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봉산-매봉 산행기
         
                              *산행일자:2004.10.9일
                              *소재지  :경기 가평
                              *산높이  :칼봉산 900미터/  매봉 929미터
                              *산행코스:배골주차장-경반분교터-칼봉산-매봉-배골주차장(17키로)
                              *산행시간:9시5분-15시50분(6시간45분)

 

어제는 오랜만에 경기도 가평의 산들을 찾았습니다.
지난 3월 뾰루봉-화야산-고동산을 연이어 오른 후 그 동안  한북정맥을 종주하고 이어서 서울의 수호산들과 70년대의 명산을 다시

찾느라 경기도의 알프스라 불러도 결코 지나치지 않을 가평의 명산들을 잊고서 지내왔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섬뜩한 칼봉산과 매봉이 어제 오른 산들입니다.
칼날을 연상케 하는 칼봉산이나 매부리를 떠오르게 하는 매봉 모두 날이 서있는 이름의 산들이기에 산세가 매우 날카로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제껏 산행을 늦춰왔는데 눈이 오기 전에 올라야 덜 위험할 것 같아 어제 서둘러 다녀왔습니다.

 

가평읍에서 배골주차장까지 택시로 이동, 9시 5분에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돌다리를 건너 경반사로 이어지는 임도를 따라 아침의 산길을 걸었습니다. 가을 특유의 청량한 아침 공기를 들이마시며 홀로

산길을 걷는 이 느긋함이 바로 도시의 일상에서  탈출해 얻고자 하는 것입니다. 한석봉 마을로 명명된  백학동의 계곡을 건너면서

아침햇살을 머금고 있는 가을의 계곡을 카메라에 옮겨 실었습니다.

 

9시58분 계곡을 6번이나 건너 다다른 경반분교터에서 칼봉으로 이어지는 들머리를 찾아 계곡 길로 들어섰습니다. 칼봉산을 찾는

분들이 그리 많지 않아 등로가 분명치 못했는데 구리산악회의 표지리본이 제가 오르고 있는 길이 제 길임을 알려주었습니다. 계곡이

끝나는 곳에서 목을 추기며 졸졸 흐르는 물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11시 9분 칼봉산 정상과 중산리로 갈라지는 700 안부에 올라섰습니다.
계곡에는 아직 단풍이 들지 않았는데 산마루에는 곱디고운 단풍들이 그 붉음을 뽐내며 산 나들이를 나선 이들을 반기었습니다. 

양쪽의 산밑에서 불어 올라와 세를 더하는 계곡 풍이 시원한 정도를 넘어서 써늘하게 느껴져 쉬지 않고  바로 안부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1.2키로 떨어진 정상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11시53분 해발 900미터의 칼봉산 정상에 섰습니다.
안부에서 정상에 오르는 중 중년의 부부 한 쌍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회목고개에서 칼봉산을 거쳐 경반리로 하산

한다는 두 분의 함께 산행하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습니다. 긴 시간의 산행 중  일상에서 말하기 힘든 것을 터놓고 얘기할 수도

있고 아니면 묵언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그 분들이 부러웠습니다. 주차장에서 7키로를, 분교터에서 3.1키로를 걸어 올라선 정상은

나무들로 시야가 가려 나뭇잎 사이사이로 일부가 보이는 맞은 편들의 산들을 사진으로 남길 수밖에 없어 아쉬웠습니다.

 

12시 정각 왼쪽 능선을 따라 회목고개로 하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칼봉산에서 매봉까지 거리는 2.4키로로, 1 시간이면 매봉 정상에 닿을 수 있을 것으로 짐작되어 천천히 회목고개로 내려갔습니다.

아주 짧은 구간의 푸르른 산 죽들이 붉게 물들기 시작한 나뭇잎들과 대비되었습니다. 경반리에서 해발 700미터대의 회목고개로

이어지는 임도가  마일리 국수당으로 연결되는 것으로 보아 연인산이 멀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3시8분 해발 929미터의 매봉에 도착했습니다.
회목고개에서 매봉에 이르기까지 식생 군은 칼봉산 능선의 그것들과는 조금은 달랐습니다. 길 왼쪽으로 잣나무가 초록의 푸르름을

유지시켜 주었고 오른 쪽의 활엽수 숲속에는 소철 나무처럼 잎이 큰 풀이 아직도 여름의 초록을 벗어버리지 않았습니다. 정상에

이르기 직전 송신탑이 세워져 있는 산마루에 올라서자 운악산의 암봉들이 분명하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지난 여름 한북정맥을

종주하느라 땀흘려 오른 운악산의 빼어난 아름다움을 지난번과는 반대편에서 조감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매봉 정상은 헬기장이

들어서 있어 칼봉산과는 달리 전망이 뛰어나 서울의 북한산과 도봉산도 그 모습을 식별할 수 있을 정도로 멀지 않게 보였고,

먼발치의 화악산과 그 앞의 명지산, 그 옆의 연인산은 제가 모두 오른 산들이기에 눈에 익어 반가웠습니다.

