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길이 있기에....(Ⅰ)




(Ⅰ),  (6월12일) 벽소령, 쏟아지는 별 빛 아래...



1. (06:30)  배웅하는 비슬산



   

화원IC로 차가 올라서자 아침 햇살을 머리에 인 비슬산의 능선들이


  

차창에 기대어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환히 웃으며 반긴다.




  

" 자네 오늘 그토록 그리워하던 지리산에 간다지? "
  

" 그래 그렇다네. 지리산에 간다네!"
  

" 무척 기쁘겠구먼! 하긴 며칠 전부터 들떠있던 자네를 느낄 수 있었다네."
  

" 허 어~ 내가 그랬나! "
  

" 이번에 지리산에 가면 지리산을 느껴보게, 아니 지리산이 되어보게나!"
  

" 내가 어찌 감히 그런 바램을 가질 수 있겠나! , 나는 그저 지리산의
     한 그루 나무나

하나의 바위 그도 아니라면
      
그저 스쳐 가는 바람이라도 느끼고 싶을 따름이네"
  

" 자네가 진심으로 지리산이 되기를 원하고 또한 자네가 지리산에 있다면
      
아마 자네는 지리산이 될 수 있을 걸세!"
  

" ......”
  

”잘 다녀오게~ "
  




화원IC 에서부터 함께 이야기하며 같이 오던 비슬산은 뜻 모를 선문답같은
  
말을 던진채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잘 다녀오라며
손 흔들어 배웅한다.
  
차는 88고속도로를 달려 나간다.
  

나는 이 곳을 드나들며 비슬산에 친(親)함을 느낀다.



2.
(09:45)  지리산에 들며...

  
함양IC로 차가 내려서자, 크고도 높은 지리산이 언제나처럼
  
아무런 변함없이 가만히 나를 맞는다.
  
구불구불한 지리산의 도로를 따라 뱀사골계곡 입구를 지나,
  
차는 달궁계곡의 맑은 물을 따라 성삼재(1,102M)로 오른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전설과 신화, 전쟁과 평화, 사랑과 이별
  
기쁨과 슬픔을 함께 간직한 산
  
그 모든 이야기를 담고도 조금도 변함없이 그대로의 한결같은 산
      
지리산!
  

성삼재에 도착,

  
"지리산의 천왕. 반야. 노고신과 뭇 영봉들, 그리고 지리산의 모든 자연들께
    
이곳까지 차로 올라온 무례를 용서해 주시고
오늘 이 어리석은 사람이
    지리산에 들기를 원하오니
부디 내치지 마시고 너그러이 받아주십사 하고 청한다."

  

머리숙여 지리산에 고하고 한발 한발 지리산의 속살을 밟으며

   노고단으로의 오름길을 걷는다.


3.
(10:30)  노고단, 인간에 의해 봉(封)해진 천상의 화원

  
성삼재를 출발하여 노고단까지의 완만한 포장길을 천천히 오른다
   
더운 날씨에 몸은 이내 땀에 젖고 숨이 가빠진다.
   
포장길을 지나 가파른 돌계단길을 올라
코재 전망대에 선다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는 화엄사계곡과
우뚝 솟은 종석대(1,366M)
  
노고단 대피소를 지나 노고단 안부에 선다.
    
안부에 세워진 또 다른 돌탑에는 단체로 올라온 객들로 소란스럽다.
  
서북능선의 봉우리들과 우뚝 솟아있는 반야봉을 바라본 후,
   


노고단 입구의 막혀진 울타리 앞에 서서
  노고단 정상(老姑檀 ; 1,507M)
까지의 갈 수 없는 길을 바라본다.
  
노고단 정상에는 커다란 돌탑이 세워져 있고
   
정상까지는 푸르름에 덮혀있다.

  
신들이 노닐던 곳, 노고단!    신화와 전설이 어울어지던 곳, 노고단!
   
신들을 동경하던 인간들이 함께 신들과 어울리던 곳
   
점차 교만해진 인간들로 슬퍼하던 신들은 떠나고
   
방자해진 인간들에 의해 황폐화 된 곳
   
어느날 문득 부끄러움을 깨닫고 신이 떠나버린 신들의 땅을 스스로 봉문하여
   
언제나 용서하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게 없는 신들이 다시 오기를 기다리는
   
저 곳 노고단(老姑檀)
  
오늘 아침 햇살에 빛나는 노고단에는 구름 한 점없이 푸르다.
  
