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1일(금요일)은 유명산을 가기로 했다. 유명산만 갔다 오면 서너 시간에 불과한 코스이기에 내친 김에 소구니산을 거쳐 서너치고개를 지나서 중미산까지 가기로 했다. 오전 7시 50분에 상봉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해서 5천원을 내고 8시발 유명산행 차표를 끊고 차를 탄다. 버스는 망우리고개를 넘어 구리시와 남양주를 지나서 북한강을 끼고 달리다가 청평 버스 터미널에서 잠시 정차 후에 청평댐과 청평호반을 끼고 이 버스의 종점인 가평군 설악면 가일리의 유명산 입구로 달린다.


유명산 입구에 도착하니 9시 40분. 유명산 정상은 가평군 설악면과 양평군 옥천면의 경계지대다. 매표소에서 일천원의 입장료를 내고 원래의 예정대로 계곡길로 들어선다.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산행을 시작하려고 했으나 아침 일찍 사발면 한개를 먹어서 그런지 별로 먹고 싶은 마음이 내키지 않아 그냥 올라 가기로 했다.


시원한 계곡의 시냇물 소리를 들으며 시작하는 산행길은 초입부터 꽤 거칠다는 느낌이 든다. 울퉁불퉁한 바위를 밟으면서 좁은 길을 헤쳐 나아가니 이끼낀 바위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 산의 계곡에는 소가 무척 많다. 깊은 소와 얕은 소를 모두 합치면 스무개 정도는 되리라. 어떤 소는 깊이가 삼사 미터는 족히 될 정도로 깊어서 수영을 못 하는 사람이 빠지면 익사하기 십상이겠다.



깊이가 삼사 미터는 될 듯한 입구지계곡의 깊은 소.


계곡길은 등산로가 막힌 부분에는 다른 쪽으로 건너는 징검다리가 놓여져 있어서 수개소 이상의 징검다리를 건너야 한다. 또 이 계곡길의 다른 산들과 다른 특징이 있다면 험로에 통나무 몇개를 철사로 묶어서 다리를 만들어 놓은 곳이 대여섯 군데 정도 됐다.



계곡길의 험로에 통나무를 철사로 묶어 만들어 놓은 다리.


계곡길을 한참 걷다 보니 계곡을 따라가는 길이 끝나고 산비탈로 이어지는 길이 나타난다. 그 길로 쭉 가다 보니 계곡의 시냇물 소리는 점점 약해지고 등산로의 경사는 가파라지기 시작한다. 계곡길 같으면 땀을 흘리다가 시냇물에 얼굴과 목이라도 적실 수 있지만 가파른 비탈길에서는 어림도 없다. 숨을 헐떡거리면서 한참 올라가는데 아까 올라오던 길에 본 표시판도 유명산 정상까지 0.7 킬로미터인데 지금도 똑같은 거리를 표시하고 있다. 한마디로 엉터리다.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 가파른 비탈길을 굽이굽이 올라가다 보니 갑자기 좌우의 조망이 툭 터지는 시원한 능선길이 나타난다. 가파른 산비탈만 쳐다 보면서 숨가쁘게 올라오다가 완만한 오르막과 상쾌한 조망의 능선길을 접하니 환상의 길이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우측으로는 무성한 수풀에 가려 조망이 뚜렷하지 않지만 좌측으로는 용문산과 그 옆의 봉우리들이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정상 직전의, 갑자기 조망이 확 터지는 환상의 능선길.


상쾌한 능선길을 십여분 이상 올라 왔을까. 드디어 유명산 정상 표시석이 보인다. 시계를 보니 12시 30분경. 9시 40분에 산행을 시작했으니 2시간 50분 만에 올라 온 것이다. 산림청에서 세운, 해발 862 미터라는 정상표시석이 보이고 그 뒷쪽에는 그에 비해 초라해 보이는, 양평군에서 세웠다는, 정상 864 미터라는 정상표시석이 설치돼 있다. 그리고 올라 온 길의 우측으로 가일리로 내려 가는 능선길이 보인다. 그런데 정상에 있다던 간이매점은 보이지 않는다. 평일이라서 그런지 장사를 하지 않는가 보다.



계곡에서 올라 오는 길에서 마주 보이는, 산림청에서 설치한 정상표시석.



소구니산 쪽으로 세워진, 양평군에서 설치한 정상표시석.



유명산 정상에서 가일리로 내려 가는 능선길.


