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산 천성산 (내원사 끼고돌기)


어또 비가 올려나 허리가 많이 아픕니다.
긍께 지난달 만삭인 아내가 집에만 쳐박혀 있지말고 개구리 반찬은 질렸다며
 뭐 입맛다실 간식이래두 구해 오라기에 아내의 잔소리에 등떠밀려 기지개 한번
켜고 이내가 퍼져가는 어스럼 초저녁에 사립문 밀치고 나섰더니 샛골 주막 화사
댁이 윤이 번질거리는 허벅진 몸을 꼬으며 은근히 추파를 던집디다.


마침 싱싱한 고기가 들어 왔는데 감홍주에 육회나 들고 가라며 ..
댓바람에 신침이 스르르 고이며 목젖이 민망할 만큼 껄떡이지만 부른배를 안고
표독스런 눈시울을 세운 아내를 생각하며 애써 참습니다.
억새골을 지나 노송이 바위와 잘 어우러진 범잔바위골에서 잠시 흐르는 땀을 닦으며
쉬는데 불시에 서너명의 인두겁들이 들이 닥칩니다.


어찌나 놀랬던지 죽을힘을 다해 옆의 싸리나무 숲으로 뛰어드는데 그중 한놈의
걸걸한 소리가 가슴을 철렁케 합니다.
"어쭈 저놈봐라.."   
그놈의 말이 들리기가 무섭게 마치 허리에 삼척 장검을 맞은듯 섬뜩 하더니 불로
지지는듯한 옹골찬 통증이 밀려와 정신이 아득해 지는데 워낙 경황이 없어 숲으로
몸부터 숨기고 보니 인두겁 한놈이 시커먼 쇠몽둥이를 들고 이리저리 숲을 헤치고
있읍니다.


한참을 뒤지던 인두겁은   "허 그놈 아깝네 . 통통 하던데 .."
어쩌구 씨부렁 거리며 일행을 쫓아 아래로 사라집니다.   그놈이 가고도 한참이나 있다
일어나 나올려니 허리가 부러졌는지 도통 굴신을 못하겠읍디다.
급한대로 산죽 한줄기 꺾어 부목이랍시고 허리에 대어 칡넝쿨로 대강 수습을 하고
겨우겨우 집으로 기어드니 멀쩡하던 서방이 반병신이 된걸 본 아내는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하고  혼백이 하얗게 떱디다.


불불이 부황과 찜질을 다스린다, 율무기 영감께 댓진을 얻어 개어바른다, 급기야는  뼈
부러진데 좋다는 똥물까지 약이라 속여 퍼먹이던 아내는 복장을 치며 넉장거리로
포달을 떨다가 눈에 새파란 독기를 내뿜더니
"이 원수를 내몸이 탕이되고 섶산적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꼭 갚겠다" 며 비리발광을
합디다.   그날 이후 만삭의 아내는 복수를 하겠노라고 진종일 인두겁을 쫓아 숲을 헤치고
다닙니다.


죄없이 초주검이 된 저역시 인두겁에게 맺힌 한이 하늘에 닿았는지라 굳이 말리려 들지도
않습니다.
참 글구보이 여태 내가 누군지 얘기를 안했네 . 내는 내원사가 빤한 천성산 자락에 사는
흔히 인두겁들이 지에미 잡아먹는  천하의 패륜아로 지칭되는 독사 살초시 올습니다요.
제아내가 성질이 보통내기가 아니니 산길 조심하고 제발 보신이다 뭐다해서 함부로 살생
들 그만 좀 하쇼...잉..


토요일 .
장모님 모시고 처가엘 왔다.
은근히 곁과 가지산- 영취산 종주가 소망 이였으나 과부 치마속 알샅 마냥 애만 달구고
윤허가 없어 그럼 만만한 천성산이나  밟자고 한식경을 꼬드기고 주무른 뒤에야 측간 앞에
사돈 마난 놈처럼 거북히 앉았던 곁이 겨우 가마고 응낙을 한다.


흥이 난김에 자겠다고 앙탈을 부리는 곁을 포박해 포장마차로 압송해서는 노릿하게 구운
고등어 자반에 소주 곁들여 닭이 두어홰를 칠때가 좋이 될때까지 술잔을 기울인다.
달빛에 심불산의 웅자가 통쾌하고 처서를 지난 바람살은 이제 가을 이라고 불러도 무방 하렸다.
가뭄에 콩나디끼 한잔씩 마신 술에 인사불성이 된 곁은 저녁을 싸래기밥으로 드셨는지
말끝마다 반말로 주사 쇰직하게 혀부러진 소리를 내어 놓지만 이밤의 운치를 막기엔 여력이
부족하더라.


일요일 아침.
머릿속에 태풍이 몰아 친다는 곁과 물과 사과 두어알을 집어 넣은 걸망 두러메고 내원사 매표소로
향한다.
술도 깰겸 해서 매표소 바로 위에서부터 걸어서 내원사로 올라간다.
가을이 가까운 탓에 계곡을 흐르는 물은 몸살이 일정도로 깨끗하고 투명하다.
술덜깬 부부는 경사도 거의 없는길을 오르면서도 열걸음에 한번씩 쉬면서 주독의 단련을 받는다.


