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산행기에 접속하는 등록제를 마련했군요...
늘 발전하고 변화하고 살아있는 홈이 되어서 많은 산악인의 벗이되어
주심에 감사드리며...언제나 뒤늦게 따라가느라 허덕이는 애숭이 일죽드림.
---------------------------------------------------------------------
늦가을 산행기

          변화무쌍한 열폭 진경산수화의 선경에 취하다

동양화하면 진경산수화를 으뜸으로 친다. 특히 우리나라는 소나무가 우거진 금강산 같은 절경에 안개가 걷히는 새벽을 잘 그린다.
독야청청---곧은 절개와 충성을 상징하는 노송의 모습은 마치 다리가 긴 학을 연상케 한다.

----------------------------------------------------------------------------------------------------------

얼마나 기다린 입산인가! 해마다, 아니 어느 해는 일출산행까지 가던 산인데, 최근 2~3년 가까이 가보지 못한 게 한이 되었던
운악산---구름 위에 노는 산---을 찾아나섰다.
떠나기 전에 김형수 산악인의 222산행기를 들춰보고 미리 코스를 점검했다. 워낙 늦게 출발하는 시간이라 종주의 가능성을 미리
체크한다. 5시간 소요...글세 다녀올 수 있을까 망설여진다. 하지만, 한번 맘 먹으면 못할 것도 없다. 지난 여름 말복 날에도 사량도
지리산을 단독으로 종주한 내가 아닌가....

마음은 떠나기도 전에 흥분부터, 상상부터 하느라 정신이 없다. 더운물 챙기고, 물 2병,커피, 과자, 행동간식을 준비하느라 더
지체된다. 거의 오후 12시가 다 되어 집을 나섰다. 마음은 급한데, 일요일이라 차는 갈수록 막혀 동부간선도로로 들었다가 상계동
덕릉고개로 빠져서 일동 가는 37번 국도를 접어들어 2시가 되어서 광릉 내촌을 지나, 서파고개, 운악산입구 길원목장(대원사)앞에
주차를 했다. 예전 구길이라서 길가에 주차해도 된다.

길원목장(준원목장)은 여전히 텅빈 축사만 여기저기  흉측하게 방치되어 있고, 대원사(대안사)는 여전히 할매보살 2명이 마당에서
절을 지키고 있었다. 나는 먼저 계곡의 물을 보았다. 금년은 오래 가을비가 안 와서 물소리도 안 나고 하수구에서 졸졸졸 오수만
흐른다. 몇해 전 여름에는 홍수가 나서 건너지 못한 계곡이었는데...금석지감이다.
대원사 경내를 비껴서 난 소로로 들어섰다.  내가 너무 늦게 떠나선지 벌써 등산객이 하나 둘씩 내려온다. 이상하다는 눈치다. 이
시간에 올라가는 사람이 있다니,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물어본다.

" 이제 올라 가세요???"
" 네---"
" 잘 다녀오세요..." 하지만, 나도 의심이 간다. 겨울이 머지않은 때라 언제 해가 질지 모른다. 그래서
" 가다가 내려오면 되지요..."

하지만 이해가 안간다. 무슨 모험을 하는 것같다. 계곡 길을 건너고 다시 건너고 줄곧 이어지는 대원사계곡은 등산로가 따로 없다.
그냥 바위만 밟고 따라 오르면 된다. 발자국도 잘 안 보이는 길을 한참 오르다보니 아이와 부모가 한팀이 되어 부지런히 내려오며 묻는다.

"주차장 가려면 아직 멀었나요?"
" 아니요. 이제 10여분만 내려가시면 됩니다."
" 이 계곡만 나가면 대원사 절이 나오고 조금 내려가면 운주사 입구입니다..."

오히려 이제는 내가 상대방을 걱정하는 듯한 상황으로 변했다. 사실은 내가 더 걱정인데, 그분들은 여기가 초행이라 말도 못하고
무조건 하산하는 중이었다.
어린 아들과 아버지는 계곡에 앉아서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기진맥진 더 이상 일어날 힘이 없는 것 같다.
" 얼마나 더 가야 되지요???"
" 이제 다 내려오신 겁니다. 한 20분만 가시면 돼요..."

