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일출로 행복했던 지리산 종주 산행(2)


 


언제 : 2004년 6월 13일 날씨 : 쾌청  기온 : 13~29℃


산행 시간 : 5시간 산행 거리 : 9.2km 귀연산우회와 함께


 


<산행 경로(이튿날)>


 










































04 : 20


장터목 대피소 출발


06 : 46


대피소 출발


04 : 49


제석봉


07 : 24


망바위


04 : 58


천왕봉(1915.4m)


07 : 55


소치봉


05 : 08


천왕봉 일출


08 : 10


참샘(아침식사)


05 : 25


통천문


09 : 26


하동 바위


05 : 53


제석봉(1806m)


10 : 04


백무동 도착


06 : 10


대피소 도착



5시간



 


 캄캄한 산장의 밤은 지나는 길손들의 어우러짐으로 밤새 스산하며 부스럭거린다. 엊저녁 임시 회의를 거쳐 본래 가려던 황금능선 종주를 취소하고 백무동으로 하산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황금능선의 산행로가 너무 험하고 또한 산죽 길의 모호함으로 길을 개척하기가 어렵다는 소식 그리고 하산할 때 관리소의 단속이 심하다는 것과 일행 중 두 명의 상태가 매우 안 좋다는 의견으로 천왕봉 일출을 본 후 하산하기로 했다.




 몇 번의 선잠을 잔 후 새벽을 맞는다. 굉장한 바람소리가 장터목산장을 휘감고 천왕봉의 어둠을 세차게 가른다.


 4시 20분 산장을 나서는 모두의 옷차림이 안쓰럽다. 심한 추위로 다들 긴장이 역력하다.


 헤드 랜턴을 켜고 제석봉을 오르는데 저 멀리 진주의 시가지가 환하다. 그리고 어젯밤의 구름바다는 세찬 바람에 밀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다.


 아마도 이런 하늘을 쾌청이라고 기상대는 말한다는데 정녕 하늘은 천왕봉의 일출을 위한 서곡을 울렸나 보다.


 바위 암봉에 걸린 초승달의 앙증스러운 모습도 몰아치는 아침 바람의 기운에 을씨년스럽지만 일출을 맞는 무대로는 제격이다.




 




 


제석봉을 오르니 천왕봉 자락의 봉우리 실루엣이 동쪽에서 솟는 해 기운으로 멋있는 윤곽을 연출한다.


올망졸망 바위들이 연이어진 암릉에는 붉은 서기가 서리고 음양의 조화가 어울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정녕 보기 드문 포커스다.


천왕봉을 넘어 움트는 동녘의 시그널은 하루를 일깨우는 개벽의 경지를 지나 이 높은 남한 육지의 최고봉에 표연히 다가선다.


사람 몸을 가누기 힘든 세찬 바람에 옹기종기 해돋이를 기다리는 모두는 숨을 죽이고 해 오름을 맞는다.


일순간 대지는 숨을 멈춘다. 어둠을 뚫고 붉은 빛깔의 색 퍼짐은 고요와 창조의 파노라마처럼 온 천지에 퍼진다.



 



 



 



 



 



 



 



 



 




 


아!


노란 아니 흰 둥그런 점이 솟는다.


음양의 구분이 저리도 확연할 수 있단 말인가!


무리 지어 산꼭대기에 모인 모두는 또 한번 숨을 멈추고 응시한다.


푸른 창파에 색조의 존재를 알리는 장쾌함이 멋있다.


가슴을 내민다.


우울한 마음과 멋 적은 갈등을 내던진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이 순간 마음속으로 외치리라.


무언가를 가졌다면 이 순간 다 버리리라.


그리고 무소유의 천지를 얻는 일깨움의 순간이어라.




 




 


감격적인 일출은 낯선 모두를 기쁘고 너그럽고 자비롭게 하는가보다. 모두의 얼굴에 미소가 흐르고 내딛는 발걸음에 생기가 돋는다.


일출의 직사광을 받는 지리 능선의 모두가 한 빛 조명에 빛나는 사물이 되어 다가온다.


저 멀리 노고단, 반야봉, 삼도봉, 토끼봉, 형제봉, 덕평봉, 칠선봉, 영신봉 그리고 줄지어 선 만복대, 정령치, 고리봉, 바래봉....


저리도 윤곽과 모습이 분명한 지리 자락을 난 본적이 없다. 아니 보려 애썼지만 언제고 지리산은 저 먼 곳에 있었고 보여 주려 하지 않았다.


이제 그 모든 자락을 내밀고 감추었던 속살을 드리우는 지리산이 밉지 않다.



 




 


제석봉이 광채 빛나는 아침 햇살에 너무 확연히 모습을 보인다. 아니 고사목과 구상나무의 어울림도 길게 드리워진 능선과 너무 조화롭다.


멀리 만복대와 고리봉이 영신봉 너머로 가깝게 다가온다. 산경(山景)의 수려함과 유연함이 천왕봉과 제석봉에서 비로소 극치의 비경임을 알리는 듯 하다.


해발 1,808m의 제석봉은 타버린 숲의 평원에 피어난 자연의 오묘한 신비를 맘껏 보여준다.


이른 새벽의 자연 색깔 조화는 산을 타고 넘는 하나의 자연인인 내게도 나라는 존재가 너무도 보잘 것 없음을 느끼게 한다.


