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2004. 9. 5 ()

  

  

  


비계산에 갔었다.
산보삼아 ...
대구에서 비계산은 지척이 아니던가?
항상 지나면서 위압적으로 가로 막던 느낌,그리고 영동 주행봉같은 그런 산세의 유혹으로 ..
그리고,
길을 잃었다.
만만하게 보여 계속 위로만 위로만 올라갔었다.
엄청나게 고생을 했다.
그동안 원거리 산행을 같이한 아내를 위로하고자 가뿐히 나선 비계산 산행이 두려움과 공포.. 고생..
하지만 고생도 즐기면 그뿐,
실제 공포와 두려움은 아내의 몫이었고 난 즐기기만 하였는데...
빤이 밑의 휴계소가 내려보이는 산행길에 길이 아니면 또 어때서.
산행은 어쩌면 도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하루의 도피.  
그곳에 올라, 아니 오르면서, 이 인생여정의 굴곡을 펴 보자고 무슨 생각을 할수있단 말인가?
그저 끙끙거리며 올라 잠시머문 산정.
그곳에서 바라보는 세상에서, 잠시 우월감을 느끼고, 다시 내려와 제자리에 서면 밀려온 인생살이의

숙제가 덤까지 보태어져 
바둥거려  지는것.

  

대구에서 8:30출발.
거창휴계소 오른편 쉼터옆 철문으로 나와 산길을 오른다.
바로 두갈래길, 읶힌대로 왼쪽길로 가니 다시 두갈래...  왼편길을 가야하는데 그만 ..
오른쪽길로 들어섰다.
새로 생긴 묘지를 위해 넓힌 길인것도 모르고.
묘지터 지나니 10년은 사람이 다니지 않은것 같은 희미한 길이 보인다.
그곳으로 간다.
아내는 돌아 가자 한다.
송이버섯이 갑자기 생각났다.
아무도 없는 소나무 짙은 산길.  이곳에 송이가 있으리라. 발밑이 천혜의 송이밭으로 보인다.
오르면서 이곳 저곳을 스틱으로 파헤쳐 본다.
그러나, 어디에도 송이는 없다.
이제 돌아 내려가기에는 서로가 다 싫다.
길이 없어졌다.
원래가 길처럼 보이지 않았는데, 그래도 틈같이 보이던 나무사이의 빈틈이 없어진 것이다.
멧돼지...
비게산 멧돼지 이야기는 익히 들었었다.
솔잎과 낙옆이 쌓이고, 쌓이고, 또 쌓여 발이 푹푹 빠지는 산길. 급경사 오름길..
그곳부터 멧돼지가 있었다.
어딘지도 모르고 오르는 산길에 멧돼지가 온 산을 파헤쳐 놓았다.
쌓여있던 낙엽밑에 먹이라도 있었던가?
한두마리의 소행이 아니다. 아내가 두려워한다. 파헤쳐진 자리도 시간이 지난 것이아니고 금방 헤친

자국이다.
어디에선가 이놈들이 공격준비를 하고 있는것 아닐까?
짙은 숲 어둠속으로 우리를 노려 보는듯한 눈이 보이는것같다.
할수있는일이라곤.. 아내에게 혹 비상시에는 나무에 뛰쳐오르라고 이르고(?) 지팡이의 연결지점을

더 꽉 조인다.
그리고 다용도 칼을 꺼내어 가장긴 나이프를 열어놓아 베낭 옆 포켓에 끼워놓았다.
멧되지가 길을 내어 놓았다.
온통 거친 산길을 자기들이 주 통행로로 이용하는곳이 다행이 윗쪽으로 되어있었다.
주둥이로 길을 온통 파헤치며 낸길이라 여간 걸어 올라가기가 힘들지 않다.
어느순간 멧돼지 길도 끊히고 너덜지역이 되어버려 이리저리 엉킨 숲속에서 다시 멧돼지길(?)을 찾느라 30분이상헤맨다.
온 몸, 팔은 긁힌 자국 투성이다.
아내의 공포는 극에 달했다.
컴컴한 숲속. 길은 잊은지 오래.주위엔 온통 멧돼지 자국...
그 두려움 속에서도 구원의길은 멧돼지가 지나간 길로 밖에 갈수밖에 없는상항..
잠시 앉아 쉬자고 하여도 아내는 앉지 못한다.
119에 전화라도 해보라고 한다.
허풍삼아 이야기하면, 모르는 산이 없을 정도로 오랬동안 같이한 산길중에 때때로 길도 잃고 했지만,
이렇게 당항하는 모습은 처음본다.
관심을 돌려본다.
산삼으로 ...
산신령님이 일부러 우리를 이리로 유도한것이라고,
산삼줄려고.. 일부러 그것 비슷한 것의 뿌리를 컈어본다.
아내가 4조 경계하는 가운데,
아니네.  설사 산삼이 앞에 있어도 알아야..
9시30분쯤에 휴계소에서 출발해 오른 산길. 12시 10분..  윗쪽을 보니 이제 하늘이 가득 보여 능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멧돼지의 공포에서 벗어난 듯한 장소,  아내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그렇게 무서웠어? 남편이 있는데도..
아내가 이야기한다.
멧돼지는 사람이 아니잖아.
사람같으면 살려달라고 빌기나 하지...   그렇구나 짐승앞에 엎드려 살려달라고는 빌지는 않지.

