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단독종주(화엄사~대원사)............ 가을의 전설속으로

 

 

날짜: 2004/09/25~27일(2박3일)

동행: 나홀로

날씨: 맑음 안개

산행경로

화엄사~노고단~반야봉~벽소령산장(1박)~천왕봉~중봉~치밭목산장(2박)~대원사

산행거리: ?

 

구간별 산행시간

 

한화콘도(0400)화엄사(0420)중재(0557)노고단대피소(0728/0830)임걸령(0933/0940)노루목(1008)

반야봉(1045/1105)삼도봉(1140)화개제(1213/1220)토끼봉(1255/1347)연하천산장(1500/1520)

삼각고지(1546)형제봉(1626)전망바위(1640)벽소령대피소(1730 1박)

벽소령대피소(0700)덕평봉(0720)선비샘(0800/0805)칠선봉(0858/0905))영신봉(0955)

세석대피소(1005/1015)촛대봉(1034/1038)장터목대피소(1200/1330)천왕봉(1420/1500)

중봉(1530/1547)써리봉(1630/1650)치밭목산장(1750 2박)

치밭목산장(0655)무제치기폭포(0740/0755)유평리(1020)대원사(1050)


 

준비물 

 

의류 및 종이

  

음식

  

하드웨어

  

등산복 바지

2

햇반

2

코펠 1인용(대,소)

2

등산 양말

3

감귤

11

시에라컵

1

등산복 상의

3(긴팔1)

자유시간

2

핸드폰

1

귀마개

1

참이슬

200ml x2

라이터

1

장갑

1

커피믹스

3

볼펜

1

폴라리스 긴팔

1

즉석사골우거지국

1

디카밧데리

2

모자

1

즉석육개장

1

후레쉬메모리

2

속옷

3

즉석곰탕

1

나침반시계

1

땀수건

1

상추쌈(쌈장)

소량

헤드라이트

1

사파리샤츠

1

3

만보계

1

지도

1

라면

2

휴대용손전등

1

산행기복사물

1

식수통(1000cc)

1

가스버너(티타늄)

2

물티슈

1

돼지고기

300g

SnowPeak

200ml x2

두루마리휴지

1

씻은쌀(비닐각각포장)

3컵

방석

1

등산화

1

김가네 김밥

1끼용

무릅아대

2

   

김치(비닐각각포장)

3

핸드폰밭데리

2

   

소금

소량

Swiss Knife

1

       

매트리스

1

       

등산용스틱

1

       

소화제

6정

       

압박붕대

2

       

진통제

10정

       

일회용밴드

1통

       

관절스프래이

1통

       

후시딘연고

1


 

식단표와 음식물 평가

 

 

첫째날(25일)

둘째날(26일)

셋째날(27일)

아침

노고단

라면+햇반

벽소령

밥,김치찌개(돼지고기),김

치밭목

누룽지끓임,스팸,김치

점심

토끼봉

김밥

장터목

라면+햇반

 

저녁

벽소령

밥,즉석곰국,김치,김

치밭목

밥,즉석해장국,스팸,김치,김

평가

1.라면,햇반,가스는 산장에서 구입할 수 있었으나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하여 준비하였음

2.즉석국은 무게도 가볍고 조리하기 아주 편하였음

3.버너와 가스는 각각 2개씩 준비하여 밥과 국을 동시에 취사하였음

4.아침은 그 전날 저녁에 밥을 좀 많이 해 남은 누룽지에 물을 부어

  끓이는 것이  취사와 설거지가 편하였음

5.쌍추쌈은 먹지 못하고 끝까지 남겼는데 단독 종주시

  음식조리하기가  귀찮으므로  가급적 간편한 것이 바람직함

6.체력소모가 있으므로 많은 열량을 공급할 수 있는 초코바나

  양갱등을  쉴 때 수시로 먹는 것이 필요

7.과일은 무거워서 피하라고들 하나 날씨가 더운 여름이나

  초가을에는 이것보다 더 좋은 청량제는 없음.

