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단천골(미륵골~삼신봉~단천골)

1:25,000지형도=대성. 악양

2004년 11월 3일 수요일 맑음(5.8~16.7도)   일출몰06:53~17:32

코스: 청학동진주암11:30<1.3km>갈레길(구조목14-1)12:30<3.0km>단천골초입14:30<5.0km>단천마을16:30<1.5km>도깨비소도착17:00

[도상10.8km/ 5시간 반 소요]

개념도 개념도 
 

개요: 지리산 남부능선상의 삼신봉(1284m) 아래 청학동은 너무도 유명하다. 청학동 원점회귀산행은 물론 쌍계사로 하산해도 내삼신봉(1354.7m)은 반드시 경유해야만 하는 코스이다.

내삼신봉에서의 조망은 일품이다. 턱밑의 삼신봉을 거쳐서 영신봉 경유 천왕봉까지의 오름길이 뚜렷하고, 삼신봉에서 갈레쳐 나간 외삼신봉쪽으로의 낙남정맥길도 시야 끝 간 데까지 보여 주는가 하면, 남쪽의 미륵골과 북쪽의 단천골도 적나라하다.

이번코스 전반부(미륵골과 오른쪽 무명능선) 이번코스 전반부(미륵골과 오른쪽 무명능선)
 

북쪽의 단천골은 매니아들의 잦은 발길에도 아직 원시성을 보존하고 있고 등로도 비교적 잘 나 있는 편에 속하지만, 남쪽의 미륵골은 삼신봉오름길의 옆 계곡쯤으로 치부해 버리기 일쑤다.

그래서 초반엔 등산로 뚜렷한 미륵골을 따라 올라가다가, 등로가 사라지면 날등을 타고 내삼신봉을 향하기로 한다. 전반부의 산죽정글과 후반부의 길고도 먼 하산길의 이번 코스는 상당한 인내심과 체력을 요구한다.

이번코스 후반부(삼신봉에서 본 단천골) 이번코스 후반부(삼신봉에서 본 단천골)
 

경상남도 하동군의 청암면에서 올라 화개면으로 하산하는 이번 코스의 청암면쪽 골짝물들은 황천강따라 섬진강으로 흘러든다.

한편 단천골이 있는 북쪽 화개면의 골물들은 대성골 계곡수를 등에 업고 화개천 따라 섬진강에 와서는 초반부의 미륵골 물과 함께 어우러져 광양만이 있는 남해앞바다에서 짠 물로 변한다.

내려가면서 본 단천골의 후반부 내려가면서 본 단천골의 후반부
 

가는길: 대전~통영간 고속국도 단성 나들목에서 중산리로 향하는 20번 국도따라 내대리에 와서, 최근에 개통된 청학동으로 넘어가는 삼신봉터널을 경유하여 청학동 맨 꼭대기 주차장 진주암에 내리면 삼신봉 올라가는 세동매표소가 화장실 앞에 있다.

산행길 초입은 매표소앞의 왼쪽 도로따라 삼성궁으로 향하다가 고갯마루에서 능선으로 올라선다.

초입에서 내려본 삼성궁 초입에서 내려본 삼성궁
 

날등길 초입엔 봉분 한 기 있고 좀 더 가면 사각형의 펜스안에 사라진 통신탑 시설이 흔적만 남아 있다.

등산로는 오솔길 따라 제법 뚜렷한데 가끔씩 왼쪽(북)날등 오름길이 나타나지만, 진입하면 도저히 뚫기 어려운 산죽정글이 있어 되내려 와야만 하기 때문에, 곧장 계곡길 따라 쭈욱 올라가면 미륵골을 만나게 된다.

이번코스의 중요 포인트 이번코스의 중요 포인트
 

계곡을 한 번 건너 뛰어 십여분 진행하면 다시금 미륵골로 들어서게 되고 계곡따라 한참 올라가다가 오른쪽길로 나서면 삼신봉 오름길의 구조목[14-01]지점에 다다르게 된다.

여기선 선택을 해야한다. 직진방향의 넓은 길을 택하면 삼신봉까지 한시간이면 올라설 수 있다. 그리고 왼쪽의 조금은 좁아보이는 길을 따르면 다시금 미륵골 계곡을 따라 오르게 된다.