  

능선이다.
어딘지는 모르나 아득한 오른쪽 끝에 비계산 정상이 위용있는 모습으로 솟아있다.
저 아래 거창휴계소가 보인다.
우리가 그렇게 헤매며 올라왔던 길은 어딘지는 모르나 어느등선의 하나일것이고 ..
능선길은 참으로 좋다. 어느산 어느 능선길도 마찬가지이지만.
흐릿한 기분에 하늘을 보니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진다.
개이치 않는다.
...비내리는 날은 갇혀서 사랑하고...
아내가 무슨 소리냐고 묻는다.


아침이면 제가 창을 열겠습니다.
우리들의 아침을 맞고 따사로운 햇빛을 만드는 일은 제가 하겠습니다.
밤마다 창을 닫는 일은 당신께서 하셔야 합니다.
우리를 어둠에서 지키고 새벽을 기다리는 일은 당신이 해 주십시요.
비내리는 날은 갇혀서 사랑하고,
눈내리는 날은 헤매며 사랑하겠습니다.
그러노라면 여름도 가고 가을도 가겠지요.
차곡차곡 개어놓은 세월이 모이면
우리들도 이루어 놓은 것들이 있으리라
저는 믿고 있습니다.


한수산의 <해빙기의 아침>에 나오는 글을 읊어준다.  아내는, 오래된것이네요. 라며 끄덕인다.

능선길을 30~40분정도 가니 정상이다.
정상전에 밧줄잡이를 조금해야 하지만 별 문제없다.
정상에 앉아 베낭에 있는걸 다 꺼집어 내어놓는다.
일동막걸리 조껍데기술를 얼음물통의 물을 비우고 넣어서 흔든다.
이 시간에, 이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
느긋한 오찬이다.
가야산의 화롯불같은 모습이 선명하다.
주위의 조망이 일품이다.
시원한 바람이 지나간다.
인연을 이야기할때 <겁>을 이야기한다.
<영겁>의 인연이라느니.. 하면서,
가로, 세로, 높이가 15Km정도의 바위를 1년에 한번닦아 다 닳아 없어지는것이 한<겁>이라는데.. 
그런 인연의 무한대 배수인 사람과 이 산정에 앉아 잠시 인생의 오욕을 잊어보는것, 그것이..
바로,
행복 아닐까?
인생의 남은날이 산날보다 적을것같다는 생각이드는 나이에서 느껴보는 작은 생각이다.
서정주님의 싯귀가 스친다.


...청산이 그 무릅아래 지란(芝蘭)을 기르듯
  우리는 우리 자식들을 기를 수 밖엔 없다.
  목숨이 가다가다 농을 쳐 휘어드는
  오후의 때가 오거던...


오후..
나도 지금 오후라는 생각이 든다.
아둥바둥 살아온 날들의 그 인생의 오후..
무심한 시간들이 때론 한없이 그립지만 어이하리..

  

돌아가는길은 쉽게 길을 찾아 죽 내려가면 그만이라는 생각에 정상에서 느긋하게 있다가 되돌아간다.
오는이 가는이.. 아무도 없다.
조용한 산..
왔던길로 되돌아간다. 계속 왼편으로 나 있을 내려가는길을 찾으면서..
그러나, 아까 올라 왔던 지점까지 왔는데도 내려가는 길이 없다.
자꾸 간다.
돌무더기를 쌓아올린 봉우리가 있는 산도 지나친다.
계속 간다.
아까의 올라 왔던 악몽이 되풀이 될것 같다는 생각이 슬슬 든다.
예감이 점점 맞아 들어간다.
잘보이지도 않는길이다.
능선길이 내리막이 계속된다.
아내가 부른다.
이쪽이 내려가는 길 같다고.. 보니까 능선을 벗어나 왼쪽으로 내려가는 길 비슷한게 보인다.
능선으로 어딘지도 모르는곳으로 가기보담 그래도 휴계소쪽이 있는곳으로 가야할것같아 이상한 표정의 아내를 달래 왼쪽으로 내려간다.
그런데..
조금 내려가니 또 길이 없어졌다.
어쩔수가 없다. 그냥 우격다짐으로 내려간다.
조심한다고 해도 찔리고 긁히고 미끄러지고..
오를때와 같이 멧돼지가 만든 길의 도움을 얻으면서.
한참..
또, 한참을 유격하듯이..
차소리가 가까이 들린다.
조그맣게 흐르는 물줄기를 만난다.
베낭을 집어던지듯이 벗어놓고 세수를 한다.
그리고,
툭 튀어 나가니 바로 고속도로다.
갓길을 걷는다.
다른곳으로 갈길이없다.
한참을 걸어 휴계소에 도착하여 차를 보니 반가운 마음이 앞선다.
시계를 보니 5시 15분 ..
3시간 만에 산행끝내고, 온천까지 마치고, 대구 도착하여 되지국밥 한그릇 사먹고, 집에서 느긋하게

있을 이 시간까지, 
장장 8시간을 빤히 보이는 저 산자락에 숨어 헤매고 있었던 것이다.

저 산 어느골짜기에서 멧돼지일가족이 우리를 쳐다보고 있는것 같다.
우리가 당신을 초대했는데 놀라게 해서 미안하다고 ...
아차,
그렇구나 !
저 산의 주인은 우리가 아니고 저들인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