  부피가 작은 것을 여러 개 준비해 빨리 먹을 수 있는 것이 좋음

  ( 감귤,오이,토마토,포도)

8.물은 산장마다 구할 수 있으나 산장에 따라 한참을 내려가야

   물을 구할수 있는 경우도 있으므로 이것을 고려하여

   쉽게 구할 수 있는 곳에서 물을 보충하는 것이  바람직함

  

  바로 쉽게 물을 구할수 있는곳

     노고단대피소,임걸령,선비샘,연하천,장터목

  쉽게 물을 구할수 없는 곳   

      벽소령대피소 50m아래, 세석대피소 200m아래,

      치밭목산장 100m아래 ,

      화개재에서는 200m아래 뱀사골산장까지 내려가야함  

  

 

 

 

구간별 시간과 거리 개념도1 (화엄사~벽소령대피소)
 

 

구간별 시간과 거리 개념도2 (벽소령대피소~대원사)

 

 

 

1.몇 일만에 종주할 것인가?

 

화엄사에서 대원사까지 “나홀로 종주”를 계획하면서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1박2일로 할 것인지 2박3일로 해야 할 것인지 이다. 1박 2일로 하면 체력에 대한 자신감을 확인할 수 있고 2박 3일로 하면 시간에 좀 덜 쫓기면서 지리산을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장고끝에 기록달성 보다는 좀 더 지리산에 그냥 있기로 한다. 하기야 체력도 문제긴 문제지만..........2박 3일로 결정되자 전체 구간 중 거의 절반에 해당되는 벽소령대피소에서 1박을 하고, 장터목대피소에서 2박을 하기로 한다. 첫째 날 도상거리가 긴 이유는 체력이 좋을 때 좀 더 멀리 가 놓자는 속셈이고 종주 둘째 날 구간을 짧게 설정한 것은 지리산 능선 길 중 가장 경치가 좋다고 하는 벽소령~장터목 구간을 여유 있게 즐기기 위해서 이다. 인터넷으로 15일전부터 국립공원 대피소예약이 가능하기 때문에 추석연휴 붐빌 것을 예상하여 졸음을 참으며 10일과 11일 밤 12시 땡! 하자마자 온라인 신청을 한다. 아니나 다를까? 벽소령대피소와 장터목대피소의 예약이 5분이내 모두 종료된다. 휴~......뿌듯!........추석기간이라 새벽 기차예매를 하지 못해 차를 몰고 그 전날 퇴근 후 화엄사 600m 아래에 있는 한화콘도에 도착하여 새벽 3시 30분에 모닝콜을 부탁해 놓고서 11시에 불을 끈다. 잠을 잘 잘 수 있을까? 첫날 체력의 안배 때문에 전날 잘 자두어야하는데.......... 낯선 타지에서의 외로움.... 혼자 하는 종주에 대한 막연한 설레임의 느낌도 잠시....퇴근 후 장거리운전의 피로감이 몰려와 캔맥주 반도 채 마시지 못하고 잠이 든다.

  

 ↗준비물 (배낭 총 무게 : 물 1000cc 포함하여 14kg. 귤을 11개나 넣었지만 과일을 워낙 좋아하는 관계로)

  

2.두려움 속에 화엄계곡을 오르다.

 

어김없이 새벽은 찾아오고 모닝콜에 부시시 일어나 미리 준비해 놓은 배낭을 메고 600m 위에 있는 화엄사로 향한다. 한점 불빛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칠흑 같은 어둠 속 화엄계곡에 흐르는 물소리가 보잘 것 없는 인간의 나약함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우뢰소리와 같이 크게 들리고 의지가지없는 나그네의 간을 쫄아 붙게 만든다. 누구 한사람이라도 만나 같이 가면 좋으련만....... 이른 시각 기약없이 누구를 기다린 말인가? 심봉사처럼 화엄사 맞은편에 있는 작은 다리를 10분간 헤메다 겨우 찾아내 건너니 노고단 7km, 천왕봉 32.5km 이정표가 오랜 친구 만난 것처럼 반갑다. 좁고 어두운 길........ 목덜미에 스치는 산죽이 소름을 돋우지만 한걸음 한걸음 가다보면 노고단에 도착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집중한다. 지리산 길은 대부분 너덜 돌길로 화엄계곡에서도 예외는 없다. 1km 마다 나오는 이정표에 노고단 거리가 줄어드는데 위안을 삼으며 1시간 40분 정도 오르니 노고단 3km로 표시된 “중재”표시가 코재가 멀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오름이 가팔라지면서 여명과 함께 서서히 능선의 윤곽이 눈에 들어오고 코가 땅에 닿을 만큼 가파르다는 코재를 느낄 겨를도 없이 성삼재에서 노고단 올라오는 도로와 만난다.