내가 뭐 운악산 도사인가 할 정도로 친절히 가르쳐주었다. 아주 고맙다고 인사까지--저런 아저씨가 있어서 살 맛 난다고도 한다----
허허허.... 세상에 올라온 길을 안내해주고 이런 고마울 수가... 있나!
그러나 조금 있으면 상황은 반전된다. 계곡이 끝나는 합수점부터 왼편능선은 나를 죽이는 코스가 기다렸다. 아니나 다를까---예전에는
없던 사다리에다 밧줄까지 매달아놓은 곳에 오니 내려오는 등산객이 많아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어느 월남치마 입은 할매왈

" 아이구, 나 죽겠네...'
" 한발 한 발 꼭 짚고 내려가세요..."
" 왜 이런 코스로 오셔서..."
" 몰라유, 이 길은 올라올 때보다 더 험하네요..."
" 길은 멀어도 이 길이 가장 쉬운 우회코스입니다."
비틀비틀하며 마치 오리가 뒤뚱거리듯 위태롭다.

잘 내려가시라고 배웅하고 나니, 이제 난 뭔가, 혼자서 이런 고행을 하다니...남들은 가족이다, 친구다, 부부다 쌍쌍이 아니면 수십명이
단체로 다니는 길을 나 홀로 외기러기가 아닌가--- 이를 악물며 내 갈 길을 올라갔다. 하긴 우리네 인생은 공수래공수거, 혼자 왔다가
혼자 가는 것 아닌가,,,,한 줌 흙으로 돌아갈 목숨이 아니가 반문하며 한순간 자기가 무슨 철학자인 듯 우쭐대보지만, 역시 사람은 사람이
그리운 때가 있는 법이다.

밧줄지대가 무려 5군데나 나타났다. 예전에는 그냥 막 쏜살같이 뛰어다니던 때가 엊그제인데, 헉헉, 한번 오르면 쉬고, 허리 굽혀서
숨 고르고, 다시 몇발짝 오르고는 공연히 참나무를 붙잡고 하소연을 한다. 나 좀 살려주어요--- 나 좀 어찌 안아주오
---하기를 수차례 하다가 에이 모르겠다 나도 이제 쉬어서 시간이나 보내다가--- 에이---어둡기 전에 내려가자...
앞 뒤를 돌아보니 이제는 내려오는 사람도 없고 혼자다.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스친다. 동그란 표지판은 모두 위험표지판, 사각형은
119구조대 전화, 지점표시뿐이다.

이런 순간에 어디서 바스락 소리가 났다. 주위를 살펴보아도 인기척은 없고, 또 다시 급경사 꼬부라진 길을 허덕거리며 당도하니,
한 쪽 바위 뒤에서 인기척이 나며 돗자리를 걷는 부부가 보였다. ( 산에서는 부부같이 보이지만, 애인인지 여동생인지 대개 여자는
젊고 예쁘다) 본체만체 하고 1시간을 오르다보니, 왼편으로 운악산의 절경이 나를 유혹했다.
건너편 기암절벽 위에 등산객이 올라서서 내려다본다. 여기가 금강산 저리 가라는 운악산의 백미다. 한참을 큰 바위에 걸터앉아서
그만 넋을 잃고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여기를 오려고 그리 오래 기다린 것 아닌가--- 생각하니 그만 그 절경에 빠져서 소나무와 단풍이 어우러진 열폭의 동양화에 흠뻑 취해서
보이는 게 없다. 이싱하리만치 배도 안고프다. 물도 먹고 싶지 않다. 그저 혼 나간 정신병자처럼 침을 흘리며 그 절경에 빠졌다. 이래저래
시간만 지체되고, 어디 밥이나 먹으며 쉴까 하다가도 돌아보면 그게 아니다.
갑자기 주위가 떠들썩 하니ㅡ--- 빙 둘러 앉아서 곳곳에 숨어서 맛난 참을 먹는 산악인들이 보인다. 그래도 먹는 것보다 구경이 더 좋다.
마지막 능선의 끝자락에 젊은 등산객들이 바위에서 오후 늦게  올라오는 나를 내려다보았다. 저기다 싶다. 이제 다 오른 것이다.
사위를 보니, 여기보다 높은 곳이 없었다. 반대편 현등사에서 올라오는 삼거리에 도착하니 벌써 4시가 지났다.