음료수를 마시면서 사과 한개와 스니커즈 한개를 먹으니 밥 생각이 별로 나지 않는다. 계곡길에서 얼려 온 과일 쥬스와 오이 한개, 초코파이 세개를 먹어서 그런가 보다. 식사 대신 간단한 간식으로 점심을 때우고 나무벤치에 앉아 있으니 혼자 온 산행객이 소구니산으로 가는 길을 묻는다. 자신도 처음 온 산행인데 방향표시판이 저 길을 가리킨다고 설명해 준다. 잠시 후에 다른 사람이 또 소구니산으로 가는 길을 묻는다. 똑같이 대답해 주고 소구니산으로 가는 길을 내려다 보니 방향이 어째 지도상으로 볼 때와 다르게 보인다. 그러나 산길이란 반대쪽으로 가다가도 길이 꺾여져 다시 제 길로 가게 되는 경우도 흔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유명산의 정상에서 소구니산으로 내려 가는 길.


한참 쉬다가 오후 1시 20분 쯤에 소구니산으로 가는 내리막길로 내려 가기 시작한다. 행글라이더 등을 타려면 미리 허가를 받으라는 안내표시판이 설치된 곳으로 가니 조망이 탁 트이고 산 아래에서 불어 오는 바람이 무척이나 상쾌하다.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억새들을 바라보니 낭만적인 정취가 흠뻑 느껴진다.억새밭을 끼고 걷다가 뒤로 돌아 보니 유명산 정상이 포근하면서도 아득하게 바라 보인다.



행글라이더장 부근의 조망 - 차 한대가 일방통행할 수 있는 길이 쭉 뻗어 있다.



행글라이더장 부근의 조망 - 차 한대가 일방통행할 수 있는 길이 좌우로 쭉 뻗어 있다.



행글라이더장 밑에서 바라 본, 포근한 느낌을 주는 유명산 정상.


그런데 소구니산은 길의 오른쪽이라고 생각되는데 가장 당당해 보이는 길은 왼쪽으로 점점 더 방향을 굳히기 시작한다. 어째 이상하다고 생각됐지만 방향표지판도 없고 물어 볼 사람도 한 명 없는 무인지경이라서 그 길로 쭉 가다 보니 패러글라이딩 차량이 반대편에서 흙먼지를 일으키며 온다. 길가로 피했다가 다시 갈 길을 재촉한다. 폭이 삼사 미터 정도에 불과해서 차 한대가 일방통행할 수 밖에 없는 비포장도로가 계속해서 이어진다. 상당한 고도에서 이어지는 길은 사람 하나 없고 휘파람 처럼 들리는 산새의 울음 소리 만이 호젓한 정취를 더해 준다. 인터넷에서 읽은 산행기로는 분명히 유명산 정상에서 삼사십분 정도의 거리라고 했는데 50분이 지나니 길을 잘못 든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가장 당당한 길이니 되돌아 가기 보다는 끝까지 가 보자는 생각에서 걸음을 재촉하다 보니 1시간 10분이 지난 2시 30분에 포장마차가 보인다. 그 곳에서 길을 물어 보니 소구니산으로 가는 길의 반대편으로 왔다는 것이다. 여기가 어딘지 물어 보니 배너미고개라는 것이다. 십여분 쯤 포장마차의 평상에 앉아 쉬다가 다시 오던 길로 되돌아간다.그런데 여기까지 왔으니 대부산이나 가 볼까 했는데 지도상 되돌아가는 방향의 좌측으로 꺾어지면 나온다는 대부산으로 가는 길을 찾을 수가 없다. 꾸준히 걸음을 재촉해서 행글라이더장 안내표시와 풍향계가 있는 곳이 한참 위로 올려다 보이는 곳까지 다다르니 소구니산으로 가는 길로 보이는 곳이 나온다. 그런데 길은 아래와 위의 두 갈래다. 위쪽의 길을 택해서 한참 걸어 가니 길은 끝나고 수풀이 보인다. 두 길이 끝에서 만날 수도 있겠지만 이 길이 아닌 듯하여 다시 오던 길로 되돌아 와서 아래쪽의 길로 간다. 차 한대가 통과할 수 있는 폭의 길에 차의 양바퀴가 지나가는 부분만 풀이 나지 않고 차 바퀴가 밟고 지나가지 않은 가장자리와 한복판은 잡초가 무성한 길이다. 한참 걸어 가다 보니 그 길도 끝나고 수풀이 밀생하여 햇빛이 거의 비치지 않는 밀림 같은 곳이 나온다. 그 길 같은 생각이 들었지만 방향표시판도 없고 그 길을 헤치고 굳이 가고 싶은 마음도 내키지 않아 발걸음을 돌린다. 그 때가 4시 20분경.소구니산을 찾아 땡볕길을 3시간이나 헤맨 것이다.