  

  ↗화엄사

↗어둠속에 겨우 찾아 낸 이정표

↗지리산의 트래이드 마크

↗중재

↗종석대(1356)

 

3.지리산 3대 비경인 노고단의 운해를 만나다.

 

하늘은 너무 파랗고 종석대(1356)가 햇볕을 받아 방끗 웃고있다. 지리산 3대 절경의 하나라는 노고단의 운해를 볼 수 있으려나? 노고단 오르는 길에 벌써 구름의 바다에 수많은 봉우리들이 떠있다. 말이 필요 없는 장관...........무서워 좀 긴장을 했나? 4시간정도 걸린다는 거리를 3시간 조금 넘어 노고단대피소에 도달한다. 예정 아침식사는 라면에 햇반....취사장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라면을 끓이는데 바로 옆의 어떤 분이 한국의 산하 패찰을 보고 말을 건다. “한국의 산하 자주 들어가 보는데....산행기도 올리세요? 필명이.........” 이런 저런 이야기하다보니 군산에서 오셨다는 이 분은 나보다 먼저 새벽 3시 30분에 화엄사에서 혼자 올라 오셨다는 것을 알아내고...........나 같은 사람이 있다니 반갑기 그지없다. 1시간의 아침식사와 휴식을 마치고 노고단길목에 이른다. 참 아름답다!.....북쪽으로는 고리봉(1248m)과 만복대(1433m)가 구름에 싸여있고 남쪽으로는 왕시리봉(1212)형제봉(912)차일봉(1008)이 고개를 내밀고 있고 동북쪽으로는 지리산 제2봉인 반야봉(1732), 그 너머 멀리 가야할 능선 길과 천왕봉(1915)이 아스라이 보인다.

  

↗노고단 올라가는 길에서 본 운해  

↗노고단 운해

↗노고단대피소

↗반야봉과 저 멀리 천왕봉

↗노고단의 남쪽

↗노고단에서 바라본 만복대의 운해

↗천왕봉

↗임걸령 가는길에서 본 운해

 

4.반야봉에 올라 천왕봉을 바라보다.

 

노고단에서 임걸령으로 가는 길은 지리산 길 중에 아마 가장 평탄한 길일 것 같다. 처음으로 지리산에 오는 사람들은 이 길을 걸어보고 계속 이런 안존한 길이 나올 줄 알고 지리산을 깔보다가 나중에 혼이 나기도 하지만..............북쪽으로는 만복대가 구름에 싸여 광채를 발하고 있고 남쪽으로는 왕시리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이 굽이굽이 이어진다.  노루목에 도착하니 반야봉에 올라갔다 오려는 사람들이 벗어놓은 배낭들이 차곡차곡 정렬되어 있다. 나는 여기에 벗어놓지 않고 반야봉쪽으로 좀 더 올라가 뱀사골쪽으로 빠지는 이정표 3거리에 배낭을 벗어놓는다. 나중에 노루목으로 내려오지 않고 바로 삼도봉으로 진행하기 위함이다. 사실 반야봉까지는 왕복 2.4km(편도 1.2km)로 긴 거리는 아니지만 오늘 화엄사에서 벽소령까지 가려는 나에게는 고민의 대상이다. 하지만 반야봉을 지나쳐 버리는 종주는 그 누가 그랬듯이 “앙꼬없는 찐빵이라나?”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믿던 믿지 않던 간에 내가 가야할 천왕봉까지의 능선 길을 미리 보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반야봉으로 가는 길은 작년에만 해도 너덜길이 있었는데 어느새 좌우측 나무 울타리와 돌을 깔아 단장을 해놓았다. 무거운 배낭을 벗어버리고 자유의 몸이 된 나는 30분 걸려 반야봉에 오른다. 천왕봉까지의 능선길이 구비 구비 펼쳐지고 아래 불무장등이 굽은 등어리처럼 보인다. 지리산 능선 길을 가장 조망하기 좋은 곳이 이곳 반야봉이 아닐까?