산을 좋아하고 산을 사랑하지만 자연의 품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거짓 없이 보게 됨은 산이 주는 하나의 가르침이 아닌지 자문해 본다.



 



 



 



 



 



 




 


짐을 정리하고 장터목산장을 떠나는 모두의 발걸음이 가볍다. 천왕봉 일출 덕분인지 아프다던 두 사람의 상태도 많이 호전된 듯 하다.


백무동으로 향하는 5.8km의 내리막은 멀고도 길다. 제석봉을 감싸 돌며 하산하는 등로는 지리산 능선을 실컷 조망하는 기쁨도 준다.


고목에 드리운 지리 자락이 숨 가쁘게 밀려온다. 어제와 오늘 달려온 온 산을 모두 조망함이 너무 흐뭇하다.


매양 투덜거림의 대명사였던 지리산 종주가 이처럼 다정하고 정감 있게 마음속에 자리 매김 할 줄은 전혀 예상 못한 일이다.



 



 



망바위는 백무동에서 4.3km, 장터목에서 1.5km에 위치하는데 지리산 능선과 천왕봉을 조망할 수 있는 천혜 지점이다.


건너에 부처를 닮은 바위가 묵직함으로 다가온다. 거칠 것 없도록 확 트인 지리산 능선 자락을 보는 시야가 너무 신난다.


반대편 소나무 앵글 속에서 바라보는 천왕봉의 포커스도 멋지다. 아마도 이런 이유로 망바위라 불려진 모양이다.


실컷 지리 능선과 천왕봉을 쳐다보라고 망바위. 하산 길에 맛보는 두둑한 보너스임에 틀림없다.



 



 



 




 


소지봉을 지나 일행은 한 참을 내려가 참 샘에 터를 잡는다. 누룽지를 끓이고 라면을 삶고 그리고 향기 짙은 커피 대행진.


종주 산행의 말미에서 누룽지와 라면 그리고 커피의 향연은 너무도 근사했다.


지나는 사람들에게 베푼 커피 대접 또한 아름다운 충청도 인심의 맛깔스러움으로 길이 남으리라.


주변을 깨끗이 치우고 하산 길에 보이는 모든 쓰레기를 주워 담는 국가 대표 권투 선수 아저씨의 봉사 정신과 산악인 정신은 자랑스러움으로 다가온다.


저런 긍지와 자부심 그리고 스포츠맨다운 기개가 아들을 국가대표 스키 선수로 키울 수 있었을 것이다.



 




 


출렁거리는 구름다리를 지나 하동 바위에 다다르니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휴일을 맞아 산행객들이 몰려오는 듯 하다.


하동 바위에서 백무동까지는 1.8km인데 계속해서 나무 그늘과 시원한 계곡 물이 흘러 하산이 쉽다.


어울려 대화 나누며 걷는 모두가 즐겁고 여유 있어 좋다. 백두대간의 정신없는 뜀박질 보다 한결 느긋하고 서로를 알고 느끼며 걸음이 행복하다.


백무동은 세석 대피소로 연결되기도 하는데 6.5km의 거리이다. 장터목을 떠나 5.8km의 하산이 참으로 기분 좋다.



 



 



 



어제의 긴 종주와 노고단 일출 그리고 오늘의 천왕봉 일출과 쾌청한 산야에 펼쳐진 지리 능선의 파노라마는 한 동안 뇌리에 남을 것 같다.


좋은 사람들과 같이 걸을 수 있었음에 감사하고, 자연이 주는 지혜로움과 인간이 가지는 여유와 너그러움이 깊이 느껴지는 산행이었다.


서울 친구 마라톤맨을 보내는 모두가 아쉬움에 손을 흔든다. 꼭 내년에는 좀더 훈련하여 태극종주에 동참하고 싶다는 젊음의 패기가 좋다.


마라톤의 경지에 도달하려는 그의 의지도 산행 중 나눈 대화로 충분히 해내리라고 생각해 본다.


남원의 근사하고 풍요로운 장승촌 한식 파티도 산행 후 느껴보는 즐거움의 한 줄이다.



두 번의 일출을 보고 쾌청한 하늘에서 지리산 능선 자락을 맘껏 감상한 이번 종주 산행은 아마도 당분간은 잊기 힘든 좋은 추억으로 기억되리라.


같이 했던 아름다운 인연들이 땀 흘리고 애쓴 보람으로 언제고 함께 하기를 기대해 본다.



 



 



 


아파트 베란다에 핀 석란의 일종인데 3년의 인고 끝에 꽃을 피웠습니다.


행운의 징조 같습니다.


 


 




▣ 지리한 - 3대가 덕을 쌓아야 볼수 있다는 천왕봉일출 ^^ 사진으로만 보아야 한다니....
▣ 산인 - 지리산 종주 축하드립니다 . 여러번 가봤지만 산행기 보고 있으면 가고싶네여 나는 20일갈려고 하는데 일기예보에 비온다고 하네여
▣ 최병원 - 지리한님, 그리고 산인님! 지리산의 모든 것을 다 보여주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대단한 행운의 종주 산행이었던 것 같습니다. 넉넉하고 능선의 부드러움에 매혹되었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