말없이 노고단의 돌탑을 한동안 바라보다
  
지리산 주능선길을 따라 숲길로 들어선다.
  
초하의 아침 맑은 공기를 호흡하며 숲길을 30여분 걷자
  
돼지령(1,400M)이라는 표지판이 보인다(11:00).
  
돼지령에서 보이는 반야봉은 둥글게 솟아 올라 육감적인 모습을
    
그대로 들어내고
걸었던 길을 뒤돌아 보면 노고단이 뾰족히 솟아있다.
  
남쪽으로는 왕시리봉(1,214M)에서 이어진 능선들이 노고단에 잇닿아 있고
  
발 아래 깊은 계곡은 짙은 푸르름을 한껏 자랑한다.
  


4.
(12:20)  반야봉, 반야(般若)를 구(求)하다.

  
임걸령샘터에 도착(11:20), 지리산에서 가장 물맛이 좋다는 약수를 마신다.
  
차갑고 담백한 맛에 마음까지 맑아진다.
  
잠시 쉬었다가 다시 반야봉으로 길을 간다.
  
노루목 삼거리에서 반야봉으로 향하자(11:50)
  
멀리서 바라본 육감(肉感)적인 모양과는 다르게
  
길은 점차 가파르게 오름길을 이루고
몸은 이내 땀에 젖고 가뿐 숨을 몰아쉰다.
    
힘겹게 오름길을 오르며 지나친 흡연과 게으르고 무절제한
    
생활습관에 대한 짧은 반성뒤에
    
벌써 40후반이 되어버린 무정한 세월에 대한 깊은 원망을 해본다.
  

이윽고 다다른 반야봉(1,734M) 돌탑과 정상석이 서있다.
  
아래의 심원계곡과 달궁계곡의 푸르름을 내려다 보고 눈을들어 사위를 조망한다.
  
모든 일이 한발 물러서 잇으면 더 잘 보인다 하였는데!
  
주능선에서 비켜 서있는 반야봉에서의 조망은
    
흐린 날씨로 시야가 좋지않아 실망을 안겨준다.
  
서로는 서북능선과 노고단이 줄이어 있고,
    
동으로는 한없이 이어진 주능선 저편에
    
우뚝 솟아 하늘에 닿아있는 천왕봉(天王峰;1,915M)이 희미하게 보인다.
  
잠시 조망을 즐기다, 돌탑아래 앉아 반야봉(般若峰)께 반야(般若)를 구한다.
  

"반야봉이시여~ 어리석은 저에게 반야(般若:지혜)를 가르켜 주옵소서"
  
"허~어! 나는 그저 지리산의 하나의 봉우리일 뿐일세"
  
"반야봉이시여~ 당신께선 모든 인연을 멀리하고 오랜 수행 끝에 반야를 얻으시어
    
신이 되신 분이십니다. 부디 어리석은 저에게 반야를 가르켜 주옵소서"
  
"그대는 지리10경을 아시는가?"
  
"네. 천왕일출, 노고운해, 반야낙조, 벽소명월... 이 있죠"
  
"그대도 반야낙조(般若落照)를 보고 싶으신가?"
  
"네. 항상 그런 바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 갔다가 다시 오시거나 아니면 여기서 기다리시게나~"
  
"......"
  
"그대가 아름다운 반야낙조를 보게 되는 날이 오늘일지 내일일지
    
아니면 그 언제가 될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다만, 분명한 것은 지금처럼 점심녘에 와서는 낙조를 볼수 없다네.
    
해가 떨어지는 저녁시간에 와야지
  
이것이 내가 그대에게 줄수있는 반야(般若)일세 "
  
"......"

  
반야봉을 물러나와 다시 주능선길로 들어선다.


5.
(14:10)  토끼봉, 호랑이가 되고자 하다.