  

↗반야봉에서 바라본 구름에 싸인 천왕봉

↗반야봉 돌탑과 노고단

↗삼도봉

  

5.토끼봉에서 점심을 먹고 잠을 자다.

 

반야봉에서 삼도봉(1434)을 거쳐 화개재로 내려간다. 화개재로 내려가는 계단은 천왕봉에서 노고단으로 역종주하는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공포의 550계단이다. 처음 종주계획을 세울 때 점심 먹을 장소가 마땅치 않아 고려했던 곳이 화개재였는데 점심먹은 불뚝배를 안고 지루한 토끼봉(1534)을 오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 화개재를 제외시켰었다. 사람들이 버너를 켜서 취사를 많이 했던지 취사 경고문이 붙어있고 아직 공사가 덜 끝났는지 각종 기자재로 어수선하다. 잠시 쉬고 토끼봉을 오르는데 매번 겪지만 역시 토끼봉이다. 화엄사에서 시작하여 이제는 지쳐가고 있는 나그네의 인내심을 시험한다. 혈당은 떨어질 대로 떨어져 어질어질하기까지....삼도봉(1434)과 토끼봉(1534)의 고도차는 더도 덜도 아닌 꼭 100m.........그러나 공포의 550 계단으로 발생하는 고도차를 여기에 포함시켜야한다. 35분만에 토끼봉에 올라 그늘을 찾아낸 나는 가지고간 메트리스를 펼치고 김밥으로 점심을 해결한 뒤 그냥 뒤집어져 눕는다. 얼마나 잤을까? 한 30분정도 지났나?......으슬으슬해서 일어나보니 점심 먹기 전에만 해도 맑던 하늘이 어디 간데없고 축축한 안개 속이다. 역시 지리산은 하루에도 기상이 열두번은 더 변한다 하더니........토끼봉 오르면서 흘린 땀을 닦지 않고 축축한 몸으로 자서 그런지 오한이 일어난다. “첫날인데 벌써 이러면 않되지” 끝까지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란 의구심이 들면서 벌떡 일어나 연하천 산장으로 향한다.

  

↗삼도봉에서 바라 본 토끼봉

  

  

6.연하천 산장의 향기

 

연하천산장 가는 길은 곳곳에 가을을 먼저 맞으려는 성질 급한 붉은 잎의 나무들을 미리 만난다. 가을이 시작된 것은 사실이다. 가을 속으로 들어가 떨어진 낙옆을 밟으며 계단을 오르내리니 한시간만에 연하천 산장에 도달한다. 연하천 산장은 개인이 관리하는 산장이라서 그런지 화장실 관리가 덜 되서 그런지 전방 50m 전부터 화장실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아~ 인간의 향기여!..........아마 지리산속에서 다시 인간세계로 돌아갈 수 있게 하는 몇 안돼는 장소란 생각이 드는데............ 취사장이 마땅치 않아 점심을 해먹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항상 보면 무슨 장터를 방불케 해 개인적으로 영~ 정이 가지 않는 곳이다. 그러나 나쁜 점 만 있는 게 아니고 좋은 점도 있는데 유일하게 술을 파는 곳이란 점이다.(이점이 나쁘다고 생각하는 분도 계시겠지만..^_^**) 노고단에서 만나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오늘 새벽 화엄사 동기가 되어버린 군산의 김선생님(김상석님)을 다시 만나 반갑게 아는 체 하는데 얼굴이 어째 좀 붉으스래하다. 반야봉은 갔다 오지 않았고 산행 중 아시는 분들을 만났는데 그분들이 힘들어하는 거 같아 가지고 온 술(집에서 담근 술)을 나눠 마셨다한다. (핑계가 좋으십니다. 에구구! 저녁때 벽소령에서 같이 한잔하면 나도 좀 맛을 볼 수 있는 술인데 아까버라....) 소주 200ml짜리(플라스틱병)를 벽소령과 장터목에서 밤마다 한병씩 마시려고 가지고 왔긴 했는데 김선생을 보니 한잔 같이 하려면 모자랄 것 같아 아애 소주 한병을 더 사서 배낭에 쑤셔 넣는다. 갈수록 배낭이 가벼워져도 시원치 않을 텐데 점~ 점 무거워지니.........쩝........ 사람들 떠드는 소리도 그렇고 인간의 향기도 괴로워 따뜻한 원두커피를 마시는 둥 마는 둥 연하천을 벗어난다.

