은 따로 허가를 받아 가는 방법이 있는가요?   ++ 죄송하지만 제가 알고 있는 부분은 없습니다. 단 하나 노고단 정상부에도 학술목적이라던가 또는 방송사 촬영의 경우 문서로 요청하면 별도 탐방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만... 즐산하세요.



▣ 산거북이 - 기억이라곤 곤한 다리와 가쁜 숨길 밖에 없지만 25년전 왕시루능선을 헤매었던 기억 이후 늘 꿈꾸고 있는 길. 준치님과 요산님 슬기난님 다시 세분이 뭉치어 비밀스레 보여주시니 감동뭉클! 두근거리며 잘 보았습니다. 역시 세분은 준족이시군요. (건장하신 준치님께서 무릎이 불편하셨던 모양이지요?)   ++ 산거북이님 안녕하세요. 동행하였으면 좋았을텐데. 다음에 기회를 한번 만들어보시죠. 감사합니다.



▣ 북한산 - 지리산 산행시 마다 꼭한번 가보고 싶은 왕시루봉 능선을 인자요산님의 산행기 따라 마음으로 산행 잘 했습니다. 1100m 위에 지어진 외국인별장의 장식물들이 이채롭게 느껴집니다. 선교사들의 보금자리도 가보고 싶습니다. 들머리 확인을 위해 현지답사까지 하신 인자요산님께 찬사를 보냅니다.   ++ 항상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 하시고 계시는  대간은 잘 진행되는지 궁금합니다.  끝까지 안산,즐산하세요.



▣ 이수영 - 그래도 힘들게 갔다오신 길인데, (사실 나도 가고 싶은던 곳이라..) 위의 제 댓글을 삭제해 주시고 이 댓글도 물론 삭제 해야겠지요. 죄송합니다. ^^   ++ 이수영님 앞으로는 조금더 주의를 하겠습니다. 그리고 판단은 산우님들께서 하시겠죠. 그런 의미로 삭제하지 않고 댓글을 달았습니다. 님도 즐산하세요.


▣ 산인준치 - 시간이 나질 않아 늦게나 보게됩니다. 즐겁고 행복한 산행이었습니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 다음에 또 기회가 있겠죠. 즐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