미륵골방면 오름길 미륵골방면 오름길
 

내삼신봉 서쪽 안부로 오르는 이 길은 꽤나 묵었다. 산길은 계곡을 벗어나 돌보지 않는 무덤을 지나치면서 제법 가파르게 치닫지만 최근에 고로쇠 수액 채취인들의 잦은 발길로 비교적 잘 정비가 되었다.

그러나 단천골을 가기 위해, 그리고 내삼신봉 직등길을 타겠다면 중도 삼거리에서 수액채취용의 검고 가느다란 호스따라 오른쪽의 능선길로 오른다.  

산길이 끝나는 숯껌정...여기서부터 고행길은 시작되고 산길이 끝나는 숯껌정...여기서부터 고행길은 시작되고
 

그러나 이길은 오래 가지 못하고 시꺼먼 숯껌덩이 흙무더기에서 점점 희미해지던 산길은 사라지는데, 북북서방향의 날등하나 잡아타고 오르면 그 흔한 짐승길조차 없다.

근 한시간동안은 산죽정글을 헤치고 올라서서 기다시피 헤매다보면 이윽고 전망바위 하나 나타나는데, 올라서면 위로는 내삼신봉이, 쇠통바위와 외삼신봉이 좌우로 모습을 드러낸다.

전망바위서 본 내삼신봉 전망바위서 본 내삼신봉
 

이후론 산죽도 무릎아래로 깔리는데, 남부능선길의 구조목[15-17]이 반기는 암봉에서 청학동쪽으로  진행해서 내삼신봉으로 올라선다.

여기선 삼신봉으로 내려가 단천골로 하산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다. 단천골 하산지점은 삼신봉 바로 아래 이정표[쌍계사8.9km/청학동2.5km/세석대피소7.5km]못미처 안부에서 북서쪽 계곡길로 나 있다.

단천골 초입에서 본 삼신봉 단천골 초입에서 본 삼신봉
 

아직은 이끼식물이 살아있는 너덜이 이어지면서 등로는 사라져도 이따금씩 리번이 길안내를 해 주는 단천골은 좀 특이하다. 다른지역은 어쨌던 계곡따라 산길이 이어지는데 이 지역은 그 숱한 산자락 자락을 타고 넘기 때문이다.

차라리 계곡따라 내려가면 수월할텐데, 왜 이렇게 등산로가 산자락마다 굽이굽이 타고 넘는지는 아직도 숙제로 남는다. 아마도 여기저기 산재한 비트 흔적으로 봐서 빨치산의 이동통로 따라 그대로 답습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내전의 상채기...비트 내전의 상채기...비트
 

어쨌던 그 흔한 산자락, 지계곡을 건너 뛰어 마을이 가까워지면서 옛사람들의 삶터가 자주 눈에 띄지만, 허물어져가는 축대위론 덩굴식물만이 무성하다.

마지막 합수지점에선 산길이 사라지는데 여기선 계곡을 건너 왼쪽 산자락을 타고 내려가면 계곡가의 외딴집 한 채가 보인다. 그래도 그 쪽으로 내려서지 말고 덤불밭을 헤쳐 나가면 이윽고 포장도로로 나서게 된다. 능숙한 기사라면 이마을 삼거리까지 대형버스 진입이 가능하다.  

단천마을 입구 단천마을 입구
 

산행후기: 이십여일동안이나 지리산을 잊고 살다가 전부터 가보고싶었던 단천골 가이드를 보고 따라 나섰더니, 청학동에서 삼신봉으로 올라 단천골로 내려가는 비교적 단순한 코스이다.

마침 옆자리의 지인이 자주갔던 그 길 말고 어디 좋은 코스가 없냐고 꼬드긴다.

미륵골의 단풍 미륵골의 단풍
 

매표소에서 대장께 다가가 정해진 시간내로 도착하지 않으면 먼저 출발하라 일르곤, 발길을 삼성궁으로 향하다가 고갯마루 언덕에서 능선으로 올라서고보니 의외로 등로는 깨끗하다.

그러나 그 길은 미륵골따라서 가풀막없이 진행되고 있다. 내심으론 날등을 타고 삼신봉으로 오르고자 하는 욕심이 있어 샛길만 있으면 치오르다가 꽉막힌 정글에 되내려 오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산죽과 단풍 산죽과 단풍
 

오솔길은 금방 사라지고 널널한 길은 무덤으로 향했다. 이리 뚫어보고, 저리 한 번 쑤셔보고, 그리곤 되내려 오기를 몇차례! 이러다간 정해진 시간은커녕 여기서 날 새겠다싶어 그냥 계곡길 따라 갔더니 구조목 [14-01]이다.

