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산행지 : 설악산

2.날 자 : '04.6.11~13(1박3일)

3.코 스 : 오색-대청봉-소청산장-구곡담계곡-수렴동대피소-백담사-용대리

4.산행기

꼭 1년만에 설악으로 갑니다.
1년내내 운동 한 번 하지 않은 몸으로 나서기엔 걱정이 되긴 하나
쉬엄쉬엄 그리고 가장 무난하고 쉬운 코스이기에 설레는 마음으로 미리
허벅지근육을 주무르고 마사지를 해봅니다.

산행준비라고 할 것도 없이 45리터 배낭에 몇가지 담고나니
더 담을 구석없이 꽉 버리네요. 65리터 배낭은 하도 어깨뼈를
으스러지게 만들어서 이제는 처벅아놓고 쓰지 않는데 아쉽긴 합니다.

주말에 산행을 하려고 금요일 아침 일찍 와이프달고 시골집에 갑니다.
도착하자마자 물받아 어머니 목욕시키고 청소하고 파리 때려잡고
점심먹고 올라와 사무실 들러 간단하게 일 정리하고
집근처 치과로 달려갔는데 시간반이나 기다려서야 꽁무니로 차례가 옵니다.
치과에서 시간을 너무 잡아먹어 시장봐 들어가 저녘먹으며
배낭을 꾸리려니 마음이 더 바쁩니다.

설악산 신령님 뵈러가는 길 깨끗이 닦고 가야겠기에
찬물샤워를 하고는 집을 나섭니다.
강남터미널 상가에 있는 큰처남 가계에 들어 짐을 부립니다.
일행이 모두 다섯명이라 기다리는 시간에 생맥주를 한 잔 두 잔
하다가 네 잔인가 다섯잔을 마십니다.

버스 출발전에 두 번이나 소변보러 들락거렸지만 찔끔거리고 맙니다.
속으로는 걱정이 태산이 됩니다.
아니나다를까 터미널 주차장을 빠져나올 때부터 걱정이 현실이 되어갑니다.
속초가는 버스들이 쉬는 소사휴게소까지는 시간 반이 걸립니다.
처음에는 느긋하게 담담하게 버텨보지만 신갈에서 영동고속도로로
올라서부터는 방광이 부풀어오르고 이천휴게소지나고나서는
온 몸이 긴장으로 꼼짝 못할 지경에 다다릅니다.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밤하늘은 까만데 노랗게 보이고
누가 손가락만 톡 건드리면 바로 터져버릴 절대절명의 순간에
소사휴게소에 들어간 버스에서 뛰어내려 주차장 울타리쪽 주차된 트럭옆에서
허리띠를 풀었습니다. 그치지 않고 나갑니다.
하도 기막힌 순간을 지났는지라 버스옆에 주저앉아 한 대 피워물었는데
한숨이 절로나고 아랫배에 퍼지는 아리한 쾌감이 아마 오르가즘 비슷했을까요.

새벽 세시경에 속초터미널에 내렸고 컴컴한 대합실에 들어가
누가 뭐라고 약속하지도 않았는데 다들 긴의자 한개씩 차지하고
누워 잠을 청합니다.
소리소문없이 모기들이 몸에 침을 놓고 갑니다.

여섯시에 매표소 창구가 열리고 첫차타러 나온 사람들이 들어서기 시작합니다.
우리일행도 자리 걷고 나와서 양양가는 버스에 오릅니다.
양양터미널 근처 식당에서 아침끼니를 때웁니다.
오색가는 버스가 여덟시에 출발합니다.

오색주차장에 내려서 산행매표소까지 오르막길 길가 가계 좌판에 나온
막걸리에 눈이 갑니다. 산행주 한 잔 해야겠는데 또 있겠지 했지만
매표소부근엔 아무 것도 없습니다.
화장실에서 짧은 반바지와 민소매 옷으로 갈아입고 산행준비를 마칩니다.

아홉시, 매표소 철망문을 들어서서 설악의 품안으로 발길을 내딛습니다.
오색매표소에서 제일휴게소까지 오르막길은 매우 된 길이라
숨이 턱에 닿도록 힘들지만 초반끝발을 한 번 내보며 경사길을 치고 오릅니다.
양쪽 허벅지 근육이 자꾸 뭉치려들어 틈틈이 주무르며 걷습니다.

날씨, 산행 이틀동안 한마디로 끝내줬습니다. 지리의 천황봉과 설악의 대청봉에서
이렇게 맑고 좋은 날은 년중에 손으로 꼽히는 날인데
골짜기마다 선들바람까지 불어주고 가스도 다 날아갔는지 지평선이나 수평선이나
모두 끝까지 다 보입니다.

오색에서 오르는 길 건너편에는 점봉산 능선이 올라 있습니다.
그 매끈하고 깔끔한 능선이 군살 하나 없는 미끈한 각선미의 여신(女身)같아
넋을 놓고 감탄을 해봅니다. 참 예쁘게 잘도 빠졌구나.
제일휴게소에서 일행을 모아 놓고 오이로 입을 축입니다.
두번째 휴식처인 설악폭포까지 다시 부지런히 올라가 봅니다.

