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92 환종주<종> 영남알프스(금오산-구천산-만어산-산성산)

            

                                                          2007. 04. 29. (일) 맑음


 

                                                               산사랑방 홀로


 

                                             떠날 수 있는 산이 있어 행복했던 마지막 구간 


 



                                                             ▲금오산에서 바라본 천태산과 그 너머 무척산

 

 

산행경로


06:00 배태고개 -산행시작-

07:00 매봉(755m)

08:00 조망이 좋은 765봉

08:20 약수암 안부(520m)

08:35-08:45 약수암(식수보충)

08:55-09:05 금오산

10:00 땅고개(용소소류지 옆)

10:45-11:00 구천산

11:40 상봉령

13:00-13:20 만어산

13:35-13:50 만어사(식수보충)

14:05 만어현

14:10 영축지맥 청룡산 갈림길 불난 지역

16:25 산성터

16:35 임도(묘지에 장의자가 있는 곳)

17:00 산성산

17:35 살내마을 활성강변집 -산행종료-


 

알바구간 : 구천산에서 10분 / 만어사에서 5분


 


 

총 산행시간 : 11시간 35분 / 약 23km


 

교  통 : 꼭지(아내)의 차량지원을 받음

차량이동경로 : 1시간 30분소요(서대구-삼량진-배태고개)


 


 



                                ▲산행 안내도1 (배태고개-금오산-구천산) 원본지도는 "세월"팀에서  발췌하여 편지한 것입니다.


 



                                    ▲산행 안내도2 (구천산-만어산-산성산-살내활성강변) 노란선은 등로주의 구간입니다. 

 


 


 

동행


 

오늘 진행하는 실크로드 마지막 4구간은 원동 배태고개에서 밀양 산성산까지 약 23km에 이르는

비교적 짧은 거리지만 들머리와 날머리가 끝과 끝이라 꼭지의 차량지원을 받아 이동한다.

4시30분에 대구를 출발해 삼량진I.C를 빠져나와 삼량진역에서 1022번 원동방향 지방도로를 따라

배태고개에 도착하니 아침 6시, 불과 1시간 30분만에 도착한 것이다.

신부산고속도로가 생기기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시간이다.


 

06:00고갯마루 공터에는 승용차 한대가 주차해 있고 한분의 산꾼이 이미 산행준비를 하고 있어

반갑다는 인사를 드리고 등산화 끈을 조이며 산행준비를 한다.

조심하라며 염려하는 꼭지와 아쉬운 작별을 하고 산문을 향해 걸음을 옮기니

이미 세상의 시름은 한발 한발 내딛는 발걸음에 묻혀져가고 새로 돋은 연한 잎들 사이사이로

아침의 엷은 햇살이 투명하게 스치고 있다.

길게 심호흡을 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오늘도 자연과 하나가 된다.


 

지난3구간 때는 진달래가 활짝 피어서 꽃길을 열어주더니만 오늘은 그 자리에 산철쭉이 대신 반겨준다.

이렇듯 산은 사철 늘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아름다운 향기를 뿜어낸다.


 

경사도가 심하지는 않지만 아직 몸이 풀리지 않아 헉헉거리다 잠시 바위에 걸터앉는다.

빵 한 조각 입에 넣으며 숨을 고르고 있으니 조금 전에 보았던 그분이 올라온다.

반가움에 어디까지 가시느냐고 물으니 만어산에서 삼량진으로 하산하신다고 한다.

‘만어산“이란 말에 귀가 번쩍 뜨여 “혹시 실크로드 하십니까?” 하고 물으니 영축지맥 중이시라 한다.


 

우연히 처음만난 분이었지만 서먹하지 않아 스스럼없이 이야기가 통했고

배태고개에서 금오산구간은 미답지라 불안감도 있었지만 갑자기 마음이 든든해진다.

이분과는 이렇게 인연이 되어 만어산을 지나 영축지맥 청용산 갈림길까지

무려 8시간을 함께 동행하게 된다.


 



                                                                              ▲특별한 조망이 없는 매봉


 

 

 

                                ▲765봉까지는 시원한 바람속으로 1시간여 별 고도차 없이 부드러운 낙엽길이 이어진다.

