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산은 경상북도 봉화에 위치한 도립공원으로
산세가 수려하고 험하여 영암 월출산, 청송 주왕산과 함께
우리나라 3대 기악으로 알려져 있으며
산 아래엔 낙동강이 굽이쳐 휘돌아 가고

36개의 봉우리와
특히 의상봉을 비롯하여 육육봉(12개의 봉우리)
12개의 대(臺)
8개의 굴이 있고
역사적으로도 유서가 깊은
청량사(유리보전과 응진전), 청량정사(오산당), 김생굴, 의상봉, 공운대, 독서대,
이현보 신도비, 공민왕산성터 등과 같은 유적지가 산중 봉우리와 골
여기저기에 남아 있다.

청량산은 최치원, 김생, 의상, 원효, 이우, 이황, 공민왕 등 같은
선인들이 찾아와 수도를 한 곳으로도 유명하며
그 얽힌 사연을 아직까지도 전해 주고 있다.

특히 퇴계 이황 선생의 경우엔 글로
다음과 같은 <청량산가>를 남겨 청량산의 아름다움을
극적으로 표현해 주었는데 극찬이 아닐 수 없다.

"청량산 육육봉을 아는 이 나와 백구(白鷗)
백구야 훤사(喧辭)하랴 못 믿을 손 도화(桃花)로다
도화야 뜨지 마라 어주자(魚舟子) 알까 하노라"

청량산이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고 데리고 다니던 백구와 단둘이만 알고 있자 했을까.
문제는 저 도화, 강물에 떨어져 흘러가게 되면 필시 어부가 육육봉을 알아보고..
소문내어 세상에 퍼질게 뻔한데...하며 걱정을 하였다.

청량산가에 나오는 육육봉(六六峰)은
주봉인 의상봉(장인봉)을 비롯한 외장인봉, 선학봉, 자란봉,
자소봉,탁필봉, 연적봉, 연화봉, 향로봉, 경일봉, 금탑봉, 축융봉 등
12봉우리를 말하는데
이들은 모두 바위병풍을 두른 듯 높은 대(臺)처럼 우뚝 솟아있는
기암괴봉인 것이 특징이다.


청량산 주능선

마치 신이 밖으로 내어놓은 수석 같다.
사람의 두개골처럼 산을 두 개로 가르는 청량골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크게
두 산으로 나뉘는데
북쪽 산엔 축융봉, 공민왕당, 청량산성등이 있고
남쪽 산엔 청량사와 의상봉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유적지와 암봉들이 이곳에 산재해 있을 뿐만 아니라 등산로도 이곳을 중심으로 되어있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곳을 찾게 된다.

괴봉들을
주능에서 바라보면
얼핏 회청 같기도 하고 흑회 같기도 한
빛깔을 띠고 있는 것이
마치 대형 선인장을 심어 놓은 것과 흡사하다.

암봉을 오르며
가까이 가서 바위나 절벽을 쳐다보면 또 한번 특이한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다른 곳에선 발견하기 힘든 광경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청량산을 이루고 있는 암석의 구조가 마치 콘크리트 구조물을 타설해 놓은 것처럼 동글동글한 자갈들이 바위에 가득 섞여 채워져 함께 굳어 있다는 것이다.
지질학적으로 보면 변성암의 일종인 역암으로 자갈이 많았던 이곳에 용암이 분출하면서 함께 굳으며 생성된 것이라 하는데 청량산의 이 기암과 절벽은 모두 용암분출에 의해 생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집 근처의 산이 아니고서는
오고 가는 도로 중간에 많은 시간을 허비하게 되고
정작 산행에 들이는 시간은 그리 넉넉지 아니함이 대부분 사람들의 실정이다.
나도 예외는 아니어서
미리 산행을 준비하고 등산로를 확정해 놓지 않으면
산 정상을 밟기란 여간 어려운 것은 아니다.
우리네 사는 것이 다 이러하지 아니한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준비하고 또 준비하고...
그렇지 아니하면 이룰 것이 없다는 것.


등산코스안내도 <- 크게 보려면 클릭 하세요

아내와 함께 나선 청량산행은 인터넷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신중히 설정했는데 등산안내도에 따라
입석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입석→응진전→청량정사→청량사→연화봉→뒤실고개→자란봉→
의상봉 정상→자란봉→연적봉→탁필봉→자소봉→김생굴→금탑봉→
응진전→입석』

코스를 선정했으나 막상 집에서 가장 가까운 도로를 통하여 접근하다보니
영양군 재산면을 지나 안동방향의 청량산 입구로 들어서게 되었다.
들어서자마자 난관에 봉착했는데...