양발바닥은 저릿저릿 아파 오고 그늘도 없이 내리쬐는 땡볕에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갈증과 어지러움을 느낀다. 수통을 꺼내서 목을 축이고 다시 유명산으로 올라 가서 능선길로 내려 가기로 작정한다. 시간을 많이 낭비하고 거의 탈진한 상태로 그 길 밖에는 방법이 없다. 아까 구불구불 내려 온 길을 쳐다 보니 이 땡볕 속에 저기까지 어떻게 올라갈 지 아득하기만 하다. 유명산 정상은 바로 위의 언덕에 가려져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사람 하나 없는 적막한 산중에서 식사는 커녕 물도 마시지 못 하고 춥고 처량한 밤을 보내지 않으려면 정신 똑바로 차려서 해가 지기 전에 하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럴 때에 이슬비라도 내려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하늘은 구름도 별로 없이 맑기만 하고 해는 무자비하게 온 몸을 달군다. 간간이 불어 오는 시원한 바람 만이 몸을 살짝 식혀줄 뿐이다.


어느덧 유명산 정상에 되돌아 오니 4시 50분. 그제서야 안도감이 든다. 정상에 올라 와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수통의 남은 물을 아껴 가며 마시고 그늘진 곳의 나무벤치에 누워서 십여분간 휴식을 취한다. 그러다가 배낭에 귤을 두개 넣어 갖고 왔다는 생각이 난다. 얼른 배낭에서 귤을 꺼내 허겁지겁 먹는다. 수분이 많은 오렌지는 산행시에 참 유익한 과일이다.


다시 배낭을 메고 능선길로 하산을 시작한다. 반 쯤 그늘이 진 능선길은 폭염을 피할 수 있어서 좋다. 능선길은 경사가 꽤 심하다. 그리고 능선길에는 날벌레들이 많아서 끈질기게 자신을 따라다니며 가만히 놓아 두면 눈 속에 들어 가기도 해서 손으로 물리치는 데에 꽤 신경이 쓰인다.


하산 중에 등산로 중간 쯤에 제법 굵은 나무 한 그루의 뿌리가 땅 속에 단단히 박혀 있지 않고 슬쩍 얹혀져 있는 듯이 보여서 살짝 흔들어 보니 가볍게 움직인다. 산림청에서 얼른 이 나무를 제거하지 않으면 앞으로 장마철에 이 산을 오를 등산객들 중에서 어느 누가 다칠 지 모르는 일이다. 장마철이 되기 전이라도 언제 쓰러질 지 알 수 없는 상태다.


등산로를 벗어나니 6시경. 하산하는 데에는 한 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식당에서 시원한 냉콩국수를 시켜서 국물까지 깨끗이 해치우고 1 리터 정도의 물도 남김 없이 비웠다. 가평의 특산물인 잣막걸리를 시켜서 감자전을 안주로 먹고 싶었지만 막차 시간이 임박해서 그 대신에 구멍가게에서 잣막걸리 두 병을 샀다. 식당에서는 한 병에 3천원이지만 가게에서는 한 병에 2천원이란다.


6시 50분에 상봉 시외버스 터미널로 가는 막차를 타고 오니 러시 아워에 걸려서 올 때보다 20분이 더 걸린 8시 50분경에 상봉동에 도착한다. 집에 오니 9시 40분경. 얼굴과 목, 팔이 벌겋게 데였다. 샤워를 하고 나서 잣막걸리 한 병을 비우고 곯아 떨어졌다.




▣ 산초스 - 이강복님 잘못된 지점이 7번째사진 있는곳에서 직진을 하셨어야 되는데 좌측으로 찻길로 내려가신것 같군요. 8번째 사진있는곳은 이미 좌측으로 꺽여 대부산방향으로 가는길 같습니다. 아까 직진하여 조금만가면 봉우리에서 소구니산가는 산길의 억새밭을 지나게 되며 20분정도 걸리는 소구니산이 보인답니다. 대부산 정상은 마지막사진 찍은곳에서 조금내려가며 보면 우측에 집같은것이 보이는데 그위의 능선을 타고 올라가야 됩니다.수고하셨습니다.^^**
▣ 이강복 - 일곱번째 사진(유명산 정상에서 소구니산으로 내려 가는 길의 사진)이 있는 곳에서 좌측으로 가지 않고 우측으로 직진했습니다. 그래서 유명산 정상에서 7~8분 후에 행글라이더 안내표시판과 풍향계 두개가 설치된 곳을 통과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가더라도 이 설명만으로는 제 길을 찾을 자신이 없네요.하도 길이 여러 갈래라서... 아무튼 관심 가져 주신 데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많은 조언, 부탁드리겠습니다.
▣ pjn - 산초스님말이맞고요좀내려가우측으로가야합니다.억새때문에길이안보였을것입니다수고하셨으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