어이쿠, 큰일났다. 빨리 하산해야지---하지만 200m 전방이 정상이란다. 에라---이왕 올라온 김에  한바퀴 둘러보고 현등사 방면으로
내려가 소나무 촛대바위도 가보고 하며 또 지체, 안되겠다 싶어 운주사 쪽으로 하산하기로 했다. 이곳은 헬기장으로 정상이 넓지만,
이만한 높이의 봉이 서너 개가 있어 사실 정상은 많다.
935m만 정상이 아니고, 930m, 927m 등등  고만고만한 봉이 능선 상에 보인다.

927m 봉에서 등산안내판대로 오늘은 험난로로  하산하기로 결정하고 헬기장 바로 아래에 근사한 숲속의 방을 발견했다. 천애절벽 위에
걸린 노송에 기대여 발을 뻗고 주섬주섬 먹을 것을 꺼내서 약과와 산자(지난주 아버지 제사에 쓴 제물)를 먹는데, 마침 반대편에서
올라온 한 가족이 날 보더니, 산타할아버지를 만난 듯 반겼다.

무슨 사연인가---혹 나를 알아보는 청년인가 했더니 그게 아니었다. 7,8살 난 딸 둘을 데리고 올라온 신혼부부는 물 좀 달라는 것이다.
나는 미리 준비한 페트물병을 내놓으며, 먹으라고 주니 아이는 물론 부모가 고맙다고---꿀꺽 마신 뒤에야 인사를 한다. 내친 김에
과자랑, 초코렛이랑, 산자며, 약과까지 모두 먹으라고 하니까 너무나 반가운 산신령을 만났다고 싱글벙글했다.

결국은 그 가족과 한참을 같이 먹고 마시고 담소하느라 시간이 깨 지체되었다. 하지만,산 정상에  물도 안 가지고 구경 삼아 오르다가
여기까지 왔다는 말에 먼저 하산 길부터 가르쳐 준 후 나는 짐을 챙기고 험난한 운악산 중에서도 가장 험한  궁예성터길로 내려섰다.
갑자기 황성옛터 노래가 생각났다. 내가 고 박정희 대통령도 아닌데...해가며 흥얼흥얼 해가며 가사도  엉망인 노래를 부른다.
그만큼 기분이 짱 하다는 것이 아닌가---이런 노래를 언제 불러보나---하며 고향무정까지  내리 두 곡을 부르며 내려선다. 
 내가 내려가 보지만, 이 길로그 아이들과 엄마는 어찌 올라온 건지 상상이 도무지  안 된다.
수직바위 투성이로 어떤 곳은 발 디딜 곳도 안 보이는 절벽이 앞을 가로막았다. 그러나 주위를 잘 살피고 다시 보면 하얀 동아줄이
매져 나를 기다린다... 그러면 그렇지,,,전에 이 길로 올라오면서 다리를 부들부들 떨던 생각이 났다.

하도 오랜만이라 잊어버릴 만하다. 이곳은 운악산 중에서도 가장 스릴이 넘치는 릿지코스다. 한번 잘못 헛디디면 황천행이다. 나는
황천 가는 걸 즐긴다. 순간은 긴장이 되지만 그 순간만 지나면 가슴이 뿌듯해진다. 어떤 곳은 줄을 잡고 일부러 흔들며 오래도록
만끽한다.
하강---하강---내려서기가 숨이 가쁘고 다시 등에서 머리에서 샘솟듯 땀이 밴다. 원래 산을 못 타는 산악인이 이런 데서 아짜--
하고 폼을 잡게 마련이다. 인수봉을 처음 오른 등산 후배의 글에도 나오지만, 누구나 잊지 못할 그 짜릿한 순간이 있는 법이다.