  
삼도봉(三道峯;낫날봉 :1,550M)에서 반야봉을 다시 돌아보고는
  
이어져 내린 불무장등능선과 피아골 계곡을 바라본다.
  
다시금 크고 넓은 지리산이란 것을 깨달으며
    
삼도봉 깍아지른 바위 벼랑위에서 점심을 먹는다.(13:00)
  
500여개가 넘는 긴 계단길을 내려서서 화개재(1,360M)에 이른다.
  
오른쪽(남쪽)으로는 쌍계사 앞 화개동천(花開洞天)을 이루는 연동골이 보이고
  
왼쪽(북쪽)으로는 뱀사골계곡 가는 길이 열려있다.
  
내림길이 길면 오름길도 긴 것인가!
  
토끼봉(1,533M)오름길은 토끼(반야봉의 卯-토끼方位)라는
  유약한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길게 이어져 나를 힘들게 한다.
  

나는 "동물의 왕 호랑이도 토끼 한마리를 잡는데 최선을 다한다"라는 속담을 생각하며
  
호랑이가 된 기분으로 힘을 내어 토끼봉 정상에 선다.


6.
(15:25)  연하천, 지리산 능선에서 만나는 계곡.

  
토끼봉을 내려와 명선봉(1,586M)까지의 아름다운 숲길을 걷는다.
  
명선봉 남쪽으로는 남부군 최후의 거점이며 남부군 총사령관인 이현상이 사살된 곳인
  
빗점골이 이어져 있다.
  
좌. 우, 남. 북...
  
나는 그저 말없이 지리산의 길을 걸을 뿐이다.
  
어떠한 변함도 없이 푸르르고 상쾌한 아름다운 숲길을 지나
  
연하천(烟霞泉)대피소에 이른다.
  
1,500M고지에 흘러내리는 맑은 물줄기...
  

차가운 물 과 시원한 캔 맥주로 갈증을 달래며 대피소 앞 의자에 앉는다.
  
몇 시간의 산행의 피로가 풀리는 듯하다.
  
연하천 주목군락지 보호철망 사이길을 지나 벽소령으로 향한다.
  
지리산의 중심이라는 삼각봉(1,462M)은 찾지 못하고 그냥 지나친다.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인 악양면 평사리의 너른 들판이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두개의 바위가 등을 맞대고 서있는 듯한 형제봉(1,115M)에 도착(16:25)
  
잠시 쉰 다음 오늘의 목적지인 벽소령대피소로 향한다.


7.
(17:15)  벽소령, 쏟아지는 별 빛 아래...

  
연하천에서 벽소령까지의 지루한 길을 걸어 도착한 벽소령(1,426M)대피소의
  
빨간 우체통이 나를 사로잡는다.
  
나는 누구에게 마음을 전할까?     두 딸, 아내, 친구, 아니면...
  
그러나 막상 떠오르는 대상이 없다.        "나는 그저 나이다".
  

벽소령의 밤!
  
음력 스무닷새의 밤은 짙은 어둠에 잠겨있고
    
흐린 날씨로 인해 하늘은 그믐달조차 볼 수없고 다만
    
별 하나 만이 희미하게 보일 뿐이다.
  


나는 차마 지리산의 밤을 잠들수 없어 깊은 밤 벤취에 나와 앉았다.
    
고마웁게도 지리산께서 나를 받아들이셨는지
    
그 사이 하늘에는 무수한 별들이 반짝이며 나에게 밝은 빛을 보낸다.
  
나는 반짝이는 그 많은 별들과 함께하며
    
지리산이 품고있는 그 끝없는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는다.

  


산행시간 : 7시간 30분   (09:35 ~ 17:15 )
  

산행거리 : 19 Km + @   (성삼재 ~ 벽소령)

    
배경음악 : 허 설 "바람이 숲에 깃들어"



▣ 어린왕자 - 글 노래 너무 좋습니다.
▣ 길문주 - 여러날 지난 오늘(일요일)에야 산행기를 읽어봅니다. 한마디 한마디 주옥같은 글들이 성삼재에서 노고단과 반야봉을거쳐 벽소령에서 무수한별이되어 반짝거리는군요. 님은 벽소령에 머무셨지만 저는 바로 천왕봉을 향해 떠납니다.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