  

↗벽소령 가는 길의 단풍

  

7.벽소령에서 도착 쓸쓸히 혼자 밥을 먹다.

 

삼각고지를 지나 형제봉을 지나지만 아침에 좋던 날씨는 없고 안개가 자욱하여 눈에 뵈는 게 없다. 그래서 그런지 벽소령 가는 길은 험하고 지루하게만 느껴진다. 연하천 산장을 떠난 지 2시간 10분 만에 오늘 1박 할 벽소령산장이 지친 나를 반갑게 맞이한다. 도착시각 5시 30분.........새벽 4시에 출발하여 장장 13시간 30분 만에 26.5km를 걸은 것이다. 가장 걱정스러웠던 긴 구간을 끝냈다고 생각하니 방학숙제 절반을 미리 해 놓은 어린이처럼 마음이 홀가분하다. 대피소에 도착했다고 신고를 하여 자리배정을 받고 군산의 김선생님을 찾으니 보이지 않아 혼자 쭈구리 구석에서 밥을 지어(버너 바람막이가 없고 바람이 많이 불어) 즉석 곰탕국에 말아 입에 털어 넣으니 처량하기 이를 데 없다. 동행이 있으면 이것저것 넣어 찌개도 끓이고 솜씨를 발휘하려고 할텐데......기러기아빠가 된 친구가 대충 혼자 밥해먹고 의기소침해져 있는 이유를 이제야 안다. 의욕이 없어지니......단독종주의 외로움을 뼈저리게 느껴보기도 하는 일이 한편 재미있기도 하고..........

 

↗1박 할 벽소령

 

8.벽소령에서의 이름 모를 만남과 긴~긴밤의 고통

 

밥을 먹으려는 순간 김선생님이 오시더니 도중에 만난 일행과 술 한잔하고 있을 테니 밥을 먹고 그리로 오란다. 밥먹고 할일이 없었는데.....김선생님 외 부산에서 오신 두분...서울에서 온 서른살 총각 두사람....이렇게 6명은 별무 통성명 없이 술잔을 기울인다. 사회에서 만난 것처럼 그런 형식적인 것이 필요하지 않은 친숙한 자리.....이것이 산이 주는 또 하나의 혜택이면 혜택이다. 서로 내세울 가면과 가식이 없으니........그렇게 벽소령의 밤은 깊어가고......혼자 자리 배정을 받은 나는 예약을 하지 않고 온 다른 분들에게 미안한 마음으로...방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거추장스럽고 피곤한 육신을 뉘어보지만 다리를 옆으로 올리기 좋아하는 애처가(?)에게 걸려 밤새 시달린다. 1박 2일 종주 계획이면 새벽에라도 훌쩍 떠날 수 있을 텐데 .....  

아~ 고통스러운 벽소령의 긴~긴 밤이여!  ...........

  

↗벽소령의 새벽 운해

  

9.운해가 펼쳐진 벽소령...... 아침 밥을 나누어 주다

  