여기서도 곧은길 따라가면 후미팀은 금방 따라잡을 수 있지만 그놈의 미련 때문에 다시금 미륵골 방향따라 가다가 이윽고 날등을 치고 오르기 시작했다.

절정기의 앙탈 절정기의 앙탈
 

처음엔 뚜렷하던 그길도 고로쇠 호스와 함께 사라졌다. 이젠 너무 멀리와 버린 우리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졌다. 교대로 산죽을 헤쳐 나간다.

스틱 떨어뜨리면 줏어 주고 물통 흘리면 뒤에서 챙겨주고, 그렇듯 배낭에 꽉 조여 맨 물통도, 손목에 걸친 스틱이 빠져나가도 모를 정도로, 키를 훌쩍 넘기는 산죽 정글을 잔뜩 꾸부린 자세로 양손 좌우로 벌려가며 개구리 헤엄치듯이 한시간동안 치고 올라갔다.  

산죽길에도 추색이... 산죽길에도 추색이...
 

그러다 잔가지에 왼쪽 눈을 다쳤다. 상태를 물어보니 각막이 충혈 됐단다. 왼 손으로 왼쪽 눈 가리고 천신만고 끝에 능선마루로 올라서고 보니 구조목 [15-17]의 남부능선상이다.

바로 위의 내삼신봉에 올라 여기저기 카메라 돌려 대다가, 벼랑 끝으로 나서면 단천골의 전모가 잡힐 듯싶어 그리로 내딛다가, 그만 허공을 가르며 삼미터아래로 툭 떨어졌지만 다행히도 다친덴 없다.   

분비나무가 있는 암봉...여기를 건너 뛰다가 추락 분비나무가 있는 암봉...여기를 건너 뛰다가 추락
 

아찔한 순간이었지만 그래도 카메라부터 들여다보는 나를 향해 곁엣분이, 평소의 공덕이라며 그만 하산하자고 한다. 한쪽 눈으론 거리조절 능력이 떨어지는 모양이어서 삼신봉 가는 내리막에서도 한번 더 미끌어지는 걸 보고, 지금부턴 자기가 앞장 설테니 조심해서 따라 오란다.

삼신봉에 도착했지만 둘이 다 몇 번씩이고 올랐던 지점이라 곧장 단천골로 내려섰다.

단천골의 단풍 단천골의 단풍
 

단천골은 처음부터 너덜의 연속이어서 등로가 뚜렷할리가 없지만 드문드문 선답자들의 리번이 팔랑거린다. 어느지점엔 두달전에 우리팀들이 눌러둔 회수 못한 안내문이 그대로 있어 얼른 회수하기도 했다.

그러나 너덜이 거덜난 등산로엔, 박달나무 많은 계곡이란 뜻의 단천(檀川)골과는 어울리지 않게 박달나무는 보기가 힘들고, 온 산이 단풍나무 숲이어서 여기가 내장산의 일부분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단천골 하류 단풍은 아직도 물이 덜 올랐다    

                 단천골 하류 단풍은 아직도 물이 덜 올랐다 
 

그리고 대부분의 등산로엔 굴참나무가 즐비해서 노랗게 물든 낙엽이 푹신할 정도로 깔려, 마치 황금비단으로 된 양탄자위를 걷는 기분이다.


이웃한 선유동계곡길처럼 이 길 또한, 지능선들을 빠짐없이 돌고 도는데, 석양에 투과된 황홀할 정도의 단풍과, 역시 황금색으로 반짝거리는 낙엽들은 마치 몽환의 세계를 거니는 듯 전혀 지루한 줄을 모르겠다.

단천마을 맨꼭대기 빈 집의 단풍 단천마을 맨꼭대기 빈 집의 단풍
 

다만 한가지, 쓰라린 눈동자를 부비면 예외없이 콧물을 훌쩍거려야 했는데, 그것을 바라보는 동행인의 걱정스런 눈빛이 부담스러울 뿐이지 이 세계를 벗어나고픈 마음은 전혀 없다.

그러나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끊어진 숲길에서 몇 번씩이나 헤매다가 우리는 시간맞춰 하산지점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과욕과 자만으로 일관한 오늘 산행은, 자기성찰의 하루이기도 했다.

일몰의 단천마을 일몰의 단천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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