밀가루를 덧씌워 놓은 듯한 눈과 얼음이 도로 위에 하얗게 깔려있었다.
하는 수 없이 산 초입인 비탈길가 한자리에
차를 세우고 돌을 고인 후 시멘트 길을 따라 산행을 시작하였다.
또 등산로에 나와 있지도 않은 길로 들어서 독도를 해가며 낯선
걸음을 옮기는 것이다.
아내는 지난주 한 번 혼났던 경험이 있는 터라 이렇게 낯설고
험한 길을 좋아하는 나를 탓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게다.

푸념 섞인 말을 들으며 올라선 곳은 정확한 지명인지는 모르겠으나
예쁘게 단장된 간이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는 절개지의 고갯마루
일명 물티재, 혹 지산재라고도 하고 얼음골이라고도 하는지 모르겠다.

무작정 임의의 독도를 해가며
우측 능선 빨간 리본이 몇.. 눈에 띄는 희미한 길을 따라 오르니
수북히 쌓인 갈참나무 낙엽들이
발에 밟히며 바시락 거리는 소리가 귀에 멍할 정도다.
건조기가 한창인지라 이파리들이 마를 대로 말라 누군가 불을 지펴주기만
한다면 활활 타오를 태세다.

초행인데다가 등산지도에 나와 있지도 않는 위치에 서 있으니
앞길이 막연하다. 단지 확신 하나만을 믿고 능선을 따라 가는 것이다.
설령 가 닿는 곳이 목적지가 아니더라도 후회는 하지 않을 것이다.
연필꽂이처럼 허술하게 성을 두른 잡목 숲에 갇혀 이렇게 앉아 보는 일,
싸리문처럼 열리는 길.
듬성듬성 패인 골들과 그 안 수북히 쌓인 낙엽을 밟는 일,
턱 까지 차 오르는 숨과 목 줄기로 흐르는 땀, 이 고요의 소리가 어찌
편안하지 않다 하겠는가.

걱정과 불안은 사라진다.
아직 시간은 많고 해도 저리 따스하게 내리쬐고 있지 않은가.
앙상한 가지만으로 내 눈에 보이는 무릉의 암봉을 어찌 가린단 말인가.

경일봉에 닿아야 정확한 등산로를 알 것 같았다.
그러나 막상 경일봉 가까이에 다가가자 다른 암봉이 우측에서 유혹을 한다.
탁립봉...
유혹 당하고야 말았다.
경일봉임을 짐작하고 철쭉 가지들을 헤치며 나아갔으나 길은 희미해지고 결국 천길 낭떠러지 앞에서 끝났다.
뜻하지 않게 탁립봉의 벌거벗은 앞가슴을 보고 말았으니 이 얼마나 행운이 아니겠는가.

등산로 표시가 되어있는(경일봉이라 짐작되는) 봉우리에서 시작되는 능선은 길이 좋다.
사람들이 이미 다져 놓아 낙엽의 미끄러움도 나뭇가지의 거들척거림도 없다.
'누구든 뒤 따라 가는 길은 이처럼 쉬운 법이다.'

그 유명한 경일봉과 자소봉, 탁필봉, 의상봉이 일렬로 보이는 이름 모를 암봉 위에서
아내를 앞세우고 사진을 찍는다. 풍경사진도 아니며 인물사진도 아닌...
「나 여기 다녀갔소」하는 확인증서(?)다.
때론 고생의 보람은 이런 확인증서를 통해 훗날 자부심이나 용기를
느끼게도 해 주는 것이다.


자소봉

자소봉 풍경과 청량산이 내려다보이는 곳, 의상봉 정상과
응진전 풍경을 사진에 담았다.

밧줄이나 돌쩌귀 나무를 잡으며 크게 암벽을 오르내리는 곳이 많다.
특히, 고소공포증이 있는 아내로서는 자소봉 앞 암봉의 오르내리막 암벽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두려움과 싸워야 했다.
수직으로 높이 선 자소봉, 탁필봉(형제봉)의 정상으로 오르는 가파른 계단길,
뒷살고개에서 자란봉을 거쳐 의상봉에 이르는 크게 돌아 오르내리는
힘들었던 밧줄길은 오히려 그녀에겐 쉬워 보이는 듯했다.