대피소에서 편하게 잘 거라고 생각지는 않았지만 이건 좀 심하게 잠을 설친 것 같다. 날이 밝기를 기다려 내가 가져간 돼지고기에다 김치를 넣어 끓이니 모두들 맛있다한다. 밥을 거의 다 먹고 있는데 한 아저씨가 와서 밥 남은 것 있으면 좀 같이 먹을 수 있는지 물어본다. 와이프가 어제 먹은 게 체해서 아침밥을 할 수 없단다. 같이 온 일행들은 이들 부부를 남기고 떠났다고 하고...... 아침 지을 쌀이 없다는 뜻인지...아파서 지을 수 없다는 이야긴지.........무슨 말인지@@@.....산에서 도와줄 수 없는 건 없다지만.....와이프가 평상시 산을 거의 다니지 않았다하는 걸 보니 몸도 산행준비도 거의 해 오지 않은 것이다. 그것도 동네산이 아닌 지리산에...............무책임한 남편의 말에 좀 화가 나기도하지만 와이프의 누런 얼굴을 보니 딱하기 그지없다. 와이프는 남은밥에 김치찌개를 먹게하고 남편은 자기까지 얻어먹기 미안한지 밥도 먹지 않고 저만치 떨어져 서있다. 너스레를 잘떨지만 속이 깊어 보이는 박선생님(박종석님)이 남편보고 이리 오라고 하면서 숟가락은 가져와야지 숟가락도 없으면 밥을 줄수 없다고 뼈있는 한마디를 한다. 밥을 먹는 두 부부를 보면서 지리산에서 준비없는 산행이 얼마나 무모하고 위험한지를 다시한번 느낀다.

  

 ↗벽소령의 아침 운해

↗벽소령의 운해

 

10.헤어짐과 동행

 

군산 김선생님은 일정 때문에 장터목으로 미리 떠나고 박선생님을 포함한 부산에서 오신 두분은 차량문제로 다시 성삼재로 떠나며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눈다. 벽소령도 헤어짐이 아쉬운지 멋진 운해를 선보인다. 어제 처음 만나 몇마디 하지 않았는데 오랜 정이 든 것처럼 가깝게 느껴지고 헤어짐이 아쉽다. 기약없이 각자 뿔뿔이 흩어져 떠나고 산행길에서 다시 만나고..........이제 남은 사람은 나 포함 세사람..........지리산에 처음 왔다는 잘생긴 젊은이 두사람이 나와 함께 장터목을 거쳐 천왕봉에 간다고 한다. 나도 산행 경험이 많지 않은 초보인데 추석 연휴를 즈음하여 수염을 깎지 않고 1주일간 길렀더니 믿음직한 지리산 산꾼으로 보였나?

  

↗세석 가는 길의 운해  

↗변화무쌍

↗세석 가는 길의 단풍

↗삼신봉에서 본 걸어온 능선길

↗장터목 가는길

↗뒤돌아 본 길

 

 

11.장터목에 도착하다.

 

준수하지만 아직 이름도 모르는 두 젊은이와 덕평봉을 넘어 선비샘에 도착하여 시원한 물맛을 보고 감탄한다. 벽소령물맛보다는 확실히 낫고 임걸령 물맛에 비하지는 못하지만 시원함을 느낀다. 앞으로는 벽소령에서는 물을 조금만 배낭에 넣어 가지고와 선비샘에서 물을 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칠선봉에서 영신봉을 거쳐 가는길은 내가 처음 지리종주를 계획할 때 가장 경치가 좋아 쉬어 쉬어 가며 즐길려고 했던 구간인데 안개가 짙게 껴 아무것도 안보이니 너무 아쉽다. 장터목에서 1박 할 앞으로의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하나?라는 생각이 계속들고....... 오직 안개속을 헤치며 오르내림을 반복하니 벽소령을 떠난지 3시간 10분만에 세석에 도착한다. 역시 세석평전의 아름다운 초원지대 모습은 볼수가 없고 촛대봉을 거쳐 삼신봉에 도달하니 안개가 조금씩 거치지만 오리무중이기는 마찬가지......연하봉을 앞두고 젊은 친구중 하나가 무릎이 아프단다. 여자친구와 지리종주를 꿈꾸며 도상훈련중이라는 젊은인데 그 생각이 귀엽고 가상하다.

  

↗장터목의 운해

  

12.안개속에 계획을 변경하다.