산에 왜 오르느냐는 바로 이런 매력에 있지 않나 한다. 미국의 그랜드 캐년을 가면 만길 바위에 붙어서 하루종일 매달린 사람들이
부지기수라고 한다. 무엇을 더 이상 바라겠는가---그 스릴과 서스펜스를---요즘에는 K2라는 영화가 각광을 받는다.
영화---- 분노의 역류, 타이타닉, 타워링 같은 긴박한 순간 인간 군상들의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러나 안나푸르나에서
찍은 K2는 영원히 잊지 못할 산악인들의 우상이다. 아버지를 에베레스트에서 잃은 아들과 딸, 그리고 이들을 생명을 바쳐 구해낸
영원한 산신령의 감동적인 밧줄 끊기는 우리에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겨우 900m 높이의 운악산을 겨우 오르면서 별의 별 생각을 다한다. 그러나 생각은 자유다. 누구나 꿈과 희망은 존재한다. 산에 안
오르더라도 인생에는 수많은 산과 고개가 있기 마련이다. 그 산 고개를 얼마나 많이, 어떻게 넘느냐에 따라  인생고해의 파노라마는
달라진다.
벌써 해는 져서 저 멀리 북한산과 도봉산에 보이고, 가까이 주금산과 철마산, 천마산이 희미하게 비친다. 하얀 화강암 바위는 유난히
반짝이고, 저녁 노을이 벌겋게 사방을 물들였다.
돌아보며 지나온 절벽을 다시 보고, 저기를 내가 넘어 왔다는 안도의 긴 숨을 내쉰다.

이렇게 멀고 먼 이상향을 꿈꾸며 내려오다 보니 밤이 되었다. 안내표지판을 보니 아직도 8 부 능선이란다. 아이쿠---드디어 내가
운악산에 미쳤구나 싶다. 이제야 정신  바짝 차리고 내려서는 다리는 후들후들 떨리고 간이 콩 알만 해진다.
이렇게 얼마를 내려갔을까, 모른다. 가도 가도 제자리인 것 같다. 그러나 오늘 중으로만 가면 되지---자포자기 상태다. 깜깜한 하산
길에 달빛도 안보였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또 무서움을 달래며 지난 일을 상기했다. 10여년전 가족과 같이 당일 등반이 가능하다고  올라간 지리산
에서의 백무동 하산 길, 한신계곡에서 만난 반딧불이의 반가움과 8시간에 걸친 사투가 생각난다.
결국은 밤새 내려와 그날로 이상 없이 직장에 출근하는 모험도 마지않았다.
이젠 멀고 먼 이야기지만, 그 때는 뭐든지 해낼수 있다는 자신감이 앞서 있었다.

아---드디어 절입구. 아래  불빛이 보이더니 개가 마구 짖어대고, 무섭게 우리에서 나와 나를 괴롭혔다. 이 밤중에 인기척도 없는
곳에서 나타난 귀신---간첩인가? 아니다.
여기는  천길 절벽 속에 갇힌 절이 숨어있는, 올라오기도 힘든 곳에 어떻게 집을 지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사방이 궁예성터로 둘러
쳐진 협곡에 성역처럼 절이 세워진 천혜의 보루다. 지금도 이곳은 하늘에서나 보일까---아무도 상상할 수가 없다. 밤이라서 천길
폭포---무지개폭포---무슨 폭포도 구경을 못했지만 너무나 좋다....저 아래로 37번 국도로 달리는 차들의 불빛이 유난히 반갑다.
그 헤드라이트로 위안을 삼는다. 이제 곧 운주사 입구였다.

갑자기 훤해지더니, 천지개벽---환한 전등불이 눈에 부셨다. 맨 위에 자리한 천막집에서 고기를 군 숯에다 물을 부어 끈다. 이제는
살았다싶다. 시계를 보니 7시 정각이다. 총 5시간만에 종주를 끝낸 것이다. 운주사를 지나 큰 길로 나오니 운악산 광장,매점이
보인다. 여기로 들어가니 따스한 공기가 훈훈한 인간냄새가  난다. 언제 그렇게 인간이 그리울 적이 있었던가---주인은 안보이고
한 편 식탁에 4명이  앉아 소주를 즐기고 있었다.
한 분이 크게 외친다.

' 주인양반---소주 한병 주시오---'

나는 순간 소주를 내가 갖다주어야 하나--내가 주인이 된 듯 착각했다. 이제는 정신이  나간 모양이다. 운악산에 홀려 운악산 귀신이
되더니, 이제는 사람을 보아도, 목소리를 들어도 신기하기만 했다.
이렇게 끝난 운악산은 언제 찾아도 정을 주고 정을 베푸는 경기최고의 산임을 나는잊지못한다. 사랑하는 운악산아----머지않아 또
다시 겨울에 찾아올 것이다.
그 때까지 기다려라....나는 간다.


                                                                                    2004.10.31   밤  일죽 산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