얼마 전 이곳을 다녀간 후
며칠을 근육통에 절룩거렸던 직장동료들이 생각났다.
「무엇이든 사람은 평소에 단련되어 있어야 한다.」

자소봉, 탁립봉, 탁필봉, 연화봉 등은
그야말로 솟대처럼, 선인장처럼 우뚝 선 바위 봉우리이고
의상봉, 자란봉, 경일봉, 연적봉, 금탑봉 등은 벼랑 위에 황토와 숲 벙거지를 쓴 형태의
봉우리들이다.
자소봉(840m)은 남근석 혹은 탄두형이다.
넓은 전망대를 방불케 하는 대가 만들어져 있고 두루 산세를 볼 수 있도록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으며 큰 바위 한 개와 큰 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다.
이곳에서는 드높은 마루금으로 이어진..
장군봉과 일월산이 멀리 바라다 보인다.
탁필봉(820m)은 두 개의 갈라진 솟대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정상에 올라보면
여자의 젖꼭지에 올라선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탁필봉




청량산의 정상인 의상봉은 해발 870.4m로 의상대사가 수도하던 곳으로
사방이 절벽으로 된 마치 암벽이 추켜 들어올린 형상의 원주 200m의
황토로 덮인 원형의 큰 산봉우리이다
.
사람 키 높이의 돌탑 하나와 표지판, 작은 정상표석이 세워져 있다.

의상봉에 오르기 전에 있는 자란봉은 아무 표시가 되어있지 않으나
의상봉과 흡사한 그런 형태의
벼랑을 허리띠처럼 두르고 있어 의상봉과의 사이에 벼랑으로 된
협곡을 만들어 놓았다.
그래서 의상봉으로의 접근이 그리 만만치 않을 뿐만 아니라 밧줄을 타고
크게 돌아 내렸다가 다시 사태난 습곡을 통해 높이 올라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뒤실고개에서 청량사로의 하산은 경사진 사면을 따라 이어지는데 우측으로
연화봉 절벽과 연하여 있고 정면으로 금탑봉이 보인다.
통나무로 단을 낸 후 흙으로 평평하게 메워 다진 계단..
해는 서쪽으로 기울어져 가고...
내려선 길,

청량사는 풍경소리가 요란하였다.
차가운 바람에 부딪쳐 산중에 사는 모든 중생들의 잠든 의식을 깨우기 위해 급하게 울리는 타종소리 같았다. 삼각우총과 이 절의 대웅전 격인 유리보전이 일직선 상에 위치해 있고 그 옆으로 갓 단장한 듯한 당우들과 전각들..그리고 그아래 종각루와 굴뚝연기가 모락모락 오르는 황토건물 하나가 눈에 띈다.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가을
9월 말이 되면 사방 절벽과 암봉으로 둘러쳐진 산장 안
고즈녁이 자리잡은 청량사에서는 산사음악회가 매년 개최된다고 한다.
올해 이 소식을 듣고 한번 찾아오려 했으나 10월인 줄 알고 있다가
그 기회를 놓쳐버린 나였다.


청량사

가파른 골 깊숙이 자리한 이 아담하고 아름다운 산사.
신라 문무왕(663년) 원효대사가 창건한 조계종에 속한 고찰이지만
상상했던 퇴색한 창호와 단청..등 고색찬연한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최근에 말끔하게 단장한 듯하다.
나무로 바닥에 갈아놓은 길과
천장에 매달아 놓은 대나무 관을 통해 떨어지는 감로수 등..마음에 든다.

공민왕의 친필로 된 유리보전 현판,
안에는 종이로 만든 지불인 약사여래불이 주불로 모셔져 있다.
약사불이 중생의 병을 치료하고 생명을 연장하는 부처님이니 만큼
이곳은 병에 효험이 있고 소원성취에 영험이 있는 사찰인 셈이다.
유리보전 안에서는
어느 누군가 스님의 목탁 염불이 계속되고 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 절에 주지로 계시는 지현 스님(47)은 글 솜씨도 대단해서
얼마 전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이라는 에세이집을 냈다한다.
홈페이지로 찾아가 그 분의 글 하나 하나 읽어보니
도무지 눈을 뗄 수 없었을 정도이다.
미리 알고 찾아가 일면식하였으면 좋았을 것을..
아쉬움으로 남는다.

가만히 산의 메아리가 들리는 듯 하다.
봉우리 꼭대기에서 사방을 향해 고함을 치면
청량은 공명이 되어 되돌아 왔다.

조선 중종때 이황의 삼촌인 송재 이우 선생이 건립,
조카인 이해, 이황 등을 가르쳤다는 청량정사(오산당)을 들른 후
그 옆 허름한 가옥 한 채 앞을 기웃거리다 성큼 아내와 마당으로 들어섰다.


산꾼의 집

『오고 가고 아픈다리 약차 한 잔 그냥 들고 그냥 들고 가시구려』

주인장이 나무판에 친히 써 놓은 듯한 산꾼의 집이다.
지붕이 낮은 집 녁 한 채 그 안으로 들어서니 온갖 골동품들이
먼지를 뒤집어쓰고 나름대로 즐비하게 전시가 되어있다.
아주 오래된.. 징이며 북이며, 꽃고무신, 짚신, 재봉틀, 아코디언, 풍금, 선풍기, 재봉틀,
주걱, 괘종시계, 호롱불, 탈, 삽, 어구, 체 등을 종류를 망라한 물건들이다.