 

장터목에 도착하니 12시 정각. 라면에 햇반을 풀어 맛있게 먹고 .....1박 해야하는 곳에 너무 일찍 도착하니 안개로 더 이상 머무를 이유가 없다. 천왕봉을 거쳐 치밭목산장에서 1박하기로 마음을 정하고 매점에서 치밭목산장에서 밤에 먹을 스팸햄과 라면하나 그리고 종주하면서 계속 먹고 싶었던 백도 캔을 사서 배낭에 쑤셔 넣는다. 치밭목산장에는 라면밖에 팔지 않는다는 선답자들의 산행기 때문인데 무거운 것들을 추가할 필요가 없음이 나중에 밝혀진다. 무릎이 아픈 젊은이에게 아대를 빌려주고 같이 두서거니 앞서거니 하면서 제석봉을 지나고 통천문을 통과하여 천왕봉으로 안개를 헤쳐나간다. 그길에 장터목으로 내려가 백무동으로 하산한다는 군산의 김선생님과 다시 반갑게 만나고 사진 한 장을 박는다. 만남과 헤어짐의 무상함을 다시 느끼고......

 

 ↗천왕봉 가는 길의 단풍 

↗지리산에 무지 많이 피어 있던데.. 알려주세요...이게 다 핀 상태라는데....

 

13.안개 속 어수선한 천왕봉

 

장터목을 출발한지 50분만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천왕봉 정상에 선다. 천왕봉정상은 그야말로 사람들로 꽉 차있고 천왕봉정상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면 줄을 서야할 판.......소란스런 천왕봉 정상이어서 그랬을까?  별다른 감회없이 나중에 올라온 젊은이 두사람과 증명사진을 찍고 물어보니 무릎 때문에 치밭목 산장까지 가기는 무리라한다. 중봉을 거쳐 치밭목산장까지 가는 길은 험하다하여 나도 강권하지는 않는다. 젊은이들과도 아쉬운 작별을 고하고 중봉(1875)으로 향한다.

  

 ↗기품있는 중봉

 

14.세련된 현대여성의 도도한 자태....... 중봉

 

이제부터는 가보지 않은 길이고 정말 나 혼자만의 길.............천왕봉에서 내려서면서 삐죽하게 하늘을 보고 솟은 중봉은 너무 아름답다. 간간히 보이는 울긋불긋한 단풍이 멋스러움을 더하고 있다. 천왕봉(1915)을 카리스마가 절절 넘치는 강하고 멋있는 남성이라면 중봉(1875)은 아주 깔끔하고 세련되었으되 자기 주장이 강한 현대여성임을 느끼게 한다. 중봉의 날카로운 측면 능선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중봉의 그 톡 쏘는 매력에 넋을 잃고 침을 반쯤 흘리며 내려서서 천왕봉을 보니 안개속에 가려져 있던 천왕봉의 카리스마가 열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카메라를 꺼내 재빨리 찍어 보지만 한두장 찍기도 전에 강한 남성은 값어치를 높이려는 듯 안개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중봉 가는 길에 살짝 보여준 천왕봉의 카리스마

  

15.써리봉에서 천왕봉과 중봉이 열리다.

 

중봉정상(1875)에서는 천왕봉이 열리기만을(그곳 사진작가분들은 이렇게 용어를 구사하였음)기다리고 있는 사진 예술가 서너 분이 삼각대를 설치해 놓고 안개속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나도 한번 찍새가 되어보려고 17분이나 쉬어보지만 천왕봉은 끝내 열리지 않는다. 중봉 오르는 안부에서 잠깐 보여준 것으로 만족하고 써리봉(1640)을 향해 출발한다. 아무도 만나지 못하고 자욱한 안개속에 얼마를 내려왔을까? 조그만 바위 봉우리가 2개가 보이는데 철계단이 있다. 철계단을 올라 전망을 보는데...........아!~ 천왕봉과 중봉이 서서히 열리는 것이 아닌가? 나는 아무런 말도 못하고 그 자리에 .....그냥 서서............ 천왕봉과 중봉과 만난다. 중봉 옆에는 하봉쪽 능선들에서 운무가 피어 오른다..............가슴이 터질 것 같은 희열이 북밭쳐 오르고..............장엄한 대 자연 앞에 나 혼자 서 있다....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정신을 차려 시계를 보니 30분을 앉지도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는 이야긴데.......뭔가에 홀린 것 같기도 하고..........계속 있고 싶지만 치밭목 산장까지 갈길이 멀다. 사람들이 많아 자리가 없으면 비박준비도 하지 않은 내가 어떻게 밤을 지새운 단 말인가?라는 생각에 아쉬운 발길을 돌린다.