 


 

매봉에는 별다른 조망이 없고 돌탑에 매직으로 매봉755m라 표시해 놓았다.

이곳에서 1시간거리에 있는 765봉까지는 평균고도 700을 유지한 채 계속 부드러운 낙엽길이

이어지고 가끔은 능선을 넘나드는 시원한 바람이 땀을 식혀주어서 좋다.

서로가 걸음이 비슷하여 보조를 맞추며 산에 대한 여러 얘기들을 나누다보니 발걸음조차도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듯 조용하고 가벼워진다.


 

철마다 다르게 피어나는 야생화와 엉덩이가 하얀 고라니와 산짐승들..

그 중에서도 바로 앞에서 멧돼지와 조우해 서로 대치했던 긴박한 순간의 얘기를 들을 때는

스릴 넘치는 그때의 상황이 생생하게 그려지기도 했다.

홀로 산행을 하면서 동행자가 지리산에서 추위와 싸웠던 이야기를 들을 때는 가슴이 뭉클했고

영남알프스에서 서로가 겪었던 산행이야기,

요즘 새로 부각된  태극대종주에 대한 이야기들은 765봉에 도착할 때 까지 끊어질 줄 몰랐다.


 



                                                                              ▲765봉에서 바라본 토곡산 방향


 

 

 

                                                                  ▲금오산과 그 아래 아담하게 위치한 약수암


 

 

 

                                   ▲중간안부로 당고개가 보이고 가야할 구천산과 만어산, 우측 끝으로는 작게 산성산도 조망된다. 


 

 

 

                                                    ▲765봉의 로프구간. 우회로가 없으므로 선택의 여지가 없는 곳이다.

 


 

765봉 아래쪽 암릉에서 오늘 처음으로 조망이 트인다.

바로 건너편에는 약수암과 그 약수암을 아담하게 감싸고 있는 금오산이 손짓하고

좌로는 멀리 토곡산과 실크로드마루금인 염수봉과 뒷삐알산, 안전산이 희미하게 조망된다.

암봉에서 직벽의 로프구간을 내려서야 하는데 좀 위험할 것 같아

우회로를 찾아보아도 우회로는 없다.

잠시 망설이다 그냥 내려서니 바위가 미끄럽지 않아 생각보다 쉽게 내려온다.


 



                                                                          ▲물이 좋아서 이름도 약수암


 

 

 

                                                                  ▲약수암 마당에서 펼쳐지는 탁 트인 조망

 


 

물이 좋다고 이름 붙여진 약수암에서 식수를 보충하고는 앞을 바라보니

막힘없이 펼쳐지는 아름다운 정경에 넋을 잃는다.

승학산과 정각산, 그 뒤로 멀리 중산과 용암봉으로 이어지는 실크로드 마루금도 시야에 들어온다.

분명히 명당임에는 틀림없다는 생각이 든다.

 


 


 

몸도 취하고 마음도 취하고


 

약수암에서 10여분 걸음을 재촉하니 오늘 최고의 조망을 자랑하는 금오산이다.

금오산은 동서남북 막힘이 없어 파도처럼 겹겹이 밀려오는 산그리메에 몸도 취하고 마음도 취한다.

지나온 765봉과 가야할 구천산, 그 아래 상봉령과 만어산, 오늘의 종점인 산성산까지 조망되고

바로 앞으로는 천태산이, 그 뒤로는 무척산이 그리고 멀리 토곡산까지 아른 하다.

거기다가 안태호의 푸른 물빛까지 가슴을 시원하게 적셔주니 쉬 자리를 뜨지 못한다.


 



                                               ▲건너편 바위 두개 보이는 곳이 천태산, 그 뒤쪽 우측은 무척산


 

 

 

                                                  ▲지나온 765봉과 나뭇가지사이로 멀리 운문산, 우측으로 재약산과 천황산


 

 

 

                                                         ▲지나온 실크로드 마루금인 염수봉과 뒷삐알산방향

 


 

09:00 금오산에서 잠시 휴식하고

암봉을 내려와 첫 임도를 지나고 두 번째 임도가 당고개로 기억되는데

마루금은 좌측으로 이어진다. 직진은 가래봉방향이므로 주의를 요하는 구간이지만

지금은 구천산방향으로 길이 더 반질반질하여 주의를 기울이면 알바를 하지 않을 것 같다.