 

경기도의 제 2 고봉인 북동쪽의 명지산이 주산으로 자리잡은 이 주위에는 그 말 산들이 많이 포진해 있습니다. 귀목봉, 연인산과

칼봉산 및 매봉이 제가 오른 말 산들이고 대금산, 청우산, 불기산, 백둔봉들이 제가 오를 산들인데 이 산들이 바로 가평을 경기도의

청정지역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름이 풍기는 것과는 달리 칼봉산이나 매봉 어느 한산도 날카로운 산이 아니었습니다. 눈이 쌓인 한

겨울에 올라도 걱정할 것이 전혀 없는 편안한 산인데 누군가가 이름을 잘못 지어 두 산의 포근함이 날카로움에 밀리도록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떡 몇 조각과 사과로 배를 채운 후 13시 27분 두밀리에서 올라왔다는 젊은 두 분에 먼저 출발한다는 인사를 전하고 나서 일단

깃대봉을 오를 생각으로 남쪽으로 난 능선 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매봉서부터는 인적이 뜸해서인지 길이 제대로 나있지 않아 손등을

긁히며 우거진 풀숲을 헤쳐 나가기도 했습니다만, 오전 내내 걸어 온 칼봉산의 주능과  7부 능선까지 내려온 단풍라인이 깨끗하게

보여 힘든 줄 모르고 갈림길까지 능선 길을 걸었습니다.

 

800미터를 걸어 다다른 갈림길에서 깃대봉으로 가겠다는 생각을 접었습니다.
바로 하산해야 저녁 7시 미사에 댈 수 있다는 판단이 섰기에 까마귀의 환송을 아쉬워하며 13시 53분 경반사로 하산했습니다. 너덜

길의 돌과 돌 사이사이로 난 산 죽 때문에 내림길이 미끄러웠습니다. 얼마고 내려서 계곡이 시작되는 곳에서 뱀을 만났습니다.

어렸을 때는 큰 개구리와 맞서고 있는 새끼 뱀도 만났을 정도로 지천에 널려 있는 것이 뱀이었는데 요즈음은 산에서도 뱀을 거의

만나지 못했습니다. 저를 보자 재빨리 사라지는 뱀에 눈길을 준 것은 혹시나 겨울잠에 들어가기 전에 인사차 저를 기다렸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14시52분 임도 직전의 숲길에서 마지막 쉼을 가지며 사과 한 개를 마저 까먹었습니다.
임도를 따라 걸어 내려가다 지난 작은 폭포와 그 밑의 소가 아주 작은 절인 경반사와 잘 어울리는 듯 싶어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임도 곳곳에 안내문 간판이 세워져 있어 그 내용을 읽어 본 즉 무단으로 골재를 채취하면 벌을 받는다는 등의 경고가 주된 내용

이었습니다. 1985년 하와이의 가우와이 섬을 일주하는 중 발견한 해안 변에 세워진 경고판의 내용이 색달라 지금도 생생하게 그

문구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수영을 하기에 위험한 지역이고  수영하다 사고가 나도 주 정부가  책임지지 않습니다"라는

내용이  경고문보다는 안내문에 더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여기 세워진 안내문은 거꾸로 경고문이라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13시 50분 출발지인 주차장으로 되돌아 와, 약 7시간 동안 17키로를 걸어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택시를 불러 서둘러

가평으로 나갔습니다.

 

16시 52분 가평역에서 청량리행 기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어느 유치원에서 준비한 "아빠와 함께 하는 기차여행" 프로그램에 동참한 10여명의 꼬마들과 아빠들의 즐거워 하는 모습들을 지켜보고,

제게 할아버지라며 사인을 부탁한 꼬마에 "예쁘게, 착하게 그리고 건강하게 잘 자라기를..."라는 메시지를 전해주느라 청량리까지

꼬박 서서왔는데도 피곤한 줄 몰랐습니다.

 

과천으로 돌아와 저녁 미사에 10여분 늦게 참석해 특전미사를 올렸습니다.
집에 돌아와 저녁을 들고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동서울 터미널에서 밤11시에 강릉행 심야버스에 몸을 실고 오대산 산행 길에

나섰습니다.