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오악 중의 하나인 감악산에 간 날은 서울의 최고 온도가 섭씨 32도로 예보된, 맑고 한여름을 방불케 하는 무더운 날인 6월 3일, 목요일이다. 8시 10분에 집을 나와서 8시 15분에 정의여중앞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여 의정부북부역으로 가는 13번 버스를 기다린다. 10분 후인 8시 25분에 온 버스를 타고 9시경에 의정부북부역 버스 정류장에 내려서 바로 그 자리에서 5분 정도 기다리니 적성행 시외버스가 온다. 운전기사에게 범륜사 입구로 간다고 말하니 2200원을 누른다. 버스카드로 차비를 지불하고 자리에 앉으니 버스는 의정부를 벗어나 양주를 거쳐서 파주로 간다. 감악산 근처까지 오니 군인들을 싣고 이동하는 트럭들과 검문소들의 살풍경한 모습이 눈에 띤다. 이 곳이 휴전선에 인접한 곳이기에 그럴 수 밖에 없으리라.


정확히 한 시간 후인 10시 5분에 범륜사 입구인 설마교 앞에서 하차한다. 식사를 하지 못 하고 와서 간단한 식사를 하려고 하니 오분 정도 더 내려가야 간단한 식사를 파는 음식점이 나온다. 보리밥으로 한끼를 해결하고 다시 범륜사 입구로 와서 매표소에 도착하니 벌써 50분이 지난 10시 55분이다. 일천원의 입장료를 지불하고 등산로로 올라 서니 시멘트로 거칠게 포장한 가파른 경사의 도로가 기다리고 있다. 이 길을 구불구불 돌아서 올라가다보니 몇분도 채 안 돼 무더위로 인해 벌써 온 몸에 땀이 밴다. 한참 올라가다보니 범륜사 못미처에 운계폭포로 내려가는 안내판이 보인다. 호젓한 오솔길을 내려가니 수풀에 가려 등산로에서는 있으리라고 상상조차 하기 힘든 외진 곳에 높이 수십 미터에 달하는 운계폭포가 나타났지만 최근에 비가 내리지 않아서 수량은 풍부하지 않았다. 사진을 찍고 다시 올라와 가파른 포장도로를 좀 더 올라가니 범륜사가 나온다.



범륜사 못미처의 외진 곳에 자리잡고 있는 운계폭포.


일단 불유각에서 목을 축이려고 호스에서 감질나게 졸졸 흘러 나오는 약수를 바가지에 받아 마시니 미지근한 탓에 물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다. 물을 저장해 둔 후에 호스를 통해 흘러 나오게 하는 것이라서 미지근할 수 밖에 없단다.



범륜사의 약수터인 불유각 - 물을 저장했다가 호스로 흘러 나오게 하는 탓에 물맛이 미지근하다.


대웅전 좌측으로 들어가니 동양 최초의 백옥석 관음상이라는 명물이 보인다. 1995년 중국에서 한국과의 수교를 기념하여 선물한 것으로서 좌대만 4 미터이고 관음상의 신장이 7 미터라는, 희귀한 불상이었다. 백옥석 관음상 주위에는 역시 백옥으로 만든 듯한 십이지상이 도열해 있고 통나무가 25억년 전에 화석이 됐다는 목화석도 놓여져 있다.



제법 당당해 보이는 범륜사의 대웅전.



1995년, 중국에서 선물한 동양 최초의 백옥석 관음상



열두 띠 등을 상징하는 범륜사의 십이지상.



25억년 전에 통나무가 화석이 됐다는 목화석.


이 진귀한 세가지 물건에 매료되어 보고 또 보고 한참 시간을 지체하다가 계곡길로 들어선다. 울퉁불퉁한 바윗길을 한참 올라가니 숯가마터가 나오고 이어서 잡초가 무성한 묵은 밭이 나온다. 묵은 밭을 지난 직후에 등산객들이 쉬어 갈 수 있게 만들어 놓은 만남의 숲에 나무 벤치들이 설치돼 있는 곳이 나타난다. 잠시 앉아 쉬다가 그 곳에 설치돼 있는 방향표지판대로 좌측의 까치봉으로 올라가는 오솔길로 올라간다. 몇분 정도 올라가니 삼거리가 나오고 이후로는 능선길이다. 서북능선이라고 말하는, 가장 북쪽에 위치한 능선이다. 가끔 길이 끊어지는 듯한 부분도 있었지만 바위를 넘으면 다시 길이 보였다.