작년에 홀로 이 길에서 아무생각 없이 직진하다 가래봉으로 빠져서 무려 왕복 2시간을

알바한 곳이기도 하다.


 



                                                       ▲삼량진 하부발전소 댐인 안태호와 우측은 구천산


 

 

 

                                               ▲가야할 구천산과 상봉령, 그리고 만어산과 멀리 산성산까지의 조망

 


 

늙수레한 당산나무가 홀로 외롭게 있는 땅고개를 지나 조금 오르다가

실크로드 무박종주팀 지원 나오셨다는 광주 J3광회원님을 만나 한참동안 이야기를 나눈다.

종주팀은 금요일 밤에 비학산을 출발해서 오늘 9시에 배태고개를 통과했다고 하는데

광주에서 그 먼 길을 지원 나온 산우님의 우정이 참으로 보기가 좋아 보인다.


 

조금 더 진행하니 길이 양쪽으로 두 갈래가 나오는데

우측 길은 만어산으로 바로 가는 정상적인 마루금이고 좌측은 구천산으로 오르는

길 같아서 그것을 확인도 할 겸 동행자와 같이 좌측 길로 들어선다.

길은 계곡사면으로 붙다가 능선안부에 도착, 안부에서 마루금은 다시 우측으로 붙는다.

곧 조망 없는 헬기장이 나타나고 리본 따라 좌측으로 오르니 구천산인데 생각보다 조망이 좋다.


 



                                                                               ▲구천산에서 바라본 금오산


 

 

 

                                                                      ▲구천산에서 동행과의 달콤한 휴식


 

 

 

                                                           ▲가야할 우측 상봉령의 고갯마루와 만어산

 


 

구천산은 마루금에 벗어나 있지만 후답자분들은 꼭 들러보기를 권하고 싶다.

정상석은 없지만 암릉사이로 펼쳐지는 조망이 좋고 소나무그늘아래서 잠시 쉬어가기도 좋은 곳이다.

구천산을 내려서면서 그만 아무생각 없이 직진하다보니 하산 길로 빠지고 말았다.

오늘 처음으로 알바를 한 셈이다.

다시 치고 오르며 땀깨나 흘리고 나서야 정상적인 마루금에 붙어 만어산으로 향한다.

 


 


 

만어사의 설화와 ‘여보! 사랑해’ 바위


 

13:00 만어산에는 문종수님이 이름붙인 ‘여보 사랑해’ 바위가 눈길은 끌고

통신기지국너머로 산성산까지의 S자로 이루어진 마루금이 선명하게 다가온다.

시간도 늦었는지라 시원한 그늘에 앉아 동행자와 함께 점심을 먹으며 또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지금까지 동행했던 분이 ‘5일만에 오른 지리산 천왕봉’ 이라는 산행기를 올린

‘달빛소리’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산행기는 지리에 대한 무언가 특별한 산행기여서 기억에 남았던 것이라 더욱 반가웠다.

산꾼은 언젠가 산에서 만난다는 진리가 입증된 셈이고

동행자와의 인연은 이렇게 다가온 것이다.


 



                                                          ▲문종수님이 이름붙인 만어산 ‘여보 사랑해’ 바위


 

 

 

                                                                  ▲만어산에서 바라본 삼량진 방향


 

 

 

                              ▲만어산 통신기지국에서 바라본 S자모양으로 이루어진 산성산까지의 마루금과 우측의 칠탄산

 


 

46년 김수로왕이 창건했다는 만어사에는 고기가 변했다는

돌너덜이 끝없이 펼쳐져 장관을 이루고 있는데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있다.


 

옛날 동해용왕의 아들이 목숨이 다한 것을 알고 무척산의 신통한 스님을 찾아가

영원히 살 수 있는 새로운 곳을 마련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스님께서는 가다가 멈추는 곳이 인연이 있은 곳이라고 일러주자 왕자는 길을 떠났고

이어 수많은 고기떼가 그 뒤를 따랐는데 왕자가 머문 곳이 바로 이곳 만어사라고 한다.