  

↗써리봉(1640)

↗끝이 뾰족하더니

↗머리가 약간 보이고(천왕봉)

↗발톱이 서서히 보이고

↗천왕봉의 전모가 드러나며

↗단풍

  

↗남성다운 천왕봉, 여성스러운 중봉

  

 

 

↗천왕봉과 중봉

↗고사목을 배경으로

↗하봉방향

↗하봉능선의 운무 1

↗하봉능선의 운무 2

↗하봉능선의 운무 3

↗치밭목 가는 길의 단풍

 

16.치밭목 산장의 아름다움

 

안개 낀 산길을 달려 한시간정도 내려서니 날이 어두워지며 치밭목산장이 따스한 불빛을 발하고 있다.  선답자들의 산행기를 읽어보면 치밭목 산장은 라면 밖에는 팔지 않고 숙박시설도 수준이하라고 혹평하였음을 알고 있었지만 웬걸! 매점에는 각종 필수품이 거의 다있고 연하천산장에서만 판다는 소주까지 있는 것이 아닌가? 장터목에서 스팸에 백도 캔까지 사가지고 여기까지 온 나는 웃으며 허탈해 한다. 소주도 아직 아껴서 한병이 남았고........지친 나그네의 잠자리가 아직 남아 있음에 안도하며 밥을 짓고 국을 끓이면서 스팸을 안주 삼아 소주 한병을 빈속에 털어 넣는다. 내일은 더 올라야 할 산행도 이제는 없다. 길다면 긴 지리산 종주의 마무리에서 치밭목산장에 어둠이 내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이제야 천왕봉에서 못 느낀 감회에 젖는다. 치밭목은 너무 아름답고 호젓하다. 이곳이 정말 지리산의 산장 다운 산장이 아닐까?하는 내 나름 대로의 평가를 내려보지만 이곳도 조만간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들 것을 생각하니 이런 사실을 알리고 있는 내가 일조하고 있다는 것은 아닐까? 라는 죄책감이 든다. 치밭목산장지기인 민병태씨의 사진이야기를 들으며 치밭목산장의 밤은 깊어만 간다.

  

↗치밭목산장 매점.................있을 건 다 있네???(단 버너가스는 없음)

↗새로 공사를 했나?

↗?

  

17.지루하고 험한 대원사 하산 길

  

어제 잠을 설쳤기 때문인가? 아니면 포근한 치밭목 산장의 기운 때문 이었을까? 나름대로 숙면을 취하고 일어나니 새벽 5시....어제 남은 밥에 물을 부어 누룽지를 끓여 스팸을 반찬 삼아 조촐한 아침 식사를 하니 달뜨기 능선에 운해가 펼쳐져있다. 달뜨기 능선의 솟은 봉우리가 웅석봉이라는 민병태씨의 설명이 더 해지니 한층 멋있어 보인다. 커피한잔을 마시며 달뜨기 능선을 구경한 나는 아름다운 치밭목을 뒤로하고 내려선다. 한 시간 정도를 내려오니 “무제치기폭포” 이정표가 나타나 무제치기폭포를 보기위해 배낭을 벗고 100m 아래로 내려간다. 수량이 적은데도 3단 폭포의 위용이 대단하다. 물이 많은 여름에는 대단할 것라는 추측을 해본다. 지나쳤으면 후회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다시 배낭을 메고 출발하는데 유평리 가는 하산 길은 험하고 쉽지 않다. 밧줄이 있어야 할 곳에 밧줄은 없고 오늘 아침 약간 내린 비가 미끄러움을 더하게 한다. 한마디로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길을 얼마나 내려왔을까? 언제 길이 험했느냐는 듯이 유평리의 평화로운 마을이 나타나고 도로를 따라 30분정도를 걸으니 대원사 일주문이 나타나 기나긴 2박 3일간의 무사한 종주에 감사하며 합장하고 머리를 숙인다.

  

↗치밭목 산장에서 바라본 달뜨기 능선과 웅석봉

↗무제치기 폭포

↗무사히 종주를 마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