목욕재계까지 하고 나선 산행길이라고 설악산 신령님이 잘 봐주신
덕분인지 오르막길에 불어주는 바람은 한여름 에어컨 바람 못지 않습니다.
설악폭포에 도착해서는 아예 발까지 벗고 바위위에 눌러앉아
이 기막히게 맑고 좋은 날을 위해 소주 한 잔씩을 돌립니다.
설악폭포는 큰 수영장에 있는 슬라이더 같아 위에서 앉아 미끄러지면
좌악 미끄러져 내릴 것만 같습니다.

제이휴게터를 지나면서 고도감이 느껴지고 점봉산 산줄기가 아래로
내려가며 전망이 조금씩 넓어집니다.
뭐라고 표현할 길이 없을만큼 파아란 하늘과 푸른 숲 산야가
파노라마처럼 흘러가고 가슴엔 감격이 물결집니다.
제 흥에 겨워 오르막길에서 반대쪽으로 자리바꾸며 오르다가 그만
무시기가 쾅하고 머리를 사정없이 때립니다.

별이고 나발이고 아무 생각도 안들고 멍하니 서 있어야 했네요.
쌀집아 일일구 불러라 아무래도 머리가 터진 것 같다,
주절을 떨어보지만 다행하게도 머리통이 깨지진 않은 모양입니다.
엄청스레 굵은 나무에 박았더군요.

경치구경하느라 정신을 놓고 있는데 대청봉을 눈 앞에 두고
화채능선방향으로 난 이정표 끄트머리 뾰족한 모서리에 또 박았습니다.
대못에다가 머리통을 들이밀며 박은 듯 심한 통증이 느껴집니다.
그러든 말든 숱하게 박아가며 살아온지라 그런 정도로는 머리통이
부서지지는 않습니다.

천지사방에 더 높은 곳이 없는 대청봉에 올랐습니다.
정말 이보다 더 말끔할 수는 없을 겁니다.
사진기는 이 기막힌 풍경을 한 번에 담아내지 못하지만
우리네 가슴엔 동해바다 너머 너울거리는 신령님 옷자락도 보일 듯 담깁니다.
그래도 다녀간 흔적을 남기기는 해야겠지요.
일행의 카메라에 대청봉 표지석과 함께 한 컷을 찍습니다.
장쾌하게 흘러가는 서북능선에 자꾸 눈길이 더 갑니다.

자 이제 그만 내려가볼까요. 사람들이 발자국마다 흙먼지가 일어나고
콧구멍이 막힐정도로 흠뻑 들이마시며 뒷덜미를 따라갑니다.
중청산장 평상에는 어느 산악회 배낭들이 질서정연하게 모셔져 있습니다.
무데기로 쌓아놓은 것 보다는 보기가 좋더군요.

쌀집은 먼저 소청으로 향하고 우리는 뒤에서 내려오는 일행을 기다립니다.
높은 곳 바람이 쌀쌀해서 반바지와 민소매 벗고 긴바지와 반팔옷으로
갈아입었습니다. 윈드자켓까지 걸쳐야 조금 덜 춥습니다.
중청에서는 내설악이 더 가까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멀리 속초시내 건물 하나하나가 다 뚜렷하게 보입니다.

소청으로 내려오는 길 쪽은 조금 더워서 오버자켓을 다시 벗습니다.
소청에는 소청산장 따님이 음료와 간단한 기념품을 팔고 있습니다.
허연 대낮에 산행을 마무리하고 소청산장에 내려와 자리를 잡습니다.
꽁지머리 소청산장 아드님이 막걸리에 감자전을 먼저 내놓습니다.
소청에서 마시는 동동주맛은 평지에서 마시는 맛과는 견줄 수가 없습니다.

어찌 하다보니 옆자리 아줌마들과 합석이 되어 버렸습니다.
오십전후인 아줌마일행은 모두 네 분인데 일행이 다 도착해서
차린 밥상은 정말로 푸짐했습니다.
이틀전 방태산에서 뜯었다는 곰취에 족발과 새끼갈치를 얹어 먹어보니
참으로 별미입니다. 내가 참 맛있게 먹는다고 아줌마 한 분이 따라 합니다.

소청산장의 도토리묵, 곰취에 직접 만든 도토리묵으로 담백하게 무치는데
한 접시로는 입맛을 당해내지 못하여 더 시켜먹게들 됩니다.
하여간 아줌마들 밥상과 우리일행 술상이 겹하여 초저녘에 맛 갈 만큼
마셔버렸습니다.

날이 어둑해지고 소변을 보려고 저 쪽 화장실가기 귀찮아
주인들이 쓰는 본채에 딸린 변소를 찾아들어갔습니다.
아직껏 색안경을 쓰고 있어서 더 컴컴했던 모양입니다.
구멍이 안보여 딴에는 끌어당겨 몸쪽으로 바짝 붙여서 쐈지요.
시원하게 볼 일 보고 나와서 다시 술상머리 앉으며 언뜻 발을 보니
이런 망할, 왼쪽신발이 흥건이 젖어있고 오른신발도 어지간히 젖었습니다.
기껏 맨신발위에다 쏴 붙였던 모양입니다.