한참 능선길을 올라가니 전망이 좋은 바위가 있다. 그 곳에 올라가 산봉우리들과 임진강을 조망해 보고 있으려니까 까마귀 한 마리가 날아 와서 근처의 나뭇가지에 앉아서 부리로 연신 나뭇가지를 쪼아댄다. 잔 나뭇가지들은 여지없이 부러져 나가고 굵은 나뭇가지는 그대로 있는데 수십번씩 신경질적으로 그런 동작을 반복한다. 저 강한 부리에 쪼이면 사람도 살점이 떨어져 나가리라.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 좀 더 먼 나뭇가지로 옮겨 앉아서 나뭇가지들과 잎들에 가려 사진 찍기를 포기했는데 뭔가 잘못 먹었나보다. 바위 위로는 더 이상 길이 없어서 바위 밑으로 내려가서 주위를 살피니 등산로가 보인다.


길이 끊어지는 듯한 부분의 한 곳에 다다라 바위를 오르니 여기가 까치봉이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이 때가 오후 1시 10분경. 구부러진 소나무들이 바위 속으로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운치있게 고고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사진을 몇장 찍고 잠시 쉬다가 다시 올라가기 시작한다.



감악산의 서북능선상에 위치한 까치봉.



감악산으로 오르기 전에 뒤돌아 본 까치봉의 모습.


전방의 산답게 산의 군데군데에 참호를 파 놓았다. 그리고 간간이 포성이 들린다. 군부대가 배치된 산에서는 산행 중에 약방의 감초처럼 항상 들리는 소리가 이런 포성이나 총성이다. 이런 곳에서 터를 잡고 사는 산짐승들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저지른 죄과를 이 죄 없는 짐승들도 함께 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곳에서는 예민한 짐승은 살지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소음에 무신경해야 이런 곳에 적응해서 살 수 있으리라. 낮에 포성이나 총성이 들리는 산에서는 다른 산들보다 특히 더 야간 산행을 자제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산의 주인은 사람들이 아니라 이 곳에 터를 잡고 일생을 보내는 산짐승들이다. 군인이나 등산객은 일시적인 체류자에 불과하다.


까치봉을 지나서 십여분간 올라가니 수십평 정도 될 듯한 평지 위에 나무 벤치 두개가 설치돼 있고 꽤 조망이 좋다. 이 곳에서 잠시 쉬다가 다시 올라가니 까치봉에 오른 지 삼십분 만인 1시 40분경에 감악산의 정상에 당도한다.


감악산 정상에는 오랜 세월의 비바람에 마멸돼 글씨를 알아 볼 수 없는 몰자비가 있다. 과연 이 비석의 주인공은 진흥왕일까, 파주 적성 출신으로 당나라 장수가 된 설 인귀일까?



전쟁시, 유탄의 흔적만 뚜렷한 몰자비.


날씨가 맑아서 조망은 좋지만 저 멀리 임진강 너머에는 거무스레한 스모그의 띠가 더 먼 조망을 방해한다. 볼 수만 있다면 갈 수 없는 북한 땅을 조망해 보고 싶은데...


임 꺽정봉으로 내려가는 곳에는 해발 675 미터라는 정상표시석이 설치돼 있다. 임 꺽정봉으로 가 보니 전문산악인이 아니면 오르기 힘든 임 꺽정봉 아래에 까마득한 낭떠러지가 있고 그 낭떠러지의 바로 옆에 나 있는 바윗틈으로 일 미터 정도마다 매듭을 한 굵은 로프가 내려져 있다. 임 꺽정이 관군의 추격을 피해 숨어 있었던 굴이라는데 내려가기엔 제법 위험한 곳이라서 위에서 사진만 찍기로 했다. 사진을 찍으려고 해도 낭떠러지 앞으로 내려가야 했는데 상당히 위태로움을 느꼈다.



약간 삐딱하고 왜소해 보이는 정상표시석.



임 꺽정굴을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



임 꺽정굴의 바로 위에 우뚝 서 있는 임 꺽정봉의 위용.