거기서 나와 안채로 들어가니 소문대로 아홉가지 산약초로 우러낸 '구정차'가
반겨주고 있었다. 순하고 연한..
차를 다 마신 후 아내가 눈치를 채고
옆 수도꼭지를 틀어 깨끗이 컵을 씻어 놓았다.
주인장은 일이 있어 자리를 비웠다고 하니 아쉬움을 금할 수 없었으나
벽에 걸린 그 분의 모습을 볼 수 있었으니 다행이다.
험상궂게 생긴 달마가 새겨진 흑 목걸이 하나 사들고 사람들과 이러저러한
산 이야기를 나누다 먼저 자리를 떴다.
응진전을 가기 위해서다.

응진전은 청량사의 부속건물로 깎아지른 듯한 금탑봉 아래 자리하고 있다.
응진전 아래도 가파른 사면으로 이루어져 있음은 물론이다.
응진전을 멀리서 바라보면 응진전 바로 뒤
병풍처럼 서 있는 절벽 위에
마치 머리에 돌멩이를 하나 올려놓은 것 같은
동풍석이라고 하는 커다란 바위 하나가
마치 흔들바위처럼 위태롭게 놓여 있어 응진전 지붕으로 떨어져 버릴 것 같다.


응진전과 동풍석

옛날에 의상대사가 지금의 자리에 절을 지으려고 절벽 위를 보니
커다란 돌이 하나 있어 불안한 지라
일부러 돌을 굴려 아래로 내려놓으면 다음 날 다시 올라가 있고 다시 내려놓으면
또 올라가 있고... 이를 거듭하자 '누가 이기나 보자'하고
밤새 이를 지쳐보니 저절로 바위가 위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의상대사는 그 돌이 도인임을 알아차리고 <동풍석>이라 이름 짓고
그 아래 그냥 절을 지으니 바로 응진전이다.
지금 까지도 그 돌은 위태위태하게 떨어지지 않고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응진전 바로 옆에는 고개를 뒤로 젖혀 하늘을 쳐다보면
여자의 볼록한 젖봉오리가 보이고
서 있는 발 뒤쪽은 여자의 중요한 거시기부분으로 보이는 곳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기대감에 부풀어 하는데..
아무리 그 주변을 살피며 두리번거려도 나의 눈에는
비슷한 것조차 띄지 않는다..
알고 보니 응진전 바로 옆 초막 뒤로 은밀히 숨어 들어가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응진전과 청량정사 사이엔
임금님처럼 시원한 바람을 쐬며 청량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라 하여
이름지어진 것인지 어풍대라고 하는 장소와
절벽사이 움푹 들어간 곳에 바위틈을 타고 새어나와 고인
최치원이 마셔서 총명해 졌다하는 총명수가 있다
(지금은 마실 수 없다..)

응진전 바로 옆엔 호랑이가 앞발을 고이고 있는
모습처럼 보이고
경일봉 오름길 옆의 절벽 갈라진 모습은 6폭 병풍바위,
부처님 발가락 닮은꼴이라 하여 그렇게 바라보니
그런 것도 같다.

응진전에서 입석까지의 내림길은 그리 힘들지 않다.
산책로를 돌아 나오는 기분으로 입석이 있는 도로로 내려섰다.
그러나 우리에겐 내려섬이 다가 아니다.
아직 우리의 갈 길은 남아 있으며
얼음골을 따라
서쪽으로 부지런히 넘어 가야 했다.
우리를 모셔 갈 네발 달린 두꺼비가 돌멩이를 입에 물고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물티재를 넘어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주인이 돌아오기만을 기댜려준
차에서 버너를 꺼내고 물을 챙기고
컵라면을 꺼내고 손불을 쬔다.


등산로 개략도

청량산입구(재산)→물티재(지산재)→우측능선오름→탁립봉→경일봉→자소봉→탈필봉→연적봉→뒤실고개→자란봉→의상봉 정상→자란봉→뒤실고개→청량사→청량정사→산꾼의 집→어풍대→총명수→응진전→동굴앞→입석→청량산휴계소→얼음골→물티재(지산재)→청량산입구(재산)

10:50 청량산 입구(재산) 출발
11:35 능봉(휴식)
12:30 경일봉 정상
13:15 자소봉 정상 (보살봉 840m)
13:35 뒤실고개
14:10 청량산 정상 (의상봉 870.4m)
14:55 뒤실고개
13:10 청량사
13:20 산꾼의 집
16:10 입석(도로)
16:30 물티재(지산재,얼음골)
16:40 청량산 입구(재산) 도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