꽁지 빠지게 배낭을 찾아가 샌달로 갈아신고 오줌에 젖은 신발은
바깥바람에 말르라고 내놓고 다시 술상으로 갑니다.
얼근하게 마시다가 어느 순간 파장하는 것 같았고 방으로 들어가
퍼져버렸습니다.

새벽에 쉬가 마려워 깨긴 했는데 일어나기가 싫어 꼼지락꼼지락거리다가
겨우 일어나 나왔습니다.
역시 아줌마아저씨들은 부지런해서 꽉 찼던 산장은 벌써 텅 비었습니다.
산행내내 우리 일행의 막내 비슷한 나이또래 젊은 친구들은 볼 수가 없습니다.
일백퍼센터 아줌마아저씨들만 만납니다.
우리 일행은 맨꼬래비로 아침밥을 해먹습니다.
아침굶고 고생한 기억에 꾸역꾸역 배 찰 때까지 퍼먹습니다.

주인아주머니, 늘 알게모르게 챙겨주시는 고마운 마음에
꾸벅이 고개숙여 인사드리고 봉정암길로 내려섭니다.
중간쯤에 아래에서 올라오는 아줌마들속에서 "야 웬수 만났네"하는
반가운 인사말이 들립니다.
간밤에 같이했던 씩씩한 아줌마분들이 봉정암에 내려가 예불하고
아침공양까지 하고 올라오는 길이랍니다.
비선대로 내려가는 분들이라 악수하며 잘 가시라고 인사하고 헤어집니다.

봉정암에서 배낭내려놓고 앞마당 물가에서 큰 국자그릇으로
배가 불룩하게 물을 마십니다. 간밤 술이 갈증을 심하게 내는 모양입니다.
카메라 든 아우와 용아릉 초입까지 올라가 봅니다.
울쑥불쑥 솟아오른 용아장성 릿지능선이 끔찍하게 이쁘더군요.
언제나 저 놈 등짝을 한 번 밟아볼까요.

자 이제부터는 길고긴 구곡담골짜기를 내려갑니다.
바닦에 숨어있던 물줄기가 나타난 곳부터 쉬어쉬어 갑니다.
아우가 사 넣은 마가목주(소청산장 특산품) 맛은 역시 꿀맛입니다.
몇 번을 쉬었는지 하여간 적당한 물가만 보이면 배낭 내려놓고
한 잔씩 찌끄립니다.

백운동계곡이 내려오는 폭포서껀 천불동의 매력과는 또다른
구곡담의 정취가 한 잔 술에 더불어 온 몸으로 퍼집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설악신령님의 은혜로 바람불 것 같지 않는
골짜기에 선들바람이 불어 땀을 식혀줍니다.
쉴 때마다 계곡물에 머리를 처박고 땀을 닦아냅니다.
그 기분, 상쾌하다고밖에 말로 못하지요.

수렴동대피소에 자리를 잡고 이른 점심에 여정을 녹이는
술 한 잔에 아우들과 이런 저런 살아가는 얘기를 늘어놓아봅니다.
며칠전 용아릉에서 뛰어내렸다는 여자 몸 찾으러 나선 산악구조대원들
모습도 보입니다. 어디 벗어놓았다는 신발만 찾았다하네요.

수렴동대피소에서 조금 나오면 마등령 오르는 갈림길과 만나고
거기서부터 백담사나오는 길은 고속도로입니다.
따가운 햇살이 찌르듯이 내려오지만 기분은 역시나 짱입니다.
백담산장 조금 못 미쳐서 물가에 앉아 마가목주로 목을 축입니다.
일행들에게 물세례도 던져주고 발 벗고 물놀이를 하니
피로가 싸악 가시는 느낌입니다.

백담산장부터 발길에 속도를 부쩍 올립니다.
주차장 나가는 버스타는 곳에서는 줄서기해야 되니 나르듯이 걷습니다.
버스를 둬대 보내고 앞줄에서 여유있게 자리를 잡고 나옵니다.
주차장에서 내려 용대리까지 걸어서 나옵니다.
너무 따가워 모자를 꺼내 씁니다.

길고 가장 평범한 설악이었지만 어느 때보다 선명한 설악과
이쁘고 아름다운 우리 강산을 구경했습니다.
용대리 정류장에서 우리 일행은 또 버스 뒷자리를 점령합니다.
오래도록 머리와 가슴에 남을 끝내주는 설악의 한 그림을
담아서 돌아왔습니다.

이상.


▣ 임산 - 여보게 친구! 어지간이 마셨네 그려
▣ 권경선 - 소청산장에 마가목주 보고만 왔는데 다음엔 꼭~ 잘 보고 갑니다. 안산, 즐산 하시길.....
▣ 운해 - 아름다운 경치에 취하고 술에 취하고 아줌마들에게 취하고 삼취 하셨으니 신선이 따로 없네요.고생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