 



                                                          ▲고기가 변한 것이라는 만어사 어산불영魚山佛影


 

 

 

                                                           ▲왕자가 변한 것이라는 미륵돌이 모셔져 있는 만어사 미륵전

 


 

그 뒤에 왕자는 큰 미륵돌로 바뀌었고 수많은 고기들은 크고 작은 돌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왕자가 변한 설화속의 미륵돌은 미륵전에 보관되어 있으며, 돌너덜의 어산불영(魚山佛影)

수많은 고기들이 변해서 된 것이라 하여 만어석이라 부르며 두드리면 종처럼

맑은 쇳소리가 난다고 하여 종석(鍾石)이라고도 부른다.


 

나도 돌로 변해 여기서 영원히 살아볼까?

‘그래도 저승보다는 이승이 좋다고 했으니..’ 하기야 아직 가야할 산도 많고..

갑자기 그 생각을 하자 꼭지가 기다리는 집이 그리워진다.


 

식수를 보충하고 만어사입구 임도에서 우측 임도길로 올라야 하는데

바로 직진하다보니 또 마루금을 놓치고 말았다. 할 수 없이 주능선으로 붙기 위해

5분여 가시덤불을 헤치며 오르니 사진에서 많이 본 만어현이라 그때서야 안도의 한숨을 쉰다.


 



                                                                                           ▲만어현

 


 

만어현을 지나 5분여 진행하니 불난 지역이 나오고 이곳에서 좌측은 영축지맥 청용산 갈림길이다.

이제 달빛소리님은 청용산방향으로 가야하고 나는 산성산으로 가야한다.

이별의 순간이다.

그 긴 시간을 함께했는데..


 



                                                         ▲영축지맥 청룡산과 산성산 갈림길인 불난 지역


 

 

 

                                                                                 ▲산성산 가는 길..

 


 

아쉽지만 또 만남을 기약하며 헤어짐의 악수를 나누니 괜스레 외로움이 밀려온다.

둘이서 사진이라도 한 장 찍어둘걸..


 

산성산가는 길은 짙어가는 녹음사이로 노란 송홧가루가 묻어나는 포근한 낙엽길이다.

가끔은 서늘한 바람이 능선을 휘어 넘으며 땀을 식혀주니 더욱 걷기가 편안해 진다.

산님 두 어분을 만난 것 외에는 인적이 없으니 정말 호젓한 산행이 아닐 수 없고

군데군데 J3와 세월팀의 리본이 걸려있어 길 잃을 염려 또한 없어 안심하고 진행한다.


 

때로는 이리저리 숲 속으로 고사리도 꺾으며 천천히 진행하다보니 자시산성터가 눈길을 끈다.

좌측으로는 넓은 분지가 형성되어있고 습지와 물도 보인다.

산성터를 내려서니 임도가 나오고 잘 다듬어진 묘지 옆에는 장의자가 설치되어 있어

잠시 앉아 쉬고는 걸음을 옮기니 산성산까지 20여분 편안한 솔숲길이 이어진다.


 



                                                                     ▲자시산성터에서 바라본 지나온 만어산


 

 

 

                                                      ▲묘지와 장의자.. 그리고 산성산까지 편안하게 이어지는 솔숲길 


 

 

 

                                                         ▲조망은 산성산아래 팔각정에서 시원하게 펼쳐진다.


 

 

 

                                            ▲산성산 팔각정자에서 바라본 실크로드 들머리인 남기리 정문과 비학산

 


 

꼭지(아내)가 날머리인 활성강변을 찾기 힘들 것 같아 남기리 정문에서 만나기로 하고

산성산을 내려와 활성강변집에서 20여분 걸으니 3월 18일 그 첫발을 디뎠던 남기리 정문이다.

꿈의 ‘실크로드’ 를 마감하는 순간이다. 처음 시작한 곳으로 되돌아온 것이지만

우리네 인생은 처음으로 되돌릴 수 없지 않은가.

감회가 새로우면서도 알지 못 할 허전한 기운이 전신을 엄습 하였으나

꼭지의 환한 얼굴을 대하니 잠시의 상념들이 눈 녹듯 사라진다.


 

       - 끝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