한참을 오르려니  내원사의 당우가 뵈기 시작하고 해우소만 구경하고는 곧장 내쳐 오르나 맘뿐
도통 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결국 일각도 채 오르지 않아 계곡에 퍼질러 앉아 노닥거리며 세월을 잊는다.
사과 한알로 원기를 돋우어 또 길을 재촉해 보지만 여전히 길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계곡을 옆구리에 끼고 오르는 길은 오른편으로 골짜기를 따라 휘어지더니 얼마 안가 왼편  능선
사면 급경사로 올라 붙는다.


밧줄이 설치된 너덜 동생뻘 쯤 되는길을 염천에 학질 앓는놈 마냥 죽기를 한사하고 오르니
보다못한 곁이 그만 돌아가자며 너덜거리는 서방놈을 걱정한다.
하지만 작년에 한번 숙취로 실패를 본 처지인지라 똥 줏은 개 꾸짖듯 곁을 나무라고는 사력을
다해 오르니 곁도 더는 군말없이 따라온다.
그런데 천만의외에도 된비알을 올려치니 의아심이 들정도로 완만하고 순후한 길이 정상으로 물결친다.


바짝 뒤따르던 곁이 꼭 와본듯 눈에 익은 길이라며 반색을 하기에 옜닐 얘기 한토막으로
간을 맞춰준다.
려말 창왕 시절 어름, 내원암에서 정진하는 비구니 한분과 해인사에서 수도하는 젊은 수좌가
초파일 연등회에서 우연찮게 만나 불같은 사랑을 못이겨  파계하고는 가더도로 도망쳐 따비를
일구고 남새밭을 가꾸며 오순도순 살았는데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당시 창궐하는 왜구의 손에
그만 참혹하게 피살되고 말았다.


유계를 떠도는 불쌍한 혼을 불타께서 가엾이 여기시고 600년 후에 다시 세속 부부의 연을 잇게
해주셨으니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일레라.
그 비구니 스님의 법명이 정순이고  해인사의 젊은 수좌는 맹익 달천 스님이시니  당신이 곧 고려의
정순 스님이니 어찌 자신이 수도한 이산을 모르겠는가 하며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니 곁은 그저
웃기만 한다.


중간 중간 솟아있는 전망 바위에서 쉬면서 두손 맞잡고 오른길이 정상까지 수월하게 닿는다.
로프를 잡고 오른 정상은 앞의 원효봉과 함께 골골이 우거진 절경의 계곡을 내다보는 재미가  여간
쑬쑬한게 아니다.
원효봉 정상엔 역시 군 시설물이 시선을 가득채워 마음이 유쾌하지 만은 않다.
사과 한알 꺼내어 둘로 동개어 나눠 먹고는 원효산은 다음을 기약하고 매표소 입구까지 떨어진다는
대원사 앞 긴 능선을 따라 내려선다.


안적 고개로 빠지는 낙동정맥을 지나쳐 전망이; 좋은 바위틈새의 로프를 잡고 내려서면 편편하고
부드러운 능선이 아래로 아래로 달음질쳐간다.
워낙이 골이 좋고 산세가 뛰어난 탓에 좌우 갈림길이 수시로 나타난다.
아름다운 능선은 한참을 내려서도 고도계가 별로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고저의 차이가 적다.

 

내원사 갈림길 이후부턴 한층 인적이 뜸한길로 바뀌더니 종내는 간간히 리번만 보일뿐 사람이라곤
저하고 나 둘뿐인 무주공산으로 숙연해진다.
꾼들의 왕래는 적으나 길은 뚜렷하고 적당한 거리에서 나타나는 전망대 또한 탁월해 산행의 재미가
더한층 탁월하다.
위협적인 암봉을 내려서는 길(대략 정상에서 1시간 거리)만 조심 한다면 무엇하나 부러울게 없는
아름답고 황홀한 능선이다.


가을철 만산 홍엽을 골골이 구경 하려면 단연 이길이 압권이리라 .
떡시루 같이 널찍한 사거리 안부에 떨어지니 인적없는 길을 염려하는 정순스님의 걱정이 아려
왼편 내원사 계곡길로 내려선다.
여태 조용하던 산중 모기떼가 악다구니 처럼 달려들어 길을 성가시게 하는데 갑자기 곁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자지러진다.    힐끗 돌아보니 붉그스레 짤막한 몸통의 불모사가 곁을 스치는데
허리춤에 지자포를 맞았는지 생채기가 제법 큼직하다.


폭우로 이지러진 길은 아예 길 자체가 없어지기도 해 잠시 머뭇거리기는 했으나 패인곳을 따라
내려가도 길잃을 낭패를 볼만한 곳은 없으므로 그리 어려운 구간은 아니다.
담배  두어죽을 태울참에 이러 저아래 계곡물 소리 청아하더니 곧바로 옥류교 위의 간이 주차장이
설핏하다.
내원사 계곡엔 수많은 차량 인파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시공을 건너뛰여 또다시 내원사를 내려서는
정순 스님은 내년에 아이들 데리고 꼭 오자며 아쉬운맘을 숨기지 않는다.


큰비가 올려는지 먹구름이 까맣게 하늘을 뒤덮었고 서늘한 바람이 소리를 지르며 달려든다.
뿔당골 서마지기 논이 이 비를 이겨 낼수 있을런지....


                    2004년 8월 29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