임 꺽정봉을 뒤로 하고 걸어 가니 범륜사로 내려가는 길과 부도골로 내려가는 길이 표시돼 있다. 부도골이란 신암리로 내려가는 길인데 신암리로 내려가는 길에서 되돌아 본 감악산의 조망이 좋다고 하여 계획대로 신암리로 내려간다. 길이 험해서 등산로를 찾아서 이리저리 헤매다가 길 같은 길을 발견하고 내려가는데 그 길에는 등산객이 한 사람도 없고 낙엽이 두텁게 깔려 있어서 뱀이나 말벌집을 밟을까 걱정이 됐다. 그리고 경사진 비탈의 흙에 뱀 한 마리가 통과할 정도의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을 여러번 발견했다. 바윗틈에도 구멍이 뚫려 있는 곳이 많았다. 포성이 점점 가까워지고 등산로는 제대로 정비돼 있지 않아서 가끔 사람들의 발자국은 발견됐지만 아무래도 계속해서 미련스럽게 내려가다가는 낭패를 볼 것 같다. 이삼십분간 낙엽이 두텁게 쌓인 길을 조심스럽게 내려가다가 아무래도 예감이 좋지 않아서 다시 오던 길로 되돌아 올라간다. 제대로 된 등산로까지 다다르니 아주머니가 걸어 가고 있다. 감악 약수터로 가는 계곡길을 물으니 자신을 따라 오란다. 결국 부부의 하산길에 동행이 됐는데 너덜지대인 계곡길보다는 흙길인 비탈길이 더 내려가기 좋다고 해서 비탈길로 함께 내려간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 계곡길로 내려가지 못 한 게 후회가 된다. 다시 한번 가게 되면 계곡길로 올라서 감악 약수의 물맛도 보고 신암리로 가는 길을 제대로 파악해서 그 길로 내려가든지 까치봉이 있는 서북능선으로 내려가든지 해야겠다.


비탈길의 무른 흙을 밟으면서 내려오다보니 묵은 밭이 나타나고 곧 이어 숯가마터가 나온다. 그리고 범륜사 못미처의 주차장에서 부부의 차를 함께 타고 가다가 중간의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고 헤어지고 5분도 안 돼 도착한 25번 버스를 타고 의정부북부역까지 간다.


의정부북부역에서 13번 버스로 갈아 타고 집에 오니 여섯시경. 때이른 폭염에 노출된 양팔은 벌겋게 데어서 약간 쓰라리기도 하다.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워 빙과를 한개 깨물어 먹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어 깨어 보니 밤 10시다. 늦은 저녁을 라면으로 때우고 맥주 세 병을 사서 냉동실에서 동결 직전의 상태까지 한 시간 정도 얼렸다가 섭씨 0도에 가까운 상태로 마시니 시원하기 그지없었다.


 


 




▣ 운해 - 법륜사의 진귀한 화석과 시원한 폭포수 그리고 진흥왕과 설인귀의 햇갈리는 비석 잘 보고 갑니다. 줄산 하시고 건강 하시길 기원 합니다.
▣ jhpark - 신암 저수지로 가는 길은 정상에서 내려가다가 다시 임꺽정봉으로 오르기 직전에 왼쪽으로 빠지는 길이 있는데 바로 그 곳입니다. 신암 저수지에서 버스정류장까지 약 40분 걸리는데 한적한 시골 풍경이 아주 매력적이더군요. 영국군 전적 기념비가 있는 감악산 유원지에서 신암 저수지에 이르는 감악산 종주 코스도 아주 매력적입니다. 사진 잘 보았습니다.
▣ 이강복 - 네. 그럼 정상에서 내려가서 처음 나타나는 방향표지판에서 왼쪽으로 가는 길인가요? 그 곳에서 신암리까지 내려가는데 난해한 코스는 없는지요? 그리고 영국군 전적기념비는 어디쯤에 있는지요? 인터넷상에서도 위치가 제대로 설명돼 있지 않아 답답하네요. 수고스러우시더라도 상세히 설명해 주셨으면...
▣ jhpark - 영국군 전적 기념비는 가족 나들이로 좋은 통일공원안에 있으며 323번 지방도로변에 위치합니다. 25번 적성행 버스를 타서 법륜사에서 아마 두-세번째 정거장이 될 듯 하니 혹시 기사분에게 재차 확인하여 보십시요. 법륜사 다음 정거장이 감악산 휴게소인데 이쪽 코스도 괜찮지요. 신암리 하산길은 정상에서 내려서서 임꺽정봉 바로 못 미쳐 왼쪽으로 빠지는 길입니다. 길이 다소 복잡하게 얽혀인 듯 하나 길을 잘 따져서 내려 가기만 하면 됩니다. 신암리 하산길은 호젓하고 평탄한 길이어서 사색하기에 매우 좋습니다. 즐산하시길 바랍니다.
▣ 이강복 - 감사합니다. 다음에 다시 갈 기회가 있을 때에 그 코스로 가 보겠습니다. 그리고 운해님도 건강하시고 즐거운 산행을 계속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